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우주 최고의 앰생개백수 장붕,

늘 꿈에만 그리던 소설 속 판타지, 짜릿한 모험이 드디어 나에게도 찾아왔다. 장르소설 전문가인 나는 여느 생존전문가들 못지않게 일련의 상황에 빠르게 적응했고, 오늘은 ‘대격변(가칭, 직접 지음, 있어보임)’으로부터 2주 하고도 3일째 되는 날이다.


그런데… 막상 이런 상황이 되고 보니 불만이 하나 생겼다. 

…많고 많은 장르 중에 하필 좀비 아포칼립스일건 또 뭔가!


물론 내가 평소에 유독 좋아하던 장르 중 하나였지만, 솔직히 아포칼립스라는게 사람 살기엔 최악의 환경 아닌가…! 덕분에 지난 며칠간 정말 똥꼬빠지게 굴러서 겨우겨우 목숨을 부지했다. 


어찌됐든, 딱 대격변 2주째였던 3일 전날의 새벽, 나는 또 하나의 변화를 맞닥뜨렸다. 내 눈 앞에 푸르게 빛나고 있는 이 ‘상태창’이 바로 그것이다. 


자고로 상태창이라 함은 소설 속 주인공들의 최강의 무기! 그 활용성은 무궁무진하며, 레벨에 더해 근민체와 마력 그리고 스킬이 함께하는 단연 최고의 권능, 킹태창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갓태창님이 나타나 내게 처음 보여준 것은, 어쩌면 왕도라고도 할 수 있는 ‘전직’의 기회였다.


이런걸 망설이면 장붕이 체면이 말이 아닌지라, 칼같이 전직을 택했는데…


내가 받은 결과는 별 2개짜리 「네크로맨서」. 


처음에는 절망했다.


“——좆태창씹새야아무리그래도이건아니지2성이뭐냐——!!!”


나는 내심 내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5성도 4성도 하다못해 3성도 아닌 2성 잡찌끄레기 직업이라니! 아무리 최대 등급을 추정하지 못하더라도 이것이 당첨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내 마음을 다잡고 스킬을 확인하며 생존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그런데 와중에 가장 초기 스킬인 ‘뼈창 제작(N)’의 재료부터가 동물의 뼈 1킬로그램을 요구하고 있었는데, 이 애매한 번거로움이 직업 명칭 앞에서 빛나는 2개의 별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장르가 좀비 아포칼립스라서 지천에 널린게 시체였던지라, 생각보다 그렇게 불편한 조건도 아니었다. 이런 점에선 아포칼립스가 도움이 될 때도 있단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죽이 됐든 밥이 됐든 전직은 내 생존에 큰 도움이 되었고, 이후로 오늘까지 3일간 내리 좀비를 하나둘씩 사냥하며 레벨 업에 전념했다. 레벨업으로 스탯이 오르니 사냥도 수월해져 점점 속도가 붙었다. 


그리고 5레벨 때 ‘라이징 언데드(N)’스킬을 새로 배웠는데, 내 최대 마나량인 50을 거의 다 쏟아넣어야 고작 비실비실한 뼈다귀 하나 만드는 게 전부였고, 나는 그 진한 똥직업의 맛에 또 한번 절망했다. 


그러나 좌절도 잠시, 난 레벨업을 멈추지 않았고…

그렇게 방금, 난 10레벨을 달성했으며,

또다시 스킬 하나가 추가되었다.


—띠링! 

—신규 스킬 ‘시체 폭발(N)’을 습득하였습니다.


[시체 폭발(Normal)

시체, 혹은 언데드를 매개로 하여 ‘보통 수준의’ 폭발을 일으키는 마법. 언데드의 동력을 일제히 폭주시켜 폭발시키며, 아무런 마력도 담겨있지 않은 시체의 경우 시전자의 마력을 추가로 소모한다.]

시체..폭발?

오. 드디어 뭔가 있어보이는 스킬이 나왔다. 

내친김에 이전에 만들어서 보조로 끌고 다니던 약골 해골병을 대상으로 실험해보기로 했고, 해골을 나로부터 조금 멀리 떨어트려 놓은 채 스킬을 사용해 보았다.


“…시체 폭발!”


——퍼엉!!! 

…후두두둑 


내 첫 언데드인 윌슨(해골병의 이름이다, 터트리기 전에 붙여 주었다.)은 장렬히 산화했고, 뼛조각은 터져나가며 일대에  산탄처럼 흩뿌려졌다. 폭발 자체의 위력도 생각보다 준수해서, 저정도면 인접한 좀비 여럿도 한번에 처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무엇보다도 최소한의 양심이라고 봐야 할지, 소환과정부터 거의 마나통 전부를 먹어치우는 해골병을 통째로 소모하기 때문인진 몰라도 ‘시체 폭발’ 스킬의 발동 자체는 트리거로 쓰이는 1의 마나가 소모값의 전부였다. 

이렇게 되면 많아야 하루에 하나라지만 적당한 위력의 미니 크레모아를 손수 제작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그럭저럭 괜찮다고 느껴졌다.


그렇게 적당히 머릿속을 정리하고 일어서던 차에, 폭발 소리를 듣고 꼬였는지 조금 부담되는 수의 좀비가 멀리서 다가오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떡하지? 창을 들고 맞서 싸워야 하나..? 

귀찮은데 그냥 뒤돌아서 냅다 튈까…?


그런 고민을 하며 잠깐 멈칫했던 그 순간

내 뇌리에 한 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난 가만히 서서 좀비들이 조금 더 가까워지길 기다렸다가-


“시체 폭발!”


——퍼엉!!!


“…오”


-시체 폭발을 사용했다. 물론 윌슨은 아까 승천했으니 이번에 대상이 된 것은 달려오던 좀비 무리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게…

되네…?


설마설마하고 써본 거지만… 보통 좀비아포칼립스에서 발생한 좀비를 이렇게 써먹는게 되던가?? 아니 애초에 네크로맨서가 좀비에 고생하는것도 웃기긴 하니까 말이 안 되는건 아닌데.. 그래도 이건 너무 오버 밸런스가 아닐까? 지천에 널린게 좀비인데 마력1로 펑펑 터트리는게 된다고? 일단 좀비랑 싸우다 죽진 않겠는데?…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혔지만 얼마 가지 않아 내 마음은 매우 평온해졌다. 마치 깨달음을 얻은 무인 마냥-


“나는…

틀리지 않았어…

나는 주인공이었던거야…”


이것이

나 김장붕. 27세.

아포칼립스의 폭파광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