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18
언제나처럼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온 경희는 지친 기색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한동안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던 희안과의 만남도 줄어들었고 오늘은 점심시간에도 클라이언트를 응대하느라 희안과 잠깐의 장난을 하는 것 조차 없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문득 신발을 벗고 집안에 들어서려는데 서율이의 신발이 보이지가 않고 집안이 깜깜하고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챘다. 이미 시각은 6시 30분. 한부모가 된 이후부터는 희안과 시간을 보내더라도 서율이에게 식사를 챙겨주는 것이 항상 먼저였고 야근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이미 서율이가 돌아왔어야 할 시간을 한참 넘긴 시간. 서율이가 항상 가지런히 벗어놓은 신발도 보이지 않았다. 황급히 집 안으로 들어가 곳곳을 샅샅히 뒤져보았지만 거실에도, 침대에도, 안방에도, 베란다에도 서율이는 없었다.


"이..이게 대체...서율아..."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일단은 담임선생에게 먼저 전화를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서율이는 오늘 교시를 마치고 이미 집에 돌아갔다는 대답 뿐이었다. 그녀는 즉시 경찰에 전화를 걸어 실종신고를 하고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대충 슬리퍼를 구겨신은 뒤 집밖으로 나와 서율이를 무작정 찾기 시작했다. 집에 오는 길에 있는 오락 시설들, 외식을 할 때마다 가곤 했던 음식점들, 마트, 학교 근처, 그 어디에서도 서율이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힘만으로는 서율이를 찾을 수 없다. 문득 그녀는 희안이라면 뭔가 방법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즉시 전화를 걸었다.


'어, 경희야. 무슨일이야?'


'오빠...서율이가...서율이가...'


'자, 잠깐 진정하고. 무슨일이길래 그러는 거야?'


'서율이가...사라졌어....'


'...알겠어. 내가 사람들 풀어서 알아볼게. 지금 어디야?'


'나...서율이네 학교 앞...'


'알았어. 나도 금방 거기로 갈게. 너무 걱정하진 말고. 내가 사람 풀면 이 나라에선 사람 한 명 찾는건 어려운 일이 아니야. 경희 너도 알지?'


'응...오빠 서율이좀 꼭 좀 찾아줘...부탁할게...'


'그래. 금방 갈 테니까 거기서 기다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멀리에서 차 한대가 불빛을 비추며 학교 앞으로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운전석에서 내린것은 정장을 입은 모르는 사내였고 그가 차의 뒷문을 열자 희안이 차에서 내렸다.


"경희야, 그렇게 입고 있었던 거야? 추울텐데..."


그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경희가 겉옷도 입지 않고 얇은 상의만 입고 있는 것을 보고는 부리나케 달려와서는 자신의 코트를 덮어주었다. 그리고는 그녀의 어깨에 양손을 살포시 얹어놓은 채로 가볍게 붙잡고 자신의 차로 향했다. 차에 앉으니 앞좌석에는 본 적이 없는 남자가 타고 있었다.


"급한 일이라 아버지쪽 사람들을 좀 불렀어. 지금 너희집이랑 학교 근방에 깔아뒀으니까 곧 있으면 연락 올 거야."


"오빠...서율이 없어지면 난...."


"너무 걱정하지 말고. 서율이 핸드폰은 왜 안 사 줬어?"


"아무래도 정서에 안 좋을거 같아서..."


"에이구...그래도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자, 서율이 찾으면 이거 선물로 줘. 나중에 내가 어디서 계약해야 하는지 알려줄게."


"아, 고...고마워..."


그에게 건네받은 핸드폰은 가장 최근에 출시된 신형 핸드폰이었고 케이스까지 어린아이의 취향에 맞춰져 끼워져 있었다. 언제 이런걸 준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새삼 감동스러웠다. 하지만 여전히 서율이 걱정에 그녀는 안절부절하며 손을 가만두지 못하고 있기도 했다. 희안은 그런 그녀를 보고는 안심시켜 주려는 듯이 슬쩍 웃으며 그녀의 갈곳 잃은 손을 슬며시 잡고 말했다.


"곧 찾을거야. 걱정하지 말고....일단 집으로 가자. 우리집 말고 서율이랑 당신 집으로."


"응..."






















SCENE19

처음 방문하는 경희의 집을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희안. 사실 그가 살던 곳보다는 허름하다고 할 수 있는 그저 그런 가정집이었지만 뭔가 애뜻함이 담겨있는 듯 했다. 그의 뒤를 따라 들어오는 경희는 여전히 진정하지 못한 채로 그저 희안에게 언제즘 연락이 오는지 눈치만 보고 있었다. 반면 희안은 어찌되도 좋다는 것인 양 그저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흐음..."


"저...저기 오빠."


"그래, 경희 너 지금 좀 힘들지? 일단 씻고 있을래?"


"응...근데 그런건 아니지?"


"응? 뭐가?"


"그...집에서는...."


"아, 하하하..걱정마. 그런건 아니니까. 네가 싫어하는 건 안 할거야. 그리고 상황이 상황이기도 하고..."


"응...고마워. 혹시 무슨 일 생기면 그냥 들어와도 되니까 서율이 찾았다고 하면 바로 알려줘?"


"그래그래. 어서 씻어."


그렇게 말하며 언제나처럼 미소짓는 희안. 그녀는 그제서야 화장실로 향했다. 따뜻한 물이 차가워진 몸을 녹여주지만 아직도 그녀는 서율이 생각에 손이 덜덜 떨리기만 했다. 만약에 서율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아마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진작에 희안과 결혼할 걸 그랬다고 그녀는 스스로를 자책했다. 희안의 보살핌이 있었다면 적어도 이런 일이 일어나진 않았을 것이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샤워를 마치고 부랴부랴 옷을 걸치고 나온 경희는 희안이 거실에 있는 쇼파에 앉아 핸드폰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혹시나 서율이의 행방을 알아낸 것인가 싶어서 기웃거려 보지만 희안은 별다른 대답을 하진 않고 그저 핸드폰을 계속해서 바라보다가 몸을 축 늘어뜨리고는 한숨을 쉬었다.


"오빠..."


"....미안. 아직 소식이 없네. CCTV도 뒤져보고 있는데 아무래도 발견되지 않는 모양이야."


"그...그럼 서율이는..."


"일단 경찰에 신고하자. 아무래도 우리만으로는 무리인거 같아. 미안해 경희야."


"아니야 오빠...내가 얼른 오빠랑 결혼 했었으면...."


"자책하진 말고. 이건 네 잘못이 아니잖아?"


"응, 오빠...미안한데 오늘은 나랑 같이 있어주면 안될까?"


그렇게 말하며 그에게 은근슬쩍 몸을 밀착시키는 경희. 하지만 희안은 난감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얘기했다.


"나도...너랑 다시 만나는게 그리웠지만 지금 그런걸 한다면 네 어려운 상황을 이용해먹는게 되어버려. 서율이 찾으면 연락 줄게. 그땐 꼭 나한테도 소개시켜 줘."


"아, 응...알았어....조심히 들어가...."


"그래....무슨 일 있으면 꼭 연락해."


그렇게 말하고는 미안한 기색을 보인 희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섰다. 적막함이 집안을 감쌌다. 그녀는 천천히 서율이의 방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원래 이 시간이라면 서율이가 침대에 누워서 책을 읽거나 하고 있을 시간이지만 서율이는 없다. 어느새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며 방을 그저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던 그녀는 뭔가 위화감을 느꼈다. 이윽고 그녀의 시선은 방 한켠에 놓인 서랍을 향했는데 서랍장 위에 언제나 서율이가 침대 방향으로 놓아두던 가족사진이 사라져 있었다.












SCENE20

꽤 간만에 방문하는 곳이었다. 이제는 이곳의 생활도 익숙해졌다. 얇았던 팔과 다리는 굵직해졌고 튀어나왔던 뱃살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데다가 얼굴도 살이 빠져서 조각같아졌고 눈빛에는 투지가 서려있다. 원래 입고있던 다 헤진 와이셔츠와 정장바지는 버린지 오래이다. 그는 약간은 빛이 바랬지만 여전히 튼튼한 강철갑주로 전신을 무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팔에는 에메랄드색으로 바뀐 문신이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특히나 이번 시련은 매우 어려웠다. 동료들이 행동불능에 빠지고 테레자가 인질로 적에게 잡혔다. 하지만 그는 의연한 태도로 검 한자루와 자신의 능력 만으로 적들을 도륙하고 마왕군의 잔당이라고 알려진 블라드 테페슈 백작을 물리쳤다.  이전과는 다르게 많이 성장했지만 초월적인 존재인 관찰자를 감지하는 것은 아무래도 불가능한 것 같았다. 관찰자는 어느새 그가 알아차리지도 못하게 그의 앞에 서 있었다.


"....."


"오랜만이군요."


"그렇습니다. 질문은 아시죠?"


"네, 서율이는 현재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뭐라고요?"


"서율이의 어머니가 신경을 못 쓴 사이에 납치되었습니다. 당신의 아내는 누가 언제 어디에서 서율이를 납치했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


"아무래도 궁금해 하시는 것 같군요. 그렇습니다, 그 남자. 고희안이 벌인 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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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아서 미안한데 내가 시간이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