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으아악 한다니까 한다고 " 


 정오가 조금 넘은 무렵 , 비명소리가 집 안 을 가득 채웠다. 하루를 걸러 하루가 시끄러운 매일이지만 오늘은 조금 더 시끌벅적했다. 그도 그럴것이 마왕이 되겠다는 꼬마 악마가 (물론 자의에 의한 발언은 아니였지만) 정말 유능하고 대단한 서큐버스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을 한달째 하고 있었고 그것이 결국 폭발해버린것이다. 평소의 리자라면 같이 옆에서 거들었겠지만 더 거들었다가는 주인의 (정확하겐 동거인들의) 마왕이 될것이란 야심찬 꿈이 포기의 길로 들어설지도 모르는 기세였기에 그저 재미난 볼거리마냥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다.


 " 주인님 이번달에 계약자를 몇 명이나 찾은줄 아세요? "

 " 정답 ! 0명 ! "

 

 주인이 마왕이 되는꿈을 포기하는것에 별로 감흥이 없는 꼬마 서큐버스가 옆에서 거들기 시작했다. 두 서큐버스에게 지쳐 나가떨어지기 직전의 악마가 눈빛으로 구조신호를 보냈다. 고개를 두어번 가로젓자 주인의 표정에 절망이 차올랐다. 낌새를 감지한 모나가 뒤를 돌아 리자에게 윙크를 보내고는 다시 꼬마악마에게 악마로서 지켜야할 36가지 규칙에 대한 담론을 다시 시작했다. 옆에서 거드는 꼬마 서큐버스 역시 자신의 집에 찾아온 커다란 리본을 맨 서큐버스를 융숭하게 접대해야할 26가지 이유와 24가지 방법에 대해서 스테레오로 떠들기 시작했다. 


 " 설교가 길어질것 같으니 저는 잠시 나갔다 오겠습니다. "


 " 리자아아아 도망가는거야......? " 


 호랑이에게 동앗줄을 부탁하는 악마의 절규를 뒤로하고 집을 나왔다. 아직 햇살이 따가워지기 전의 딱 기분좋은 상태였다. 평소였다면 같이 마왕이 되기 위한 악마의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 같은걸 이야기 했겠지만. 오늘은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싶었다. 얼마전 찾아온 프레이를 내쫒겠다고 일하는 중이니 바쁘다는 정중한 거절에 대한 대답으로 나온 워커홀릭이라던가 , 옆에서 프레이를 뜯어말리던 네반 역시 뭔가 안쓰러운 눈으로 힘들면 쉬면서 일하라는 말 따위를 들어서 마음에 두고있다거나 따위의 이유는 아니였다. 물론 모나는 그렇게 알고 있었을것이고 리자가 나가는것에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은것도 그런 이유일것이다. 아무튼 혼자만의 귀중한 시간을 즐겨보기로 한 리자였다.

 처음 도착한 장소는 작은 디저트 카페였다. 다비가 여기서 파는 디저트들을 특히 좋아했다. 가볍게 커피 와 크로플을 주문시켜놓고 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밖에는 잘 들리지 않지만 저들의 이야기로 웃음꽃을 만발중인 여학생 무리들이 있었다. 유독 한명의 표정이나 앉은 자세가 어정쩡 한것으로 보아 고민이 있어보였다. 다음 계약자로는 저 학생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고개를 저으며 양손으로 볼을 쓰다듬어내렸다. 


 ' 리자 정신 차려요 지금은 쉬러온겁니다 '


 쉽사리 떨쳐지지 않는 잡념들과 싸우고 있었더니 주문 부저가 울리기 시작했다. 주문한 메뉴들을 받고 왔더니 창밖의 여학생들은 이미 자리를 떠난 이후였다. 뭔가모를 아쉬움과 함께 조금 더 먼자리에 앉은 머리가 반쯤 벗겨진 중년 남성이 정장을 입고 이 시간에 혼자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을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결국 그 생각의 그물 끝엔 항상 같은 것이 걸려있었다.

 1시간여동안 리자는 자신을 상대로한 세간의 평가을 뒤집는것에 대해 12번 가까이 패배를 인정해야만했다. 


  이후 리자는 가볍게 운동삼아 라는 대제목을 걸고 근처 학교의 운동장을 뛰기 시작했다. 그 장면을 본 관중들은 우리 동네에도 육상선수가 사나보군 이라는 소제목과 발이 보이지 않았다 라는 평론을 남겼다. 여기서 더 대단한것은 그 와중에도 세간의 평가를 번복하는데에 3번 정도 더 패배를 했다는것이다. 노을이 지기 시작할때 리자도 뜀박질을 멈추고 후문쪽에 위치한 스탠드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앉아있으니 나름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달아올랐던 몸이 진정되고 찬 바람에 정신이 들자 오늘 있었던 치열한 전투들의 결과가 떠올랐다. 완패에 대한 좌절감이 고개를 쳐들즈음 뒤에서 작은 동물의 소리가 들려왔다. 


 " 미야오오오옹 "


  회색빛이 감도는 고양이 한마리가 리자 근처로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 어머 작은 단벌신사분이시군요. 무슨 일로 저를 찾으시는건가요 "


  리자가 손을 내밀자 고양이가 다가와 마찬가지로 앞발을 내밀었다. 문득 지금 이 고양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 아가씨는 이름이 뭔가요? 우리 친구할까요?

" 데이트 신청이라도 하시는건가요? 죄송하지만 업무중이라서요 ...... " 


  목소리를 낮게 내리깔며 고양이대신 혼잣말을 주고받다 문득 웃음이 터져나왔다. 별것도 아니였다. 어려운것도 쉬운것도 말그대로 아무것도 아닌 그냥 마음가는대로 하는것이 주는 행복을 비로소 찾은 느낌이였다. 


 " 감사합니다. 작은 신사분 다음에 올때는 고양이 사료라도 사올테니 또 뵙죠 "


 라며 고양이를 흠씬 쓰다듬어 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가는 길에 아까 갔던 디저트 가게에 다시 들려 다비가 좋아하는 디저트와 조금의 이야깃거리를 더 챙겨가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