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순씨 네 집은 굉장히 넓다. 며칠 전만해도 작은 자취방에 생활하던 시절보다 몇 배는 넓어서 굉장히 편안하다. 


하염없이 시간만 축내던 때와 다르게 모든게 새롭다. 나와 부부사이라고 말하는 얀순씨와 묘한 동거생활를 보낸디도 두 달 가까이 되어간다.


익숙하다고 할수 있지만 적응됐다기엔 짧은 그래서 아침에 기운 없는 몸을 이끌고 일어났다. 얀순씨와는 당연히 각방을 쓰고 지내고 있다.


우후훗 야한 일이라••• 생각이 안든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조심해야한다는 마음으로 가급적 정신 차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아침에 일어나는 이유는 아침을 차리기 위해서다. 얀순씨가 회사로 나가니 진짜 엠생 백수는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얀순씨에게 얘기를 미리 했다.


얀순씨는 아이 그럴필요 없다며 늙을 때와 달리 몸이 건강해서 회사일이 쉽다며 내가 이유를 얘기하면 자꾸 괜찮다 괜찮다 라고 말하기에 조금은 기대볼까••• 생각했지만 밥을 차리고 깨우지 않으면 얀순씨는 회사에 지각할게 뻔했다.


이게 그건가, 미인이라 잠이 많다는게 정말인가. 같이 아침에 나도 그냥 냉장고 있던 반찬들에 가볍게 만든 국으로 같이 식사를 하곤 얀순씨 보고 잘 갔다오라 안부인사를 건넸다.


나에게 벌어진 일들이 소설로 찾아보면 있지 않을까 싶어 둘러봐도 너무 참신하다 못해 그냥 딴 세상이야기만 적혀있어서 참고하긴 어렵곤 끝까지 다 읽으며 시간을 죽였다.


밤이 다 될 무렵에 얀순씨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소설을 보고 난 뒤라 과거의 내가 얀순씨의 추억이 담긴 사진들을 보고 여전히 기억이 안나는 얘기를 조질 조잘 떠들길래 경청했다.


어렵게 만나 결혼을 해서 그런지 굉장히 길다. 이렇게 듣고나면 뭔가 좀 기억이 나야할 듯 싶은데.


듣는 사람이 막연하게 느껴지면 큰 감흥이 없나보다. 그래서 얀순씨에게 차라리 저도 회사일을 하는게 낫지 않을까 얘기를 전했더니 그럴거면 맨 아래에서 시작해야 한다며 고생하는 것 보단 자기가 먹여살리는게 낫다는 소리를 내게 했다.


날 도와주는 심정에 대답했겠지만 그건 지금의 나를 철처히 무시하는 말이다. 난 기억을 잃기 전 과거의 내가 아니다. 지금은 별개의 존재로 봐줘야 하느거 아닌가.


' 상당히 화가 나지만, 음 뭐 날 먹여살리던 분인데. 한 달이 넘도록 신세도 졌으니 여기선 내가 이해하고 넘어가는게 맞다. '


" 얀순씨 잠깐 생각해봐요. 저도 원해서 밥만 축내며 살순 없잔아요. 저도 이렇게 젊은데. 일 하면서 밥값은 하면서 살고 싶어요. "


" 얀붕씨 이해는 하지만 기억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갑작스레 제가 다니는 회사에서 근무하긴 어렵다니까요. "


" 그럼 아르바이트라도 하면서 지낼게요. 뭐 굳이 회사가 아니여도 되니까. "


" 얀붕씨 힘들게 일 하지말고 이 집에서 편히 쉬어요. 신세지는게 아니라 얀붕씨 기억 잃기전에 고생 하며 살았으니까. 그저 이렇게 지내요. 네? 부탁할게요. "


" 가볍게 할 수 있는 일이라도 하고 싶어요. 남자가 하루종일 집에만 있으니 할거리가 있어야죠. 게임이라도 손대면 이 생활을 못 벗어날까봐 두렵기도 하고요. "


얀순씨는 나를 쳐다보다가 음••• 소리에 잠깐 정적이 흐르곤 생각을 갖더니 이내 한숨을 쉬었다. 차라리 눈에 띄는 곳에서 일 하는게 낫다며 경리직원이라도 꽂아드릴테니 일 하라며 마지못해 대답했다.


내가 일을 하는게 진짜 그리고 싫나. 약간 기분이 좋아지면서도 꼭 과거의 나에게 밀리는 묘한 기분이 싫다.


삼일이 지난 난 여전히 아침에 약한 듯 싶다. 매일 아침 차리려고 일어나면 기운이 없다. 갑자기 회사가기가 싫다. 그렇다고 관두자니 얀순씨에게 전부 의지할것 만 같아서 싫다.


아침을 먹고 가볍게 몸단장을 하곤 얀순씨의 차에 올라타 바깥 구경을 하며 회사에 도착할 때까지 얀순씨와 회사에 궁금한걸 물어보며 시간을 보냈다.


얀붕씨가 어려운 일 하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며 나에게 얘기했지만 나도 회사에 열심히 하려면 조금씩 맡아서 해야겠다.라는 청개구리 심보가 생겨난다.


경비원을 지나 굉장히 커보이는 회사 건물이 보인다. 진짜크다. 이게 얀순씨가 다니는 회사란 말인가. 얀순씨는 공적으로 이사에 임하고 있으니 평상시엔 직급을 생각해 불러달라 부탁했다. 아무렴 내가 바보도 아니고 그정돈 할 수 있다고 대답했지만서도.


건물 내부로 들어서니 여기 경리라도 된게 마냥 자랑스럽다. 대기업에 취직하면 반쯤 성공한게 아닐까. 낙하산이 진짜 좋긴하구나 생각이 든다.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처음 보는 나를 보며 떠드는 것 같았다.


얀순씨는 3층 사무실로 보이는 곳 구석진 자리에 나를 앉혀놓곤 잠깐 자리를 비우더니 곧 단정하게 꾸민 남성과 같이 들어왔다.


" 반갑습니다. 경리 1팀 팀장을 맡고있는 나팀장이라고 합니다. 같이 고생할 사이인데 잘 지내보죠. "


나는 저도 잘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리곤 얀순씨에게 일 보시는게 좋을 것 같다며 축객령을 보냈다. 얀순씨도 방긋 웃으며 그럼 고생하라며 자리를 떠났다.


얀순씨가 떠나자 나팀장님은 나에게 간단한 업무들 위주로 날 교육했다. 가장 필요한 것들 위주로 적혀진 책을 주곤 암기하라며 두꺼워 보이는••• 조금 싫지만 필요한 일이거니 생각하며 교육에 임했다.


조금 뒤엔 맞선임이라고 굉장히 이뻐보이는 미인이 모르는게 있으면 나에게 얘기하라며 말을 건넸다.


민얀희씨라고 소개하곤 보이는 것과 달리 재치있는 설명으로 업무들을 소개해줬다. 그렇게 점심에도 같이 먹자며 얘기를 건넸고 나는 초면에 이래도 되나 싶어서 내일 같이 먹자고 대답했다.


아무렴 이 자리에 꽂아준 얀순씨에겐 감사인사라도 하는게 맞다 싶어서 얀순씨에게 점심 같이 먹자고 메세지를 보냈다.


좀 지나니 지금은 바깥에서 일을 본다며 다음에 먹자고 대답이 왔다. 아 내가 생각이 짧았다. 차라리 얀희씨가 제안할 때 같이 먹을 걸.


짧은 한탄이 오간다. 멍청하면 몸이 고생한다.


점심을 모르는 사람들 주위에서 혼자 먹었다. 참으로 쓸쓸하다. 이게 사내 외톨이의 삶인가.


그나마 얼굴 도장이 찍힌 얀희씨가 대각선 자리에 앉아 식사라도 하니 약간이지만 덜 외로웠다. 


' 고맙습니다 얀희씨. '


그 뒤엔 약간 친해진 기분이 든 얀희씨와 하하호호 떠들어가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밤이 다 될 무렵에 얀순씨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며 오늘 고생많았다며 서로 위로 가득한 멘트를 오고갔다.


그저 엄마 같은 얀순씨 곁에서 하하호호 웃어가며 기억을 새로 쌓는 것도 퍽 즐겁겠다 싶지만 경험하지 못했던 회사생활도 오늘 지내보니 즐거울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 경리에 직원으로 꽂아준거 정말 감사해요 얀순씨. "


" 에이 별거아니에요. 오늘 회사 다녀보니 어땠어요? "


" 선임이 잘 가르쳐주니 회사는 그럭저럭 지낼만 하더라구요. "


" 물론, 얀순씨가 곁에서 일을 알려줬으면 좋았겠지만 바쁘시니••• 좀 아쉽구요. "


" 아••• 뭐 그렇죠. 저도 직급이 있으니 매번 회사에만 있을 순 없으니까요. 시간이 나면 사내식당에서 같이 밥이라도 먹어요. 얀붕씨가 일하면서 생기는 얘기도 듣고 싶구요. "


잠깐 숨을 고르더니 얀순씨가 말을 이어붙였다.


" 얀붕씨가 기억을 되찾으면 다시 부부처럼 지내야하니까. 차츰 차츰 회사일을 하다 보면 떠오르지 않을까 싶어요. "


얀순씨도 걱정을 떨쳐낼 순 없었나보다. 그저 막연하게 생각하지만 물가에 아이 내보내는 기분이겠지. 부부처럼 지내왔다지만.


그렇게 말하며 얀순씨는 내 허벅지 위에 손을 올리더니 만지작 만지작 거렸다.


저기••• 라고 말하며 얀순씨를 바라보니 이내 손을 털어냈다.


얀순씨는 부부생활이라도 하면 뭔가 나아지지 않을까요 라며 나에게 말을 건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에겐 사실상 성희롱이다. 물론 미인이 하는 성희롱은 기분이 좋으니 참을 수 있다. 후우••• 잘생긴 내가 참아야한다.


나는 아무리 그래도 저에겐 성희롱처럼 들리니 참아주세요. 라고 대답했다.




며칠동안 회사를 다녀보니 맞선임인 얀희씨랑 부쩍 친해진 것 같았다. 얀순씨가 회사 일에 바쁘게 보내니 말을 터놓고 얘기할 사람이 나팀장님 외엔 얀희씨 밖에 없다보니 사적인 대화가 자주 오고갔다.


묘한 감정을 느끼는 것 같다. 얀순씨는 묘하게 엄마처럼 느껴져서 그런 것 같다. 나에겐 첫 사랑일지 모르는 이 감정이 조금은 알고싶어진다.


" 얀희씨, 이건 어떻게 하는거에요? "


얀희씨는 참 친절하다. 부쩍 가까워져서 그런지 내가 이것 저것 물어보면 장난을 친다. 서로 킥킥 거리며 말랑말랑한 기분이 느껴진다.


물론 일은 봐야지. 얀순씨에게 감사하니까. 근데 나 기억을 되찾을 순 있을까.


어느 덧 세달 가까이 흘러가는 시점에선 기억에 손을 놓았다. 얀순씨는 그저 내 뒷바라지를 하니 엄마같은 누나로 느껴진다.


뭐 실제론 나 보단 나이가 많으니 누나가 맞지. 기억은 없지만 사랑을 논할땐 누나 누나 거렸으리라.



물론 지금은 얀희씨가 좋다. 얀순씨를 생각해 얀희씨에 대해 자세히 얘기를 피했지만 기억을 잃은 지금 얀순씨가 기억하는 난 별개의 사람으로 보았으면 싶다.


이기적이지만 떠오르지 않으니 묘하게 사랑의 초침반이 흔들린다.


오늘도 얀희씨랑 말장난하면서 일을 보니 즐겁다.


요즘들어 내가 기가 허해졌나 싶어. 영양제도 꼬박 꼬박 먹었다. 몸이 축날 정도로 안먹진 않았는데. 이상하게 기운이 없어서 챙기게 되었다.


딱 이렇게만 지내고 싶다. 이 생활


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그리워하며.


눈을 떠보니 영문 모를 곳에서 일어나 모두의 걱정을 사던 사건이 일어 난 후 내 생활이 급격히 안좋게 됐을 무렵이 찾아 온 뒤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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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밥은 다 뿌렸으니 다음 편부턴 집착 순애를 써야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