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야?"
내 눈에 유상아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채아와 남자 한 명이 보였다.
"아, 안녕하세요. 장인어른!"
"...뭐?"
순간 내 표정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표정을 보고 그 남자가 뒷걸음질쳤다.
"아 아빠는 왜 애 겁을 주고 그래."
"...내가 언제?"
"나 결혼할거야."
그 소리에, 유상아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가 미쳐 진짜..."
"너 이제 25살인건 알아? 대학은 어떡하게."
"몰라. 김채훈은 어딨어? 아빠랑 나갔다면서."
"고 3인데 어디가겠어."
순간 수능 전날 새벽 1시까지 게임을 하고서 영어 하나를 제외하면 전 과목 1등급을 맞아온 채아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상됐다.
"하, 이 새끼가 누나가 찾아왔는데!"
"..."
"공부를 하긴 왜 해! 나는 수능 전 날 새벽 1시까지 게임하다가 수능장갔어!"
"자랑이냐...?"
"그럼! 의대까지 갔는데?"
의기양양하게 배를 쭉 내미는 채아의 모습을 보며 참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얘네 엄마 아빠한테는 허락받고 왔어!"
"응... 그렇구나."
"쯧."
"그,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해..."
채아 옆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남자를 보자, 더욱 결혼시키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팔자야..."
"할머니한테 얼른 증손자 보여드릴게!"
그 말에 유상아가 정말 오랜만에 물을 뿜었다. 한 26년만인가.
"너, 너 이 미친... 아이고.."
낄낄대는 채아를 볼 때마다 느끼는건데 진짜 이러다가는 제 명에 못 살지도 모른다. 정말로.
"그럼 허락하는 거?"
"...아직 대학생이야?"
"네, 네! 채아랑 같은 대학 출신입니다!"
"음..."
순간 옛날이 떠올라 유상아의 귀에 대고 귓속말을 했다.
"우리 상견례 할 때 생각난다."
"하하, 당신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아예 없었는데 저 애는 있잖아."
"..."
"뭘 둘이 속닥여?"
"저, 저 장인어른... 저 정말 잘 할 자신 있습니다..."
그 애처로운 눈빛을 어찌 거절하겠는가.
"...그러든지."
썩은 이 하나 뺀 기분이다.
진짜로.
* * *
"야, 김채훈."
"왜."
"단답하지 마."
"응."
정리가 하나도 안 된 채로 뻗친 머리를 한 남학생이 옥상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 옆에는 머리를 길게 늘어트린 여학생 하나가 있었다.
"친구도 없으면서 유일한 친구한테 그렇게 대하면 못쓴다."
"음 그렇구나."
"...밥 먹으러 갈래?"
"별로 배가 안 고파."
"그럼 커피... 아 먹고 있구나."
앞에 있던 여학생이 골똘히 생각하다가 갑자기 앞에 있던 남학생의 머리를 때렸다.
"악!"
"난 간다. 너 혼자 공부하던지."
"꺼져! 다신 오지 마!"
"나도 안 와! 이 멍청한 놈아!"
"미적분 1번 문제 틀린 놈이 누구보고 멍청한 놈이래!"
아마 어쩌면 채아에게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몰빵돼서 이렇게 된 걸지도 모른다.
"그럼 네가 가르쳐주던지!"
"쓸데없이 왜? 모르는게 아니라 검토를 하라고!"
일반적으로 미적분 시험은 그리 어렵지 않다. 대부분의 미적분 문제들은 풀이 자체가 어렵지 않기에. 하지만 미적분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채 푸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몇개의 개념을 물어보는 문제들을 사람들은 틀리는 것이다.
지금 그의 앞에 있는 아이는 그 문제들을 맞아놓고서 풀이하는 문제를 하나 틀린거다.
"쯧, 누나 닮아가지고."
"...너네 누나 닮은거면 좋은거 아니야?"
"진짜 노파심에 말하는건데 그딴 천벌받을 소리는 하지 마."
그리고 그 머릿속에 엄청난 만행이 지나쳐가기 시작했다.
"...샤프 안에 용액들 넣어두고 누르는 순간 화학반응 일어나게 만든 뒤에 생일선물로 주기... 내 책들 다 구겨서 가져간 뒤에 수업시간에 지 베게로 쓴거... 지 남친 우산 없다고 내 우산 가져간거..."
"...그, 그렇구나..."
여자가 우물쭈물하더니 갑자기 초콜릿을 건넸다.
"그럼 이거 받고 가르쳐줘."
"갑자기 뭔 개소리야."
"미적분."
"검토를 하라고. 머리 나빠?"
"..."
여자가 잠시간 그를 노려보더니 초콜릿을 던졌다.
"직접 만든거니까 해! 무조건 해!"
"이게 뭔 네가 직접 만든거야! 가나 가서 카카오 따서 만든것도 아니면서! 마트에서 사서 녹인 뒤에 굳혔겠지!"
"그 말 모르냐? 미분했다가 적분하면 적분상수가 생기는데 그게..."
순간 여자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그... 사랑..."
"0이 될때까지 미분하면 사랑이 사라지는거냐? 몇번 더 굳혔다가 녹이지 그래?"
유상아의 머리와 김독자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받은 괴물.
"지금은 남아있잖아!"
"그럼 내가 집에 가져가서 몇번 더 미분할게! 그러면 네 사랑도 증발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