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영이 다시 돌아온 마을은 해가 져가고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로 분주해져 있었다. 밤에 불을 켤 정도로 부자인 집은 이런 외곽 지역에 있지 않고 거의 백화궁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이곳의 사람들은 하루를 정리하는 중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무영에게 따갑게 내리 꽂혔다. 의문이 담긴 시선의 끝에는 백화궁에서 나온 여령화에게 이어졌다가 여령화가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면 그 즉시 시선이 떨어져 나갔다. 

 

"쯧."

 

여령화가 혀를 찼다. 

 

"이전에 분명히 그 역병은 귀신이 불러온 것이 아니라 했거늘..."

 

그녀의 눈이 슬쩍 무영을 스쳐 앞을 바라봤다. 

 

"서씨 포목점이 어디야?"

 

무영은 아무 생각없이 얼굴을 가린채 걷기에 급급하다 갑자기 날아온 질문에 입이 꼬이는걸 느꼈다. 

 

"예?"

 

"넋 놓고 있지 말고. 서씨 포목점이 어디냐고."

 

"아 그것이, 장터를 지나서 여산 객잔 앞에.."

 

"앞장 서."

 

그녀가 무영에게 턱짓했다. 무영이 머뭇거리며 그녀의 앞에 서서 걷기 시작했다. 의문 어린 시선들은 여전히 딸려왔으나 아까처럼 노골적인 시선은 쏟아지지 않았다. 무영은 그것만으로 안심하며 서씨 포목점까지 도착했다. 무영이 서씨 포목점 옆의 민가의 문을 두드리자 안쪽에서 서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요?"

 

문을 열고 나와 보이는 무영의 얼굴에 한 번. 그 뒤에 있는 백화궁 무사들에게 또 한 번. 서씨는 즉시 바닥에 엎드렸고, 엎드리며 무영을 찍어 눌러 같이 엎드리게 했다.

 

"백화궁 나으리들께 이놈이 잘못한게 있다면 제가 어떻게든 치를 테니 부디 이 불쌍한 놈만은..."

 

"일어나세요. 이 친구가 잘못한건 없으니까요."

 

여령화가 의외라는 눈을 하고 서씨와 무영을 일으켰다. 부채를 접어 허리의 요대에 끼우고선 무영에게 있었던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모든 설명이 끝난 뒤엔 아연해진 표정의 서씨와 머리를 긁적이는 무영이 있었고 여령화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뭐, 목숨 값 대신 이 친구 옷을 받아야 하고, 또 그 미친놈이 노릴 수 있으니까. 당분간 이 친구를 여기에 두고 옷을 만들게 할 겁니다. 뭐 주인장께서 싫으시다면야 어쩔 수 없지만요."

 

"아뇨! 싫을리가요. 이놈이 그 일 이후에 사람을 미워하고 세상을 미워하는 바람에, 제 옆에 두고 살게 하고 싶었거든요. 그 산 중턱에서 혼자 살다간 언제고 해를 입어 죽을 것 같았거든요."

 

"인정 넘치신 분이로군요."

 

여령화가 깊은 인상을 받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여기 저희 친구들 둘 놓고 갈테니, 뭔가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달려오죠."

 

"아, 고맙습니다요."

 

여령화가 자기 부하 둘을 서씨 포목점 문 앞에 남기고 떠났다. 서씨는 그들에게 안으로 들어와 있으라 청했지만 그들은 대장이 화낼게 무섭다고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 

 

별 수 없이 무영과 안으로 들어온 서씨가 무영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내 언제고 사고칠줄 알았다 멍청한 놈아."

 

"... 미안합니다."

 

"그걸 또 미안하다고 고개 숙이냐! 이 답답한 놈아."

 

서씨는 답답한지 제 가슴을 두어번 치고 무영을 바라보았다. 주눅든 표정이 깡마른 얼굴과 합쳐져 불쌍하게 보였다.

 

"잘도 장씨가 좋아하겠다. 아들 놈이 이리 사는 줄 알면."

 

서씨의 말에 무영의 고개가 숙여졌다. 

 

"안으로 들어가자. 밥은 먹었냐?"

 

무영은 서씨의 질문에 말없이 고개만 흔들었다.

 

"연화 어멈에게 밥 차려오라고 하마. 마침 우리도 먹지 않았으니. 옷감 값은 아저씨가 치를테니, 넌 밥 먹고 옷이나 만들어."

 

무영이 슬쩍 고개를 들었다.

 

"산 속 집은 처분하마. 앞으론 같이 살어. 이대론 불안해서 못보겠다."

 

"마인이 얽힌 일이에요. 언제고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요." 

 

"백화궁 바로 옆인데 잘도 오겠다. 내가 말했잖느냐. 숲에서 살면 언제고 범과 같은 놈들을 만날거라고."

 

무영의 고개가 다시 숙여지고 서씨와 함께 집안으로 들어섰다. 


"연화가 아주 좋아 할거다. 준비가 끝나면 부를테니 연화한테나 가있거라."

 

"남녀가 유별한데 어떻게.."

 

"나로서는 니가 우리 가족이 되면 더 좋지."

 

서씨가 무영의 어깨를 두드렸다. 

 

"... 안할겁니다."

 

"쌀쌀맞긴."

 

서씨가 무영을 등 떠밀어 연화의 방으로 밀어놓고 본인도 안방으로 들어갔다. 무영이 한참을 고민하다 문을 두드리자, 샛노란 머리를 한 연화가 머리를 긁으며 방에서 나왔다. 그러다 방앞의 무영을 보고 눈을 크게 뜨더니, 재빨리 방으로 다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야..야야! 니가 왜 여깄어!"

 

"사정이 있어서."

 

"좀 기다려! 내가 됐다고 하면 들어와!"

 

안쪽에서 한동안 분주하게 치우는 소리가 들렸다. 무영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들어와!"

 

연화가 부르는 소리에 문을 열고 들어가자 치웠어도 난장판인 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치운거지?"

 

"치운거거든?"

 

무영의 질문에 연화가 발끈했다. 무영이 피식 웃고는 의자에 앉았다. 연화는 무영의 웃는 얼굴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웬 일이냐. 니가 우리 집에 다 오고."

 

"조금 사정이 있었어."

 

"그니까 그 사정이 뭐냐고."

 

무영이 머리를 긁적였다. 이야기해도 될까 하고 잠시 고민하다가 무영이 입을 다물자 답답함을 참지 못한 연화가 무영에게 다가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