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곳에는 나무도 몇 개 없어 원 없이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언덕이 있었다아이들은 그 곳에서 해가 산 너머에 걸릴 때까지 풀을 뜯어 피리를 불거나 여치를 잡으며 시간을 보냈다하지만 우리의 시간은 밤이었다.

불이 꺼지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될 때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언덕에 올랐다내가 먼저 올 때도 있었고너가 먼저 올 때도 있었다약속은 없었다우리는 그저 말없이 우리는 풀밭에 누웠다서느라니 흐르는 바람의 발걸음을 느꼈다갓 잠든 고양이도 일어나지 않을 듯한 그 조심스럽고 은은한 흐름에도 바닥을 수놓은 잡초들은 자신의 몸을 사렸다풀숲이 바람에 눕는 소리는 반주가 되어 언덕 주변에 듬성듬성 솟아 있는 소나무를 타고 올라갔다껍질을 타고 오르는 간지러움에 나무들은 몸을 떨었다그에 따라 솔잎은 서로 부딪히며 연주를 덧입혔다.

그렇게 너와 나는 별빛이 조율하는 거대한 합주를 감상했다.

검은 도화지에 제멋대로 흩뿌려진 하얀 물감 같은 별들은 흐르듯이 우리 주위를 맴돌았다별자리라는 것이 있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에우리는 제멋대로 별과 별을 이어보고는 했다보름달이 모든 것을 빨아들일 정도로 밝은 날에는 오로지 그 움직임에만 눈동자를 집중했다그리고 재 너머로 달빛이 사라지게 되면다시 그 뒤를 밝히는 별들을 바라 보았다그 별빛이 너무나도 눈부시게 느껴질 때면잠시 눈을 감고 다른 것을 생각했다.

감았던 눈을 뜨자타자소리만이 사무실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기계적인 소리는 시계바늘의 행진과 함께 그 속도를 더해 갔다그리고 7시가 얼마 남지 않은 그 때타자 소리가 멎었다정확하게는 묻혀 버렸다느닷없이 쏟아지는 소나기는 사무실의 모든 소리를 없앴다그리고 다시 주섬주섬 짐을 챙겨 일어나려던 모두를 자리에 앉혔다그것은 부장이 가려던 발걸음을 돌려 다시 컴퓨터를 킨 것과 깊은 관련이 있어 보였다일말의 한숨과 업무라고 보기에는 조금 엇박을 탄 타자들이 마치 변주곡처럼 사람들 사이를 가로 질렀다.

 타자소리의 조각 중 몇 개가 메신저에 떨어졌다간단한 불평과 한탄나는 간단하게 동의를 표하고선 다시 고개를 숙여 모니터를 쳐다 보았다다시금 규칙적인 타자소리가 사무실을 메웠다다른 점이 있다면그 연주에 맞추어 빗소리가 반주를 담당하기 시작했다는 점 정도

파티션 밖으로 비어져 나온 검은 머리들은 묵묵히 시간을 태우며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그 사이에 빗발들의 아우성은 알게 모르게 잦아들었다부지불식간에 찾아온 정적에 나는 고개를 돌려 창 밖을 쳐다보았다그 곳에는 천장에 달려있는 형광등보다 선명한 무언가가 맺혀 있었다방금 전까지 쏟아지던 비바람과 먹구름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검은 먹지 같은 유리창에 조약돌밭처럼 새겨져 있던 물방울의 흔적은 반짝이는 무언가로 바뀌었다구름은 소음과 적막을 데리고 어디론가 떠났고그 자리에는 별빛이 걸려 있었다

 서울 하늘에서 별을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사무실 어디선가 나와 같은 풍경을 본 누군가가 혼잣말을 내뱉었다하긴 그렇다이제는 밤새워 켜져 있는 불빛들은 낮보다 밝게 하늘을 뒤덮는다손 안에 반짝이는 무언가를 쳐다보기 바쁜 사람들은 앞에 사람이 오는 줄도 모르고 고개를 숙이고 걷다 부딪히고 만다빌딩의 숲에는 달빛보다 흐린 조명들이 미세먼지의 안개에 산란되어 길가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에 그늘을 드리운다누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겠는가.

 다른 누군가와 같이 언젠가 쏟아질 빛의 궤적을 기다린 사람이 아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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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mp of Chicken - 天体観測 헌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