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몽블랑
머무를 곳이 있는 이유는 대부분 비슷비슷하지만, 머무를 곳이 없는 이유도 대체로 같은 형태를 띄었다. 가지고 있거나, 또는 없거나. 떠돌이와 떠돌이가 아닌 자의 차이는 오로지 그것뿐이다.
눈 내리는 거리를 홀로 돌아다니는 자가 있다면, 그 이유인 즉 슨 그가 떠돌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그가 어딘가 기댈 곳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그들은 주로 길 잃은 짐승에 비유되곤 하는 데, 그 짐승들이란 늑대나 고양이 따위를 이른다. 그들은 영물로 불리는 동물들인데, 이렇게 부르는 것은 그 영험함을 높이 사는 것인지 아니면 삿되다 욕하는 것인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몽블랑(1)
몽블랑이라는 이름의 도시에서는 눈이 내리는 날에 돌아다니지 않는다. 이는 흰 눈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그 덕에 유중혁은 시선을 신경 쓸 것 없이 돌아다닐 수 있었다. 별난 일은 맞았다. 흰 눈이 쌓인 산이라는 이름답게도 몽블랑의 거리는 희었고, 오로지 그만이 검은 색을 띄었으니까. 그러나 그를 힐끔거리는 사람은 없었다. 마을에 한 둘 쯤 있는 -곰팡이 같은- 수다쟁이도 그의 눈에 띄지 않았다. 커튼을 내리지 않은 창은 단 한개도-심지어 비어버린 폐가들 마저도 커튼 정도는 쳐져 있었다.-없었다.
유중혁이 입은 코트는 깔끔한 편에도 낡은 것이 눈에 띄는 것이었고, 이는 단순히 세월의 흐름으로 인한 것이었다. 그는 추위를 잘 타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검은 색 코트를 입고 있었는 데, 그것은 그가 어렸을 때에 유일하게 받은 것이다. 가족이 준 것도 마을 사람들이 준 것도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떠돌이의 것이었다. 그 이전에는 어느 여행자가 가지고 있었다. 자비롭고 신앙심 깊은 마을 사람들은 그보다도 못했다.
그는 산을 향해 걷는 길이다. 집이라 부르는 건축물은 그곳에 있다. 사람이 드나들지 않는 곳으로 늑대인간이 산다는 말이 있는 곳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전설 축에도 못 들 정도의 괴담이나-요정 나부랭이 같은 전설은 웃기지도 않은 동심을 이유로 살아남았다- 이 도시에서는 괴담 따위로 취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 말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험악한 산에서 살았다. 그를 감히 따라가려는 이는 하나도 없었는 데, 여러가지에서 엄두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망할 산은 빌어먹게 험악했다./ 이 산에 대한 기록물에는 그렇게 쓰여있었다.-그를 쫓아 산에 들어온 사람이 없었던 것은 이로써 4년째였고, 그것은 그가 이 마을에 돌아와 머무른 기간과 일치했다.
흰 하늘에서는 눈이 흩뿌려지면서 그 아래의 것들을 덮었다. 그것에는 구별이 없다. 눈 속에 숨어 사는 괴물도, 작은 짐승도 꺼릴 것 없이 그 위에 오른다. 그렇기에 눈은 안식처인 동시에 위험이 도사리는 곳으로-완벽하게 안전한 곳은 어느 곳에도 없었다. 있다고 믿는 것들은 언제나 머저리들이었지-, 이 도시의 사람들은 눈을 위험한 것으로 여겼다.-늑대인간을 두려워하는 자세로는 합격점을 받을만 했다. 그것은 기원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 전에 유래된 것이다.-늑대 인간 이전에는 다른 괴물이 있었을 지도 모르지-그 외의 것들은 눈을 꺼리지 않는다. 오로지 추위를 조심할 뿐이다. 유중혁 또한 눈을 꺼리지 않았다.
흰색의 거리. 그 위에 찍힌 발자국은 오로지 하나 뿐이다. 그러나 그곳에 사람의 발자국은 없었다. 유중혁은 계속해서 걸었다.
길에 찍힌 발자국을 흰 눈이 덮었다.
겨울 거울 같은 하늘의 아래,
몸을 숨긴 흰 길 위였다.
지붕 아래에 머물지 못하는 것들은 저마다의 사연이 있는 법이다. 그것의 수는 길 위의 무덤의 수와 비슷했다.-그 어느 때가 되었든, 언제나.
유중혁은 고양이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한 손으로 사슴의 목을 비틀고 있었고, 고양이는 태연히 유중혁을 응시했다. 고양이는 앉아 있던 자리에 그대로 있었는 데, 그것은 겁에 질려서가 아니었다.
하룻 강아지 같은 하룻 고양이었다, 그것은. 두 떠돌이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겁만 없는 게 아니라 다른 것도 없을지도 모르지./
겨울 날에도 쥐는 있었다. 새도 몇마리 있었고. 마을은 몽블랑 산보다 안전한 사냥터였다.
사연없는 무덤은 없다. 그것은 떠돌이도 마찬가지였다.
고양이가 느리게 눈을 깜빡였고, 그 사이에 사슴의 숨이 멎었다. 유중혁은 죽은 사슴을 어깨에 둘러멨다. 그는 천으로 사슴의 코와 입을 막았다. 피가 바닥에 흐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고, 숲과 이어진 마을의 경계에서 피를 쫓는 것들은 -숲의 나뭇가지 수 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도- 많았다.
그는 사체를 업은 채로 걸었고, 고양이는 그의 뒤에서 울었다.
::늑대인간.::
유중혁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동물의 감은 짜증스러울 정도로 좋은 편이지만, 어차피 들어줄 사람은 없었다. -적어도 인간 중에는.
인간 이외에 그를 귀찮게 만들 수 있는 것들은 없었다. 최소한 영역 정도는 함부로 건들이지 않는 녀석들이었으니까. 곰팡이 마냥 예고도 없이 쳐들어오는 놈들과는 달랐다. 제기랄 악마의 자식들은 그가 아니라 그들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경험을 깨고 이 고양이는 성가셨다.
그것은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고양이는 그가 움직일 때는 움직였고, 멈출 때는 멈췄다.-그가 경계에 닿을 때까지.
"그만 따라오는 게 좋을거다."
유중혁은 고양이를 내려다보았다.-저 멍청한 고양이는 도대체 왜 따라오는 건지. 그가 사는 산에는 늑대인간이 살았다. 이 머리가 빈 고양이도 그것쯤은 알 것이다.
그는 미신을-젠장맞을 당연히 전혀- 믿지 않았다. 그는 그가 겪은 것들만 믿었다.-완벽한 경험론자의 표본이었다.
"이 산에는 늑대인간이 산다./늑대는 개과이니 개소리처럼 말해도 상관은 없을 것이다/그러니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겠지." 그가 사는 흰 산에는 괴물이 산다. 그는 몽블랑 산의 괴물과 가장 가까운 곳에 살았기 때문에 그것을 알았다. 고양이도 그를 보았으니 이제는 알 것이다.
몽블랑 산의 괴물은 늑대인간이었고, 그것은 유중혁이었다.-본인과 가장 가까울 사람은 그 자신일 수 밖에 없었다. 고양이는 지극히 정상적으로 그가 사는 산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이 산까지는 한 발자국이 남았다. 마을과 산이 맞닿는 경계를 잇는 것은 다리 하나 뿐이었다. 한 사람 정도 지날 수 있는.
::여기가 더 위험해, 나 한테는.::
"너를 먹이로 보는 것들이 널렸는 데도?"
::적어도 해충으로 보지는 않잖아, 안 그래?::
유중혁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부정을 할 때면 반론을 던졌다.-그는 남이 헛소리를 하면 기어코 논리를 깨줘야 직성이 풀렸다-그러므로 그의 침묵은 암묵적인 긍정이다.
그는 짧은 침묵을 지켰다.
"그 녀석들은 아직도 검은색을 꺼리나?"
::언제나지.::
마을 사람들은 검은색을 꺼렸다. 모든 곳을 떠도는-탄광 마을에서는 빌어 처먹을 소리 취급받지만- 미신들 중에는 검은 색은 악마의 색이라는 것도 있었던 탓이었다. 따라서 성당에는 감히 검은색이 들지 못했다. 있어 마땅한 그림자는 덮어내어 가린 곳이었다. 그들은 검은색을 띄는 것들을 마을에서 쫓아냈다.-그들이 두려워 하는 것들은 제한 채로- 그것은 쫓아냄이 아니었다. 등에는 그 때의 흔적이 선명했다. 그것은 그 뿐만이 아니라 고양이도 마찬가지였다.
검은 색 고양이가 그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것이 동의인지 부정인지 아니면 그 모두 아닌지는 모른다.
"그래, 네가 이 산에 들어오려는 이유는 대충 알겠군."
모든 곳이 늘 그렇듯, 이 산은 일종의 영역이다. 그의 영역도 이곳에 있었다. 그는 눈앞의 객을 바라보았다. 이방인인가 아니면 방문자인가. 그는 손님으로 부르기를 택했다.-성가신 손님이 더 옳을 테지만. 손님이란 먼 길을 떠나기 전에 몇 일 정도는 머무르다 가라고 할 수 있는 존재다.
"하지만 산에는 영역이 정해져있지. 그 중에 네 자리는 없다."
::나도 알아. 운이 나쁘면 오늘 죽을 수도 있겠지. 곰이라도 만나면 끝장일거고. 잘 알고 있으니까 이제 그만 비켜줘, 네 영역은 최대한 피할게.::
"집에는 쥐가 많다. 새도 마찬가지지. 산장 숙박업도 어렸을 때는 해보고 싶다고 했던 게 기억난다."
검은 색 고양이는 작았다. 겨울은 못 버틸 거라는 것을 보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변덕이라면 충분히 변덕이었다./기분도 안 좋은 데 사체 치우는 것은 싫었다./동물의 사체란 몇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테지만 그는 그 사실을 떠올리지 않았다.
늑대인간은 위험하다. 그러나 검은 색 고양이에게는 마을 사람들과-약한 것만 고르는 취미가 있는 것들-, 흰 겨울이 더욱 위험했다. 하룻 고양이 같은 것은 겁이 없는 탓 뿐만이 아니라 그만큼이나 몸집이 작은 것도 한 이유를 했다.
"원한다면 묵어라. 숙박비는 쥐고. 보름만 제외하면 산에서는 가장 안전할테지. 언제까지나 네 선택이긴 하다만."
::진심이야?::
"그렇게 졸졸 따라온다는 것들은 손님밖에 없다. 그냥 손님이라 치지. 행동거지도 비슷하니. 쥐나 잘 잡도록. 올라타라, 손님인데 이정도는 서비스다. 해본적은 없지만 아마도 이러겠지."
유중혁은 무릎을 굽혔다. 고양이는 그의 어깨에 올라탔다. 보통의 고양이보다도 가벼운 편에 속했다.
"이름이 뭐지?"
::수영.::
"네가 지었겠군.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짓지 않을테니. 이런 것은 열다섯짜리 인간 꼬마 같군. 자이식 과잉이 대단한 것을 보면."
유중혁은 굽혔던 몸을 폈다.
::놀리지마, …부탁이에요.::
"왠 존댓말이지?"
::어쨌든 도와줬으니까…요?::
"안 어울린다, 쓰지마라."
::그럼 안 쓰지 뭐.::
고양이는 금세 말을 바꿨다. 유중혁은 어깨에 사슴을 짊어진 채로,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를 올려놓은 채로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