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기..아리스양?"


[..? 왜 그러시는 건가요? 유우카씨.]


"...선생님에게 너무 들러붙어 있는거 아니야?"


[그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리스는 선생님의 업무를 대신 처리하고 있고, 그 속도또한 선생님보다 훨씬 뛰어나기에 아무런 문제도 없을거라 생각하는데..]


"아니, 문제야 없는데... 학생이 선생에게 그렇게 대놓고 애정행세를 하면, 보기에 좀 그렇달까.."


[어째서 입니까..? 선생님은 아리스를 좋아하고, 아리스또한 선생님을 좋아하니, 유우카씨가 불편해할 이유는....아하, 있군요?]


그 찰나의 순간에 나는 보았다. 아리스가 순수한 얼굴을 집어던지고, 어울리지 않게 유우카를 어딘가 비열한 미소로 바라보는 것을.


"있다니, 그게 무슨 - "



[유우카씨는 아리스가 선생님의 무릎을 차지하는 것이 부럽기에, 그렇게 짜증나는 듯한 얼굴을 하고 계시는거라 생각합니다!]


방금 전 까지의 비열한 미소는 전부 거짓이었다는 듯,  다시 평소의 해맑은 웃음으로 답하는 아리스.


"무, 무슨 그런 가당치도 않은 말을 해! 내, 내가 그럴..리..가.. 없..잖아.."


유우카는 아리스에게 자신의 속내를 들켰다는 사실에 그만 부끄러워서, 말을 살짝 더듬더니 이내 바닷 속으로 침몰하는 배처럼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윽.. 아무튼, 선생님도 아리스양에게 뭐라 한마디 좀 해보세요! 그렇게 가만히 계시지만 마시고..."


[훗..아리스는 선생님의 정실이기에, 유우카 씨가 끼어들 틈은 더 이상 없습니다. 무릎을 차지하는 것도 아리스만의 전용 특권이고요!]


아리스는 자랑스럽다는 듯이 팔짱을 낀 채, 코웃음을 치며 유우카에게 그리 말했고 말이다.


"저..정실? 선생님. 대체 최근들어 아리스양과 무슨 얘기들을 나누신 거에요?!"


"....."


[아하하. 이런걸 티배깅이라 하던가요? 게임이나 현실이나, 패자를 보는건 역시 즐겁습니다.]


이 혼란스러운 난리통에서, 난 그저 해탈한 인간마냥 침묵만을 유지할 뿐이였다.



"하아..."



상황이 이렇게 된건, 약 12시 쯤부터였다.



아침 때 담배에 대한 오해를 대충 해결한 후, 아리스는 평소처럼 내 일을 몇개 도맡아 하는 방식으로 날 도와주고 있었는데..


한 시간이 지나고 어느덧 12시가 되었을 무렵, 이제 자신이 맡은 일은 다 끝냈으니 이번엔 선생님의 남은 일을 마저 도와주겠다는 명목으로 내 무릎 위에 올라타더니.. 나 대신 책상위에 컴퓨터를 조작하며 업무를 대신 처리해주는 것이였다.


덕분에 난 손 하나 까딱 안하고, 아리스가 앉을 무릎만을 빌려준 채 아무것도 안해서 편하긴 하다만..


난 아리스의 진짜 목적이 뭔지 대충 알고있다.


업무를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그냥 내 무릎을 차지하고 싶었을 뿐인 애정행각 그 이상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아무래도 유우카도 눈치채어, 지금 이렇게 아리스에게 어딘가 불편하다는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었던 것이리라.


겸사겸사 살짝 질투도 하고 말이다. 유우카도 이런 면에서는 어린애같아서 귀엽달까.




그래도, 이대로 내가 가만히 침묵을 유지하다간 유우카도 여러모로 복잡한 심정이 들지 모르니..


항상 날 위해 고생하는 유우카를 위해 살짝 멘탈케어도 해 줄겸, 겸사 겸사 아리스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알려주기 위해 입을 열기로 했다. 



"..유우카, 이따 일 끝나고 나랑 얘기 좀 하자. 밀레니엄의 안보와 관련있는 중대한 문제야."


"..뭐, 뭐라구요?!"


[..?]


...라고 말이다. 



지금 내가 유우카에게 한 말의 어투는, 언뜻보면 딱딱하고 사무적인 용건으로 부르는 걸로 보일수도 있겠지만..  어쩔수없이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다.


대놓고 사실대로 '이따가 오랜만에 같이 놀러가자, 유우카!' 라고 말했다가는.. 분명 아리스가 질투심에 유우카를 닦달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말이다.



"저..선생님? 밀레니엄의 중대한 문제라니 뜬금없이 그게 무슨..?"


힐끔 -


나는 아리송해하는 유우카에게 보란듯이, 아리스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그녀를 살짝 곁눈질함으로써 귀띔해주었고 -


"아..네. 알겠어요. 분명 심각한 문제네요. 그건."


눈치빠른 유우카는 단번에 내 의사를 알아차리고, 아리스를 속이기 위한 내 연기에 맞장구쳐주었다.


[어.. 아리스가 도울수는 없는 일인..가요?]


그리고 아리스는, 나와 함께할 수 없다는 생각이라도 든 것인지 안절부절 해 있고 말이다.


"미안.. 아리스양. 이 문제는 오직 밀레니엄의 세미나 소속학생과 샬레의 선생님말고는 관여하면 안되는 중대사항이기 때문에 너가 도울 수는 없어."


[그, 그런....]


아리스는 유우카의 단호한 대답을 듣고선 눈에 띄게 침울해 했다. 


솔직히 이런 순수한 아이의 마음을 거짓말로 속이는건 선생으로써 하면 안되는 나쁜 짓이다만... 이번엔 어쩔 수 없었다.


"미안. 아리스. 너의 마음은 정말 고맙지만.. 이번 건은 선생님과 유우카같은 고위직책 말고는 관여하면 안되는 일이라서."


[으음...솔직히 슬프지만.. 알겠습니다. 아리스도 수많은 학생들이 선생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고, 그렇기에 아리스만을 신경써줄 수는 없는 선생님의 심정 또한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근본이 선한 아이라 그런걸까? 다행히도 아리스는 내 말을 듣곤 순순히 물러가주기로 한 것 같다.


"이해해줘서 고마워. 아리스."


나는 감사의 뜻을 담아, 아리스의 머리를 지압마사지 하듯이 양손으로 꾸욱 꾸욱 눌러주었고 -


[아, 앗. 잠시만..요오.. 이건.. 위험합니다아앗...♡]


"..그렇게나 시원하니? 로봇도 마사지빨을 받기는 하나보구나."


아리스는 어찌나 기분이 좋은건지, 하던 일을 멈추고 손을 키보드와 마우스에서 땔 정도로..


[아리스으..몸을..움..직이지.. 못하겠습니다..앗..]


털썩 -


아니.. 아예 쾌락에 목소리를 흐트려버릴 정도로, 이제는 아예 몸의 힘이 다 빠진듯이 축 늘어져 버린 채 내 상체에 기대어버렸다.


...그렇게나 기분이 좋았단 말인가.


"우와아... 선생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제는 애 한테까지 손을 대시는 거에요? 참 가지가지...어휴."


저 멀리서 나를 경멸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유우카때문에, 덩달아 이 쪽까지 왠지 모르게 뻘쭘해져 버렸다.


"아니.. 그 말은 좀 억울한데. 유우카. 이건 그냥 지압마사지잖아. 무슨 파렴치한 행동도 아닌데 뭘."


"...아리스양의 표정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실까요?"


"표정이 왜..?"


나는 궁금증에 하던 지압마사지를 멈춘 후,  물 밖에 나온 물고기처럼 축 늘어진 아리스의 몸을 내 쪽으로 향하도록 180도 돌아보게 해서, 그녀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았고 -



[서, 서언생님...아리스으..마비..상태가..걸렸는데..앗. 어째..선지 기분이 좋..하으윽..]


"맙소사."


그 자리에서 얼어붙을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아리스의 표정은.. 마치 내가 유우카와 뜨거운 관계를 보내서,  유우카가 절정때에 짓는 표정에 버금갈정도로 황홀해 보였으니까.


..아니. 단어를 하나 더 추가하겠다.


황홀하고, 음란해보였다..


"하아...이제 사태파악이 되세요? 선생님?"


 "..응. 이제 그만해야겠네. 평범한 마사지를 받은 여자애의 표정이라곤 도저히 믿기지가 않은걸."


[뎌..뎌 해주세요오.. 선..생니이임..]


""안돼.""



나와 유우카는 단호하게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