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2화

3화

4화

5화






우노는 두꺼운 철제 문 앞에서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그를 이곳까지 안내해 준 존은 역시나 유령처럼 사라져 있었다.

 

이곳은 연방의 극비 회의가 진행될 때 사용되는 지하 회의실의 앞이다. 우노는 이미 이 회의의 주제를 알고 있었지만, 그의 가슴은 여전히 두근거리고 있었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문을 열자, 좁은 공간에 2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며 앉아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회의실은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모두가 우노의 등장에 눈길을 돌렸다. 가장 앞쪽에, 다른 사람들보다는 조금 여유로운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레일라가 보였다.

 

우노는 레일라에게 가볍게 목례했다.

 

“대단장 각하.”

 

“레이븐릿지 박사.”

 

레일라도 인사에 답했다.

 

레일라는 우노를 향해 손짓하며, 그에게 준비된 자리를 가리켰다. 우노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오늘 회의를 소집한 것은 국가안보에 대해 중대한 논의를 나누기 위함이네." 

 

레일라의 목소리가 회의실에 울려퍼졌다. 

 

"여기, 박사께서 관련 사항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할 예정이고."

 

우노는 마음을 다잡고 좌중을 둘러보았다.

 

2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은 명확히 세 분류로 구분되었다.

 

우선 학자, 앞에 쌓여있는 각종 논문들과 참고 자료, 피로로 찌들어 있지만 깊은 통찰로 빛나는 눈동자, 그리고 결정적으로 매일같이 이어지는 연구로 인한 낮은 시력 때문인 깊게 패인 눈 사이의 주름 등이 그들이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온몸으로 ‘나 학자요’ 하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 다음으로, 군인, 제복을 입고 있는 그들은 좁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각을 잡고’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의 옆에 있는 학자가 그와 애써 어깨를 마주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한쪽으로 몸을 틀고 있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마지막으로, 관료들이다. 기계식 계산기와 행정문서로 무장한 그들은 거창한 구상을 현실의 세계로 끌어오는 역할을 한다. 

 

우노는 벌써부터 그들의 회의적인 눈빛과 찌푸린 미간을 보고 이 회의가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을 짐작했다.

 

우노는 남몰래 작게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우노 박…’”

 

까지 말을 이었다가 레일라와 눈을 마주치고 그는 다시 급히 정정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레이븐릿지 박사’입니다.”

 

"오늘 논의할 내용은 에테리얼 원자의 연쇄반응을 응용한 새로운 에너지원 개발입니다."

 

학자들 사이에서 수군거림이 시작되었다.

 

“연쇄반응에 대한 이야기는 저희들도 익히 들어서 압니다.”

 

한 학자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아직 실용적인 단계로 끌어올리기엔 시기상조입니다. 구체적으로 파악되지 않은 것이 너무 많습니다.”

 

또 다른 학자가 대신 말을 이었다.

 

“예, 물론 어려운 일이 될 겁니다. 하지만 계산과 숫자는 결과를 예정하고 있죠. 분명히 가능합니다. 다만, 저희들이 할 것은 그 중간과정을 만드는 겁니다. 결과까지의 중간 이론과 제반 조건을 파악하고, 구성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우노는 예상했다는 듯이 바로 대답했다.

 

다시 웅성거림.

 

학자들 사이에서 수근거림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잠시 후 한 학자가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제가 알기론 레이븐릿지 박사께선 이론 마법학자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례가 되는 말씀이긴 하나, 이론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실험에서 그 가능성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 학자가 반문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미 최근 구대륙에서 진행되었던 일련의 실험을 교차적으로 검증하여 이 이론이 부분적으로 작동함을 확인했습니다. 물론, 실용적인 수준에서 이 이론을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상당한 자원과 인력이 필요하겠지만… 결과는 그 모든 투자를 정당화할 것입니다."

 

우노는 차분하게 답했다.

 

"그 결과가 뭡니까? 그게 우리의 안보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군인 중 한 명이 물었다. 그는 뭔가 불만스러운 듯 팔짱을 끼고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우노는 잠시 멈춰 생각하고 말을 꺼냈다.

 

"조금 전 에너지원의 개발이라 말씀드린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우노는 말을 이어갔다.

 

“에너지는 완만하게 방출될 수도, 또는 순간적으로 급격하게 방출될 수 있죠. 후자를 저희들은 보통… 폭발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폭발은 전례 없이 강력할 겁니다. 아메리고의 안보를 결정적으로 개편할 만큼 말이죠.”

 

몇 번의 웅성거림 후, 군인들은 다시 의구심에 찬 발언을 이어갔다.

 

“강력하다, 결정적이다 따위의 수식어는 뜨내기 장사꾼들이 저희들에게 신병기란답시고 이상한 고철들을 팔아먹으려 들 때 익숙하게 들어왔던 말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실망스럽더군요.”

 

“예,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를 겁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우노는 들고왔던 가방에서 여러 겹으로 접힌 한 장의 종이를 주섬주섬 꺼냈다.

 

“예… 그쪽을 잡고 펼쳐주시죠. 예 그렇게 부탁드립니다. 예…”

 

한 쪽의 길이가 사람 키만큼이나 되어 펼치는 데 애를 먹은 그 종이는 레이븐릿지 시와 인근 지역을 상세하게 묘사한 지도였다.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신시가지의 중심으로 그려진 몇 개의 동심원이었다.

 

군인 중 한 명이 이마를 찌푸리며 물었다.

 

“이 원은 뭘 의미하는 겁니까?”

 

우노는 최대한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해당 병기를 여기 레이븐릿지 신시가지 임의의 지역에 투입했을 경우를 이론적으로 계산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회의실 안의 면면들을 한 번 둘러보고 말을 이어나갔다.

 

"보수적으로 계산했을 때, 여기 가장 작은 원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완전히 파괴됩니다. 아 여기서 ‘완전히 파괴된다’는 잔해를 보고 그것이 원래 무엇이었는지 파악할 수 없다 정도로 받아들이시면 되겠습니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손목시계의 바늘이 돌아가는 소리조차 컸다. 그들은 큰 원이 아닌, 가장 작은 원에 주목했다. 그 작은 원은 신 시가지 전체를 포함하고 있었다.

 

“이정도면 설명이 되었을 것이라 믿습니다.”

 

긴 침묵 후 우노가 말을 이었다.

 

"현실적인 비용 안에서 만들어질 수 있습니까? 이걸 현실화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듭니까?"

 

관료들 중 한 명이 애써 침착하게 질문했다. 태연한 얼굴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조금 떨리고 있었다.

 

여기서 ‘현실’이 두 번 언급된 것이 그들의 정체성을 상징했다.

 

그들은 국가의 현실을 다룬다. 아무리 그럴싸한 계획이라고 해도 현실적이지 않으면 그들은 그것을 거부한다.

 

아무리 거창하고 담대한 계획이라고 해도 그것이 현실적이라면 그들은 명령에 따라 기꺼이 그것을 하늘에서 지상으로 끌어내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끌어내리기 위한 밧줄이, 바로 돈이다.

 

“그 비용은…”

 

우노는 잠시 고민했다.

 

“현재 연방에서 운용 중인 두 개 기동전단의 구성 비용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일 것입니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세상에 아직 있지도 않은 물건의 가격을 파악할 순 없다.

 

하지만 우노의 앞에 있는 저들은 시장의 뜨내기 구경꾼들이 아니었다.

 

저들을 설득하기 위해선 숫자가 – 그것이 가짜라 하더라도. 숫자가 필요하다.

 

회의실 안의 공기가 순간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는 결코 작지 않은 비용이었다. 그러나 우노는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여러분, 이 비용을 단순한 지출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건 투자입니다. 투자의 목적은 결국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함이죠. 우리가 개발할 이 폭탄은 단순한 무기가 아닙니다. 이건 우리 연방의 안보를 완전히 새롭게 구성할 수 있는 수단입니다. 그것도 우리에게 유리한 쪽으로.”

 

또 다른 관료가 반박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예산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다른 중요한 계획들도 많습니다. 이 계획을 진행한다면 우선순위를 완전히 재정립해야 할 겁니다. 경우에 따라선, 폐기해야 할 계획들도 있을 겁니다.”

 

우노는 잠시 고민하는 듯 보였다. 그러다 이내 분명한 목소리로 답했다.

 

“우리가 직면한 위협의 규모와 이 계획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우선순위를 재정립하는 것이 맞습니다. 예, 다른 계획들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 폭탄의 개발이야 말로 우리가 직면한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입니다.”

 

“위협이라니, 무슨 위협 말이죠?”

 

한 관료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궁금증과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그들이 이 무기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라면 누구를 말하는 겁니까?”

 

“마왕이, 알고 있습니다.”

 

우노의 대답은 무거운 폭탄처럼 회의실 안에 떨어졌다.

 

회의실 안은 다시 얼어붙은 듯한 침묵에 빠졌다. 이번엔 고민과 생각의 정리를 위한 침묵이 아니었다.

 

충격에 의한 것이다.

 

벽에 걸린 시계의 초침 소리만이 무거운 공기 속에서 울려퍼졌다.

 

회의실의 사람들이 각자의 충격을 애써 소화시키고 회의가 재개되었다.

 

개중에 반대 의견을 개진하는 자도 몇 있었지만 이 파국적인 가능성 - 만약 그들이 먼저 이 무기를 가지게 된다면? - 앞에 그들의 논리는 간단히 와해되고 말았다.

 

몇 시간의 갑론을박 후, 회의의 결과가 정해졌다.

 

줄곧 침묵을 지키고 있던 레일라가 회의의 결과를 정리했다 – 명령의 형태로.

 

“좋아, 그렇다면 해당 병기의 개발 추진에 대한 타당성 검토 위원회를 나의 직할로 결성하도록 하지. 위원회의 운영에 대해서는 규정에 따르도록. 그리고 –“

 

그녀가 잠시 멈춰 우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위원장은 여기 있는 레이븐릿지 박사로 한다."

 

그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회의실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몇몇의 관료들이 교환하는 시선에서는 불만과 의구심이 엿보였다.

 

한 관료가 조심스럽게 불만을 표했다.

 

"대단장 각하, 우리 모두 레이븐릿지 박사의 능력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분은 아메리고 연방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신원은 여전히 불분명하며, 때문에, 이 자리에는 보다 신원이 확실한 인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도 있었지만, 레일라의 반응은 냉정했다.

 

"박사에게 아메리고의 국적을 수여한 것은 나다. 그의 신원은 내가 보장할 수 있다. 그리고 '레이븐릿지'라는 이름을 준 것도 나다. 그의 신원을 의심한다는 것은 결국 나를 의심하는 것으로 여겨지는군."

 

그녀의 말이 권위와 함께 회의실 안에 울려퍼졌다.

 

"아무 이의가 없다면, 레이븐릿지 박사, 당신이 이 위원회의 위원장이 된다. 이 결정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나에게 있다."

 

레일라가 최종 결정을 내리자, 회의실은 더 이상의 이의 제기 없이 조용해졌다. 사소한 반항은 권력의 무게 앞에 가볍게 제압되었다.

 

우노는 '레이븐릿지'라는 이름이 가진 힘을 실감했다.

 

레일라가 회의의 마지막 순서로 나아갔다.

 

"레이븐릿지 박사, 이제 당신에게 또 하나의 권한을 주겠네. 이 위원회의 이름을 정하는 거 말이야. 사안의 보안성을 감안하여 적합한 이름으로 정하도록."

 

우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계획의 보안성을 유지하고, 이 계획의 핵심을 숨기고, 이 위원회의 본질적인 기능을 외부에서 볼 때 모호하게 하며 가능한 한 일반적이고 무해해 보이는 이름…

 

그리고 결정했다.

 

"'일반자문위원회' 로 하겠습니다."

 

우노가 말했다.

 

"이 이름은 외부에서 볼 때 별다른 의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이 계획의 핵심을 숨길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추상적이고 모호한 이름이라 생각됩니다."

 

레일라는 우노의 결정에 만족하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나쁘지 않군. 괜찮은 선택이야.”

 

회의실 안의 다른 이들도 이 결정에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이렇게, 우노의 첫 번째 결정이 수용됨과 함께 계획이 조심스럽게 나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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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201입니다.


우선, 연재가 늦어진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본의 아니게 본업이 바빠져 글을 쓸 시간이 부족하였습니다.


아울러,

부족한 글이지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소설을 써본 경험도 배움도 부족하여 글이 많이 부족합니다.

많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노벨피아에서도 연재중이니

노벨피아 주소

한번 들러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써놓고 보니 내용이 무슨 다큐멘터리 마냥 되었네요...


전개에 필요한 부분이라 어쩔 수 없지만 얀데레를 더 보여주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