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자. 그런데 어디로? 그리고 도망치고 거기서 묵을 경비는 얼마나 더 필요할까?

이 동네에서 어디로 가면 지하철이 있고, 버스 정류장이 있는지 알고 무작정 옷을 갈아입고 집 바깥으로 나간다고?


만약에 붙잡히면 뒷수습은 어떻게 하지? 예진이 어떤 식으로 내게 나올지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다.

영상 속의 내가 당한 것처럼 지하실에 갇혀 괴롭힘을 받는 그런 인생은 죽어도 살기 싫다.


보고 있던 노트북을 챙겨서 방문 바깥으로 나섰다. 여전히 조용한 집 안. 다시 다용도실에 노트북을 가져다 놓는다.


아니 일단 만약에 정말 만약에 혹시나 예진이 다용도실에 둔 노트북이 자기 집무실에 있다거나, 아니면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상황이 더 안 좋게 흘러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수준의 동영상이 다른데 유포되면 나는 물론이고 예진 역시 인생이 나락으로 빠지기 때문이다.


서울에 단독 주택을 마련한 금수저가 집 지하실에 사람을 한 명 가두고 지속적인 구타, 폭행, 감금한다는 사실이 뉴스에 퍼지면 나는 물론이고 예진 역시 상황이 곤란하게 흘러가는 건 마찬가지다.


그리고…. 거기다 플러스알파로 내가 노트북을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거기서 상황은 어떻게 더 흘러갈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반기를 들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얼마 전까지 지하실에 갇혀있던 장난감이 자신을 괴롭힌 동영상이 저장된 노트북을 들고 집무실에서 뭔가 무언가 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언론사에 동영상 파일을 보냈다거나, 아니면…. 뭐 유튜브 같은데 유포를 했다거나 하는 그런 작업을 했다-라고 생각할 게 분명했다.


아니, 뭐 상식적으로 저 역시 제가 여기서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내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 동영상을 봤습니다. 그런 상식 밖의 변명이 통할 리가 없었다.


노트북으로 뭐한 거야?


어두컴컴한 지하실 아래에 나를 가둬놓은 다음 대충 그런 질문을 계속하겠지. 나는 솔직하게 말해보지만, 예진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질문에 눈썹을 찌푸리며 다시 내게 질문을 하고


나는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나를 가둬놓는 예진의 심문에 지쳐 결국에는 거짓 자백을 하는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리고 시발, 나는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처럼 거짓 누명을 뒤집어쓴 체로 30년 동안 지하실에 갇혀있겠지, 아니 30년이 뭐냐 죽을 때까지 지하실 바깥으로 빠져나오지 못할 게 분명했다.


왜냐하면, 이 집의 지하실에는 내 탈출을 도와줄 리타 헤이워드도 없고, 나는 회계사도 아니고, 10년마다 있는 가석방 심의도 없다.


...물론 그때가 오기 전에 혀를 깨물고 자살해, 회귀하겠지만.

음... 일단 사람이 혀를 깨물어서 자살할 수 있는지는 생각을 다시 해보자. 


제자리에 노트북을 돌려놓는다. 그리고 문을 닫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옷장을 열고 외출복으로 갈아입는다. 겁나 핑크 핑크 한 방 인테리어와는 달리 옷장에 들어있는 옷은 남녀가 모두 입을 수 있는 평범한 옷들이 가득했다.


청바지와 후드티를 입고 지갑을 챙긴다. 지갑에는 10만 원 정도의 현금이 들어있었다.


10만원은 대한민국 어디로든 갈수 있는 돈이지.


폭력과 능욕으로 점철된 삶에서 벗어나 이제는 오로지 나만을 위해 살겠다.


챙길 물건들을 다 챙긴 후에 빠르게 1층으로 내려간다. 여전히 조용한 집안. 

여전히 예진은 자는 것 같았다. 거실의 탁 트인 창문으로 바깥을 바라보니, 정원사는 나무를 손질하고 있었다.


내가 해도 저것보다는 잘하겠네.


진짜 조경의 ㅈ자도 모르는 내가 나무를 손질한다고 해도 저것보다는 잘할 자신이 있었지만,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정원사는 멀쩡한 나뭇가지를 그냥 커다란 정원용 가위로 자르는 정원사, 그리고 어린애 팔뚝만 한 나뭇가지를 자른 후에 그것을 손으로 잡는 정원사.


등을 돌린 뒤 정원을 손질하고 있던 그녀는 천천히 나무를 자신의 아가리에 집어넣고 있는 것 같았다.

입을 열어 그것을 씹어먹기 시작했다.


우적우적- 


사람의 혓바닥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기다란 혓바닥이 어린애 팔뚝만 한 나뭇가지를 한 바퀴 감은 체 천천히 자신의 머리 쪽으로 끌어당기는 모습을 나는 보고 말았다.


..아무리 봐도 도저히 내가 가지고 있는 상식과는 맞지 않는 비현실적인 광경,


집을 빠져나가다 말고 정원사의 나뭇가지 먹방쇼를 뒤에서 쳐다보았다. 말도 안 되는 모습에 잠시 나는 도망치는 것도 잊어버린체 눈을 비볐지만, 변하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저.. 저놈 당최.. 이 무슨...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나뭇가지를 먹는 사람이 있다??!

무슨 17년간 나무를 먹은 달인 육식 김병만 선생이라도 되는걸까?? 


할짝...


그때 내 시선을 눈치채기라도 한 것일까? 나뭇가지를 먹다 말고 정원사가 뒤로 돌아 나를 바라보았다.

아직 그녀의 입에는 먹다 남은 나뭇가지가 물려있는 상황.


우리 둘의 시선이 마주치고 말았다. 무거운 침묵이 우리 둘을 강하게 짓눌렀다.


숨 막힐 것 같은 어색함, 야동을 보다가 갑자기 내 방에 들어온 엄마를 만났을 때보다 더 어색한 순간이 내게 찾아온 것이다.


아니 시발, 차라리 딸딸이를 치다 걸린 거는 그냥 또래 남자애들이라면 흔하게 있을 법한 해프닝이기라도 하지, 이거는 시발…. 진기명기에나 나올법한 그런 상황이지 않은가….


아...


마치 카멜레온이나 개구리가 기다란 혓바닥으로 파리를 낚아채 잡아먹는 것처럼 기다란 혓바닥으로 반쯤 먹은 나뭇가지를 감아서 입안에 밀어 넣기 시작하는 정원사.


정원사는 반드시 숨겨야 할 사실을 들켜버린 사람처럼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기 시작했고, 천천히 앉은 사다리에서 벗어나 거실 창문 쪽으로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는 커다란 정원용 가위를 들어서….


"아..아름아? 어딨니? 아름아!!!!"


"끼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쾅!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열린 방문! 그리고 그 문을 열고 예진이 소리를 치기 시작한다.


무거운 침묵을 찢어발기는 그녀의 다급한 목소리에 참을 수 없는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한다!!!

예상치 못한 불청객의 등장에 다급하게 몸을 돌려 정원용 가위로 나무를 자르는 시늉을 하는 정원사.


"....? 어딜 가려고 이렇게 옷을 차려입은 거야..?"


"어... 저기 그러니까? 그게 음... 그러니까..."


"혹시? 이 집에서 나가고 싶은거니? 어디로 가게?"


예진이 내 어깨 위에 손을 얹은 게 느껴졌다. 아까 정원사와 불편한 대치를 하고 있던 그 어색함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어색한 기류가 우리 둘을 뒤덮는다.


굳이 표현하자면 슈퍼울트라아쿼니스(어색함)가 되겠다. 


"대체 어디로 나가고 싶어서 이렇게 옷을 갈아입은 거니..? 혹시... 정원 때문에 그런 거야..? 확실히…. 저건 좀 개판이군…."


"....맞아요, 저것 좀 보세요. 어떻게 나무를 저렇게 마구잡이로 손질할 수 있는 건지…. 아무리 그래도 저거는 좀 아닌 것 같아요"


"원래 저런 식으로 나무를 자르는 게 맞는 것인지.. 한번 물어봐야겠네


아다리가 잘 맞아도 이렇게 잘 맞을 수는 없었다.


내가 옷을 갈아입은 이유를 정원사에게 따지기 위해 정원으로 나갈 채비를 한 것으로 오해한듯한 예진

..... 뭐가 됐든 간에 그냥 이 집에서 도망치려다가 들켰다는 말보다는 나을 것 같아, 대충 그런 식으로 둘러댔다.


"아예 절단을 내놨군, 이래서 아웃소싱은.."


잠옷 차림으로 신발장에 있는 슬리퍼를 신고 현관문을 여는 예진, 그리고 나도 그녀의 뒤를 쫒아 정원으로 갔다.


"저기요, 사장님 이걸 지금 조경이라고 해놓은 겁니까? 그냥 멀쩡한 나무를 박살 내놓는 게.. 요즘 조경 유행인 것인지?"


"아아... 이거이거 부회장님 아니십니까?? 아아... 제가 요즘 배가 너무 고파서 말이죠.."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당신 지금 제정신이냐?"


나무를 씹어먹는 정원사와 사람을 지하실에 가둬놓는 완전 맛이 간 여자의 빅메치가 이런 식으로 이뤄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싸이코 정원사과 또라이 부회장의 싸움 수준 ㄹㅇ 실화냐? 진짜 이 세계 싸이코들의 싸움이 지금 내 눈앞에서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저번에 집에 왔을 때 봤던 그 바보 모지리 등신 같던 정원사가 맞나? 


그때는 뭐 우편함에 우편을 제때 꺼내지도 못하거나 뭐 그런 거로 예진 앞에서 쩔쩔매는 그야말로 을중의 상을이었는데.


예진을 대하는 태도에서 굉장히 여유로워 보였다. 마치…. 이런 일이 일어나도 자기 선에서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사다리에 앉은 정

원사는 너무 여유로워 보였다.


읏차.


천천히 사다리 아래로 내려오는 정원사. 전에 예진을 봤을 때 비굴하리만치 등과 허리를 굽힌 체 예진을 맞이했던 그녀와 180도 다른 사람 같았다.


"이거이거... 대충 배나 채우면서 꽁돈이나 벌려고 했는데, 이러면 곤란하지요…. 뭐... 이미 들켜버렸으니…. 아무래도 상관없나? 거기 봤지?"


정원사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찌릿 거리는 눈초리에 겁을 먹고 황급히 예진의 뒤로 숨었다.

마치 나는 너희 같은 평범한 사람들과는 달라. 정원사는 눈빛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보다니? 무슨?? 뭘 봤다는 거야? 아름아?"


"어…. 그러니까 저 여자 나무를 먹고 있었어요?"


"나무? 우리 집 나무? 그게 무슨 소리야??"


나도 몰라, 시발 나도 모르겠다고.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나도 모르겠다고. 시발 사람이 떡이 될 수도 있고 개가 된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초식 동물이 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시발... 무슨 무다구치 렌야냐.. 사람이 어떻게 초식동물처럼 나무를 먹냐고 시바아아알... 


"뭐.. 굳이 머릿속으로 이해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사람이 나무를 먹는다는 것 정도는 놀랍지 않은 그런 일들이 이제 벌어질 테니까.

이렇게 만난 것도 우연이니, 목숨은 살려드리도록 하지요"


"???? 저 여자 완전히 맛이 갔군, 더위를 먹을만한 날씨는 아닌데?"


"나와라 그린웜(Green Worm)"


고오오오오오오오오오-


뭐...뭔데??? 저거는?


정원사의 몸 주위에서 진한 녹색 불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천천히 그녀의 등 뒤에서 풍선이 떠오르는 것처럼 천천히 뭔가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 덩치만 한 녹색 애벌레였다.


... 겨우 애벌레가 성인 여성의 덩치만큼 크다는 것도 믿어지지 않지만, 그 애벌레가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고 사람의 머리 위를 빙글빙글 시계방향으로 돌고 있었다.


.... 저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어버버....뭐야..저게?"


"호오... 눈에 보이시는 겁니까?"


"징그러운 애벌레군"


"어? 혹시 두분 다 눈에 보이시는 겁니까? 어랍쇼, 이거 원래 보통 사람들 눈에는 안보여야 정상인데?"


"...뭐 굳이 그런 말도 안 되는 것들을 머릿속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잖아? 이제는 사람 머리통 위에 애벌레가 날아다니는 다는 것 정도는 놀랍지 않은 그런 일들이 벌어질 테니까"


"오호, 그렇습니까? 이거이거, 비슷한 부류의 사람을 만난 것 같군요"


"...??? 뭔데?? 뭔데 저게??"


"자세한 건 나중에 설명해줄게. 아름아, 일단 뒤로 물러나"


"이거이거, 눈물이 나는 순애보로군요…. 뭐 그것도 오늘로 마지막이겠지만."


아니 뭐냐고, 대체 왜 아무렇지도 않은 건데? 왜 이렇게 침착한 거냐고?? 


사람의 머리 위에 커다란 애벌레가 날아다니는 것 정도는 그냥 별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그런 시대가 찾아온 건가?

무슨 기술의 특이점이라고 찾아온 거냐고, 시발 이 상황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건데???


"...삼류 악당들은 이럴 때 주절주절 말을 하겠지만, 아쉽게도 저는 베트걸이나 원더우먼에 나오는 그런 빌런이 아니기 때문에 문답무용. 바로 공격하겠습니다."


손가락으로 나와 예진을 가리키는 정원사, 그리고 정원사의 머리 위를 떠돌아다니던 녹색 벌레가 나와 예진을 향해 흰색 실을 내뱉기 시작한다.


악! 끈적끈적해!


물총에서 물이 나가는 것처럼 애벌레의 입에서 나온 실 뭉치가 내 몸을 강타했다.

강하게 내 몸을 밀치는 거미줄에 무게 중심을 잃고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는다. 


거미줄에 묶인 사냥감을 고치화시키듯 내 몸을 빠르게 감싸기 시작하는 끈적한 실뭉치, 떼어내기 위해 발버둥을 쳐보지만 내 몸에 달라붙은 실뭉치를 떼는 건 역부족에 가까웠다.


오히려 내가 몸을 발버둥 치면 칠수록 내 몸에 달라붙은 끈적한 실들이 이리저리 얽히고 섥혀, 오히려 내 사지를 더 단단하게 옥죄이고 있었다.


어느새 눈사람처럼 내 상체를 꽁꽁 묶어버리는 거미줄, 어떻게 상체에 힘을 줘서 풀어보려고 힘을 쓰지만, 마치 쇠사슬에 묶인 것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뭐야 이거 풀어줘, 아니 왜 뒤에 있는 나를 먼저 쏘는 건데.."


"그런 건 상관없잖습니까. 당신 아내도 당신처럼 만들어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마십쇼"


바닥에 쓰러져있는 몸을 버둥거리는 나를 바라보는 예진.


"걱정하지 마, 금방 풀어줄게."


뭐 확실한 대책이 있는 것처럼 그녀는 오히려 정원사를 향해 발길을 돌려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to be contiued


----------------------------------------------------------------------------------------------------------------------------------------------


이제 한 10화정도 남았다.


머리 속으로 나름 생각했던 전개로 이어지고 있는데... 음.. 아무래도 3화나 4화 5화는 좀 손을 봐야할 것 같음.

초반부 전개가 지금 보면 별로 매끄럽지 않은 전개라서 그걸 좀 가다듬고...


정원사가 맛이 갔다고 떡밥을 뿌려놨긴 했는데 제대로 회수한건지 의문이다.

그리고 음... 회귀 관련해서도 이제 떡밥이 나올거야. 

전개가 이렇게 흘러간건 아무래도 내 역량 부족이 큰것같다. 27화만에 첫 배틀이 나오는 능배물은 나밖에 없을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