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독자시점과 99%가 같을 예정
"저는 독자입니다."
나는 매번 소개할때 이렇게 소개했다.
그러면 그에 대한 답은 대부분 "외동이신가봐요."라던지 "독녀라고 하지 않나요?"라는 식의 오해 담긴 답이였다.
"외동은 맞지만 그 독자가 아닙니다."
"예?"
"이름이 김독자입니다."
김독자, 이젠 기억도 안 나는 아빠가 굳건하고 강하게 자라라는 의미로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좀 많이 싫은 이름이다. 사랑이같이 예쁜 이름 두고 이런 투박한 이름이라니.
뭐 이 이름따라 친구도, 연인도 없다.
*
"그러다가 스마트폰에 빨려 들어가겠어요."
지하철에서 웹소설을 읽는 내게 누가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평소라면 무시했겠지만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알기에 고개를 들었다.
입사 동기이자 인사팀 유상아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미소지으며 보고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퇴근하시는 길이세요?"
"네, 상아씨도?"
"운이 좋았죠, 부장님이 출장을 안 가셨으면 아마 잡혀 있었을테니까요."
때마침 빈 옆자리에 유상아가 털썩 앉았다.
바싹 붙은 어께는 동성인 나도 긴장하게 만들었다. 긴장한걸 숨기기 위해 말을 꺼낸다.
"평소에도, 지하철 타셨던가요?"
그러자 유상아가 땅이 꺼지듯 한숨을 쉬었다.
"그게 말이죠···."
목소리에도 힘이 없다.
표정도 어둡다.
생각해보니 지하철에서 그녀를 본건 처음이다.
그도 그럴게 그녀를 태워주려는 남자들이 바글바글했다. 미노소프트에 남성의 99%는 다 유상아에게 호감을 갖는다.
솔직히 부럽기 짝이 없었긴 했다.
그런데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이였다.
"자전거, 도둑 맞았어요."
자전거라, 생각해보니 가끔 봤던 출근한 직후 유상아는 땀에 젖어있기는 했다.
"자전거로 출퇴근 하셨어요?"
"네, 야근이 많아지다보니 살이 붙더라구요."
저 몸으로 살이 붙는다고 투덜대다니, 부럽기도 했고 조금 짜증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의 묘한 미소에서 악의는 느껴지지 않았기에 짜증은 씻은듯 내려갔다.
그녀의 웃는 얼굴은 동성인 나도 심장이 뛰게 만든다. GL소설 주인공들이 이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금방 서로 할 일을 하며 얘기가 줄어들었다.
나는 힐끔 그녀의 스마트폰 화면을 보았다.
외계어인가 싶은 수준의 단어들이 적혀있다.
그녀는 그걸 보고 당당하게 읽었다.
"뿌에데 쁘레스따르메 디네로."
"네?"
"아, 스페인어에요."
나는 조금 당황했지만 호기심이 많은 척 물었다.
"무슨 뜻이에요?"
"돈좀 꿔달라는 의미에요."
퇴근길까지 공부라, 수학은 커녕 영어조차 보기 싫어하는 나와는 역시 사는게 다른 여자다.
저런걸 외워서 어디다 써먹을려 하는건지 의문이 들었다.
"열심히시네요."
"네, 독자씨는 뭐 보고 계세요?"
아차 싶었을땐 이미 그녀의 시선이 내 액정으로 꽂히기 시작했다.
나는 성급히 버튼을 눌러 소설 사이트를 껐다.
아쉬워보이는 그녀에게 어쩔 수 없이 설명했다.
"···소설이에요."
"아, 나쓰메 소세키같이?"
"조금 더 가벼운 내용이지만 비슷해요."
"그렇군요."
조금 긴 침묵이 이어졌다.
슬슬 말 실수를 했나 싶어 주제를 바꿨다.
"벌써 입사한지 1년이네요."
"그러게요, 시간 참 빨라요."
"정말 어제 일 같은데 계약 기간이 끝나다니, 신기해요."
"앗."
유상아의 표정이 바뀌었다.
그 표정을 보고 아차싶었다.
그녀는 지난 달 외국 바이어건으로 이미 정직원자리를 따냈다.
나는 급하게 말을 꺼냈다.
"아, 이미 정직원이셨죠. 축하가 늦었네요."
비꼬는 것 같지만 진심이다.
나는 멋쩍게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저도 외국어좀 해둘걸 그랬어요."
"아녜요! 독자씨, 그래도 인사고과가 남았으니까요!"
그녀의 모습은, 여자인 김독자도 사람인 김독자도 동료인 김독자도 빠지게 만들었다.
왜 남자들이 따라다니는지 이해가 된다.
전형적인 주인공이다.
그에 반해 나는 노력도, 재능도 뭣도 없었다.
전형적인 제일 먼저 죽을 조연1이다.
"저기 독자씨."
"아, 네."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쓰는 앱 알려드릴까요?"
그녀의 목소리가 멀게 느껴졌다.
세상과 거리가 생기는 기분.
나는 정신을 차리려고 눈을 부릅뜨고 정면을 보았다.
10살 남짓의 작은 남자아이가 보였다.
그리고 그가 들고 있는 곤충채집망이 보였다.
그리고 옷 밖으로 튀어나온 멍자국이 보였다.
"독자씨?"
"저한테 그 앱 알려주셔도 소용 없어요."
"네?"
나는 그녀의 눈을 보지 않고 그 아이를 보며 말을 이었다.
"독자(讀者)에게는 독자(讀者)의 삶이 있는거니까요."
유상아가 그 말을 듣고 말을 하지 않았다가, 금방 다시 말을 꺼냈다.
"그럼 제게는 상아의 삶이 있는거군요!"
그러고는 다시 공부에 들어갔다.
나는 다시 소설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왠지 스크롤이 무거웠다.
그러던 그때, 메세지가 왔다.
나는 그 메세지를 확인했고 놀람을 금치 못했다.
작가가, tls123이 내게 메일을 보냈다.
첨부파일이 하나 있었다.
-오늘 7시부터 유료화에 들어갑니다. 건승을 빕니다.
유료화라니, 다행이다.
시계를 보니 아직 55분이다.
그래도 유일한 독자니 그래도 인사정도는 남기자는 생각에 사이트에 검색했다.
내 눈을 의심했다.
없어졌다.
소설이 사라졌다.
혹시 모르니 시간을 보았다.
6시 57분.
아직 3분이나 남았다.
유료화때문에 내린걸까.
그리고 시간은 지나 7시가 되었다.
파직 하고 전등이 꺼지고 끼익하고 전철이 멈췄다.
그리고 전등이 다시 켜졌을때는 공중에 이상한 털뭉치가 있었다.
유상아가 내쪽으로 좀 더 붙었다.
"저게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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