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으세요?..."




"으윽....흑...."




죽을 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정신병에 걸린 것도 아닐 것이다.

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놓였다.

여자와 접촉하는 순간 원인 불명의 고통이 찾아온다.

처음엔 우연이겠거니 했지만, 이런 일을 반복해서 겪다보면 어떤 조건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있었고,

의도까지도 추론할 수 있었다.

그 년이다.




"괜찮...으니까. 가까이 오지 마세요...."




"아....네...."




혹여나 저 여자가 걱정된답시고 붙으면 더 아파오는데, 다행히도 바쁜 사람이었는지 제 갈 길을 간다.

통증이 멎고 흐르는 땀을 닦았다.

호흡을 고르고, 절대 실수로라도 부딪히는 일이 없도록 신경써서 걷는다.

걸으면서도 계속 되뇌인다. 계속. 계속.

내가 왜 그랬을까.

내가 왜 그랬을까.

나한테 왜....




-




전쟁 통에, 마을을 습격한 마족들이 있었다.

사람과 비교되지 않는 힘, 오랜 수련을 거친 마법사가 아니라면 넘볼 수 없는 마력.

공포에 떨고 있는 마을 사람들은 그대로 항복했고, 아무 피해 없이 그것들은 마을을 점령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식량을 빼앗고, 저항하면 위협하거나 죽였다.

우리는 나약했으니, 그것들에게 복종했다.

신기한 것은 마족들에 대한 우리의 통념과는 다르게 그것들은 재미로 사람을 죽이진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그것들의 우두머리는 마을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처음 마을을 점령할 때 외에는 얼굴을 본 기억이 없다.

나머지 마족들도 행패를 부렸지만 시키는 대로 하면 목숨은 건졌으니까, 그렇기에 모두가 저항 의지를 상실했다.




시간이 지나 인간 세력이 마족 세력을 밀어붙이게 되고, 빼앗겼던 영토를 수복하는 과정에서 기사단이 마을로 넘어왔다.

우리는 기사단의 통제 하에 빠르게 마을을 등지고 안전한 곳으로 도망쳤다.

마족들과 기사단이 오랜 기간 대치하였고, 대부분의 정예기사가 죽은 등 피해가 막심했지만 결국 기사단이 승리했다.

사람들은 마족들이 점거하고 있던 집을 돌려받았고, 부서진 건 고치고...

내 집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렇기에 기사단이 수색하지 않았나보다.

어린 여자아이...마족이 있었다.




전쟁은 길었다. 이미 내 고향은 불타버린지 오래고, 부모님과 여동생은 소식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돈을 벌려고 고향을 떠나있었고, 그렇기에 죽지 않을 수 있었다. 그 소식을 들었지만 나는 슬퍼할 시간이 없었다.

살려면 마족이 아직 쳐들어오지 않은 곳으로 도망쳐야했고, 몇 년간 피난길을 거치다보니 어느새 무덤덤해졌다.

하지만 마족에 대한 증오심은 어디로 간 적이 없었다. 나는 곧바로 웅크리고 있는 마족을 죽이기 위해 창을 들었고,

마족이 나를 눈치채고 돌아본 순간 창을 내려놓을 수 밖에 없었다.

고향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여동생이, 지금 보고 있는 저 어린 마족과 또래였을테니까.




-




나는 가족을 잃었다. 그리고 저 마족도 마찬가지다.

기사단과 제 부모가 싸우는 동안 힘 없는 어린 마족은 도망쳐 웅크려 있었다.

길을 모르는 사람은 찾아내기 힘든 외진 곳이었으니 이렇게 웅크려 살 수 있었겠지.

하필이면 여동생과 비슷한 나이였던 탓에, 그리고 정말 힘 없는 아이의 눈을 하고 있는 까닭에 나는 저 마족을 죽이지 못했다.




마족을 키운다는 정신나간 행동을 내가 하게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지만, 아직 피를 묻히지 않은 어린 나이이다.

내가 교육하고, 사람과 어울려서 살게 한다면, 틀림없이 사람으로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었다. 오만하게도.




서큐버스. 인간과 비슷한 외모, 인간과 비슷한 지성을 가진 강력하고 까다로운 마족이다.

물론 그건 오랜 기간 인간의 정기를 빨아먹으며 수련한 경우에나 해당되는 것이었다.

마력도 육체도 영글지 못해 내가 쉬이 제압할 수 있었고, 나는 찾지 못한 여동생, 혹은 딸을 키우는 느낌으로 그 아이를 돌봤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 마족 특유의 외형을 감출 수 있게 되었고, 마을 사람들에겐 여동생이라 둘러대었다.

나탈리아라는 이름도 붙여줬고, 날개나 뿔 등은 감추었어도 서큐버스 특유의 미모 덕에 인기가 많았다.

영특하기도 해서 마을 어른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고 또래 남자아이들은 나탈리아를 쫓아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평화롭게....살 수 있을 줄 알았다.




나는 나탈리아에게서 여동생을 겹쳐보았지만, 나탈리아는 당연히 내 여동생이 아니었다.

나를 비롯한 우리 가족은 키가 평범했지만, 나탈리아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다.

시간이 지나 나탈리아의 머리 높이는 나와 비슷해졌지만, 나탈리아의 몸은 아직도 성인의 특징을 찾아볼 수 없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나보다 키가 커질 것이다. 그리고 또래에 비해 키가 커서 딱히 의심을 받진 않았지만,

나탈리아는 또래 아이들과 차원이 다른 힘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사람처럼 키워놨어도 근본부터 다르다는 것일까.

내가 끙끙대며 드는 물건을 나탈리아는 아무렇지도 않게 한 손으로 든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나는 나탈리아에게 양면적인 감정을 품고 말았다.

내 가족을 앗아간, 마족에 대한 증오심이 이제 나탈리아를 볼 때 조금씩 나타나고 있었다.

하지만 내 감정과는 별개로 나탈리아는 나를 잘 따랐고, 사고도 치지 않으며 순수한 아이로 자라주었다.

다시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이젠 잘 기억나지도 않는 부모님과 여동생의 얼굴이 나타났고,

가족의 원수를 키우고 있다며 내게 분노와 저주를 쏟아낸다.


당장 죽여.


당장 죽여.


당장...




이대론 안 된다.

나는 마족을 증오하지만, 나탈리아는 증오할 수 없다.

나탈리아를 내보낼까, 내가 나갈까

하루에도 몇번씩 고민했을 때, 누군가가 찾아왔다.




"아가씨...! 너무 늦게 찾아낸 저의 죄를 용서하십시오! 모실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네?"




느닷없이 찾아온 방문객은 마족이었다.

평범한 사람인 나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오래되고, 강력한 마족일 것이다.

마족에 대한 증오심보다도 살고 싶었던 마음이 먼저였을까,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이런 곳에서 지내셨습니까...상처도 없고, 다행히도 험하게 지내진 않으신 모양입니다."




"네? 저는 당신 몰라요!"




주저앉아버린 나와는 다르게 나탈리아는 당황한 기색만 역력했지 공포심이라곤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저 강력한 마족의 깍듯한 태도를 볼때 나탈리아는 고위 마족인 것 같다.




"...아가씨. 이것을 받아주십시오."




늙은 마족은 손을 내밀어 나탈리아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나탈리아는 반신반의하면서도 그것에 손을 대었는데, 그 순간 나탈리아의 몸으로 그것이 빨려들어갔다.




"어...어라?"




나탈리아의 반응을 보자 이해했다. 저건 정기다.

사람과 섞여살았기에 서큐버스로서의 정체성이 희미하던 나탈리아는 정기 흡수를 해본 적이 없었다.

아마도...지금 힘이 넘치고 있는 게 아닐까?




"우웩!!!!웩!!!!"




"...아가씨?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이게 뭐야...찝찝해...더러워!"




난리를 피우는 나탈리아. 저 마족의 반응으로 보건데 정기를 건네준 건 맞는 모양이다.

그런데 나탈리아의 반응이 이상하다. 서큐버스는 정기가 없으면 빌빌거린다고 들었는데, 어째서...




"거기 인간놈. 무슨 짓을 한거냐? 아니...너도 모르는 모양이군."




"하아....하아...."




정기를 흡수했음에도 오히려 힘들어하는 나탈리아. 여태까지 사람의 모습으로 다녔지만 힘들어서인지 본모습이 드러났다.

인간에겐 없는 날개와 뿔, 꼬리....아무리 사람처럼 키워도, 그 본질은 역시....




"아가씨...일단 저를 따라오십시오. 여태까지 인간의 손에 자라셨기에 익숙하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아...."




"인간, 아가씨를 여태까지 보살폈으니 죽이진 않겠다. 오늘 본 건 계속 입 다물고 살아라."




"오빠는...안 가는 건가요?"




"말씀 낮추십시오 아가씨. 정이 드신 것은 이해하지만 고작 인간에게..."




"...가."




"오빠...?"




"가. 가버려. 앞으로 오지 말고."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나탈리아는 내가 애지중지 업어키운 아이지만, 마족이다.

저 마족은 나탈리아를 모시는 것 같고, 아마 이 곳에서 지내는 것보다 대접받으며 잘 살수 있겠지.

언제까지 마을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나 스스로를 세뇌하며 살 것인가.




"...오빠, 우리가 그런..."




"꺼져! 꺼지란 말이야!!!"




"인간. 무례는 딱 거기까지 눈 감아주겠다. 또 아가씨께 무례를 저질렀다간..."




"..."




한심하다. 한심하다.

내 가족을 앗아간 마족을 죽이고 싶은 마음보다, 저 마족에게 죽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크다니.

나탈리아는 정작 아무런 잘못이 없지만, 나는 나탈리아에게 화풀이나 했다.




"가면...어떻게 되는거죠?"




"선친께서 다스리던 영토와 지위를 물려받으실 겁니다. 저의 능력 부족으로 이런 돼지우리같은 곳에서 살게 해드린 점 죄송합니다."




"안 갈 거에요."




"예? 아가씨..."




"오빠를 놔두곤 안 갈거야."




"...인간의 세뇌에 단단히 물드셨군요. 이 또한 저의 책임...좋지 못한 꼴을 보여드려서 죄송합니다."




마족이 순식간에 나한테 날아든다. 이대로 죽는 건가...싶었을 때,

나탈리아가 마족의 팔을 잡았다.




"오빠를 죽이려고?"




"인간을 지키시는 겁니까? 아가씨! 그러시면 안 되는...으윽!!"




저 가녀린 몸에서 어떻게 저런 힘이 나오는 걸까.

저 마족이 휘두른 팔을 맞았으면 나는 분명히 죽었겠지.

하지만 나탈리아는 저 마족의 팔을 잡은 것도 모자라, 구겨버리고 있었다.




"...아직 난 여기서 할 일이 있어. 나중에 갈 테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




나탈리아가 마족의 귀에 무언가를 속삭이더니, 마족은 돌아갔다.

팔이 구겨진 채로도, 원망같은 감정은 찾아볼 수 없는 눈빛이었다.

오히려 기뻐보이는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겠다는 말을 남기며 사라졌다.




-




그 날 이후로 나는 나탈리아와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탈리아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내 눈에는 괴물만이 비쳤다.

아름답고 가녀린 소녀의 모습이지만, 저 가녀린 팔로 나를 죽이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오빠. 나는..."




나탈리아가 말을 걸어와도 할 말이 없어 눈을 피하고, 자리를 벗어났다.

언제까지고 이러고 살 수는 없는 노릇...

이미 그 날 우리는 끝난 것이다.




"나탈리아."




"어...어! 오빠!"




"가."




"응...?"




"네 집은, 여기가 아니잖아."




"그게 무슨...."




"이렇게 있다간, 우리 둘 중 하나는 죽을 거야.


내가 너를 미워하기 전에, 차라리 나가.


나가서 돌아오지 마. 너의 동족들과 살아."




"어떻게 그럴수가 있어? 우리가 여태까지 얼마나..."




"나탈리아."




"...응."




"난, 그때 너를 살린 것을...후회하고 있어."




"...."




나탈리아는 충격을 받았는지 잠깐 멍을 때리더니, 집에서 나가버렸다.

시간이 지나 나탈리아의 안부를 묻는 사람이 생겼다.

외국 남자랑 눈 맞아서 집 나갔다고 둘러댔다.

동네 남자애들은 충격받은 표정을, 어른들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는 빈 자리가 그다지 쓸쓸하지 않았다.




-




일 년이 지났을 무렵, 마을 어른들이 내게 혼담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나탈리아 덕이었을까, 원래는 별 왕래도 없었던 분들도 나를 좋게 봐주신 탓에 혼담을 주선해주시려고 한다.

그렇게 살다가 노총각되는 건 순식간이라나. 아무리 잘생겨봤자 나이 먹으면 여자가 도망간다고 한다.

가족도 없고, 나탈리아도 나가서 내가 외롭게 사는 것처럼 보였을까...

천천히 길을 걸으며 생각해보니, 요즘 삶의 목적이 없는 채로 살아온 것 같다.

가족을 위해, 나탈리아를 위해 돈을 벌었지만 이젠 그럴 이유가 없어졌으니까.

혼담을 수락했다.




혼담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왔고, 다행히 여유가 있던 탓에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돈이 많은 여성, 똑똑했던 여성, 아름다웠던 여성 등 매력적인 분들은 많았다.

그 중에서도 성격이 착하시고 잘 맞았던 여성분과 지속적인 만남을 가질까 했다.

그 여성분과의 혼담을 주선해주신 마을 어른께 감사 인사를 드리러 갔는데...




"오! 이제야 왔구만. 내 친구 딸 어때? 참하지?"




"아 네. 성격도 참 잘 맞고 마음에 들었습니다. 좋은 분입니다. 다음에 또 보기로 했습니다."




"그래그래 잘 되었구만. 지금은 늦었으니까 다음에 여동생하고 이야기하자고."




"네? 여동생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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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부분까지 다 써놨는데 단편으로 올리려다 너무 길어서 3개로 끊었어.

내용 읽어보면서 좀 안 어색하게 수정해보려고 하는데, 내가 뭐 글솜씨가 좋진 않아서...

수정을 했어도 읽기에 좀 어색하거나 괴로운 부분이 있을 거임...그래도 부족한 글 읽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