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붕이는 얀순이의 광기 어린 말에 잠시 벙쪄있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선 말했다.


"얀순아, 아직 니가 어려서 그런지 몰라도 이건 진짜 성숙하지 않은

행동이고, 나를 엄청 실망 시키는 행동이야. 난 네가 예쁘고 

착해서 참 좋게 봤는데, 이런 식으로 행동하면 내가 널 편하게 

대할 수 있겠니?"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가는 얀붕이. 얀순이는 그의 말을

조용히 듣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오빠. 난 그냥... 주변에 있는 년들이 자꾸 오빠한테

눈 돌리길래... 너무 그, 급해서!... 혹시나 오빠가 걔네한테 관심 가질 까봐..."


그러면서 울먹거리며 그의 품에 안겨 울기 시작했다.

그녀가 갑자기 울기 시작하자 얀붕이는 당황했지만,

그래도 아까 전 보다는 상황이 훨씬 나아진 것 같아서

그녀를 안아 등을 토닥였다. 그러자 얀순이가 눈물이 범벅 된

얼굴을 들어 올린 채, 울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진짜 저기 있는 애들한테 마음 주면 안 돼요?!...

내가 쟤네들 보다 오빠, 훨씬 좋아하는데...."


얀붕이는 그녀가 그냥 술 취해서 횡설수설하는 것 같아 

일단 위로는 해줘야겠다고 생각하여 '알았어, 알았어.' 하며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 그녀를 안아 줬다.


......,


그날의 일은 그렇게 조용히 넘어갔다.

얀붕이는 술자리에 끝까지 남아 술에 떡이 된

동생들을 하나, 둘 차에 태워 집에 보냈다. 

여학생들 같은 경우엔 택시 마다 번호판을 찍어 남겼다.

그래도 꽤 술을 할 줄 알아서 버티고 있던 동기들과는

각자 작별 인사를 나누고 서로 집으로 돌아 갔다.

그리고


"오빠... 오늘 제가..."


얀붕이가 얀순이의 말을 가로챘다.


"아~ 너 술 먹고 화장실에 토 한 거? 괜찮아~

원래 갓 성인 된 친구들이 처음 술 먹고 잘 모르니까

그런 실수도 당연히 할 수 있는 거야 ㅎㅎ. 앞으로는

몸 가눌 수 있을 정도로 마셔야 해? 알았지?"


토를 한 적도 없는데 그녀가 무안할 까봐 말을 돌리는 얀붕이.

얀순이는 창피함과 죄책감, 그리고 진하게 남는 미련 때문에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저... 오늘 오빠한테 한 말 진심이니까... 오빠가 받아줄 수 있을 

때까지 좋은 여자가 될 수 있게 노력 많이 할 게요, 그러니까...

그때까지 다른 여자 절대 눈길 주지 말고 기다려주세요?"


얀붕이가 말 없이 그저 웃으면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넌 이미 과분할 정도로 멋진 사람인데 내가 뭐라고 너한테

시간을 주고 말고 하겠니? ㅎㅎ... 그냥, 네 감정이 어린 날에

일시적인 치기인지, 아니면 진심인지 스스로 깨달을 수 있을 때까지

네가 여유 있게 생각을 해 봤으면 좋겠다는 거지."        


얀순이는 그의 말이 끝나자 곧장 쪼르르 다가와 품에 안겼다.

그리곤 귀를 그의 가슴에 댄 채로 말했다.


"진짜... 가만 안 둬요?"


얀붕이는 그녀의 귀여운 반응에 웃으며 그녀를 택시까지 이끌었다.

다른 여 동기들에게 했던 것처럼 번호판을 찍고


"도착하면 잘 도착했다고 카톡 해, 알았지?"


마지막까지 챙겨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얀순이가 택시 차창을 열고선 몸을 쭈욱 빼선 소리치며 답했다.


"네~! 꼭 카톡 할 테니까 오빠도 그때까지 자면 안 돼요!"


이윽고 멀어지는 그녀를 태운 택시.

갑작스레 피곤감이 몰려왔다.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검은 아스팔트 바닥에 시선을 떨구고 한숨을 푹 내쉬고

얀붕이도 몸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


"어, 엄마. 얀정이? 얀정이 잘 있지. 응...

에이~ 뭘 걱정을 해? 요새 얀정이 인기 짱이래.

옷도 예쁘게 잘 입고 다니고, 친구들도 많아.

응... 아빠는? 응~... 엄마 요새 건강 괜찮아요?

내 건강이야 UDT 출신이잖아~ 난 걱정 말고... 

네 ㅎㅎ... 그러니까 너무 걱정 말고 푹 쉬세요.

얀정이 잘 돌보고 있을게. 네~"


통화를 마친 얀붕이가 유튜브에 들어가

음악을 틀었다. 곡은 'Bravo My Life' 힘든 군대 시절에

위로가 되어 줬던 곡. 어린 시절이 무척 힘들었어서,

남들 다 누려보는 낭만 같은 건 그에겐 사치였었다.

여기도 돈 문제, 저기도 돈 문제,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어른의 문제' 이것에서 벗어나 고파 달아나듯

선택했던 군대였고, 그 힘든 시간 달빛 어린 화장실

변기 한 켠 에서 아무도 듣지 못하게 흐느끼며 부르고,

휴가를 나와서는 5번이고, 10번이고 반복해서 들었던

그 노래를 들으며 집까지 향하는 먼 길을 걸었다.  


......,


원룸의 한 호실.

전자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마자, 

안에서 마치 다급하기라도 한 냥 맨발로 뛰어 걸어오는 

소리가 현관문에 가까워졌다.

문이 열리니 밖에는 얀붕이가 서있었고,

문 안쪽에는 그녀의 여동생, 얀정이가 서있었다.

그런데, 얀정이가 그를 바라보는 표정이 조금 이상했다.

마치, 술 먹고 늦게 들어 온 남편을 보는듯한?


"아 오빠! 술 먹고 이렇게 늦게 까지 밖에 돌아다니면 어떡해!'


얀붕이가 멋쩍게 웃으며 사과를 하고는 한 손에 들려있는

베라 아이스크림을 보이며 말했다.


"미안해~ 오빠가 애들 데리고 같이 잘 지내보자고 술자리

간단하게 하고 들어가려고 했는데, 뻗은 애들이 너무 많아서 ㅎㅎ.."


그러자 얀정이가 허공에 코를 킁킁 대기 시작하더니 이내

얀붕이의 몸 가까이 얼굴을 가져다 대고는 냄새를 맡으며 말했다.


"이거 여자 향수 냄새 아니야?"


얀붕이가 답했다.


"응... 아니 뭐, 남녀 공과니까 여자 애들도 있었지..."


음... 사태가 좀 더 심각해 진 듯 하다.

얀정이 목소리가 많이 날카로워졌다.


"그 어린 여자애들이 술 먹고 뭔 짓을 할 줄 알고 빨리 안 보내고

여지까지 거기 있었던 거야? 오빠, 학업 열중해도 정신 없을텐데

괜히 이상한 여자애랑 엮이면 어쩌려고 그러는 거야?"


정신없이 쏘아 대는 얀정이.

그러나 마치 왕왕 있던 일인 냥, 얀붕이가 얀정이를

안아주며 말했다.


"아이고~ 우리 토실이, 혼자 있느라고 심심했구나?

오빠가 맥주랑 아이스크림 사왔는데 식기 전에 빨랑 먹자~"


애교 섞인 그의 목소리에 얀정이 기분이 조금은 풀린 듯 한 모양이다.

그리고 그가 그녀를 토실이라 불렀지만, 토실한 건 무슨

건강하게 살집이 잡힌 글래머러스 체형이였고, 외모는 

'쟨 왜 모델학과 안 가고 여길 왔을까?' 싶게 만든

얀순이와 용호상박이었다. 


......,


둘이 있기는 좀 좁은 원룸이었지만,

얀붕이와 얀정이, 둘은 화목했다. 의자 두 개가

간신히 들어가는 탁자 위에 아이스크림과 맥주를 올려놓고

서로 웃음과 농담을 주고 받으며 대화를 나눴다. 

둘이 이 다지도 사이가 좋을 수 있는 이유는

아마 둘의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그런지도 모른다.

얀정이는 아직 고등학생 이었고, 얀붕이는 26살이었으니

얀붕이에겐 그녀가 그저 막내 동생 마냥 귀엽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렇게, 방금 전에 있었던 해프닝이 마치 언제 있었냐는 듯

다시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는데, 

그때

이것을 한 번에 반전 시킨 일이 있었으니 


'카톡!'


얀정이가 궁금하여 물었다.


"누구야? 이 시간에?"


"글쎄, 누구지?" 하며 얀붕이가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 봤다.


"얀순: 오빠! ㅠㅠ... 저 집 다 와서 카톡 드리는데 왜 안 보시나용?..."


아차! 얀순이에게 답장하는 것을 잊었다.

얀붕이가 "아... 이거, 그냥 애들 잘 들어갔는지 카톡 보내달라고 해서 ㅎㅎ;;..."

그러나, 이미 화면 너머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한

얀정이 표정이 다시금 마치 핏기가 가신 듯 창백해지고, 표정이 굳어버렸다.  

그리곤 싸늘하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하기를


"오빠, ...도대체 밖에서 여자들한테 처신을 어떻게 하고 다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