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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arca.live/b/yandere/9072739 눈치없는 당신만을 바라보고 바라보는 여우 - 1






길고도 길었던 토요일이 끝난 뒤의 일요일 이른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 내 방에 있는 서랍 중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서랍을 열어 약상자 하나를 꺼낸다. 방에 비치된 겉면부 장식이 허름하고도 녹슨 거울을 보면서 오랫동안 입고 지내 목이 늘어날 대로 늘어난 반소매 티셔츠를 벗어 왼쪽 가슴에 붙어 놓았던 패취를 뜯는다. 아버지가 팔을 쭉 내밀어서 꺼내려고 해도 닿지 않을 곳에 있었던 약상자에서 방금 뗀 패취와 똑같은 것을 하나 꺼내 그 반대편인 오른쪽 가슴에 붙이고 손바닥으로 꾹꾹 눌러 잘 붙여준다. 그리곤 가장자리 부분을 손가락으로 눌러주며 잘 붙도록 관리를 한 뒤, 옷장에서 새 옷을 꺼내 바꿔입는다.


패취형 마약성 진통제.


이 조그마한 파스 같아 보이는 것을 다들 그렇게 말한다. 먹는 약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 통증을 조금 더 잡아주는 것이기에 하는 것뿐. 이것을 붙인다고 진통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하지 않는 것보단 나은 수준이라 해야 한다. 다들 마약 저 단어 하나 때문에 중독될 정도로 위험한 것을 꼭 처방받아야 하는 것이냐고 하는데, 사용설명서 그대로 잘 따르기만 한다면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다. 부작용? 메스껍기도 하고, 약간의 두통도 오기도 하고, 우울한 기분도 올라오기도 하지만 최대한 참고 있다.


잠을 자는데 불편할까 봐 전원을 꺼버린 스마트폰을 충전기에 꽂고 다시 한 번 켜본다.


그러자 발작하듯 흔들리는 내 스마트폰. 액정 화면을 보니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둔 메시지와 함께 새로운 메시지로 인한 진동으로 흔들리며 쭉 나열된다. 확인하기에 앞서 다시 한 번 비행기 모드를 작동시키고 세기도 귀찮을 정도의 숫자의 메시지를 하나, 하나 읽어나갔다.


시간상 확인해보면 내가 연화를 밀치고 간 다음 그 때부터 같은데, 대략적인 내용은 이렇다.


보고 싶다고.

하라는 것은 다하겠다고.

대화할 것이 남아 있다고.

부탁이니 피하지 말고 얼굴 좀 보면서 이야기 좀 나눠달라고.

날짜만 정해주면 시간 쪼개서라도 보러 갈 테니 기다리겠다고.

그 날까지 있었던 일은 자기 자신도 너무 후회스럽고 두 번 다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게 할 테니 제발 믿어달라고.

등등.


이것도 아주 짧게 추려낸 메시지다. 원본은 솔직히 생각하기도 추잡스러워 입뿐만이 아니라 머릿속으로도 끄적이기도 싫은 내용 들 뿐이다.


실은 이것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희연이의 메시지.


오빠가 카페에서 해 준 말 잘 들었으니 그렇게 하도록 노력해보겠다고. 잊으라는 오빠한테는 미안하지만, 이 죄책감을 안고 가서 평생을 살겠다고. 다른 사람 만나게 된다 하더라도 오빠에게 아픔 주었던 그때를 생각하면서 그 사람한테는 이런 아픈 일 절대로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미안하고 고맙고 행복하게 잘 살라고.


넌 내 마음을 알아주는구나 하고 좋게 생각했다.


그래.


여기서 끝났으면 나도 충격받는 일없겠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남들 다 자고 있을 새벽에 연화와 마찬가지로 많은 수의 메시지를 보냈더라.


미안하다고.

못 잊겠다고.

이 죄책감을 안고 쭉 평생 살면서 다른 사람 만날 생각하니 오빠가 더 생각나서 못하겠다고.

오빠처럼 좋은 사람 영원히 못 만날 것 같아서 놓치고 싶지 않다고.

지금이라도 좋으니 다시 만나고 싶다고.

그때 처럼은 아니어도 옆에 있는 것 그거 하나만 허락해준다면 이전보다 더 헌신하겠다고.

등등.


이것도 연화의 메시지와 마찬가지로 비슷한 내용은 쳐버리고 짧게 추린 것들이다.


희연이의 마지막 메시지를 읽으면서 바늘로 내 머리를 콕콕 쑤시는 듯한 통증이 오기 시작한다.


연화한테는 차갑고 매몰차게, 희연이한테는 따뜻하고 부드럽게 했던 것은 내가 봐왔던 너희는 이렇게 하면 내 진심을 받아 줄 것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하였던 것들인데 하나같이 소용이 없구나. 


이것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네.


이리 고생해도 엎질러진 물이었다니.


쓸모없는 행동이었어.


나 같은 인간 잊어버리고 더 좋고, 더 행복하게, 그런 삶의 질을 올려줄 그런 사람을 만나 행복하게 살라고 해 준 것인데 그렇게 해버리니 오히려 더 못 잊겠단다.


왜 이럴까.


나보다 훨씬 잘난 이 둘은 자존심도 없는 걸까.


어떻게 사랑을 해도 이 병신을 사랑하느냐고. 너희 인생에 아무런 도움 안되고 너희와 손잡고 끝까지 가지도 못할 이 나약하고 곪아 터진 몸을 가진 남자가 뭐가 좋다고. 두 번 다시 변하지 않겠다고 믿어달라고 하는 그 마음가짐. 진작에 그것을 내가 아닌 다른 남자에게 줬으면 더 사랑받고 더 행복하게 살았을 것을.


도저히 모르겠어.


왜 그러는 것인지.


그저 잘해주는 것 말고 답이 없었던 나인데 왜 과거의 나를 그리워하는지.


도저히 모르겠어.


왜 그러는 것인지.


너무나도 이해가 안 가.


저 둘이 공통으로 하는 말 중


나를 개탄스럽게 하는 말.


너만큼.

오빠만큼.

나에게 잘해준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더 그립고 당신 같은 사람 두 번 다시 못 만날 것 같다.


너희가 제일 착각 하는 그것.


내가 너희보다 모자라니까 해줄 수 있는 것은 이 보잘것없는 몸으로 때우는 것 그거 하나밖에 없으니 그저 조금이라도 더 노력했던 것뿐인데. 그때 당시엔 내가 아주 좋아했으니까 그리하였던 것인데. 어째서, 그게 그립다고 하는지. 정말 잘 찾아보면 성격도, 코드도 더 잘 맞는 사람 만나 행복하게 살면 되는데 왜 이러는 것인지.


그때의 나처럼 너를 더 좋아해 주는 사람 만나면 해결되는 것인데 왜 그런 것인지.



행복하게 지내라고.


너희로 인해 아팠던 것들 나 혼자 가지고 갈 테니 너희는 그거 전부 다 잊고 그냥 행복하게 너의 삶 찾으라고.


알려줘도 못 알아듣고 꺼이꺼이 울며 매달리는 너희를 생각하면 너무나도 한심하고 가엽게 느껴진다.


곪아 터진 몸덩이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부정적인 사고를 최대한 치워버리고 병폐한 몸으로 인해 바스락바스락 조금씩 뜯겨나가 아주 작은 콩알만 하게 남은 올바른 정신을 모으고 모아 너희를 아픔에서 해방해 주려고 했던 내 수고는 쓰레기통에 처박혀버린 것 같다.


 "원하는 대로 안되네."


그 날.


만나지 않고 무시했더라면.


이런 고민도 없이 지나갔을까?


그런 허황하고 열심히 생각해봤자 해결되지도 않는 잡다한 생각들이나 했다.




 "궁금한 것이 하나 있는데, 물어봐도 되겠니?"


식사하시던 도중에 입을 여시는 아버지. 이것을 물어봐도 되는가 하고 어린아이처럼 우물쭈물 고민하시던 모습이 보였지만 어떤 것을 여쭤보실지 몰라 모르는 척하고 있던 것인데….


무엇 때문이신 것일까?


 "네. 아버지."


두근두근


망쳐버린 성적표를 들킬 상황에 부닥친 학생처럼 벌벌 떠는 손을 보이고 싶지 않아 수저를 상에 놓고 손을 그 아래로 숨기고 깍지를 낀 체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혹시, 내 병에 대해서 알고 계신 건가?


 "연화랑 다시 만나는 거니?"


아버지 입에서 나온 한 사람의 이름.


덜덜 떨리던 손이 멈추게 되었다.


연화의 이름이 나온 것을 듣고 나는 왜 안도하는 것일까.


 "아니요." 


 "그렇구나. 더 깊게 묻진 않겠지만, 다시 할 생각은 없다고 말하는 것이냐?"


 "네."


 "그렇구나. 알았다."


말씀을 마치시고 따뜻한 콩나물국을 한 숟가락씩, 떠서 드시는 모습.


 "전보다 간이 조금 짜구나. 전처럼 싱거우면 더 좋겠구먼."


 "그럼, 따뜻한 물이라도 더 넣을까요?"


 "아니. 되었다. 오늘은 그냥 먹자꾸나. 너도 피곤할 텐데 매번 완벽할 순 없지 않니?"


 "..."


아니요.


아버지를 위해서라면 완벽에 완벽을 추구해야 하는데요. 내 입으로는 이전과 똑같다고 느껴져서 만들었던 것인데, 아버지는 간이 맞지 않는다고 하신다. 누구의 입맛이 변한 것인지 모른다. 유전으로 내려온 것 같다고 하는 그 병 때문에 내 입맛이 변한 것인지. 아니면, 연세 때문에 아버지께서 변하신 것인지 말이다.


 "아버지."


 "오냐. 뭐 할 말 있니?"


몇 번이고 했던 다짐.


아무리 말씀드리기 무서운 이야기라고는 해도, 오늘은 아버지께 꼭 말씀드려야 한다고.


언젠가 아셔야 할 내용. 아무리 숨긴다고 하더라도 언젠가 들킬 것이라 일찍 알려드리는 것이 좋은데도 얼굴 보면서 말씀드리려고 찾아뵙게 되면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고목 같이 주름지고 마르신 몸. 자신을 챙겨주는 이 하나 없이 혼자 야외에서 일하셨기에 내 기억 속의 아빠보다 더 거먼 피부를 가지신 아버지. 사물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그거, 저거라고 말씀하시면서 대화를 이끌어 나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고사리 볶음이 맛있게 돼서요. 더 드셨으면 좋겠다고, 말씀 드리려고 했어요."


 "너도 더부룩하다고 자주 느끼는 그 몸 좀 빨리 나은 다음 잘 먹었으면 좋겠구나."


아버지의 그런 모습에 마음이 약해져 처음 생각했던 것과 다른 것을 말하면서 오늘도 내 병에 대해 알려드리지 못했다. 


겁쟁이 새끼. 


오늘도 실패했네.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슬프게 해드리고 싶지 않은데.


꼭 알려드려야 할 것인데….


낡고 썩어빠진 동아줄처럼 나약해져서 아무런 말도 못하게 된 것일까.


조금만 더 독하게, 강하게 마음먹고 말씀드리면 금방 끝나는 것인데.




아침부터 잘 시간이 된 지금까지 정리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어서 곰팡이가 피어버린 것 마냥 쿰쿰하고 냄새가 나는 것 같다고 느껴져 기분이 매우 나쁜 이불과 베개에 몸을 던지고 눈을 꼭 감았다. 패취로 인한 두통, 메스꺼움을 참으며 어떻게든 잠을 자기 위해서. 





시간이 흐르고 흘러 나무에서 떨어져 땅바닥에 흩뿌려진 낙엽들이 산을 쌓고 있을 때가 된 오늘.


밝은 햇살 아래에서, 내가 나이를 먹게 된다면 이렇게 변했으면 좋겠다고 꿈을 꾸었을 정도의 멋을 지닌 중년의 남성 한 분과 함께 사람이 굉장히 많이 붐비는 번화가에 있는 실내장식이 아주 멋진 카페에 앉아 있었다.


 "어떤 남자인가 하고 보러 왔는데 딱히 볼 건 없군그래."


카페 실내장식에 어울리는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나오는 이 자리에서 신사분과 함께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 있었다.


슬하에 있으신 영애분과 닮지 않은 인상. 얇고 날카로워 보이는 금빛으로 반짝이는 안경을 착용하시고 고풍스럽고 예쁘게 장식된 도자기 잔에 담긴 음료를 마시는 모습을 보여주신다.


 "맞습니다. 볼 거 없는 남자입니다."


 "흠. 내 딸이 그렇게 빠질 정도의 남자는 아닌 것 같은데만."


 "맞습니다. 따님분이 훨씬 아깝죠."


신사분의 말씀에 토씨 하나 건들지 않은 체 그에 대한 답을 드린다.


 "자넨 자존심도 없나? 자기를 그렇게나 낮춰서 좋을 것은 없다고 보내만?"


 "사실을 그대로 말씀드리는 것뿐. 높이는 것도, 낮추는 것도 없습니다."


눈썹을 조금 씰룩거리시면서 내 얼굴을 쳐다보시는 신사분.

틀린 말씀도 아니거니와, 맞는 사실 그대로 전하는 것뿐.


 "일도 그만두었더군?"


 "네. 맞습니다."


 "사업이라도 하려는 것인가?"


 "아니요."


 "그럼?"


 "지쳤습니다. 손 놓고 살다가 떠나려고 합니다."


 "어디로? 지방? 아니면 해외라도 갈 건가?"


잔을 내려놓으시고 테이블에 비치된 티슈 한 장을 꺼내시고 입을 닦고 계신다. 


 "살 날이 얼마 안 남았기 때문입니다."


 "말장난도 적당히."


마무리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시고 신경이 민감해지셨는지 눈썹을 찌푸리시는 모습을 보이신다.


나도 농담 따먹기 식으로 했던 말은 아니기에 신사분의 눈을 그대로 쳐다보고 가만히 있었다.


째깍째깍


카페에 장식된 시계에서 나는 거친 톱니바퀴 소리와 잔잔한 클래식 음악 소리만 날 뿐. 두 사람 다 눈만 깜빡이며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고 있다.


 "진심인가? 방금 그 말?"


첫 모습과 다르게 당황하신 모습. 하긴 곧 세상 떠날 놈이라고 태연하게 말하고 있는데 당황하시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이 된다.


오렌지 주스가 담긴 유리잔에 종이 빨대를 집어넣고 살살 휘젓다가 입에 물고 조금 마셨다.


 "예."


 "얼마나, 남은 건가?"


 "아무리 잘 버텨도 이번 연도는, 못 넘길 거라고 들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병이길래…."


 "췌장암이라고 합니다. 통증이 느껴지길래 진통제나 먹고 내버려 뒀더니 겉잡을 수 없이 퍼졌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아프면서 왜 치료는 안 한 건가?"


 "안 한 것이 아니라, 해도 소용이 없답니다. 유전으로 내려온 것이기도 하고, 깊숙한 곳에서 시작된 것이라 너무 늦게 발견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잘그랑 잘그랑


기다란 유리잔에 반도 안 남은 얼음과 함께 담긴 오렌지 주스를 오랫동안 놓아 젖고 눅눅해진 빨대를 돌돌 돌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내 딸이 다시 만나자고 하는데도 거절한 것인가?"


 `쿠흑. 훌쩍. 싫어...`


내 딸이라고 말씀하실 때 그 찰나의 순간. 구슬프게 울고 있던 희연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후배 얀붕이를 볼 때와 비슷하게 양처럼 부드럽고 순하게 생긴 인상만큼 착했으며 평상시에도 한 번 울면 눈두덩이가 두꺼울 정도로 펑펑 울던 너의 얼굴.


 "꼭…. 그것 때문에 희연이를 밀어낸 것은 아니지만…. 없지 않아 있긴 하군요. 네."


살며시 입술을 한 번 깨물고 처음 뵈었을 때와 표정이 많이 달라지신 희연이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궁금증은 전부 해결되셨을 거로 생각합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고 자리에서 일어나야 할 시간이 된 것 같아 말씀을 드렸다.


 "다 해결되신 듯하니, 전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 그럼."


입을 꾹 다무신 체 생각이 잠기신 희연이의 아버지께 말씀을 전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풍. 잘 끝내고 올라갔으면 하네."


소풍.


아마도 오늘이 이 분을 뵙는 처음이자 마지막 날이 되겠지.


 "행복하시길."


내 모습을 보지 않고 음료 잔을 들고 마시면서 말씀하시는 그분께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카페 바깥으로 나왔다.


올라갔으면 하신 다라….


하늘 위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땅 아래로 내려가야지.


양심이 있으면 어떻게 올라가겠어.


부모보다


아니,


아버지보다 먼저 갈 자식이 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