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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https://arca.live/b/yandere/21994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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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내 우주선으로 함께 가지 않겠나.”


그녀는 내 손을 잡고 도킹데크로 이끌었다.


그리고 그녀의 우주선으로 들어갔다.


“와…”


우주선은 엄청 컸다. 그리고 내가 서있던 곳을 1층으로 한다면 천장이 없는 원통형 건물처럼 높다랗게 길었는데 벽면에는 전부 책이 꽂혀있었고 그마저도 발에 채일정도로 바닥에 쌓여있었다.


허나 이상한건 책 제목이 지구 문자로 씌여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발밑에 놓여있던 아무 책이나 들어올려 제목을 소리내서 읽었다.


“파우스트…” 


그러나 펼친 책 안에는 내용이 요약되어 있는 열줄짜리 줄거리만 씌여있었을 뿐 나머지 수백 페이지는 전부 백지였다.


“야… 얀순! 이 책들은 어디서 난거야? 어떻게 지구의 책들이 있지?”


“파우스트, 좁은 문, 적과 흑, 선형대수학1, 동역학, 유체역학, 논문들까지 다 있어!”


문학책들은 전부 내가 읽어본 것들이었으나 펼쳐볼때마다 간략한 내용만 적혀있을 뿐 나머지는 마찬가지로 백지였다. 


그나마 내용이 꼼꼼하게 적혀있던건 대학생, 대학원생때 들고다녔던 공학과 물리학 서적들뿐.


그녀는 의문을 풀어준다고 나를 이곳으로 데려왔으나 의문은 풀리지 않고 더욱 쌓이기만 했다.


“일단 나를 따라와라.”


얀순이 손짓했고 나는 일단 그녀를 따라갔다.


그녀를 따라 나선 계단을 올라갈 때마다 우주선의 구조는 너무나도 괴이하다는 것을 알았다.


2층에는 내가 어렸을 시절 살던 집에 있던 방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었고 높이 올라갈 수록 고등학교, 대학교의 강의실이 있었다.


그 다음에는 대학원 강의실이, 그리고 그 다음층에는 내가 5년동안 몸담았던 연구소 실험실이 나타났다.


“얀순! 어… 어떻게 이런 우주선이 있어? 지금 이거 내 뇌속인거야?”


그러나 얀순은 말없이 계단을 계속 올라갔다.


“얀순! 이게 어떻게 된거냐니까! 대답을 좀 해줘!”


나는 얀순의 어깨를 잡았으나 그녀는 꿈쩍도 않고 올라간 다음 답을 하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외로움과 죽음을 벗어났다는 안도감은 약간의 공포와 커져가는 궁금증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궁금증은 죽음의 직전까지 가서야 느낀 얀순의 존재에 대한 소중함, 집착을 더욱 증폭시켰다.


이상한 점은 또 있었다. 나는 끝도 없는 나선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는데도 전혀 힘들지가 않았고 오히려 푹신한 침대 위를 걸어다니며 중력이 가벼운 곳에서 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몇분후 탐사대가 타고 왔던 우주선을 지나친 다음에야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았다.


“그대도 대충 눈치 챘나.”


“역시 내 뇌속인거지!”


“정확하게는 그대의 기억이다. 그대의 모든 기억을 물질로 구성해놓았지.”


그녀는 다시 가벼운 미소를 띠었다.


“어… 언제 내 기억까지 읽고 이렇게 만든거야? 우리는 메세지만 주고 받았을 뿐인데!”


“지구 시간 단위로 몇주 전에 그대가 꾼 꿈, 기억나는가.”


어떤 여자가 내 머리속에 손가락을 집어넣던 꿈을 말하는 것이 분명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가 내가 처음으로 그대를 직접 찾아갔을 때다. 그때, 지구 인류의 습속부터 언어, 문학까지 전부 그대의 뇌를 통해 배웠다.”


나는 말을 잇지 못하다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때 꿈속에서 본건 너가 아니었어. 너와 많이 다르게 생긴 여자였다고.”


“나는 그때 완성되어가는 중이었다. 그대의 취향에 맞출 완벽한 육체를 얻기 위해서. 그 형태는 거쳐가는 임시 형태였을 뿐.”


그 순간 바닥에서 검은색 촉수같은 것이 올라와 얀순을 완전히 감쌌고 촉수가 사라지자 꿈속에서 봤던 그 여자의 모습으로 바뀌어있었다.


내가 놀라 그녀의 온몸을 훑다가 고개를 들었을때 그녀는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이 모습은 그저 인터페이스다. 이상하게 생각할 건 없다.”


내가 아는 상식을 아득하게 초월한 얀순과 대화할수록 의문점은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커져만 갔다.


“눈빛을 보니 확실히 궁금한게 계속 생기는 것 같구나. 일단 이 방으로 들어와라.”


그녀가 바로 옆에 생겨난 방문을 열자 내 방과 완전히 똑같은, 내 방이 나타났다. 혼자 좁게 쓰던 1인용 침대가 퀸사이즈 침대로 바뀌어 있었을 뿐.


그리고 그녀는 나를 침대 위로 쓰러뜨리고 내 위에 엎드려 양팔로 감싼 뒤 끈적하게 키스했다.


“하지만 더이상 궁금해 할 필요는 없다.”


그녀는 한숨을 돌린 후에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그대한테 사랑에 빠졌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니까.”


“그대를 처음 본건 알다시피 그대의 탐사대가 이 항성계에 들어왔을 때였다. 그러다… 안타깝게도 그대가 남게 됐지.”


“그리고 그대가 좋아서 메세지를 나누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그대를 직접 만나게 됐지. 그것 뿐이다.”


그녀는 나를 꼭 껴안은뒤 내 오른쪽 귀에 대고 말했다.


“아무것도 신경쓸 필요 없다. 그냥 나에게 모든 것을 맡겨라.”


“얀순, 너 아직도 말하지 않은게 있잖아.”


얀순은 잠깐 당황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내 뇌를 통해 무언가를 읽을 정도면 너가 말하고 싶은걸 내 뇌에 바로 전달해 줄 수 있었을텐데.”


“읽는 것과 쓰는 것은 다르다. 마치 너희 종족이 쓰는 저장장치처럼. 그저 그대와 목소리를 통해서 대화하고 싶었던 것 뿐이었으니까.”


“얀순, 난 아직도 궁금한게 많아. 제발 솔직하게 얘기해줘. 난 학자야. 알고 싶은게 많다고.”


그녀의 표정은 다시 섬뜩할 정도로 차가운 무표정이 되어있었다.


“알겠다. 일단 지금은 피곤해보이니 한숨 자고 이야기 하지.”


그녀가 나를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나는 버둥거렸지만 이상하게 누울 수 밖에 없었다.


“난 아직 안졸려워. 뭔가… 아…”


얀순은 내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고 나는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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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 윤곽 잡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