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왕은 세상을 주시하는 자이며, 동시에 관리하는 자이다. 가장 강한 존재이며 군림하는 자이지만, 실상은 신실한 신도일 뿐이다. 참 아이러니한 존재이다. 신에 비견되지만 법칙에 순응하여 살아가는 존재는 자신의 일에 단 한 번의 의심없이 살아간다.
이것이 옮다는 걸 알기에.
다른 세계선의 무수한 모든 자신들이, 똑같이 이런 일을 저지른다는 걸 알기에.
그 또한 도깨비왕의 일원이 되어 그 일을 해내어 나간다.
무수한 지옥이자 강자만이 모든 걸 차지하는 세상.
그리고 그 강자들의 세상을 조절하는 정치인이자 모든 비밀을 알고있는 현자의 위치에서.
이 드높은 스타스트림의 사육사가 되어 가장 오래된 존재에게 친히 이 세상을 봉헌한다.
대가는 없다. 그러나 느낀다.
그는 항상 위대한 일을 사소한 것으로 바꾸어 일상으로 바꿔버렸다. 그가 행하는 기적들이 하찮은 일더미로 치환되었지만.
제우스, 오딘, 메타트론, 라..
그런 놈들의 주인이 되었고 그 뒤치다꺼리를 해주는 노예가 되었지만.
그러는데도 얻는 건 없지만.
그래도 느낀다.
그저 시선에 만족하며. 지금 직책의 노예이자 주인이 되었다.
그는 스스로 이 위대한 일을 지키고 이루어낸다는 사명에 스스로 기뻐한다.
그리고 그 날 믿음은 깨졌다.
[세계선 너머에서 ‘스타스트림’ 시스템에 등록되지 않은 힘이 방출되고 있습니다!]
너무 드높아 끝이 보이지 않는 지점에서 자꾸만 시선이 느껴졌다.
그 시선은 생기있는 시선이었다.
태양에서 지구로 다가온 빛처럼 생명체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그런 것.
그런 것이 너무 뜨거웠다.
태양처럼. 익을 정도를 넘어 모든 것을 태워버릴 정도로,
그래서 도깨비 왕은 스타스트림의 개연성을 희생해서라도 이 세계관에서 도망치는 것을 고려했다. 이후 대도깨비들로 하여금 개연성의 재고가 넉넉하다는 것과 방주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참으로 희비교차적인 내용을 전해듣고 근심에 빠졌다.
그렇게 다른 방법을 갈구하던 어느 날.
벽 너머에서 무언가 날아들었다.
[세계선 너머에서 어떠한 물체가 넘어왔습니다!]
그저 성좌 무리라 생각했다. 오만함에 취해 부왕의 차원 문을 이용할 정도로 미쳐버린 존재들.
어차피 심연을 쫒는 개새끼들이 알아서 처리할 놈들이라 생각했지만..
[해당 물체에 담긴 힘이 너무 막대합니다!]
[경고: 해당 세계선을 침략할 정도의 힘을 가진 존재들입니다.]
[스타스트림이 자체적인 방어 시스템을 구축합니다!]
[스타스트림이 심연을 쫒는 사냥개를 소환합니다!]
도깨비왕은 즉시 화면 너머를 보았다.
그리고 인상을 찌푸렸다.
방주였다. 다른 세계선의 것이 분명한.
그것은 허공에 강제로 공간을 뒤틀어 통로를 만들어 내고 그 사이를 통과 중이었다.
[이계의 알 수 없는 공간이 해당 세계선을 뒤얽히려고 합니다!]
그 뒤로 무수한 외계의 것들이 날아들었지만..
[방주의 탑승자들이 해당 행위를 지적합니다!]
[이계의 알 수 없는 존재들의 영향력이 크게 약화됩니다!]
놀랍게도 거의 다 처리되었다. 그들은 막대한 개연성을 지니고 있었다.
다른 세상에서 이곳으로 온 방주였다.
이계의 신격들.
다른 세계선에 넘어가도 이해할 수 없는 힘을 지니기에 개연성이 위축되거나 하진 않는다.
그러나 이야기에는 참여할 수 없는 존재들이 어떻게 이 현실에서 저런 힘을 사용하는 것인가?
정작 이 세상의 이계의 신격들은 고요했다. 그것들은 서로 다른 세상에서 온 자신들을 보며 화를 내지도, 죽이려 들지도 않았다.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도깨비 왕 또한 느꼈다.
저 벽 뒤에서 움직이는 기척이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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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군. 도깨비왕.”
“불쾌하군.”
“허, 왕이 그렇게 말하신다면야. 내가 사과를 드려야겠지?”
“..너도 왕 아닌가?”
“그건 그렇군. 근데 왕끼리 나누는 대화치곤 수준이 떨어진다 느끼네.”
재미없었다.
“혹부리왕. 무슨 상황이지?”
“몰라도 되네.”
잠시의 침묵. 도깨비 왕은 날카롭게 말했다.
“..넌 누구지?”
“너무 늦은 거 아닌가.”
“다른 시간대의 혹부리왕이었군.”
“그래.”
“그럼 여기 시간대의 혹부리왕은?”
“죽였다. 도통 말을 알아들어야지.”
“그리고 힘을 비축하고?”
“그래. 내 것이라 그런지 흡수가 잘 되더군.”
도깨비왕은 혹부리왕에게서 느껴지는 격을 보고 살짝 놀랬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았다. 사건에 대한 심각함에 빠져들었기 때문에.
“..적어도 십의 단위로 먹은 게 아니군. 이질적인 것도 있어. 얼마나 먹은 거지? 아니, 얼마나 넘어다닌 거지?”
“몰라도 되네.”
물어보지 않았다. 다른 이의 슬픔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나는 어디있지?”
“참 다채롭더군.”
“이상한 답변같군. 무슨 의미지?”
“말 그대로. 넌 신도의 권한으로 시간대마다 성격이 다른 존재 아닌가.”
“그건 권한 같은 게 아닌 의지의 오류지. 어쨌건, 신에 대항하는 결과도 달랐겠군.”
“맞아. 어떤 건 징징짜기도 했지. 조용히 욕하거나 책상을 뒤엎기도 했어. 자살하거나 대항하기도 했지.”
그들은 유중혁이었다.
희귀자의 각 회차당 행동 패턴이었다.
다른 점은, 그들은 집단이라는 것이다.
“이건 축복이네.”
“축복?”
“우리가 우리답게 죽을 수 있지. 그것이 다가오자 모든 것은 결이 되었어. 멸망이 확정된 것이라 그런 거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모든 이들에게 결을 부여된 것을 보았는가? 그것 만으로 위안받아 생명을 그리 쉽게 버려두더군. 죽기 위해 타오르는 양초들을 보았나? 네가 길들여둔 성좌들이 그렇게 용감한 지 난 처음 알았다. 그들도 자극을 원하게 되었지. 남이 아닌 스스로의 성취를, 업적을 다시 일으키려고 미래를 향해 불탔지.”
곧 뒤질 놈들이 미래를 생각하는게 우습지만. 그렇게 죽은 이를 모욕하던 혹부리왕은 짙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신을 보았어. 그리고 확신했네.”
“그것 앞에서는 이 세상은 그냥 멸망했어도 될 세상의 이야기 같더라고.”
혹부리왕의 말은 그 탁한 음색과 어우려진 멸망의 예언이었다.
“그게 끝인가.”
“뭘 더 바라나. 그 앞에서는 모든 것이-”
“개인적인 감상을 묻는 거네..”
혹부리왕은 약간 의아해했지만. 대답해주기로 했다. 무언가 섬뜩한 간절함이 보였으니까.
“감격스럽군.”
“반응이 이상한데.”
“뭐가.”
“많이 이상한데. 예상한 것 같기도, 아니면 공감이나 그런 것 같아.. 설명해주겠어?”
혹부리왕은 살짝 소름돋는다는 행동을 취해보였다. 도깨비왕은 솔직해지기로 했다.
“쉽게 말해주지, 나는 본 적이 없거든.”
“그래?”
“응. 그저 따랐지.”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건지 의문이군.”
“법칙이기에. 그리고 그걸 알기에.”
“그래?”
“그래. 지평선의 악마들이 다른 세계선을 이해하기에 굳이 이 세상의 흐름을 바꾸지 않는 것처럼. 난 유지했지. 그 무대가 차려지기를. 모든 세상이 일정해야 꼭두각시가 활동하기 편하거든. 조금이라도 다르거나 흐트려지면-”
“오류가 생기지. 알겠네.”
그리고 침묵.
“은밀한 모략은?”
“본 적 없다. 지금껏, 평생. 죽은 듯이 말이다.”
그럴 수가 있을까. 도깨비왕은 더욱 큰 혼란에 빠졌다. 그 얼굴을 보며 혹부리왕은 자신이 먼저 말을 트어야겠다고 여겼다.
“그보다 소란스럽더군. 다른 곳은 섬뜩하게 평화로운데 대도깨비들이 시나리오 바깥을 돌아다니더군. 미친 건가, 아니면 일이 있는 건가?”
“저 너머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그래서 탈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시선이 느껴졌다고?”
“..반응을 보니 다른 세계선에선 그런 일이 없었나보군.”
“그래. 그 괴물같은 것이 이 세상을 부수는 걸 학습한 모양이군.”
혹부리왕은 약간 욕을 중얼중얼하다, 도깨비왕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제 미래가 절망적이라는 건 충분히 동의한 것 같군. 그러니 말하지. 스타스트림은 포기해. 근원 설화만 빼내서 가지고 가자고.”
“역시 방주 안에 나는 없나 보군.”
“맞다. 도깨비 왕. 넌 한 번도 나와 같이 넘어오지 않았다. 다른 성좌들 몇몇도 마찬가지. 뒤에 보이는 거대한 이계의 신격? 아니면 다른 것들? 모두 시체를 되살린 것에 불과하다. 비축된 개연성도 성좌들의 시체를 버려두며 오는 것뿐.”
잔혹하지 않다. 첫 번째 시나리오부터 생명을 죽이고 그걸 방치하는 이 세상에 잔혹이란 단어를 어디에 붙일 수 있는가.
“다시 권유하지, 도깨비왕. 같이 넘어가자. 네 스타스트림의 힘이면 세계선을 넘어가는 부작용과 패널티를 상당량 제거할 수 있어.”
“날 죽이면 되지 않나?”
“오, 멍청한 소리하지 말라고. 스타스트림은 너무 커다란 나머지 의지를 지닌 것이야. 나 따위에게 깃들겠어? 내가 조종할 수는 있고? 그 무수한 도깨비들의 자리에 촉수 덩어리를 넣어 조종하라고? 가능은 하겠지, 하지만 그 시간에 신이 우릴 죽여 버릴거야. 물론 시도해봤기에 아는 것이겠지?”
“”
“그리고 다음 시간대의 도깨비왕을 죽이면 네 것이 되겠지. 난 널 죽이지 못해. 너도 살기 위해서, 이것을 뜯어 고치기 위해서는 너도 살아야 할 거 아니야?”
도깨비왕은 생각했다.
길지는 않았다. 그리고 자신만의 해답을 가지고 물었다.
“넌 그 말을 몇 번 했지?”
“많이.”
“이번 세계선의 나는?”
“역시 먹히질 않는군.”
“다른 세계선에서 항복한 존재가 있었나?”
“자살한 놈도 신을 대항하더군. 자기를 희생해서 신을 가로막은 벽이 되었지. 한순간에 무너졌어. 바로 앞에서 벌어진 일이라 아직도 생생하군. 너도 개연성에 대항하기가 잘 안되나 보지?”
“난 할 수 있지만 안 하는 거지.”
혹부리왕이 관심가지는 표정을 지었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다음 세계선의 나에게는 변질된 신이니 대항하라 전해. 아마 될 지도 모르겠군.”
“그건 이미 했어.”
“뭐, 문장은 어떤 것이든 만들 수 있지. 각있는 원처럼. 그렇게 해봐.”
“그리고 항상 무시하겠지. 그래. 전해는 주지.”
혹부리왕은 언제나 그랬듯 유언이 이렇게 하찮다는 것에 슬퍼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악의적인 장난을 치려했다.
그리고 그만뒀다. 너무 지루한 일이고, 다음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수 있으니.
“최후의 방주는 가져가겠다. 양해해줄 수 있지?”
“작동시킬 수는 있겠지?”
“모든 세계선의 방주는 언제나 그래왔고, 지금도 그럴거다. 과거, 현재, 미래 따위는-”
“의미 없는 이야기. 이해했다.”
“이제 가봐도 되는 거지?”
도깨비왕은 꿈쩍하지도 않았다. 그저 공허한 눈빛을 보냈다.
“..알았다.”
“뭘?”
“넌.. 넌 너의 인생을 그렇게 사는거냐?”
혹부리왕이 불만스럽다는 표정따윈 무시하며. 도깨비왕은 말을 이어갔다.
“넌 그 신의 신도로군. 이미 스타스트림을 만들었어. 넌 기다리며 다음 세계선으로 넘어가고 신은 그걸 즐기는 거다.”
“..이건 처음 듣는데.”
“넌 이미 하고 있다, 또 하나의 도깨비 왕의 역할을 맡고있는 거다. 넌 이미 네가 하고싶은 걸 하는거야. 그렇게 살고 있는 거라고.”
“뭔 소리인가, 내가 이렇게 살고 싶은 줄 알아?”
“나도 그러고 싶은 줄 아는가. 그렇게 되는 거다. 시스템이 그렇게 있는 것처럼.”
혹부리왕의 표정은 여유로워 보였다, 도깨비왕은 그 표정이 일그러지기를 바라는 것처럼 세게 몰아붙였다.
“나도 가장 친한 친구를 배신하기도, 용을 배신하기도 싫었다. 그러나 모든 세계선의 나는 성격이 다르지만 그 일을 완수했다. 해야 되니까. 너도 그래라. 너의 신을 위해 살아라. 다른 세계선의 내가 너에게 이런 말을 하지 않은 이유는 네가 너무 순수한 존재이기 때문에 상처받을까 그랬던 걸 거다.”
“지금은?”
“이미 몇몇을 눈치챈 것 같아서. 나에게 이런 말을 들을 각오는 하고 있던 것 아닌가?”
웃기만 했다. 도깨비 왕은 그의 속을 알 수 없었지만, 상처는 받지 않았음을 느꼈다.
어쩌면 상쾌한 태도로 혹부리왕이 일어섰다.
“난 간다. 대피하는 것도 고역이라.”
“그래. 다음에 보지.”
“..다음에 보지.”
혹부리 왕은 이미 도깨비왕을 용서했다. 그는 저렇게 못 할 것인 걸 알기에.
그는 자신의 일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와 기다리고 있던 존재에게 명했다.
“부왕의 문을 열어라. 최후의 방주에는 탈 사람을 태워라.”
“다시 비겁하게 살아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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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많은 존재들이 남았다.
그들에게 한 가지가 빛나고 있었다.
[성좌 ‘성급한 늪의 포식자’가 자신의 결 ‘도전’을 자랑스럽게 봅니다.]
[외신 ‘형용할 수 없는 아득함’이 자신의 결 ‘허무’를 집어넣습니다.]
외신, 성좌 누구 가리지 않고 남은 전장이다.
그러니, 도깨비가 있는 것 또한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하급 도깨비 ‘비형’이 두려움에 털을 떱니다.]
[중급 도깨비 ‘독각’이 허세 가득한 미소를 띄웁니다.]
[대도깨비 ‘허영’이 시나리오 참전을 마지막으로 선언합니다.]
도깨비 왕은 자신의 설화를 꺼내 들었다.
변질된 결. 다짐만으로 바꿔버린.
[신에게 대항하는 무수한 의지]
도깨비왕은 그 결을 허공을 향해 흩뿌렸다.
[도깨비왕이 선언문을 치켜세웁니다.]
듣도 보도 못한 빛이며, 도깨비왕 또한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이 세상에, 이토록 생기있던 순간이 있었는가.
그 가호에 무릎 꿇은 건 기본이고 눈물 흘리는 것도, 생각을 잊어버린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상위급 거대 성운조차 말을 잃게 하는 가호. 그 자체로 세계선의 힘이 담긴 가호.
[선언에 동의한 존재들에게 해당 세계선의 가호가 따를 겁니다!]
그리고 모두가 전쟁을 기다렸다.
그들은 이 결을 다른 이에게 자랑하기도 전에 스스로를 만족시켜야 했다.
그 결을 찌르며 죽을 자신을 그리는 자살자들에게 도깨비왕은 침묵으로 대했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경고! 경고! 해당 세계선의 모든 존재에게 명합니다!]
[관측 불가능한 너머에서 알 수 없는 존재의 침입이 이루어졌습니다!]
도깨비왕은 벽을 허물고 나타난 존재를 보았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존재 것만,
저렇게 혐오스러운 존재라니.
[‘?? 가장 오래된 꿈’이 해당 전장을 응시합니다.]
[대다수의 성좌들에게 ‘강제 삭제 시나리오’가 발생합니다!]
[대다수의 성좌들에게 ‘강제 각성 시나리오’가 발생합니다!]
이해할 수 없고 해석할 수 없다.
그래서 뿌옇기만 한 형상을 가진 존재가, 끈적한 액체를 온몸에 흘려대며.
시뻘건 색의 태울듯한 시선을 방출하는 동시에.
그것은 소리를 질려댔다.
[시스템 관측이 불가능한 지점에서 거대한 에너지 반응이 포착되었습니다.]
[스타스트림 시스템 일부가 긴급 정지 됩니다!]
[추측 불명의 존재 일명 ‘외신왕’ 필터 시스템 일부가 파괴됩니다!]
성좌 일부가 진실에 눈이 멀고 절규에 떨고 있었다.
스타스트림은 시스템으로 최대한 신의 행동을 추측하느라 개연성을 소진하고 있었다.
그들은 신에게 덤빌 의도를 가지면 안 되었던 것일까.
스타스트림이 한 단어를 출력해냈다.
너무 익숙한, 이 세상의 결말.
[멸망]
벌써 암흑 단층의 침입이 시작되고 세계선의 융합이 일어난다.
시야를 모두 덮은 채 모두를 꿰뚫을 듯이 바라보는 시선 속에서,
하늘 위로 날아가는 방주를 보았다.
그리고 저 멀리. 느리지만 확실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세상이 아닌 세계선을 뛰어넘을 방주.
약간의 부러움과 절망이 섞인 시선으로 작아지던 방주를 보던 도깨비 왕은 어떤 확신으로 눈을 치켜세웠다.
“오십시오.”
거대한 형상은 순순히 하등한 존재의 말을 따랐다.
우주를 가로질려, 어쩌면 시간을 가로질려. 어느새 차원을 넘어.
가장 거대한 촉수가 그에게 내리 찍혔다.
그는 도깨비 왕이었다.
모든 것의 지배자이자.
군림하고 세상을 종속시키는.
절대로 이 세상을 버리지 못해 사랑하는 존재.
그렇게 한순간의 공격을 막아내며.
신에게 마지막 삶을 휘두르는 신자,
그는 도깨비 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