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 너머로 보이는 시계는 이미 시계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려 애쓰는 시곗바늘이 애처로워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그 시계를 기준으로 두 악마가 마주 앉아있었다. 공통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평행선 상의 두 악마가 같은 선을 타고 나아가게된 그 날의 이야기다. 


“ 그래서 이제 슬슬 이야기를 해주시지 모자양반 “ 


“ 하하 작명솜씨가 대단하군요. 그럼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드릴까요 “


전혀 다른곳을 응시하던 악마가 그제서야 눈을 마주쳤다.


“  내가 아까 거기서 본 그림 거기서 느낀 아름다움이라는것을 가르쳐 준다면서! 내 이야기는 이미 다 했잖아 “


“ 아름다움이란 단어가 바로 당신 앞에 형체를 갖추고 숨쉬고 있지 않습니까 “


보탄은 홍차를 내려놓고는 므두셀라를 노려보며 이내 주먹을 테이블 위로 올려서 내려치려는 시늉을 했다.


“ 농담입니다 농담 , 그럼 작은 것 부터 시작하죠 “ 


므두셀라는 손에 들린 컵을 내려놓고는 테이블을 가리켰다. 수려한 장식들이 옆면으로 흩뿌려진 둥근 테이블은 그 자체로도 미술적 가치가 있을 법한 물건이였다.


“ 이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


“ 테이블이잖아 “


“ 맞습니다 이것은 인간들의 것을 악마들이 모방해온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머나먼 옛날에 인간들도 이런것을 썼을까요? “


“  글쎄..... 이런 나무를 섬세하게 조각하는 기술이 옛날부터 있진 않았겠지 “


대답이 만족스러운듯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므두셀라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올려진 찻잔을 다른곳으로 치우곤 테이블을 힘껏 내리쳤다.


퍽 하는 가벼운 파열음과 함께 테이블이 반으로 쪼개졌다.


“ 뭐…..뭐하는거야 “ 


“ 보탄양 인간과 악마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죽음에 대해서 아는것입니다. “


“ 죽음? 인간의 죽음이라면 나도 수도없이 봐왔어 어지간한 인간보다는 내가 더 잘알거야 “


“ 그게 전혀 모른다는겁니다. 악마들에게 삶은 길고 지루한것입니다. 인간들은 짧고 유한하죠 . 정말 먼과거에도 이런 테이블이 있었을까요? 먼 과거의 멍청한 인간들은 바닥에 놓여진 큰 돌에나 그릇을 올려놨을겁니다. 하지만 그 인간들이 죽어 사라지고 나면 그 다음인간이 불편함을 느끼고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냅니다. 그에 반해 단일개체로 오래 사는 악마들은 돌 식탁이 불편하지 않을겁니다 그들은 이미 익숙해졌으니까요. 불편과 끝 , 극복과 시작이야 말로 인간과 악마의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 당신이 오늘 본 벽화가 그러합니다. 혼자서 그런걸 그릴 수 있는 인간 아니 악마 역시 없습니다. 수많은 인간들이 쌓아올린 모든 삶의 투쟁과 기술들이 담긴 것이 바로 인간의 아름다움입니다. “


보탄은 멍하니 망가진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고 각자의 색채를 띈다 . 검은 물감 하나만으로는 아무리 그려봐야 유채화 꽃밭을 틀안에 담을 수는 없다. 뭔가를 깨달은듯한 보탄의 가슴속에 형연하기 힘든 감정이 차올랐고 동시에 머리에 강한 의문이 들었다.


“ 그렇다면 대체 왜 ……”


므두셀라가 말을 잡아챘다 


“ 왜 저와 당신은 그것을 느끼고 있느냐 라는것이죠? 이미 말했잖습니까 우리는 죽음을 이해하고 있기때문입니다. “


“ 죽음…..을? 방금전엔 내가 전혀 모른다고 했으면서 “


“ 이상한데서 말꼬리를 잡으시는군요 . 보탄양 당신은 왜 그곳에 왔습니까? “


“ 그거야 친구가 사라지면서 거기서………”


보탄이 말꼬리를 흐렸다. 가슴속의 응어리가 해소된것 같았지만 다시 또다른 응어리가 지기 시작했다 가능하다면 마음이란놈을 꺼내놓고 긁어버리고 싶은 그런 가려움이 마음속을 해집었다. 


“ 저도 머나먼 과거에 친구를 잃은 적이 있습니다. 제 이름도 사실 그 친구것을 빌린것입니다. 본래부터 제 이름이 아니죠. 보탄양 인간의 역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어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의 편린을 맛본적이 있는 몇안되는 악마들인것이죠. “


“  이제 좀 ..... 알것.....같아……”


  보보가 느낀 감정을 알것 같았다. 거대하고 웅장한 세상앞에 발가벗겨진 자신이란 작은 존재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아름다움이란것을 조금이라도 먼저 이해한 보보가 부러웠다. 이제서라도 나아갈 수 있을까 , 악마도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있는걸까?


“ 그렇다면 저와 불편한 세계를 같이 극복하시지 않겠습니까? “


웃음이 터져나왔다. 친구의 실종에도 자신의 무한한 삶에도 그리고 그 만남에도 모든것이 이유가 있고 흐름이 있었다. 멈춰있던 악마 보탄은 손을 잡고 일어섰다. 마침내 악마의 생에도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 그래 한번 극복해보자구 “













“ 저…… 그런데 보탄양 혹시 테이블을 파는 악마를 알고 계십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