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모품은 최종보스를 만나기 전까지 아끼는 게 '상식'이라고.


용사라는 놈이 핑계랍시고 매번 지껄이는 말이다.

그리고 나는 저 말이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사람이 아파 죽어가는데 그깟 포션 하나 쓰기를 아끼는 게 말이 되나?

화염마법 스크롤 하나면 처리되는 마물을, 스크롤 아깝다고 장장 4시간에 걸쳐서 사투를 벌이는 게 맞나?


하물며 포션이 귀하고, 스크롤이 귀한 상황이면 이해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당장 내가 등에 매고 있는 가방에 담긴 포션만 수십 개가 넘어갔고, 스크롤은 수백개가 넘어간다.

화염마법 스크롤만 해도 1위계 마법부터 전설 속의 9위계 마법까지 가지고 있고, 번개-물-얼음-대지, 심지어 신화 속의 빛-어둠 속성 마법 스크롤까지온갖 마법 스크롤이란 스크롤은 다 가지고 있다.


아마 웬만한 마탑들이 가지고 있는 스크롤보다 우리 파티가 가지고 있는 스크롤이 많을거다.

대륙의 중소국가가 가진 마법 스크롤 양보다 많을지도.

과장 조금 보태면, 전쟁을 일으키고도 남을 정도로 스크롤 양이 많았다.


"그렇지만, 혹시 모르잖아? 이런 아이템들을 초반 구간에서 함부로 썼다간 나중에 보스 기믹에서 못 써먹어서 클리어가 안되는 상황이 나올 수가 있다고."


그런데도, 용사 놈은 저런 말만 지껄이며 소모품을 사용하지 않았다.

아이템은 또 무슨 말이고, 보스 기믹과 클리어는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지만 중요한 건 소모품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선택을 내린다는 것이었다.


소모품이 왜 '소모'품인가. 당연하게도 사용하고 소모하기에 소모품이 아닌가?

그런데 저 용사 놈은 소모품을 소모품이 아닌 수집품 내지는 장식품 비슷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고블린 같은 새끼....'


더 짜증나는 것은, 용사 놈의 말이 완전 틀리지는 않는다는 거였다.

'소모품은 최종보스를 만나기 전까지 아끼는 게 상식'이라는 서두와 함께 시작되는 말은 늘 '조금 힘들지라도 지금 우리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어' 라는 격려로 끝을 맺었고, 그 말은 틀린 적이 없었다.


온 몸의 근육이 찢어지는 것마냥 고통스러웠지만, 탈력감에 빠져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지만, 심장이 입밖으로 튀어나올만큼 숨이 차올랐지만.

우리 파티는 늘 난관을 해쳐나갔고 승리했다.

죽을만큼 힘들었지만 죽지는 않았고, 아슬아슬하게 패배의 직전까지 몰아붙여지곤 했지만 패배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렇기에 더 좆같았다.


파티 중 누구 하나가 크게 다치거나, 패배의 쓴 맛을 맛보면 그 뒤에 스크롤과 포션 등등을 사용하자는 말을 쉽게 거부할 수는 없을 거다.

하지만 그런 일 자체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 용사의 말은 정론이자 정의였고, 나 같은 파티의 짐꾼은 그런 정론에 거스를래야 거스를 수는 없었다.


중간중간 '내가 한번 고의로 크게 다치고 소모품 사용을 유도해봐?'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공상의 영역에 머무를 뿐 행동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파티의 전열인 드워프 베르만 씨, 파티의 후열이자 그 귀한 엘프 궁사인 샤린 양과 달리 나는 한낯 짐꾼에 불과했다.

아무런 특기도 장점도 없는 짐꾼.

다시 말해 다치면 얼마든지 교체가 가능한, 진정한 의미의 소모품이라는 소리다.


나는 나 자신이 소모품이 되는 것은 싫었기에 그런 멍청한 생각을 굳이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용사는 마왕을 쓰러트렸다.


#


내 예상이 들어맞은 건 하나도 없었다.

용사는 생각보다 더 강했고, 마왕은 생각보다 더 약했다.

내가 짊어지고 있는 가방에 산처럼 담겨있는 포션과 스크롤, 마나폭탄과 주물(呪物)을 쓸 이유도, 시간도 없었다.

용사의 검이 휘둘러지고 마왕의 목이 떨어졌다.

그뿐이었다.


지금까지 해쳐왔던 모험에 비하면 너무나도 허무한 결말이었다.

고작 이런 존재가 대륙의 공적으로 취급받았다니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물론 마왕이 지나치게 약한 것은 아니었다.

용사가 지나치게 강했던 것 뿐이었다.


용사가 매번 내뱉는 헛소리 중의 하나인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뿐'이라는 말은 헛소리가 아니었는지, 소모품 사용 금지라는 제약을 걸어가며 보내왔던 여정은 용사를 단련해주었다.

스크롤이 있으면 단숨에 뛰어넘을 수 있는 고난도 용사는 꿋꿋히 고집을 부려가며 발을 내딛었고, 포션 하나면 치료되는 상처를 굳이 가진 채 전투에 임하며 극한 상황에서의 경험을 쌓았다.


용사를 칭찬하는 게 어딘가 아니꼽긴 했지만, 용사의 말은 옳았고 그의 행동 또한 옳았다.

결과가 증명해주고 있으니까.


용사는 승리했고 세상을 구했다.

그는 영웅이 되었고 수많은 재화와 보물을, 영광과 명예를 받았으며 대륙 어디를 가더라도 칭송받고 환대받는 이가 되어있었다.

한낯 짐꾼에 불과했던 나에겐 당연하게도 아무것도 떨어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용사를 질투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필시 사람이 아닐 것이다.

천년 묵은 엘프 장로라던지, 뭐 그런 거겠지.


그러나 내 질투는 얼마 가지도 못했다.

용사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홀연히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세간에서는 이 사건을 두고 시골 어딘가에서 평화롭고 유유자적한 삶을 살기 위해 떠났다니, 권력에 위협이 되는 용사를 제국이 치워버렸다니, 남은 마족 잔당을 토벌하러 떠났다니 등의 말이 오갔지만 그 소문 중 진실에 가까운 것은 없었다.

용사가 떠난 이유는 단순했다.

집에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내가 알고 있는 이유는 별 것 없었다.


"...그러니까, 다른 세상에서 이리로 온거라고?"


"그래."


"스크롤 포션 같은 소모품을 안 쓰던 건 그 세상에서 하던 '게임'이란 거 때문에 생긴 습관이고?"


"그렇지."


"...평상시면 무슨 헛소리냐 하겠는데, 상황을 보니 헛소리는 아니겠고."


"내가 거짓말을 왜 하겠어?"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들자, 눈앞에서 천연덕스럽게 말을 늘어놓는 용사가 보였다.

그 뒤에서 요상하게 빛나는 푸른 포탈까지.


"그래서 다 끝났으니 이제 집으로 돌아가겠다는거냐."


"어."


"여기서 살면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데? 어딜가든 사람들이 널 우러러 봐줄거고 존경을 보낼거다. 평생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먹고사는데 문제 없을거고. 이 모든 걸 포기하고 돌아가겠다고?"


"그런 거 있어봤자 뭐하겠냐. 여긴 스마트폰이 없다고. 컴퓨터도 없고."


"스마터퍼?컴피터? 그건 뭐야?"


"있다. 그런게."


용사는 내 질문에 갑자기 추억을 떠올리는 듯, 허공 저편을 바라보며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엘든링...발매 직전에 이리로 떨어졌는데....'같은 헛소리를 지껄이던 것은 덤이다.


"어쨌든 내가 돌아가겠다는 마음은 변치 않을거다. 그러니까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받아."


"아니, 내가 받기엔 과하다니까? 몇 번 말해?"


용사가 내게 건넨 것은 내게도 꽤나 친숙한 것이었다.

마왕 토벌까지 내가 짊어지고 다니던 가죽 배낭과, 용사가 들고다니던 아공간 아티펙트.

소모품의 양이 양인지라 대부분은 용사의 아티펙트 속에 보관했고, 긴급한 상황에 곧바로 사용해야할 소모품들만 따로 빼내어 내 배낭에 넣어놓곤 했다.

정작 그래놓고 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베르만 씨한테 주는 건─"


"진즉 발칸 산맥으로 떠났다. 앞으로 백년 간은 술자리에서 떠들 이야기가 생겼다는 것 하나만으로 충분하다고 하던데?."


"샤린 양은─"


"인연이 닿아 이루어진 만남이고, 그 끝에 다가온 결별에서 대가를 바라는 것은 안된다고 하면서 떠나던데."


"..."


거부에 대한 나름의 변명과 핑계를 던져봤지만 던지는 족족 기다렸다는 듯이 되돌아오는 용사의 대답에 가로막히기 일수였다.


"그냥 받아. 왜, 과한 것 같아서?"


"...그럼 이게 안 과해보이냐?"


마왕 토벌 직전, 최종 점검 당시 소모품 목록을 작성했던 게 바로 나다.

저 용사 손에 들린 가방과 아티펙트에 무엇이 담겨져있는지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다.


"왜, 이것들 써서 너가 용사 후계자 노릇하면 되지. 내 이름 마음껏 팔아도 상관없다고?"


"그런 게 아니라..."


"정 뭣하면 한두 개씩 쓰면서 모험가 노릇이나 해보던가. 너, 모험가가 꿈이었다면서."


"..."


용사 놈은 기억력도 좋은지, 예전에 내가 한 말을 하나도 까먹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


모험가를 꿈꾸던 짐꾼. 전직 모험가 출신 짐꾼.

그것이 나였다.


재능이라곤 한줌도 없고 배경도 돈도 없는 신참 모험가가 짐꾼으로 영락하는데는 반년이라는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꿈과 환상에서 빠져나와 현실을 직시하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해야 한달에 불과했다.

쓸모없다고 버려지고, 이용당하고 버려지고,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아무런 항의를 내뱉지 못했다.


무능력하고 무가치한 인간.

사람들의 그런 평가 속에서 잠겨 죽어가던 내게 손을 건넨 것이 바로 눈 앞의 저 놈이었다.


'게임에서 보통 이런 애들이 히든 피스나 히든 동료던데. 어떨려나?'


생각해보면 녀석은 첫 만남부터 알 수 없던 헛소리를 내뱉던 놈이었다.

그리고 나같이 쓸모없는 놈에게 선뜻 손을 건넨 미친 놈이기도 했고.


세삼, 저 놈을 설득하려는 내 행동이 멍청하게 느껴졌다.

별 볼일 없는 짐꾼을 동료로 맞이할 정도로 미친 놈인데, 그런 사람을 설득하려고 한다니 그만큼 바보같은 행동이 없었다.


"정말 안 받을거냐? 받아주면 좋겠는데."


"...왜 그렇게까지 해주는거냐?"


순수한 의문이었다.

동시에 계속해서 내뱉고 싶었던 말이었다.


나같은 놈한테 왜? 뛰어난 기술도, 능력도, 외모도, 배경도 없는 나에게서 도대체 무엇을 보고 호의를 배푼거냐고.


그런 의문을 담아 용사에게 말을 뱉었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에 나는 멍청하게 용사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친구잖냐. 왜, 전우라는 게 친구 아니었어? 나만 그렇게 생각한거면 조금 섭섭한데."


"..."


순간 말을 잃었다.


친구.


그래, 분명 그런 단어가 있었다. 분명 그런 인간관계가 있었다.

단지 지금까지 내 삶에서 존재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뭐야, 농담으로 건넨건데. 진짜 나만 친구라고 생각하던거였냐? 이거 좀 쪽팔린─"


"친구 맞지. 그래."


나는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으며 용사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의 선물을 받았다.


친구의 선물을 거절할만큼, 나는 뻔뻔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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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시작해서 용사는 원래 세계 돌아가고, 산더미처럼 쌓인 소모품들로 모험하는 이야기 "써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