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은 경비병을 사랑해버렸다 (4)

 

 

 

 

 

 

나는 그저 끝없이 깊은 구멍으로 추락했어.

 

 

 

 

 

 

9.

 

“사냥을 가자, 얀센.”


“……미리 말해두겠습니다만, 저 사냥할 줄 모릅니다.”

 

“그런 사냥이 아니니까 괜찮아.”


나는 얀센을 데리고 훈련장으로 내려갔다.

 

거기엔 출정 준비를 마친 기사단이 말에 탄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장님, 그 녀석이 그 유명한 호위병입니까? 칼도 놓고 다닌다는?”


말 위에서 검을 살펴보던 제코스가 말했다.

 

“대체 그 소문 어디까지 퍼진 겁니까?”


“아마 국왕 전하 귀에도 들어갔을 것 같은데!”


“그만 놀려. 얀센, 말을 내줄 테니 타. 탈 줄 알지?”
 
“모릅니다!”

 

……왜 경비병인 주제에 말도 탈 줄 모르는 거야.

 

그냥 걸어서 따라오라고 시킬까. 얀센이라면 분명 몇 시간이 걸리든 따라올 것이다.

 

“어쩔 수 없지. 내 뒤에 타.”


“감사합니다!”

 

나의 말, 에레기아에 올라탄 뒤 얀센도 태웠다.

 

“말은 처음 타봅니다!”
 
“경비병한테는 말이 없나?”
 
“있긴 합니다만, 저는 못 타게 했습니다!”


아, 그렇군. 그 요반 대장에겐 사람 보는 눈이 있는 모양이다.

 

아무튼 우리는 본부를 떠나 남쪽 해안으로 향했다.

 

가는 데에만 거의 하루가 걸리지만 사실 이 정도면 꽤 가까운 축에 속했다.

 

“저희 지금 어디 가는 겁니까?”


“남쪽 해안으로. 거기에 던전이 발생한 모양이야.”


“던전이라면 그, 괴물들이 나오는 소굴 말씀입니까?”


“그래, 그거.”


이유는 아무도 모르지만, 이 세계 곳곳엔 던전이 발생했다.

 

마치 누군가가 인공적으로 만든 듯 기묘한 구조를 한 던전 안에선 온갖

 

괴물들이 나타나 근방의 인간들을 공격했다. 

 

우리의 임무는 외적을 방어하는 것과 그 던전이 영지 내에서 발생할 경우

 

처리하는 것. 그 중에서도 던전 처리는 영지민의 안전이 걸린 문제이므로 

 

발견 즉시 폐쇄시키는 게 무엇보다도 우선시되는 일이었다.

 

“던전에 들어가서 괴물들을 소탕하는 겁니까?”


“안 들어가. 나의 경우, 입구를 얼음으로 틀어막아 괴물들을 아사시키는 방식으로

 

처리하고 있어. 던전의 출입구는 보통 하나뿐이거든.”

 

“오호, 그거 좀 효율적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


그 후, 우리는 거의 쉬지 않고 해안으로 향했다.

 

새벽에 출발해서 다음날 해가 뜰 무렵에나 도착했는데, 얀센은 말을 너무

 

오래타서 가랑이가 아프다고 징징거렸다. 

 

“가랑이가 아픕니다. 자꾸 게처럼 걷게 됩니다.”

 

얀센이 정말 게처럼 뒤뚱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곧 익숙해져. 자, 얼른 처리하고 복귀하자.”


“네!”


먼저 우리는 정확한 위치를 알기 위해 인근 마을을 찾아갔다.

 

마을이라고 해봤자 어민 몇 가구만 사는 조그마한 장소였다.

 

“우린 조반니 영주님의 명을 받아 파견된 기사단이다. 던전이 발생했단 보고를

 

받고 왔는데, 정확한 위치를 아는 자가 있으면 어서 나오도록.”

 

“아이고! 드디어 오셨군요!”


촌장으로 보이는 노인이 내 발밑에 엎드리며 말했다.

 

“던전은 어디 있지?”


“여기서 그리 멀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게, 저희 마을 주민 몇 명이 납치당해서…….”


“몇 명이나?”
 
“아마 10명 정도, 그보다 많을지도 모릅니다.”


“좋아. 이제 위치를 말하도록.”

 

나는 노인에게서 던전의 정확한 위치를 들은 후, 기사들을 데리고 갔다.

 

과연 바다에서 멀지 않은 구석진 장소에 동굴이 있었고, 그 주위로 고블린이 보였다.

 

“이번 던전은 고블린의 둥지가 된 모양이네요.”

 

루시아가 내 옆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그러게. 잘됐네, 고블린 정도야 별 거 아니니까.”


“어쩌실 건가요? 마을 주민이 안으로 끌려갔다면…….”


“아마 죽었겠지. 평소처럼 입구를 봉쇄하는 걸로-”
 
“안 됩니다!”


그 순간, 얀센이 내 등 뒤에서 소리쳤습니다.

 

“안에 살아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구해야 합니다!”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상태가 아닐 거야. 그리고 몇 명 정도는 버려도 돼.”


“한 명도 버릴 순 없습니다! 살아있는 한, 저희는 구해야-”


“적당히 좀 해.”


제코스가 얀센의 뒤통수를 때리며 말했다.

 

“감히 상관한테 이래라저래라 명령하는 졸개가 어디 있어? 너는 대장님이

 

이렇게 하자, 말하면 네, 알겠습니다! 하고 대답만 잘하면 돼.”

 

“사람 목숨이 걸린 문제에선 물러설 수 없습니다.”

 

얀센이 웃음기를 싹 지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 그러셔? 그럼 네가 들어가서 구해오지 그래?”
 
“그만.”


나는 두 사람을 떨어트렸다. 도움도 안 되는 주제에 날 귀찮게 하다니.

 

“……좋아, 너는 직접 눈으로 보기 전까진 납득 못 할 거 같으니 이번만큼은 

 

특별히 네 의견을 수용해주겠어.”


“대장, 이런 바보 자식의 어리광을-”
 
“어차피 고블린이야. 처리하는데 1시간도 안 걸리니까 괜찮겠지.”


“감사합니다!”


얀센이 내게 고개를 숙였다. 

 

“너희는 빠져나가는 놈 없도록 주위를 봉쇄하고, 나와 얀센은 던전으로 들어가

 

생존자를 확인, 가능하면 구출하도록 한다. 별 거 아니니까 후딱 해치우자.”


“알겠습니다.”


곧 나의 기사들이 주위를 포위하여 진을 쳤다.

 

“키아악! 그갸아악!”

 

고블린 몇 마리가 그 포위망을 뚫으려고 무모하게 나섰다가, 순식간에 창에

 

찔려 꼬챙이 신세가 됐다. 고블린 따윈 정면승부에선 보통 인간보다도 약했다.

 

“좋아, 들어가자.”


쿠웅!


그 순간, 던전 입구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오우거다! 씨발, 왜 오우거가 고블린 둥지에서 나오는 거야!?”


“크어어어어-!!”

 

거의 7M 크기의 오우거가 고함을 내질렀다.

 

살이 붙은 근육질 몸에, 거대한 나무토막을 들고 있었다. 몸의 색은 노랗고

 

구역질나는 악취가 풍겼다. 그리고 더럽게 못생겼다. 

 

“위험합니다, 아가씨!”
 
“뭐가?”


오우거가 나를 발견하고선 돌진했다.

 

“그러어어억!”


나무토막이 나를 덮쳤고- 나는 한 손가락으로 그걸 막았다.

 

“귀찮네, 정말.”


쩌저저적……오우거의 몸이 한 순간에 얼어붙어 거대한 얼음조각으로 변했다.

 

“이게 다인가? 자, 어서 움직이자.”
 
“와! 방금 그게 뭡니까? 오우거가 한 방에 얼어붙었습니다!”

 

얀센이 내게 달려와 소리쳤다.

 

“내 능력이야. 이제 그만 소리 지르고 내 뒤나 잘 따라와.”


“네!”


나는 얀센을 데리고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어두컴컴하고 습했다. 그리고 구린내가 진동했다.

 

“뒷간 냄새가 납니다.”


“괴물들이 화장실을 쓰진 않을 테니까.”


“그보다 아까 그건 어떻게 하신 겁니까? 마법입니까?”


“아니. 음, 굳이 설명하자면 내게 주어진 권능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손가락을 휘둘러 작은 얼음 조각을 만들었다.

 

“정신은 육체를 따라간단 말, 들어본 적 있어?”
 
“어디서 얼핏 들은 거 같기도 합니다.”


“나의 경우엔 반대야. 내 육체는 나의 정신을 따라가, 내 정신이 약해지면

 

힘도 따라서 약해지고, 반대로 내 정신력이 강할수록 나의 권능이 강해져.

 

한 마디로 한없이 약해질 수도, 끝도 없이 강해질 수도 있는 체질이지.”

 

물론 내 정신이 약해지는 일은 없으니, 사실상 무적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실제로 나는 태어나서 상처를 입은 적이 없었다. 

 

남들이 겪는 ‘고통’이라는 개념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얼려버리는 힘만 쓸 수 있는 건 아니야. 내 감정 상태에 따라 능력도 달라져.”

 

“와……엄청 신기합니다. 저도 그렇게 강하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그럼 너도 영웅이라고 불렸을 테지. 아니면……괴물이라고 불렸던가.”

 

영웅과 괴물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결국 그건 힘을 어떤 방식으로 쓰느냐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니까.

 

“키아악!”


“!”


그 때, 고블린 한 마리가 천장에서 뛰어내려 나를 기습했다.

 

“위험합니다!”

 

그리고 얀센이 나를 밀치고 방패로 공격을 막았다.

 

“저도 이러고 있을 순 없습니다. 이 고블린은 제가 쓰러트리겠습니다!”


“흠, 마음대로 해.”

 

“그갸아아악!”


얀센이 검을 뽑고 고블린과 혈투를 벌였다.

 

말 그대로, 무기 하나 없는 고블린을 상대로 마치 기사와 용이 싸우듯

 

처절하고 필사적인 전투를 했다. 

 

“흐아압!”
 
“키기이익!”


“악! 머리카락! 머리카락은 건드리지 마! 끄아악!”


고블린이 얀센의 머리에 올라타 머리카락을 마구 잡아당겼다.

 

“……새삼 깨닫는 거지만 너 진짜 말도 안 되게 약하구나.”


“인정합니다! 인정할 테니까 이 자식 좀 떼어주십시오! 아파! 아파파파!”


쿵! 쿵! 얀센이 벽을 향해 머리를 몇 번이나 휘둘렀다.

 

그 충격에 고블린이 결국 나가떨어져 기절했다.

 

“제가 이겼습니다! 으흠, 이게 바로 제 실력입니다!”

 

얀센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장하다고 칭찬해줄까?”


“네!”


“잘했어, 정말로. 고블린을 상대로 칼까지 쥐고 있으면서 간신히 이겼네. 와아.”


“……그거 칭찬 맞습니까?”


“맞아.”


어쨌거나 우린 계속 던전을 내려갔다.

 

그리고 30분 정도 지났을까, 던전의 끝에서 우린 그걸 발견했다.

 

“……이게 다……시체입니까?”


“10명이라더니 그보다 훨씬 많았던 모양이네. 20, 아니 30명쯤인가.”


어디서 악취가 나나 했더니, 시체가 썩는 냄새였던가.

 

반쯤 썩은 시체들이 이곳저곳에 즐비했다. 

 

“그나저나 고블린은 약한데, 왜 당한 걸까요?”


“고블린은 야행성이라 밤눈이 밝아. 그 밤눈을 써서 사람을 기습하거든.”


생존자는 없나……그 때, 어두운 구석에 무언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거, 거, 거기……누구……있나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제발……!”


생존자가 있다. 4명 정도였고, 다들 상태가 심각했다.

 

다리와 눈에 상처가 있었다. 고블린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상처 입힌 것이다.

 

“이 사람들, 앞을 못 보는 겁니까?”


“고블린이 눈을 찌른 모양이야. 게다가 아킬레스건을 도려냈어.”


“왜 그런 짓을…….”
 
“살아있어야 싱싱하게 보관할 수 있으니까. 일종의 보존식이지.”


이래서야 데리고 나가봤자 아무 소용없다.

 

눈이 멀고 움직이지 못하는 불구를 살려봤자 식량을 축낼 뿐.

 

“돌아가자. 할 일은 끝났어.”


“네? 이 사람들은 어떻게-”
 
“두고 갈 거야. 아니면 네가 목숨을 끊어줄래?”


얀센의 표정이 굳었다. 생존자들은 얀센의 다리 밑으로 기어가 그를 붙잡았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이, 이런 곳에서 죽을 순 없어요……제발…….”


“제겐 가족이 있습니다! 사례는 할 테니, 목숨만은!”


“……아가씨, 이 사람들을 데려가겠습니다.”


“내 말 이해 못했어? 이 정도 상처면 이미 틀렸어. 살려봤자 쓸모없단 말이야.”
 
“쓸모니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구해야 할 사람이 있으면 구할 겁니다.”


“멍청한 소리 그만하고 따라와. 네가 무슨 수로 그 사람들을 구할 건데?


네가 눈과 다리를 치료할 수 있어? 아니면 네가 평생 그 사람들을 먹여 살릴 수 있어?

 

아무것도 못하면 가만히 있어. 괜히 나서지 말란 말이야.”


“그 말대로입니다. 제게 그럴 능력 따윈 없습니다.”


그러나 얀센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생존자들을 등에 업고, 뒷덜미를 잡았다.

 

“하지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버리고 가는 건 못하겠습니다!”


“넌 영웅이 아니야. 영웅 행세 해봤자 일찍 죽을 뿐이라고.”


“전 경비병……이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구할 수 있는 사람은 구하겠습니다.”


“너 말이야-”


“구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시도는 해볼 겁니다. 그것만으로도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끔찍한 곳에 버려져 죽어도 되는 사람 따윈 없습니다.”

 

얀센은 그들을 질질 끌며 걷기 시작했다.

 

여기서 저기까지 올라가려면 최소한 4, 50분은 걸린다.

 

그런데 사람 4명을 짊어지고 그걸 올라가겠다니……말도 안 되는 짓이다.

 

“난 도와주지 않을 거야. 네가 알아서 해.”


“알겠습니다!”


이제 곧 못 하겠다며 그들을 버릴 것이다.

 

얀센은 평범한 인간이다. 고작해야 경비병이나 했던 그가 4명을 짊어지고

 

던전을 빠져나온다는 건 불가능했다. 

 

“으흑……허억, 끄응…….”


“…….”


그러나 얀센은 포기하지 않았다.

 

마치 노새처럼, 땀을 뻘뻘 흘리며 그들을 끌고 올라왔다.

 

“얀센, 네가 그런다고 그들의 운명은 달라지지 않아.”
 
“후욱, 후욱……!”

 

“이 세상에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어. 알고 있잖아?”

 

“압니다.”


얀센이 고개를 떨어트리며 말했다.

 

“제 한계 따윈, 후욱……잘 알고 있습니다……그래도 말입니다, 사람은……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남을 구하는데 굉장한 힘……따윈……허억……필요치 않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구하는데 필요한 건- 그 사람을 구하고자 하는……의지뿐입니다.”

 

“헛소리.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


“그럼 더 노력할……겁니다……지금은 할 수 없더라도, 언젠간 할 수 있도록……!”

 

그 말을 듣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사람이 사람을 구할 수 있다면.

 

아무 힘도 없는 네가, 누군가를 구할 수 있다면.

 

“거의……다 왔습니다……헉……조금만 더어……!”


그리고 마침내, 얀센은 그들을 바깥으로 끌고 나오는데 성공했다.

 

그는 나오자마자 바닥에 엎어졌다. 그리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얀센.”


“헉, 흐어억……네?”


“만약 내가 구해달라고 말하면, 너는 날 구해줄 거야?”


“구할 겁니다. 몇 번이든, 몇 번이고 구해드리겠습니다!”


이 구멍을. 깊고도 깊은, 끝도 없이 깊은 구멍에서.

 

너는 나를 꺼내줄 수 있을까?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정말이지 한심하기 짝이 없는, 기대였다.

 

 

 

 

 

 

 

 

 

 

조회와 추천수가 타노스 당했다. 그러나 좌절감이 사나이를 키우는 거시다

빌드업이 길지만 아이 헤브 어 플랜. 계획대로 쓰면 내가 쓴 얀데레 소설 중 제일 좋은 게 나올 거다. 

먼치킨 얀순이가 점점 얀데레가 되어가는 과정을 즐겨주길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