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은 경비병을 사랑해버렸다 (59)

 

 

 

 

 

119.

 

식당에 온 건 꽤 오랜만이었다.

 

꽤 넓은 가게였는데, 딱 봐도 어부처럼 보이는 우락부락한 사내들이 모여서

 

술을 마시거나 생선 요리를 먹는 모습이 보였다.

 

가게 점원들은 뛰어다니면서 주문을 받고, 주방에선 끝없이 소음이 흘러나왔다.

 

대낮인데도 가게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차서, 어디 앉아야 좋을지 몰랐다.

 

“음……어디 앉아야 합니까?”


내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누군가가 저 멀리서 벌떡 일어섰다.

 

“아아! 저번에 봤던 재미있는 녀석이네! 밥 먹으러 왔어?”


저 사람은……플로라 씨?


왜 저 사람이 여기 있는 거지? 그 엄청 큰 저택에 있던 거 아니었나?


“이쪽으로 와! 잘됐네, 모처럼 밥이나 먹으려고 했는데.”


“……괜찮겠어?”


아가씨가 내 옆구리를 툭 치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아마도.”


“모처럼 둘이서 오붓하게 먹을 생각이었는데…….”


“네?”


“아무것도 아냐.”

 

우리는 플로라 씨의 테이블로 다가갔다.

 

거기엔……어마어마하게 많은 게 껍데기가 쌓여있었다.

 

혼자서 이걸 다 먹은 건가? 못해도 15마리는 될 거 같은데?


“앉아, 여기 대게 요리 먹어봤어? 둘이 먹다가 셋이 죽어도 모르는데!”


“어, 사주시는 겁니까?!”


“이 누님한테 있는 건 돈뿐이라고? 자, 얼른 앉아!”


공짜 밥을 거절하는 건 민폐라고 배웠다.

 

나는 말이 바뀔까 무서워 얼른 자리에 앉았다.

 

“그럼 저도 대게 먹겠습니다!”


“얀센…….”


“사주신다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잖습니까?”


“맞아, 원래 공짜는 거절하면 안 되는 거라고.”


아가씨가 한숨을 내쉬었다가, 자리에 앉았다.

 

“저희를 기다리고 계셨던 겁니까?”


“아, 너는 나한테 말 걸지 마. 기분 나쁘니까.”


“……네?”


“살인자랑 말 섞는 걸 싫어하거든.”

 

아가씨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 같은데…….

 

괜히 입 열었다가 혼날까 무섭다.

 

“그래도 나는 착하니까, 대답하자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렸어.”


“그게 무슨 뜻입니까?”

 

“음……그냥 너희가 여기 올 거라고 느꼈어. 확신은 못했고.”


그러니까……그냥 직감이라는 뜻인가?


감이 그렇게 좋으면 그건 그냥 초능력 아닌가?


“흐름이 뭔지 알아?”


“흐름……?”


“만사에는 흐름이 존재해. 사건이든, 인간이든, 세계든- 모든 것에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플로라 씨가 컵을 집어던져 깨트렸다.

 

“우왓?!”


“봤어? 내가 던진 컵에서 흐른 물방울?”


“보긴 봤습니다만……저기……혼나는 거 아닌지?”


“나를? 혼내? 누가? 이 마을에서 나는 영주보다 위라고, 아하하!”


그 말대로, 가게 주인은 전혀 화나지 않은 듯 조용히 파편을 치웠다.

 

“아무튼- 그 물방울은 저기 떨어졌어. 바로 저 자리에 말이야.”


“음……이해가 안 됩니다.”


“내가 컵을 던진 순간, 저 물방울은 저기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거야.”


아- 아. 

 

정확하게 설명하긴 어려워도 뭔지 이해가 됐다.

 

적어도 맞장구를 쳐줄 정도로는 이해한 것 같았다.

 

“그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면, 미래를 예측하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아.”


“하지만 그게 가능할 리가-”


“내가 못한다고, 남도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나쁜 버릇이야……빨갱아.”


“……빨갱이?”
 
아가씨를 빨갱이라고 부르다니, 나는 죽어도 못할 짓이다.

 

물론 머리카락도 눈동자도 붉지만, 빨갱이라니, 너무했다.

 

“나는 마녀잖아. 마녀는 너희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존재라고.”


그런 건가……그런 말을 들으니 어느 정도는 납득됐다.

 

“흐름을 읽은 뒤에 남은 건, 기다리는 것뿐이지.”


“뭘 말입니까?”


“그러게- 뭘 기다리는 걸까, 나는?”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다니, 어떻게 반응하면 좋은 걸까.

 

플로라 씨는 내 앞으로 나온 대게 찜을, 자기 자리로 가져가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그, 그거 제 음식인데…….”


“잘 먹을게, 냐암.”


“……얀센, 정말로 여기 계속 있을 거야?”


“으음…….”


플로라 씨한테 이것저것 묻고 싶은 게 많다.

 

전하와의 관계라든지, 마녀들에 대한 거나, 여기서 뭐하고 있는지 등등 말이다.

 

하지만 뭘 물어봐도 똑바로 대답해 줄 것 같진 않았다.

 

“제물은 아직 안 가져갈 거야.”


게를 뜯어먹던 플로라 씨가 말했다.

 

“하지만 시간이 없는데-”


“그런 흐름이 아니야, 아직은. 조금만 더 기다려.”


“플로라 님, 지금 이 일은 촌각을 다투는-”


“저번에도 말했지? 말했나? 아, 말했구나. 거북이 씨가 죽었다는 거 말이야.”


그러니까 플로라 씨한테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구나.

 

어디까지고 제멋대로인 사람이다.

 

예측하기 힘들고, 제멋대로에, 왠지 좀 재미있는 사람.

 

그게 플로라 씨에 대한 내 평가였다.

 

“걱정하지 마, 어떤 식으로든 너희의 목적을 이뤄질 거야.”


“어떤 식으로든……?”
 
“사건은 관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거든-”


플로라 씨가 게의 내장을 숟가락으로 긁었다.

 

아아, 저기가 맛있는 부분인데…….

 

“너희의 결말은, 그러게. 비극일 수도 있고, 희극일 수도 있겠어.”


“……저희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있다는 겁니까?”


“어느 정도는.”


미래 예측이라니, 아가씨도 할 수 있긴 하지만- 플로라 씨의 이건 차원이 다르다.

 

꼭 신화 속에 나오는 예언자 같았다.

 

“어느 쪽이건 너는 조만간 죽-”
 
“아아아앗! 제 게! 이제 그만 드시고 넘겨주시죠!”


나는 플로라 씨의 말을 끊었다.

 

내가 머지않아 죽는다는 건, 아가씨한테 비밀이다.

 

적어도 당장은……언젠간……말해야 할 테지만.

 

“쳇, 치사해.”


“헤헤…….”


플로라 씨도 이해해 준 것인지, 군말 없이 게를 넘겨주었다.

 

“그나저나 그, 제물 말입니다……대체 왜 받으시는 겁니까?”


“아, 그거?”


플로라 씨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몰라.”


“……어…….”


“그냥 받고 싶어서 받는 건데, 왜?”


왠지 그럴 거 같긴 했지만, 진짜 그럴 줄은 몰랐다.

 

“알고 싶어도 알 수 없어, 기억이 없으니까.”


“기억이 없다뇨?”

 

“내 마법의 대가야.”


플로라 씨가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후비며 말했다.

 

“치유의 마법은 수명 대신, 기억을 대가로 삼아.”


“잠깐, 그건-”


“그 결과, 나는 내 과거도, 딸의 이름도, 얼굴도, 전부 잊어버렸다는 거지-”


설마, 저번에 말했던 그건 농담이 아니었다는 건가.

 

딸의 존재를 잊어버리다니, 그게 가능키나 하나?

 

“가능해.”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녀가 대답했다.

 

“나는 내가 몇 살인지, 어디서 살았는지, 누가 부모인지, 결혼은 했는지, 왜 여기 남아있는지, 거북이 씨가 몇 마리였는지, 

딸이 누구인지, 내가 좋아하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전부, 잊어버렸어.

 

그런 무시무시한, 잔혹한, 끔찍한 말을.

 

플로라 씨는 방실방실 웃으며 말했다.

 

“미래는 알지만, 과거는 몰라. 재미있지 않아?”


“하나도 재미없습니다.”

 

스스로 놀랄 정도로 낮고 차분한 목소리였다.

 

조금도, 전혀, 재미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가아-?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쉽다.”

 

“하지만 마녀의 마법은……보통 수명을 대가로 하지 않습니까?”


아가씨의 질문에 그녀가 대답했다.

 

“왜 그런지 알아? 수명은 써도 잘 모르거든! 자기가 언제 죽을지 아는 사람은 드물지?”


“기억을 대가로 바치면, 그럼, 그 끝에는-”


“전부 잊어버리겠지.”


플로라 씨가 손에 쥐고 있던 대게를 뜯어먹었다.

 

“아마 내 생각인데, 마시는 법이나 먹는 법을 잊거나, 숨 쉬는 법을 잊거나, 심장이 뛰는 법을 잊어버려서 죽을 거야. 나.”

 

“…….”


뭐라고 말해야 좋을까.

 

이런 심각한 얘기를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다니.

 

그냥 조금 이상한 게 아니다.

 

이 사람, 미쳤다.

 

“그러니 네가 궁금해 하는 것들은, 나도 잘 몰라. 잊어버렸으니까.”


“그냥 마법을 쓰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아가씨가 질문하자, 플로라 씨는 웃었다.

 

뭐가 그리 웃긴 건지 모르겠다.

 

“마녀라고, 나는! 마녀가 마법을 안 쓰면 뭐하는데?”


“그 대가가 너무 크잖습니까!”


“반대로, 내가 마법을 안 쓰면- 살아있을 수 있을까?”

 

그녀가 주위를 슥 둘러보며 말했다.

 

그렇다.

 

마녀는, 본래 배척받는 존재다.

 

페르만 해도 마녀가 되자마자 부모님이 죽이려고 들었다.

 

대부분의 마녀들은 그저 마녀라는 이유만으로 살해당한다.

 

그녀도……예외는 아닐 것이다.

 

“살아가기 위해선 과거를 버려야 해.”


플로라 씨가, 처음으로 웃지 않고 말했다.

 

“그게 나의 제물이니까.”


“…….”


“아- 맛있다! 아참, 이건 아직 안 까먹었는데……나, 원래 읽고 쓸 줄 알았나봐.”


“뭔가 기록을 남기셨군요.”


아가씨의 말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읽는 법을 잊어버려서 나도 못 읽거든, 그건 마음대로 읽어도 돼!”


“괜찮습니까?”


“어차피 난 기억도 못하는데 뭐. 아, 그래도 유포하면 안 된다?”


플로라 씨가 자리에서 일어나, 출구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거기엔 공주님이 우두커니 서있었다.

 

“오, 안녕? 나의 그……아무튼 딸아.”


“……역시, 잊어버렸구나.”


“미안, 미안! 근데 뭐, 어쩔 수 없잖아?”


공주님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름을 붙이는 것조차 무서운, 그런 표정이었다.

 

“…….”


“그런 표정하지 마, 모처럼 예쁘게 낳아줬는데. 그리고…….”


그녀가 공주님의 어깨를 툭툭 쳤다.

 

“……나 같은 건, 너도 잊어버리는 편이 나을 거야.”


그리고 자리를 떠났다.

 

공주님은, 우리를 한 번 보더니,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괜찮을까요?”


“얀센, 너는……쯧. 공주님을 따라가.”


“어, 제가 합니까?”


“공주님은 날 싫어해. 솔직히, 나도 싫고.”


그러니 네가 가서 어떻게든 위로해줘.

 

아가씨께 명령받자마자, 나는 벌떡 일어나 출구로 달려갔다.

 

“기록은 내가 확인할게. 얀센, 제대로 해야 돼.”


“알겠습니다!”


아직 안 늦었나? 아, 저기 있다.

 

나는 얼른 항구 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던 공주님을 불러 세웠다.


“고, 공주님!”


“……말 걸지 마. 그럴 기분 아냐.”


“어…….”


“따라오지 마.”


“안 됩니다! 저, 저는 경비병이니까요!”


“그게 무슨 상관인데.”


……그러게.

 

할 말을 잃었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저!”


“……왜.”


“그, 저라도! 저라도 괜찮다면……그게……푸념이든 뭐든지……들어드리겠습니다.”


공주님이 싸늘한 표정으로 나를 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어쩔 수 없네. 좋아, 뭐든 좋으니까 내 기분 좀 풀어줘.”


“알겠습니다!”


또 다른 임무가 생겼다.

 

이번에는- 공주님의 기분을 풀어주는 것이었다.

 

 

 

 

 

 

 

 

 


프로 작가는 대충 일주일 10편쯤 쓰는 게 평균이라고 들었다

게다가 장편 하나 분량은 200~500+@일 때도 흔하고...

근데 대체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연재할 수 있는 거지...?

프로가 되려면 100만년쯤 걸릴 듯 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