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https://arca.live/b/yandere/8821273?mode=best&p=1 




이렇게 얀붕이의 자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옛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 어리고 순수했던 시절에, 얀붕이와 거리를 거닐기만 해도 그저 행복했던, 그 시절을 나는 잊어버릴 수 없다. 얀붕이는 잊어버린 것 같지만. 나는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원했던 그 시절을, 그 년이 송두리째 훔쳐간 그 시절을. 나만이 간직하고 있는, 그 시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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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어느 날이었다. 풀내음이 가득하고 매미가 울어대는, 해가 미친듯이 이글거리는 그런 여름이었다. 나는 숨막히는 집에서 뛰쳐나와 공터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세상은 왜 돌아가는 걸까. 사람들은 어째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걸까. 나는 왜 행복할 수 없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무도 없는 공터의 녹슨 그네에 앉아 있었다. 그네는 삐걱거리며 그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알려주는 듯 했다. 너도 나와 같구나. 사랑받지 못하고, 그저 녹슬어 버려져, 멀리의 따뜻한 광경을 쳐다볼 수밖에 없는, 그런 가여운 존재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던 찰나, 어디선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퍽"


"...어! 아! 큰일났다! 도망가!"


"야! 너네 어디 가는거야!"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시야는 희뿌얘졌다. 몇 초 뒤,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ㄱ...괜찮아?"


시야에 보이는 것은 짧은 검은 머리에 빨려들어갈듯한 새까만 눈동자를 하고 있는 남자아이였다. 어쩐지 안절부절 못하고 약간 울먹거리는 표정이 되어 있었다. 나는 이 아이는 어째서 이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너는 왜 떨고 있는거야?"


"그...그게.. 저기... 죄송합니다. 공을 잘못 차서 날려버렸어요."


아, 방금 전의 충격은 이 애가 찬 공 때문이었나. 살다보면 뭐 그런 일도 있는 거지. 애당초 나는 누군가에게 걱정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다. 어느 누가 버려진 공터의 녹슨 그네에게 염려를 보내는 사람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 이 애는 아직 순수해서 그런 걸 모르는 걸까. 굳이 나 같은 사람에게 걱정 따위 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에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건네려는 순간...


"...악! 피가 나잖아! 진짜 죄송해요! 바로 치료를!"


"에?"


"제 등에 업히세요! 빨리!"


나는 당황해서 그의 말을 무심코 따라버렸다. 그는 피를 흘리는 나를 업고 자기 집으로 갔다. 굳이 업어줄 필요까진 없는데, 하며 그의 집에 도착했다. 그의 어머니 또한 적잖이 당황한 표정을 보이더니 순간 분노로 바뀌었다가 이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아... 얀붕, 죄는 이따가 물을 테니 일단은 그 여자애 먼저 치료해 줘."


"알겠어... 고마워!"


그는 그렇게 말하곤 급히 서랍장을 뒤지더니 구급상자를 꺼내들었다. 그는 상처를 빠르게 소독하고 정성스런 손길로 반창고를 붙여주었다. 내 얼굴을 진지한 표정으로 쳐다보며 세심하게 상처를 다루는 그 모습에 무심코 웃음이 나올 뻔 했다. 정말 신기한 아이네, 하고 문득 생각해버렸다. 대수술이 끝난 후에, 나는 슬슬 늦은 시간이라 집에 가보겠다는 말을 전하려고 했다. 그러자 그 애가 막아서며 말했다.


"피까지 흘리게 만들었는데 여기서 돌아가게 하면 내가 너무 미안해! 적어도 밥이라도 대접하게 해줘!"


나는 너무나 진지한 그의 모습에 그만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그는 웃는 나를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곤 말했다.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


"아니... 그냥 네가 너무 웃겨서."


"그래? 고마워!"


그는 탁함 한 방울도 없는 맑고 깊은 새까만 눈으로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고서 그는 바로 밥을 준비하겠다며 주방으로 갔다. 나도 늦을 것 같아서 집에 전화를 하기로 했다. 조금은 떨리는 마음이었지만 역시나 그 사람들은 아무 감정 없이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고 할 뿐이었다.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이럴 때는 도움이 되구나, 하고 잠시 생각해버렸다. 그렇게 전화를 하고 집을 구경하며 있자니 밥이 다 되었다고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향기로운 냄새가 났다. 요리에 꽤나 자신이 있는 걸까. 혹시 사과는 명분이고 음식을 먹여보고 싶었던 것 뿐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을 하며 식탁으로 발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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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ㅅ 하편은 내일 올리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