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물

                                    26

어딘가를 향하던 남자가 바닥 어딘가에서 꺼림칙한 낌새를 알아채고 진로를 멈췄다. 

 

꺼림칙한 기운의 원흉은 죽은 지 일주일은 지났을 법한 남자의 발만한 크기의 새끼 고양이가 아니라 그 위에 태어난 작은 구더기였다.

 

구더기는 허연 몸뚱이를 목을 집어넣었다 길게 뺐다 하여 꿈틀거리며 시체 위를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씨발, 구더기잖아 청소 아줌마는 뭘 하는 거야? 이런 걸 요 지경이 되도록 놔둬?”

 

 남자는 구더기를 보고는 헛구역질을 해댔다. 남자는 오늘로 나흘째 씻지 않았다. 

 

그는 담배를 꺼내어 물려는 순간 일을 보러온 집 주인을 발견했다. 당연히 남자는 이때다 싶어서 그녀에게 한마디 했다.

 

“아줌마, 이게 쥐인 지 뭔지. 하여튼 좀 치우시죠? 더러워서 못 살겠네.”

 

“지나 좀 씻지.”

 

 머쓱해진 남자는 그대로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연기와 함께 나지막한 중얼거림이 공중으로 퍼졌다.

 

“아이고 냄새야…….”

 

 시체는 옆으로 누워있었다. 손상된 곳은 배, 튀어나온 내장들은 검붉게 말라붙어 있었다. 구더기는 시체의 배에 살고 있었다. 사체에서 가장 부드러운 곳, 영양가 있는 곳. 내장이었다.

 

 이것을 응시하는 남자는 구더기가 거주하는 곳이 고양이인지 쥐새끼인지는 몰랐다. 더욱이 그따위 것이 무엇인지는 그에게 있어서 중요하지도 않았다.

 

 단지 이 썩은 내가 진동을 하고 허연 뼈에 붙은 검게 삭힌 살덩이로 이루어진 시체가 시각적으로 도저히 인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에 남자는 얼른 시체를 자신의 거주지 주변에서 치우고 싶을 뿐이었다.

 

남자가 코끝을 잔뜩 찡그리며 불편을 중얼거리는 동안 구더기는 썩은 살을 파먹었다. 구더기가 썩은 살을 파먹는 것은 그것이 구더기의 산다는 일이기 때문이었고, 썩어버린 시체를 먹는 것은 단순히 구더기란 미물이 우연히 썩은 시체 위에서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연유로 

 

 구더기가 시체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거기서 산다는 점과 남자가 이 월세집에서 살고있는 이유는 적어도 이 내가 보기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남자가 사는 구식 아파트는 공무원 시험준비를 한다는 이유로 그의 부모가 보내준 돈으로 구한 월셋집이었다. 그가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얼마 안 되는 월세에 조금이라도 보탰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텐데 그는 시험에 전념한다는 이유로 단 한푼도 자신의 손으로 벌어서 쓴 적이 없었다. 

 

구더기가 영문도 모른 채로 시체 위에 태어나 그것을 소화시키는 삶과 그가 우연히 월세를 대줄 돈(비록 아주 허름하고 오래된 아파트이긴 하지만)을 가진 부모 밑에서 태어나 컵라면을 비우는 삶 그 사이에 커다란 차이는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나는(적어도 이 세상에 말이다.) 그렇게 생각한다.

 

 남자는 덩치에 맞지 않게 방방 뛰면서 난리를 치며 아파트 경비실에 재촉 전화를 넣었다. 구더기는 그런 남자를 단지 바라볼 뿐이었다. 구더기의 썩은 시체를 쩝쩝대는 입은 이 커다란 동물에게 의사를 전달하기에는 너무 작았다. 이 작은 미물의 입에 비해 인간의 것은 거대하고 강력했다. 구더기가 백마리, 천마리가 들어가도 모자랄 정도의 크기와 구더기의 움직임과는 비교가 불가할 정도로 빠르게 꿈틀대는 혀를 가진 입을 구더기의 작은 입으로는 어찌 당해낼 방도가 없었던 것이었다. 구더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작은 입으로 고기를 분해하며 몸집을 키우는 것 이외에는 전무했다.

 

 그러나 그의 재촉에도 경비실에서는 알았다는 답변만 할 뿐 직접 시체를 처리하러 오지는 않았다.

 

 "젠장 어차피 좀 있으면 팔아버릴 땅이니까 관리도 대충 한다 이거지?"

 

 사실 남자가 사는 동네는 몇 년 전부터 재개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는데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로 진행이 어려웠다. 그러나 작년부터는 기어코 일을 실행하겠다는 것이었다. 집 주인은  몇 달 전 남자에게 땅을 팔아야겠으니 다른 집을 알아보라는 통보를 했었다. 하지만 남자는 이사를 갈만한 돈을 구할 길이 없었다. 공무원 준비에 전념한다는 핑계를 대며 소비만 진탕 해왔기 때문이었다.

 

 이런 그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었는지 더 이상 부모에게는 손을 벌리려 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이제는 자신의 부모가 그정도까지 버틸 능력이 없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방을 빼야할 날짜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구더기와 시체를 뒤로하고 남자는 피시방으로 향했다. 오늘은 퇴거 날로부터 일주일 남은 날이자 필기시험 결과가 나오는 날이기도 했다. 남자는 터억터억 하고 검정삼선 슬리퍼를 끄는 소리를 내며 동네의 피시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늘은 우울한 잿빛이었다. 누가 담배 한 모금이라도 뿜어낸듯한 구름이 피어오르는 것이 그 넓디 넓은 하늘을 보는데도 내 가슴이 텁텁해지는 것을 느꼈다. 비가 오려나 맨홀에서는 하수구 냄새가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것이 사람을 신경질적이고 만사가 귀찮게 만들기 딱 좋은 날씨였다.

 

 남자는 피시방에 들어와서 컴퓨터를 켰다. 피시방에 남은 시간 8시간 29분 57초, 공무원시험 5수를 치는 동안에 그가 바친 노력을 아주 노골적으로 수치화까지 시킨 기록이었다. 이런데도 남자는 내심 기대를 하는 것이었다. 필기라도 붙는다면 그는 부모님에게 좀 더 손을 벌릴 수 있는 아주 약간의 권리 비스무리한 것을 얻기 때문이었다.

 

 달달 떨리는 손으로 그는 자신의 수험번호를 차례차례 기입했다. 남자는 무교였으나 이때만큼은 열렬한 이슬람교도가 되거나 자기 고백적인 천주교도 혹은 겸손한 불자가 되어 신에게 간절히 기원했다. 그가 수험번호 모두 입력하여 떨리는 손목을 부여잡고 엔터버튼을 누르는 순간, 컴퓨터의 화면은 잠시 새하얘지더니 바로 결과를 발표했다.

 

 남자의 수험번호는 당연히 합격자 명단에 존재하지 않았다. 남자는 그 당연한 실패에 절망했다. 노력하지 않은 자신을 저주하며 그는 고개를 들고 피시방 천장의 형광등을 바라보았다. 아주 눈이 멀라고 눈물이 흐르는 시린 눈을 어둠 속에서 난폭하게 빛나는 형광등에서 떼지 않았다. 

 

 "병신같은 새끼."

 

 눈을 멀게하는 일조차 실패한 그는 변명이라도 하듯 눈커풀을 세게 닫고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어두컴컴하고 퀴퀴하며 축축한 그만의 어둠속에서 남자는 중얼거렸다.

 

 "씨발."

 

 남자는 혀가 찢어지려는 듯 한 괴성을 지르며 금방이라도 바닥에 꼬꾸라질 기이한 폼으로 자신의 집을 향하여 질주했다. 그러다가 또 같은 지점에서 정지했다. 남자가 더럽고 추잡스럽다고 생각했던 구더기의 앞이었다. 그 작은 입으로 '성실' 하며 때로는 '난폭스러운' 둘을 합친 표현으로 말해 '게걸스럽게' 시체를 먹어치우고 있었다. 전보다 조금 더 통통해진듯 한 구더기를 향해 남자는 마디마디가 드러난 앙상한 검지로 가리키며 말을했다.

 

 "너도."

 

 이렇게 말하고는 갑자기 그는 구더기를 보며 목놓아 우는 것이 아니겠는가. 고양이가 흘린 피가 검붉게 말라붙은 시멘트 바닥에서 무릎을 꿇은 그는 굵은 눈물을 턱선을 따라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그 괴상한 행위도 3분 정도 이어졌을까 남자는 시체가 무슨 비싼 가전제품이라도 되는 듯 부서지지 않게 조심히 들고 자신의 집으로 챙겨갔다.

 

 남자는 시체를 사랑하는 연인인듯 목도 가누지 못하는 갓난아이인 듯 새하얀 매트리스 위에 살포시 올려놓고는 부동의 자세로 그것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시체가 말라서 갈라지기 시작한 조잡한 살결, 그 사이를 구더기는 필사적으로 헤집으며 촉촉한 살을 찾아나서고 있었다. 새하얀 살에 적갈색 피가 묻는 데도 그 미물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으며 주저하지 않았다.

 

 남자도 슬슬 배가 고팠는지 냉장고에 붙은 중국집 전단지에 적힌 번호에 전화를 걸어 짜장면 한 그릇과 탕수육 소자를 시켰다. 지금 갖고 있는 현금과 딱 맞아떨어지는 금액이었다. 남자는 최후의 만찬을 동네 중국집에 맡긴 것이었다. 비록 만찬의 뜻이 예수님의 것에 비해서는 하찮았을지도 모르지만 기름진 돼지고기는 그 거룩하신 예수가 제자와 나눈 포도주와 빵보다야는 훨씬 만찬다웠다.

 

 남자는 전화를 끊고 굵은 밧줄을 준비해두었다. 그는 시험 삼아서 씻지 않아 떼가 검게 탄 목에 흰 밧줄을 목에 감아보려고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에 비치는 그의 어깨너머로는 고양이 시체와 어느새 그의 엄지 손톱만큼 커진 구더기가 보였다. 이어서 남자가 거울 속의 자신과 눈을 마주쳤을 때 남자는 화들짝 놀라 거울로부터 시선을 돌리고 시체 쪽을 바라보았다.

남자는 차라리 시체나 구더가가 나았던 것이었다. 노랗게 뜬 피지와 기름이 줄줄 흐르는 콧등 핏발이 잔뜩 선 눈알 누런 이와 인중에 난 굵은 털들에 그는 구역질을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거울에 비치는 것은 더 이상 남자가 아니었다. 구더기보다 더 한 미물이었다. 그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뺨을 볼 바에는 구더기의 살찐 궁둥이를 보는 편이 훨씬 아늑했으며 결마다 검은 떼가 낀 목을 볼 바에야 구더기의 거의 퇴화된 눈을 보는 편이 훨씬 개운했다. 파리보다도 미개하며 구더기보다도 구질구질한 미물,

 남자는 미쳐버렸다. 그는 자신의 눈과 입에서 분별도 없이 터져나오는 것이 웃음인지도 울음인지도 모르게 되었다. 단지 얼굴은 무슨 병에 걸린 사람처럼 경련을 일으켰고 몸은 오한이 들지도 않았는데 곧 죽을 풍뎅이처럼 웅웅 떨고 있었다. 또 그러다가 갑자기 바닥에 쓰러지듯 눕더니 밟힌 지렁이처럼 온몸을 베베 꼬기도 하고 상체를 양옆으로 흔들었다. 그 우습고도 섬뜩한 꼴이 흡사 곱등이 꽁무니에서 나온다는 기다란 실같이 생긴 벌레 같기도 하였다.

 

 그 짓을 하는 것도 힘에 겨웠는지 그는 학학대며 시체 쪽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남자는 화들짝 놀라며 바닥에서 벌떡 일어났다. 구더기가 보이질 않아서였다. 시체를 맨손으로 이리저리 헤집어 보았지만 구더기의 모습은 없었다. 남자는 씨익 웃었다. 그러고는 태연하게 손에 묻은 피를 씻으러 가는 순간 그는 실수로 시체를 떨어트리고 말았다. 수분이 많이 가신 시체는 그 상태로 박살이났고 건조한 살덩이들은 바닥에 산산히 흩어졌다.

 

 시체가 있던 자리엔 확실히 구더기는 없었다. 그곳에는 작은 고치가 윤빛을 내며 영험히 자리잡고 있었다. 피가 얼룩진 하얀 시트에 놓인 고치는 그 모습이 되기까지의 고군분투를 치하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주위의 피가 흩뿌려진 것이 어느 위대했던 왕이 쓰던 고급 카페트를 보는 듯 했다.

 

 남자가 보는 고치는 더 이상 미물이 아니었다. 미물 따위는 털끝도 미치지 못한 노력이라는 것이 만들어낸 결실이었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을 '나'라고 생각하지도 않게 되었다. 머리검은 벌레,

 

 머리검은 벌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최후의 노력을 발휘했다. 조금이라도 미물로 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한 최초이자 최후의 노력을 시도한 것이었다.

 

 "짜장면 배달왔습니다."

 

 거룩하신 예수와 감히 맞먹으려 시킨 만찬은 입에 담지 못했다. 다행이라고 머리검은 벌레는 안도했다. 이 따위 미물이 예수와 맞먹으려한 사실에 대해 벌레는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했다. 벌레의 붉어진 얼굴은 시간이 흘러 푸르스름해졌다. 이윽고 벌레가 살던 허름한 아파트는 집주인이 열쇠를 따서 비명을 지를 때까지 침묵에 빠졌다.

 

 몇 주 후 경찰이 시체가 썩는 냄새가 난다는 집주인의 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했다. 자세히는 방을 빼기로 해놓고 약속한 날이 지났음에도 소식이 없어진 남자의 방에서 시체 썩은 냄새가 난다는 내용이었다.

 

 경찰이 남자의 방에서 확인한 것은 이러했다.

 

구더기, 바퀴벌레, 고양이 시체, 테이프, 밧줄, 등받이가 없는 업소용 플라스틱 의자, 사람만한 머리검은 벌레, 위대한 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