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은 단순한 착각이겠지 싶었다. 그에게서 다른 여자의 냄새가 나도 그저 착각, 주종관계를 거부하며 초커를 걸길 거부해도 착각, 인스타그램에 놀고있는 그의 영상이 올라와도 착각으로 치부했다.



그녀의 인내심은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고 결국 그가 있는 현장을 급습했다. 그곳에는 그가 늘 이상형이라며 그녀앞에서 떠벌리던 여리여리하고 어려보이는 여자를 끼고 술을 마시던 그가 있었다.



애초에 용돈을 신용카드로 받지 않으려 할때 반대 했어야 했을까. 무언갈 사지도 않으면서 돈은 흥청망청 쓰는 그의 소비에 너무 무관심했다. 



그녀는 그자리에서 벗어나 집으로 가버렸다. 어쩔줄 몰라 가만히 있는 그를 두고 집으로 가 자신의 물건을 챙겼다. 아예 집 전체가 그녀의 것이였으니 부하 몇십을 불러 그의 옷가지 빼고 전부 챙겨 집을 나왔다. 



그시각 남자는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오늘은 집에 안간다는 생각으로 게임을 하고있었던 그는 '이쯤이면 그녀가 화가 풀렸을것이다' , '용서를 구하면 봐줄것이다', '그녀는 날 사랑하니까, 나 없으면 못사는 존재니까'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인테리어가 완료된 이사 직전의 집처럼 텅텅 비어있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갑자기 뇌에는 졸음이 몰려왔다.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뇌는 어쩔줄 몰라하며 숙면상태에 돌입했다.



그러나 잠에서 깨도 변하는건 없었다. 



'금방 돌아오겠지'



라며 타는 목을 달래려 부엌으로 향했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짜증을 내며 핸드폰을 켜 생수를 장바구니에 담고 아침거리를 주문했지만 잔액이 없었다.



'...'



친구에게 돈을 빌리기 위해 연락처를 뒤졌지만 그녀의 번호 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



그는, 그녀가 없으면 너무나도 무력했다. 일? 그 연약한 몸으로는 오래뛰기 조차 힘들었다. 애초에 할줄 아는일이라곤 그녀의 업무를 보조하는것 뿐이었다.



집 근처 편의점을 모두 뒤져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했다. 시급 2만원짜리 심야 아르바이트는 3일만에 보기좋게 쫓겨났다. 이렇게 일 못하는 자식은 처음이라는 사장의 욕과 함께.



다음으로 간곳은 단순 포장직이었다. 처음 1주일은 곧잘 해내나 싶었지만 왜인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사장이 그를 해고했다. 



가는곳마다 1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해고당했다. 일을 못하는것도 있었지만 알수 없는 이유로 잘리는 경우가 더 많았다.



힘들게 구한 대형마트 청소부 자리도 잘리고 집으로 돌아가던날 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처음엔 이렇게 힘들게 사는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거라며, 어느날 집에 돌아가면 보고 싶었다고 하며 자신을 안아주는 그녀에게 사죄하는척 다시 예전 생활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갈곳이 없어서 노숙을 했다. 공원 벤치에서 누워 자는것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너무나도 추웠다.



구걸을 했다. 끼니는 매번 삼각김밥이었다. 그마저도 하루에 하나 먹기가 힘들 정도였다.



길바닥에서 생활하니 갈수록 예전 생활이 그리웠다. 그녀의 돈으로 호의호식하며 살던 그 시절이 그리웠다.



그는 결국 호스트바에서 일을 했다. 끈적한 눈으로 자신을 흝으며 입맛을 다시는 여자들은 그녀에 비하면 너무나도 추했다.



돈만 받고 2차를 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호스트바에서도 잘렸다. 



다시 길바닥을 전전했다.



길바닥친구가 생겼다. 이름은 지현, 아버지의 성폭행을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왔다고 소개했다.



그녀의 외모는 과거에 그녀에게 전혀 밀리지 않았다. 이미 꾀죄죄한 그와는 너무나도 상반됐다. 그래서일까? 어느날은 그녀에게 불순한 목적을 지니고 돈을 줄테니 따라오라 한 남자가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 금방 갔다온다고, 여기서 기다리라며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느낌이 좋지 않았다. 따라가니 역시 강간당하기 직전에 그녀가 보였다. 그 순간 그가 달려와 강간범을 붙잡았다.



그러나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그에게 강간범을 제압할 힘은 없었다. 그는 계속해서 맞고 쓰러지며 다시 일어났다. 그는 그녀에게 사랑을 느낀 것이었다. 그는 쓰러져도 계속해서 다시 일어났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왔을때 그는 반 죽음이 되어 있었다. 그가 쓰러져있는 자리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남주 시점--





의식을 되찾았을때는 이틀이 지난 뒤였다. 



호화로운 병실이었다. 방은 넓었고 침대는 편안했다. 창문에서 들어오는 햇볕은 따사로웠다. 이불은 편안했다.



옆을 보자 그토록 보고싶던 얼굴이 있었다. 그녀가 이곳에 왜 있는 것일까, 지현은 어디간걸까. 그러나 내가 한짓을 떠올리자 굳게 닫힌 입술을 움직일수 없었다. 



그녀 또한 아무말도 없었고 그렇게 정적은 1분정도 지속되었다. 숨이 막혔다.



정적을 깬건 간호사의 문여는 소리였다. 



간호사가 업무를 하는동안 빠르게 할 말을 정리했다. 더 이상 길바닥을 사는 삶은 지긋지긋했다. 형식적인 상태 체크만 하고 간호사가 나가자 해야할 말들은 머리속에서 뒤죽박죽 섞여져만 갔고 나는 그저 머리속에서 나오는대로 지껄였다.



"지현아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나 버리지 말아줘 다신 안그럴게 길바닥에서 더 살기 싫어 제발 용서해줘 미안해 내가 멍청했어 이제 안그럴게 제발요 더이상은 이렇게 못살아 살려주세요 제발 데려가 주세요"



그녀는 내가 하는 광기섞인 짓껄임에도 표정변화 없이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너는 아직도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구나"



이 말을 끝으로 그녀는 붙잡는 날 두고 병실을 나가버렸다. 이튿날 간호사에게서 퇴원 지시를 받았고 그녀가 가면서 던져놓은 돈으로 월세를 구해서 다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새로 구한 편의점에서는 다시 잘렸다. 의류가게 판매점에서도 다시 잘렸다. 음식점 서빙 알바는 명품 옷에 음식을 쏟아 막대한 세탁비를 물어주고 쫓겨났다.



다시 호스트바에 취직했다. 끈적하게 붙어 2차를 가자는 손님들의 소리를 무시했고 얼마 안가서 난 결국 다시 길바닥에서 노숙을 시작했다.



노숙자 단속이 심해져 잠도 제대로 못잤고 범죄의 대상이 될뻔한 일도 잦았으며 온갖 잔병을 달고 살았지만 돈이 없어 약도 먹을수 없었다. 근처 편의점 알바의 도움으로 이틀에 한번은 폐기 음식으로 배를 채울수 있었고 물은 화장실에 수돗물을 마셨다.



하루는 길바닥에서 같이 구걸하던 지현을 만났다. 그녀는 취직을 했는지 멀끔히 옷을 빼입고 지하철역을 거닐었다. 



"저... 저기..."



아는체 하는 날 역겹다는듯이 쳐다보는 그녀, 내가 아니었으면 그날 죽을수도 있었지만 이미 나와는 다른 사람이란듯 날 무시했다. 



'세상 사람중에 널 사랑해주는 사람은 나 뿐이라고, 왜 그걸 몰라? 나만이 널 봐주고 널 사랑해주고 널 용서해준다고 이 멍청한새끼야!!'



그녀의 말이 머리속에서 계속해서 울리는듯했다.



그날 밤 나는 자살을 결심했다. 그래, 죽자. 이렇게 살 바에는 죽는것이 더 나으리라 생각 한 나는 해가 저물자 주저없이 다리로 향했다. 초승달을 보니 어째서인지 그녀가 생각났다. 내가 무슨짓을 해도 용서해주고, 날 항상 바라봐주며 나만을 사랑하고 나에게 모든것인 그녀가 미친듯이 보고싶었다. 다시 전처럼 돌아갈순 없었겠지만 그녀에게 사죄하고 싶었다. 죽기 직전에 자신의 과오를 알게된것은 너무 가혹했다. 결국 다리힘이 풀려 주저 앉은채로 흐느꼈다.



"내가... 잘못했어... 한번만 보고싶어..."



그렇게 한참을 흐느끼고 이제 다시 그녀를 볼수없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일어나 다리 손잡이에 발을 올렸다.



"정말 잘못했어?"



그 순간 뒤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 처음에는 환청도 들리는구나 싶어 헛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뒤를 돌아봤을때는 그녀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 순간부턴 내 몸이 누군가에게 조종되는것 같이 움직였다. 그녀앞에 무릎꿇고 입에서는 머리속에서 입력된듯이 말이 나왔다.



"잘못했어요 세상 사람들은 전부 쓰레기야 오직 당신만이 절 바라보고 사랑해주셨어요 제발 저를 용서해주세요..."



그녀는 나 없이는 살지 못한다. 이 말은 멍청한 나의 헛소리. 나는 그녀없이는 살지 못했다.



그녀는 나를 쳐다보더니 일으켜 차에 태웠다. 차에 타고도 벌벌 떠는 내게 담요를 덮어주었다. 집에 도착하는 동안 그녀는 말 한마디 없었다.



간만에 온 집은 사건이 있기전과 똑같았다. 나는 그녀의 손에 이끌려 그녀에게 씻겨지고 그녀가 끌고간 부엌에서 그녀가 차린 밥을 먹고 그녀가 해주는 양치에 그녀가 끌고간 침대에서 그녀를 안은채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일어나 보니 침실엔 나 혼자 뿐이었다.




내 앞엔 초커가 있었다. 반 강제적으로 만남을 시작했을때 넌 내 노예라며 걸고 다니게한 초커, 난 네 노예가 아니라며 쓰지 않겠다고 거부한 후 본적이 없던 초커가.



'저걸 쓰면 노예가 되는것이다' 라는 그녀의 암시, 그리고 나는 천천히 초커를 목에 걸어 잠궜다.



너무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