“그… 제가 한마디 해도 될까요?”

“네, 저희 이제 부부인데 못할 것도 없죠”


그녀는 흔쾌히 말했다.

아마도 별반 기대는 하지않는 듯한 모습.


나도 그녀의 살해 동기를 몰랐다면 이런 제안따위는 하지않을 것이다.


“후우…”


심호흡을 하고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한다.


“멜리사씨는 제가 보기에 결혼에 대해 그리 탐탁지 않아 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제가 본 것이 맞나요?”

“뭐… 틀린 말은 아니네요… 하지만 가문에서 정한 일 인걸요.”


그녀는 간단하게 수긍했다. 딱히 사랑따위는 원하지도 않는 그저 정략결혼. 그뿐이다.


다 알고있던 사실이였지만. 진실을 마주하니 마음 한켠이 괜시리 쓰라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으리라.


“그래서, 제가 조금 생각해 온 것이 있습니다.”

“뭐죠?”


멜리사가 나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괜히 손발에 땀이 차는 기분이 드는 것은 착각이 아닐 것이다.


“저희 계약 하나만 하죠, 겨… 결혼에 관해서요.”

“결혼에 관한 계약이요? 좀 특이하긴 하네요?”


내 엉뚱한 제안에 멜리사는 또 픽하고 맥없이 웃었다.


“네,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도 내키지 않으실테고. 노력한다고 사람이 멋대로 사랑이 싹트고 좋아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것도 그렇죠, 어찌됐든 본론부터 말해봐요. 저는 뜸을 들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목숨이 걸려있는 일이다. 그녀를 어떻게든 설득시켜 몸 성히 챙겨서 이혼해야 한다.


조별과제 프레젠테이션 때 했었던 발표 스피치를 떠올리자, A+ 받을 각오로 최선을 다해 설득해야한다.


“계약 결혼 합시다. 어때요? 계약 기간은 2년. 그 때가 지나면 대충 이유 둘러대고 이혼하죠.”

“계약, 결혼이요? 2년이면 썩 나쁘지도 않고. 근데 그걸로 저희가 얻을 수 있는건 뭐죠?”


책상위에 있던 종이 하나를 꺼내며 설명을 이어간다.


“네, 그렇죠 단순히 2년동안 살다가 헤어지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해결이 안되는 법이니까요. 그러니까…”


말 끝을 흐려 조금 더 뒤의 이야기를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유튜브에서 본 기술이다.


그녀도 실제로 뒤의 이야기를 기대하는 눈치였고.


“비록 외동딸이라 후작위는 받으시겠지만 홀몸의 여성이 받을 수는 없죠. 그래서 저와 결혼도 하신걸테고요.”


그녀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긍정했다. 소설속에서 본 그녀는 권력욕이 무척이나 강한 여자였으니까.


“뭐, 맞아요… 법적으로 여성은 가주가 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니까요. 미혼영애로 살다가는 가신들이 후작위를 노릴게 당연하죠. ”


그 꼴은 그녀 입장에서도 절대로 보기 싫을 터이다.


“그러니까 당신은 저의 아내가 되어 2년 내로 아이를 배는 것이 목표입니다. 출산도 한다면 후작위는 아이의 대리섭정 권한으로 어찌어찌 물려받을 수 있겠죠. 맞나요?”

“네, 얼굴만 그럴싸한 허당이신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저를 잘 파악하셨네요?”


그녀의 눈이 제법 호의적으로 변해간다. 공동의 목표가 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걸까.


“하하…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그냥 왠지 그럴 거 같아서요”


‘당연히 잘 파악해야지… 심리도 다 나오는데 독자인 내가 모르면 그냥 죽어야지…!’


“흐응… 운인가요?”

“네, 어찌됐든 그러면 저는 무엇을 얻느냐… 그것이 문제이긴 하네요. 하하…”

“혹여나 바라시는게 없는건가요? 그러면 손해만 보시는게…”


본디 거래는 이익추구. 한쪽이 손해보는 장사는 서로 간의 신뢰를 떨어트리는 법이다.


“아뇨, 그럴리가요. 저는 저희 가문의 압박을 받는걸 좀 싫어하는 사람이라 말이죠. 백작가 차남이 결혼도 실패하면 뭐가 남겠습니까. 그러니까, 적당한 집이랑 돈만 좀 주시죠. 혼자서 유유자적하게 살게”


속물적이기 그지없는 제안. 하지만 그녀는 점잔떠는 성격은 아닐 터이다.


“…꽤나, 속물적 이시네요…?”


아닌가? 땀이 등에 삐질삐질 나지만 이제와서 물러서기에도 늦은 감이 있었다.


“맞습니다. 그게 아니면 당신 남편으로 그냥 사는게 백번은 더 나을테니까요.”


어깨를 으쓱이며 최대한 자연스러운 제스쳐를 취한다.


나는 한량이다. 나는 한량이다. 나는 한량이다.

그렇게 끊임없이 되뇌이며 제 받을거 받고 헤어질 쿨한 사람을 연기한다.


“그런데, 제 외모가 탐이 나지는 않으셨나 보네요?”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어본다. 시험인가?


“아, 물론 엄청 탐이나고. 지금도 마음 같아서는 심장 떨릴만큼 예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결혼에 의해 의무감으로 멜리사 당신을 안고싶지는 않고요.”

“어차피 임신 시키려면 저를 안으셔야 할 텐데요?”


“뭐, 그건 그렇죠…”

“그러면 결국 의무로 안으셔야 할텐데요?”


‘억지로 안았다가 목이 달아나면… 어우 씨….’

그래도 성욕보다는 생존 욕구다.


“어차피 시간은 2년이나 주어졌는데. 지금은 서로 알아가기만도 바쁠테니까요”

“뭐, 그건 마음에 드네요. 잘 부탁해요. 데미안.”

“잘 부탁합니다. 멜리사.”


빈 종이에 서로간의 계약 내용을 써내려갔다.


계 약 서

제 1항. 위 계약은 2년 후 이혼하는 것으로 종료된다.

제 2항. 멜리사 로즈윈이 2년 내로 회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이다.

제 3항. 2년 후 이혼시 멜리사 로즈윈은 데미안 로즈윈에게 당시 시세로 중산층 서민이 평생 먹고살 만한 금전과 집 한채를 양도한다.

제 4항. 


종이에서 시선을 떼어 고개를 들고 그녀를 바라봤다.


“또… 뭐쓰죠?”

“그, 러게요?”


어색한 침묵이 감돈다. 생각하자 생각.


“성관계… 회, 횟수는 어때요…?”

“그으, 그렇네요? 한, 한달에 한번?”

“멜리사…”


짜게 식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2년동안 24회의 성관계로 회임하면 그건 적중률이 좋은거다.


“너, 너무 많았나요? 그럼… 2개ㅇ…”

“아니, 잠시만요 멜리사. 반대입니다, 반대! 한달에 한번도 2년 내로 회임이 가능할지 부터가 의문인데 거기서 더 줄이시다뇨!”

“네? 하지만 귀족들은 보통 1달에 한번한다고…”


내 지적사항에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작은 목소리로 항변했다.


마냥 표독스러울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귀여운 일면도 있는 것 같았다.


“저희는 평생 같이 보고 살 게 아니잖아요? 2년 안에 빨리 해치워야 한단 말이예요.”

“아, 알았어요! 그럼 일주일에 4번이면 되나요?”

“……멜리사?”

“매일…?”


성적인 것에 관해서는 얼굴을 붉히는 것이 아무리 악녀라도 아직은 성지식도 별로없는 순진한 처녀같아서 지금도 내 눈치를 보며 매일? 이라고 하는 모습이 퍽이나 귀여웠지만. 잘못하면 말라죽겠다. 아직 내 정력도 모른다.


아마도 로판 특성상 절륜하겠지만…


“아뇨! 왜 사람이 중간이 없는거예요… 일주일에 한번이나 보름에 한번 정도가 적당하겠죠.”

“어, 어쩔 수 없잖아요… 알았어요 1주에 1회…”


샐쭉하게 눈을 뜬 그녀가 계약서에 조항을 기입했다.


우여곡절 끝에 4번 조항이 정해졌다.


제 4항. 부부간의 관계는 주 1회.


근데 더 하고싶어지면?

이거 중대사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선.


“근데 멜리사. 만약 주 1회를 넘기고 싶어지면요?”

“……”


멜리사가 입술을 앙다물고 째려보며 빼액 소리질렀다.

“제 맘이예요!”


제 4항. 부부간의 관계는 주 1회.


본격적인 계약 결혼의 시작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