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결투표(自決投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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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찌뿌둥한 몸을 일으키며 이시연은 잠에서 깨어난다.

 

이제는 익숙해진 천장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 시설에서의 게임이 시작된 것이 오늘로 딱 일주일째가 된다.

이쯤 되면 적응하고 싶지 않아도 절로 그렇게 되어버린다.

 

부스스한 머리를 문지르며 하품을 길게 빼었다.

 

책상 위에 놔두었던 비녀로 머리를 정리하고 흘긋 시계를 바라보니

아직 문의 잠금이 풀릴 시간은 아니었다.

 

나무 의자에 걸터앉아 다리를 까딱이며 생각에 잠겨본다.

 

어제 추가된 규칙으로 지금부터는 홀에 나갈 때 지급받은 복장을 착용해야 한다.

 

홀에서 알몸이 될 수 없으니 적어도 모두에게 보여주며 백이란을 덮칠 수는 없다.

 

물론 이렇게 해도 여러 방법으로 희롱해오겠지만 그래도 확실히 접촉이 줄어들 것이다.

 

여차하면 백이란이 거의 하루 종일 홀에서 머무른다는 방법도 있었다.

 

…아무렴 그 경우에는 보쌈을 당해서 끌려가겠지만.

 

굳이 홀로 한정을 지어둔 이유는 무법자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너무 빡빡한 규칙을 제정해두는 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물론 다른 이유가 좀 더 크긴 했으나 남들 앞에서 내세울 이유로는 이 정도면 충분했다.

 

최소한 점심마다 그가 덮쳐지는 장면을 지켜보고만 있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이시연은 이 규칙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칭찬하고 있자니 문에서 비프음이 들리며 개방을 알려왔다.

 

이시연은 기지개를 켠 뒤 의자에서 일어났다.

 

 

1.

 

이시연이 바깥으로 나오자 이내 저편에서 불빛이 어른거렸다.

 

위치로 보아선 아마 강문희일 것이다.

저번에 랜턴을 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뒤이어 하나둘 중앙의 테이블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 다들 벌써 나와계시네요.”

 

그런 가운데 백은하의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와 성란은 백이란의 양팔을 팔짱끼듯 붙잡고는 걸어오고 있었다.

 

“이란아, 어디 아파…?”

 

어째서인지 백이란은 팔을 모은 채 움츠린 자세였다.

 

그런 그를 보고 걱정하며 강문희는 조심스레 다가갔다.

 

“무, 문희야. 오지 마!”

“에이, 오빠. 여친한테는 숨기는 거 없이 다 보여줘야지.”

 

깜짝 놀라며 그녀에게 외쳤던 백이란이었으나

옆에 있던 두 사람은 그런 그를 비웃듯 잡고 있던 팔을 활짝 들어보였다.

 

강문희가 손에 들고 있던 랜턴이 그의 모습을 똑똑히 비춘다.

그녀는 순간 흠칫하며 한 걸음 물러서고 만다.

 

“후후, 이란 씨. 부끄러워하는 모습도 귀엽네요.”

“저런 방법이 있었나…….”

 

그것을 보고서 이시연은 이마를 짚었다.

 

바지의 고간부가 잘려나가 그의 물건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아직 늘어져있는데도 체구에 비해 커다란 양물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다.

 

“은하야, 제발 그만…….”

 

당장 얼굴이든 고간이든 가리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던 백이란이었으나

두 사람은 그의 애원을 완전히 무시한 채 의자에 묶었다.

 

팔을 뒤로 돌려 묶은 뒤 다리를 보란 듯이 벌려 고정시켰다.

심지어 의자를 조금 멀리 떼어놓아 테이블에 가려지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모두가 바라보는 시선에서 열기가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성란과 백은하는 그런 그의 발치에 앉아선 번갈아 가며 귀두에 연신 키스를 퍼붓기 시작했다.

 

간질이는 듯한 감촉에 수치심을 느끼면서도 페니스에 점점 힘이 들어가고 만다.

 

그러다가 문득 성란은 고개를 돌려 나머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뭐해요. 밥 먹을 준비 안 하세요?”

 

그녀의 시선은 자기들이 하는 일에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양 평소처럼 행동하라고 요구했다.

 

“…선생님. 음식 받으러 가죠.”

 

그 말에 박선정은 시선을 피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라도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어라, 선정이 언니는 구경 안 해도 되겠어?”

“백은하. 기어오르지 마라.”

“차가워라. 상냥하던 때의 선정이 언니가 그리워.”

“네 행동을 돌이켜보고 말하지 그러냐?”

 

이내 그녀는 혀를 차곤 주방 쪽으로 떠나갔다.

이시연 역시 잠시 백이란 쪽을 살펴보는가 싶더니 훌쩍 자리를 떴다.

 

“문희 양은 계속 보고 싶어서 남았군요?”

“아, 아니야…!”

 

뒤이어 성란이 키득대자 강문희는 얼굴을 붉혔다.

 

첫 날 이후로는 식사를 가져오는 데 두 명이면 충분하다는 걸 파악했기에

그녀가 가만히 있었을 뿐이라고 알고 있음에도 그런 식으로 조롱해온다.

 

아니, 사실은 분명 그런 마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강문희는 생각했다.


이 자리를 뜨자니 불안함이 밀려와서 견디기 힘들었다.

 

제아무리 고양이 시체가 들어있다는 소리를 들어도

상자를 열어서 확인해보지 않으면 신경이 쓰이는 게 사람 마음인 법이었다.


어쩌면 그뿐만이 아니라 더욱 그가 희롱당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은…

자신이 그럴 리 없다면서 강문희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녀가 시선을 보내오는 것을 확인하고서 백은하는 히죽 웃더니 입김을 불었다.

근질근질한 자극에 이젠 완전이 빳빳해진 페니스가 연신 움찔대었다.

 

뒤이어 성란은 손을 뻗어 장대를 문지르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보고서 백은하는 다리 사이로 파고들더니 불알을 입에 머금고 굴렸다.

 

“하지마… 이란이가 싫어하잖아…….”

 

박루미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으나 두 사람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애무를 이어나갔다.

 

저릿한 쾌감에 백이란이 몸을 움츠리자 성란은 눈웃음을 짓더니 손의 움직임을 더욱 빠르게 했다.

 

“어머나, 테이블까지 다 튀었네요.”

“후아… 와, 진짜네. 대체 얼마나 기분 좋았던 거야?”

 

이내 쾌감을 참지 못한 그는 사정에 달하고 만다.

엄청난 기세로 뿜어나온 정액이 테이블 여기저기에 튀어버린다.

 

성란이 그 모습에 감탄하듯 말하자 백은하는 호기심이 도졌는지 입을 떼어내곤 몸을 홱 돌려 확인했다.

 

“…….”

 

강문희는 자기 앞에 튄 그것을 바라보며 무심코 침을 삼켰다.

연인의 짙은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으앗?!”

 

그릇이 쿵 하고 내려놓아진 것은 그녀가 조심스레 그 액체를 건드려보려 하던 순간이었다.

 

어느새 돌아온 박선정이 백이란을 애무하고 있던 두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방금 전의 그것은 그녀 나름의 화풀이였던 모양이다.

 

조금 지나자 이시연도 테이블로 돌아왔다.

그녀는 테이블에 묻은 정액을 훑어보는가 싶더니 상황을 파악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성란과 백은하는 식사가 시작되어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 오빠. 팔이 묶여있으니까 내가 먹여줄게.”

 

백은하는 히죽히죽 웃으며 스푼을 그의 입으로 드밀었다.

 

애초에 손을 풀어줬어도 테이블과의 거리가 있어서 그냥은 먹지 못했을 터였다.

물론 이런 상황으로 만든 장본인에게 들을 말은 아니었다.

 

나름 저항하려고 했던 백이란이었지만 그녀가 스푼으로 입술을 누르자 간단히 벌어졌다.

 

사정 직후라 민감한 귀두를 성란이 계속 만지작거리느라 턱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남아있는 정액과 그녀의 침을 윤활제로 삼아 뽀득뽀득 문지르자 발끝이 절로 오므라들었다.

손가락이 훑고 지나갈 때마다 저도 모르게 새된 교성을 내지르고 만다.

 

“흐윽… 그만… 진짜 머리가 이상해져버려…….”

“그러라고 하는 건데?”

“그래도 기분 좋잖아요? 자, 여긴 어때요?”

 

스스로도 소용없으리라고 생각하면서도 애원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물론 그 예상은 완전히 맞아들었다.

 

“떨고 있네요. 쌀 것 같나요?”

“으엑, 다들 밥 먹고 있는데 식탁 위에 싸려고? 좀 참아봐.”

 

이윽고 성란은 사정을 재촉하듯 장대 전체를 빠르게 문질러대기 시작했다.

손목 스냅을 넣어 질척질척한 소리를 마구 흩뿌렸다.

 

“하아, 어쩔 수 없지. 오빠도 자기 정액이 튄 음식을 먹는 건 싫을 테니까.”

 

백이란이 연신 고개를 저으며 무리라는 의사표현을 해대자 백은하는 한숨을 쉬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너 진짜 뭐하는 거냐?!”

“…….”

 

그녀는 테이블을 돌면서 각자가 앞접시에 덜어둔 샐러드를 다시 샐러드볼에다 털어넣었다.

 

식탁에서 행위를 벌이다 못해 이제는 남 먹던 음식까지 가져가는 소행에

다들 어안이 벙벙해서 멍하니 바라보거나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친 박선정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겠다는 양 쳐다보더니 씨익 웃을 뿐이었다.

 

“오빠, 안 튀게 조심해서 싸야해?”

 

그러고는 만족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샐러드볼을 바라보더니

백이란의 앞에 쪼그려앉아 그것을 내미는 것이었다.

 

그 행동에 성란은 그녀의 생각을 이해한 것인지 피식 웃으며

백이란의 자지를 살짝 눌러 샐러드볼을 향하게 조준하고는 애무를 이어나갔다.

 

“은하야, 너, 무슨…….”

“남들 생활하는 공간에 뿌릴 수는 없으니까 요강을 마련하는 수밖에 없잖아?”

“그거 치워… 윽, 당장…….”

“자, 이란 씨. 여동생 분이 모처럼 준비해주셨잖아요. 성의를 무시하는 건 예의가 아니죠?”

 

성란의 손길은 점점 빨라져만 갔다.

 

어떻게든 이를 악물고 참아보려 하고 있을 때 백은하가 입을 겹쳐왔다.

 

혀가 잇몸을 훑듯이 마구 간질이다가 파고들어 입천장을 쓸어올린다.


결국 백이란은 가빠져오는 호흡 속에서 재차 사정해버리고 말았다.


“정말이지 매번 감탄스러운 양이에요.”

“푸하… 엄청 쥐어짰는데도 이렇게나 나온단 말야?”

 

샐러드에 음란한 드레싱이 더해져간다.

그의 정액이 골고루 뿌려지도록 백은하는 웃으며 그릇을 든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흐윽?!”

“이 정도면 드레싱으론 충분하지만, 저는 좀 더 질척하게 적셨으면 하네요.”

 

그리고 겨우 휴식이 찾아오려나 싶었던 찰나 성란이 다시 그의 페니스를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거의 최고 속도로 문질러오는 탓에 순식간에 다음 사정을 맞이해버린다.

그러고서도 그치지 않고 그녀는 연속해서 몇 번이고 백이란을 사정시켰다.

 

“흐으, 하아…….”

“우리 오빠가 느림보라서 미안해요. 다들 기다렸죠?”

 

그릇 밑부분이 정액에 푹 잠길 정도가 되어서야 성란은 만족한 웃음으로 그를 놓아주었다.

 

생글생글 웃으며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백은하는 착정이 끝난 것을 확인하고서

해맑은 목소리로 말하곤 테이블에 있던 집게를 들었다.

 

그녀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다시금 테이블을 빙빙 돌며 샐러드를 나누어주었다.

 

“아, 다 먹기 전에는 안 보내줄 거니까 꼭 접시를 비워주세요.”

 

액체가 끈적이며 실을 그리고 각자의 접시에 수북이 샐러드가 쌓인다.

백은하는 샐러드볼을 톡톡 두들기며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어라, 이상하다. 다들 표정이 왜 그래요? 전 이거 참 좋은데.”

 

그러다 미소를 지으며 집게에 들러붙은 정액을 핥았다.

 

“…그렇게 좋아하는 거면 혼자서 많이 먹었으면 좋겠구나.”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이시연이었다.

그녀는 마치 평범한 샐러드를 먹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했다.

 

정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것일지도 몰랐고,

어쩌면 재미없는 무반응을 백은하가 제일 싫어하리라 여긴 것일지도 몰랐다.

 

“…….”

 

그 모습을 보더니 이내 박선정도 샐러드를 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 속에는 울분을 억누르는 기색으로 가득 차있었다.

 

박선정은 짜증을 표출하듯 거칠게 음식을 씹어나갔다.

 

“뭐랄까, 선정이 언니 보고 있으니까 그게 생각나네요.

협박하려고 자기 아이로 국을 끓여주니까 당당히 먹어치우고 상대를 박살냈다는 사람.”

“위나라 악양?”

“아마 그 사람인 거 같아요. 뭐, 언니는 우리 오빠 아기씨를 씹고 있으니까 비슷하네요.”

 

실제로 이시연에 비하면 그녀의 반응이 재밌어서였는지

백은하는 계속 그녀가 먹고 있는 것을 상기시키며 놀려대었다.

 

“하아, 하아…….”

 

박루미는 샐러드를 집고 입을 벌린 채 거센 숨을 내쉬고 있었다.

샐러드에 묻어있던 액체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한 방울 툭 떨어진다.

 

그러다가 입에 집어넣은 뒤 몸을 움츠리고 어깨를 움찔움찔 떨었다.

 

강문희는 그런 세 사람을 바라보다가 가장 마지막으로 움직였다.

포크가 연인의 것으로 범벅이 된 방울토마토를 찔러들어간다.

 

꿀꺽. 무심코 침을 삼켰다.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단순히 남자의 체액이라는 점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이 배출된 과정과, 그를 애무했던 타인의 모습을 떠올리자 심장이 마구 뛰었다.


그야말로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와 몸을 겹쳤다는 증표와도 같았다.


그런데도 어째서 자신이 느끼는 감정은 이다지도 흥분에 가까운가.

 

의자에 축 늘어진 그녀의 연인을 슬쩍 살펴보았다.

진이 빠진 듯 숨을 헐떡이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결국 강문희는 입을 열었다.

 

방울토마토는 조금 시큼하고, 또 비릿했고,

축축하게 연인의 냄새를 풍겼다.

 

 

2.

 

스르륵.

패널에 손을 가져다대자 주방의 문이 열렸다.

 

손에 들린 그릇에서는 아직도 비릿한 향이 풍겨왔다.

 

그 냄새에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이시연은 안쪽으로 발을 옮긴다.

 

“으음, 선생님은 영 반응이 없으셨단 말이죠.”

 

이시연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오며 백은하는 자꾸 말을 걸었다.

 

“과연 맛있게 드셨을지 불안해지네요.”

“최악이었단다. 그래, 대답을 들었으니 만족하겠니?”

“우와… 매정하시네요. 나름 특제 소스였는데.”

“아무리 요리의 절반은 소스라고 하지만 그 정도로 적실 거면 다음부턴 국이라고 부르렴.”

 

퉁명스럽게 대답하며 이시연은 바닥 한쪽에 들고온 그릇들을 내려다놓는다.

 

그리고는 음식용 엘리베이터의 셔터를 위로 당겨 열었다.

손끝에 약간의 저항감이 느껴졌다.

 

그녀는 내려놓은 그릇을 그 안쪽에 집어넣고 고개를 돌렸다.

이어서 백은하에게 그녀도 얼른 넣으라며 눈짓했다.

 

“아, 그런데 선생님. 실은 부탁하고 싶은 게 있거든요.”

“…뭔데 그러니?”

 

백은하는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그녀 옆에 쪼르르 다가와

풀썩 앉아선 안쪽으로 겹쳐진 그릇들을 들이밀었다.

 

이어서 그 표정 그대로 고개를 돌려 이시연과 시선을 맞춘다.

그 목의 움직임은 마치 삐걱거리는 환청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음식에 대체 뭘 넣으시는 거예요, 선생님?”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구나.”

 

이시연은 당황이 드러나지 않도록 잽싸게 얼굴에 침착한 표정을 덧씌웠다.

그러나 백은하는 이미 그 너머를 들여다본 것인지 더욱 그녀에게 얼굴을 들이민다.

 

“시치미 떼셔도 소용없어요. 오빠는 그렇다 쳐도 문희 언니가 이럴 사람은 아니거든요.”

 

척. 이시연의 어깨 위로 그녀의 손이 올라간다.

 

“사람 본성은 모르는 법이잖니?”

“우리 오빠랑 문희 언니는 좀 다르거든요. 바보라서 그런 거 못 숨겨요.”

“어쩌면 감금 상황 속에서 새로운 성벽이 발현된 걸지도 모르고…….”

“보고도 모르시겠어요? 그 둘한테는 극한 상황이고 뭐고 없단 말이죠.”

 

분명 그 두 사람이라면 직전까지 자신들을 죽이려들던 살인마도 갑자기 쓰러지면 걱정해줄 테다.

 

“그리고 선생님. 성벽이라니요? 저는 성적인 문제라고 말한 적이 없던 것 같은데요.”

“…….”

“역시 넣고 있는 거죠? 미약이든 뭐든.”

 

이시연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눈동자가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런 게 아니면 문희 언니 성향을 감안했을 때 이런 플레이에 이만큼이나 흥분할 리가 없거든요.

물론 진짜 미약이라면 엄청 비쌀 테니 선생님의 능력이려나요?”

 

그 말을 듣고도 이시연은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백은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 대신 엘리베이터의 문을 닫았다.

 

“…음식에 넣고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니?”

“애초에 선생님이 무언가 할 수 있다고 하면 식사할 때 정도가 전부니까요.”

 

백은하는 어깨를 으쓱였다.

 

“물론 밤마다 다들 전화를 하고 있긴 하지만 아무렴

설마 목소리로 사람 꼴리게하는 능력을 설문지에 적지는 않으셨을 거잖아요?”

 

아마 ‘최면’ 같은 걸 적었다가 주최 측의 밸런스 조정을 받았다고 보는 편이 자연스러웠다.

 

“그래, 그래서 어쩔 거니 이제?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려고?”

 

이시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을 쉬었다.

 

“어차피 이란이를 멋대로 범하고 있는 너도 별 다를 바는 없잖니?”

“아핫, 뭐, 그건 그렇죠. 물론 저는 아주 당당하다는 차이가 있지만.”

“그럼 앞으론 허튼 짓 말고 손 떼라고만 말하려고 이러는 거니.”

 

그녀가 그리 말하자 백은하는 화들짝 놀라며 손을 내저었다.

 

“앗, 아뇨. 오히려 앞으로 계속 해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요.”

“뭐?”

“딱히 약물조교는 비겁하다고 생각하는 타입이 아니라서 말이죠. 왜 문희 언니한테도 약을 넣는지는 모르겠지만.”

 

안심히라고 말하려는 듯이 백은하는 싱긋 미소를 지어보인다.

 

“대신 앞으로는 선정이 언니가 먹을 음식에도 같은 걸 넣어줬으면 좋겠어요.”

“선정이한테? 대체 왜?”

“글쎄요. 선생님이 지금 그걸 물을 수 있는 입장이던가요?”

 

그 말에 이시연은 다시금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 뭐, 알겠어. 그 정도라면야.”

“고마워요, 선생님.”

 

그러나 그녀로서는 거절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아직 약을 넣는 걸 중단하기에는 많이 이르다.

 

“우리 앞으로도 좋은 관계로 지내요.

아, 다음 식사부터는 음식 가져오는 것도 제가 도울게요. 눈치 안 보고 넣을 수 있게.”

 

그런 이시연의 계획 따위는 고려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백은하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뭔가 글 작성할 때 스크롤이 바뀌었다.

나는 추가적으로 쓰는 건 볼드체밖에 없으니 컨트롤B 하면 되는데

글자 크기나 색 조정하는 사람들은 왔다갔다 번거로워서 어쩌려나 싶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