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시아










기나 긴 전쟁이 있었다.

마족과 인간의 치열하고도 투박한 대전쟁.

서로가 상처 밖에 남지 않았던 잔혹극은 수 많은 희생을 낳았고

그것은 역사에 길이 남을 참사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이건... 그 전쟁에 관한 이야기.

돌아온 마왕과 함께 마족들은 아득한 힘을 깨닫게되었다.

곧 이어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였다.

이에 먼저 반격에 나선 것은 다름 아닌 인간측,


허나 마족들의 막강한 군세에 인간들은 금방 열세에 몰리게 되었다.

가능성이라곤 조금도 찾아 볼 수 없는 불합리한 싸움의 연속 ㅡ


그러나... 인간들 처럼 마족들에게 저항하고자 하는 이들이 하나 둘 힘을 합치기 시작했으니,

이것은 곧 역사에 전례 없는 가장 거대한 연합의 탄생이었다.


엘프, 드워프, 드래곤...


비록 종이 다르고 이 전 까지만해도 투닥거렸던 이들이었지만, 마왕 토벌이라는 하나의 공통된 목표 아래에 한대 뭉치기 시작하였고


여러 동반자들이 전선을 함께 하면서 열세였던 전세에는 한 줄기의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싸움은 곧 이어 팽팽한 사투로 이어져갔고..

막상막하였던 전쟁은 점점 승리의 길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능성을 보이던 대전쟁을... 결정적으로 막을 내리게 한 두 명의 영웅이 있었으니 ㅡ



바로 차기 엘프들의 여왕 아르시아와,


그의 절친한 친구, 용사 바르곤.


이 둘의 화합은 그 어떤 존재라도 대항 할 수 없었다.

오래 전 부터 유대를 나눴던 둘의 콤비는 그야말로 천하무적, 승승장구였다.

이 영웅적인 존재들의 활약에 결국 마왕 마저도 쓰러지게 되었다.

그렇게 찾아오게된 극적인 평화...

전쟁 이후에도 연합국의 친분은 계속되어갔고

이것은 훗날 세계 평화를 위한 원대한.....!










"..... 푸후... 식상하네.."

결국 지루함을 참지 못한 나머지 책을 끝까지 읽지 못하고 무심하게 던져버린다.

"이거 책.. 저자를 잘 못 고른거 아니야? 오글거리기만하고 재미는 재미대로 없는데?"

어딘가로 내팽겨쳐진 책을 내버려둔 채, 소파에 몸을 늘어뜨리며 지루함을 달래보려는데.

"너가 무식해서 이해를 못한건 아니고?"

그녀는 그런 혼잣말을 멋대로 엿듣곤 내게 지적을 날려온다.

"책이나 마저 쓰시지요? 남 말에 신경쓰지 말고."

엘프라서 그런지 귀 하나는 정말 밝다니까.

"...."

허나 내 불평에 반응하기 싫은건지 아니면 응해준건진 몰라도 그녀는 대답 없이 계속 책을 써내려간다.

"거 참, 성격 한번 딱딱하다니까."

그녀의 이름은 아르시아,


방금 책에서 소개되었던 영웅적인 존재 중 한 명이자차기 엘프들의 여왕이었다.

성격은... 매사에 무뚝뚝하고 냉정하며 극도로 이성적인 현실주의 엘프,

그리고 난... 그녀의 절친으로 쓰여있던 인간 용사 바르곤이다.

아니, 이젠 용사도 뭣도 아닐려나?


마왕은 쓰러졌다.

마족들과의 싸움도 이제 완전히 종전되었다.

사실상 나의 역할은 진작에나 막을 내린 셈.

그러니 이젠 평범한 모험가라 부르는게 맞을려나?

"으응.. 하암 ㅡ"

아무튼 마왕을 토벌한 우린, 세계의 평화를 가져왔다.

그리고 현재는 잠시간의 여유를 만끽하며 그녀의 고향인 엘프국에 머무르고 있는 상태였는데.

조금은 심심하지만... 그렇기에 평화롭다고 느껴지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럴 순 없는 법.

"그나저나 아르시아, 평화가 찾아왔는데 넌 앞으로 어떻게 할거야?"

이제 충준히 쉬었으니, 다시 앞날을 생각해야 할 때가 왔다... 라고 개인적으론 생각한다.

"뭘 당영한걸 묻고 있어?"

그래서 조언도 구할겸 우선 그녀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은데.

"여왕이 될 준비 아니겠어?"

그녀는 뭘 세삼그럽게 물어보냐는듯한 분위기였다.

"난 너 처럼 한가롭지 못한다고, 오히려 이제부터 시작이야."

마치 정해진 메뉴얼을 말하는 것 처럼 뚜렷하면서 약간의 불만이 섞인 그녀의 목소리,

"그 때가 되면 너무 바빠서, 책을 집필하는 취미 조차 즐기기 어려울걸?"

그러면서 내게 눈길하나 주지 않은체, 책을 집필해 나가는걸 계속한다.



"......."

예상한 답변이긴 했지만... 막상 듣고나니, 더욱 더 할 말이 없어져 버린다.

"........"

그야 그렇겠지.

그녀는 애초부터 여왕의 길을 걷던 인물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그녀와는 다르게 마왕이 사라진 지금, 나에겐 어떠한 사명도 목적도 없었다.


그야말로 자유분방하고 선택한 모든 것이 내길이 되는 그런 개방적인 영혼.

허나 그렇기에 더욱이 갈등하게 된다.

사명이 없다는건 달리 말해, 존재의 의미를 상실했다는 것과 같은 뜻 이니까.

요즘들어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같은 고민들이 머릿 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삐딱하고 쌀쌀맞은 성격이지만 나보다 총명한 그녀에게 말하면 무언가 깨닫는게 있을까 싶었지만...

"...."

이거야 원.. 알고도 코 베인 느낌에 괜한 불쾌함만 남게 되었다. 

"바르곤, 너는?"

그렇게 속으로 쓴 웃음 짓던와중 이번엔 아르시아가 나에게 물어왔다.

"으음...."

방금 전에 떠올렸던 고민 거리를 건드리는 질문,

허나 여전히 답이 나오진 않았다.

"글쎄, 아직까진 이렇다 할 만한걸 못 찾아서."

그래서 솔직한 본심을 그녀에게 털어놓았는데...

"역시 생각 없이 사는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네.

그런데 갑자기 나를 비하하는 발언이 쏟아져나왔다.

"뭐? 어쩌고 저째?!"

예상치 못한 비난에 불쾌한 기분이 확 끓어오른다.

"사실이잖아? 솔직히 내가 없었다면 너가 마왕 토벌은 무슨, 마족들의 계략에 금방 죽었을걸?"

기껏 답해주었더니 돌아오는건 자존심을 건드는 발언들이라니,

"뭐?! 너야 말로 가능했을 것 같에?!"

그래서 격분한 마음에 목소리를 크게 높혀 소리쳐 봤지만..

"흥..."

그녀는 오하려 가소롭다는듯 콧 방귀나 뀌며 내 말을 무시하였다.

"어쭈, 내 말 무시하겠다 이거야?"

"...."

아무리 딴지를 걸어봐도 눈길 하나 주지 않은체 책을 쓰는 손만 바쁘게 움직인다.

"야 임마, 내가 전장에서 너의 목숨을 구원해준게 몇 번인데."

그래서 앞으로의 계획이고 뭐고 그녀를 헐뜯는데에 온 신경이 쏠렸지만,

"어우 진짜! 이런 엘프인 줄 알았다면 처음에 그냥 다른 엘프 누님 파티에 ㅡ"

파직 ㅡ!

"아악 따가!"

그녀는 조금 불리해진다 싶으니 어김 없이 무력으로 나를 밀어붙히기 시작했다.

"어쭈 이걸 콱 씨..!"

파직ㅡㅡ!

"아아악..!"

참으로 불합리한 느껴지는 싸움 구도였다.

물론 '여자를 때리면 안된다' 라는 내 신념이 반격을 못하게 막아선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일방적인 폭력은 세상 억울하게 다가왔다.

"어우... 이걸 때릴 수도 없고.."

파직 ㅡ!

"악! 야 임마!"

딱금 거리는 신체를 만지며 그녀에게 항의했지만 ㅡ

"흥..."

파지직 ㅡ!

"아악?!"

그녀는 갈 수록 강한 마법으로 내 이마를 과격했다.

"흥, 괜히 쓸데 없는 말을 하니까 그리 당하는거 아니야."

결국 굴욕적인 기분을 곱씹으며 화를 삭히고 나서야 마법 공격이 멈추게 되었다.

"아윽.... 스읍...."

나는 욱신거리는 이마를 다정히 쓰다듬으며 몇 번이고 생각했다.

먼저 시작하는건 분명 아르시아인데... 왜 나보다 더 회를 내고 있는가...

그녀의 이런 고집불통인 성격은 알아줘야만 했다.

분명 시작은 자기가 했으면서도 그 끝은 항상 자기가 더 기분 나빠한다.

"...."

그러자 과거의 기억들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돌아보면 우리는 참 이상한 콤비였지..


맨날 말로는 티격태격하면서도 결국엔 단합하고 시련을 이겨냈으니까.

"...."

그렇기에 이런 불합리한 그녀라도 진심으로 밉지는 않았다.

뭐, 물론 진지하게 싫어할까 라는 고민은 많이 하게 되지만은...

"아무튼... 결론만 말하면 아직 앞 날을 못 정했다는거네?"

어쨋든 딱금가리는 이마를 어루만지며 고통을 달래던 와중이었다.

"응? 뭐... 결론적으론 그렇지..?"

아르시아는 갑자기 책을 집필하던걸 멈추고 내게 시선을 돌리더니...

"그렇구나.."

진지하게 할 말이라도 있는건지, 답지 않게 양 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놓으며 나와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친다.

"그렇다면.. '왕실 호위병' 자리는 어때?"

그리곤 내게 있어, 상상도 못했던 자리를 소개 해 주는데.

"엉..?"

순간 머리가 새 하에지고 말았다.

그야 아르시아의 말에는 내가 생각해도 여러 결함이 있었으니까.

보통 한 나라의... 그것도 최고 권위자를 지키는 신성한 임무는 왕족에게 간택 받은 믿음직한 귀족가문들이 맡게 된다.

그것도 엄격한 심사를 거치며 여러 가문과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선택 받는 것이 일반적이 관례였다.


그런데... 이 나라 출신도, 같은 종족도 아닌 내게 그런 자리를 주겠다고?

"자.. 잠깐만..."


너무 황당한 말에 순간 그 말을 들었던 내 귀를 의심하게 된다.

"왜, 근사하지 않아?"

"왕족을 지키는건 기사의 길을 걷는 자로선 최고의 명예와 권력일 텐데?"


하지만 그녀는 잘 못들은게 아니라는듯 다시 한번 대못을 박아버린다.


"아니.. 그건 아는데..."

"... 어째서 나인거야?"

"뭐가?"

나는 이유를 물었지만 아르시아는 당돌하게 고개를 갸웃 거릴 뿐 이었다.

"뭐가라니... 야... 알다싶이 여기에서의 난 이방인이라고..."

"응, 그게 어때서?"

한 치의 고민도 없는 답변.

"...."

정말 자신의 발언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모르겠다는듯 평소 차갑고 덤덤한 눈빛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왕실 호위병이란건... 보통 이런 사람에겐 안시키잖아?"

"뭐, 그렇지.. 하지만 너는 다른걸?"

허나 ㅡ

"뭐..?"

아르시아의 말에... 이번엔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너의 실력은 이 전부터 봐오면서 충분히 입증되어 왔어, 마왕을 토벌한 자라면 더더욱 그렇겠지."


"그리고 난 너를 충분히 신뢰하고 편하다고 생각해."

"그러니 어디 어중이 떠중이들에게 내 곁을 지키게 하는 것 보단... 차라리 너가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어."

자신이 이런 선택을 하게 된 이유를 장엄하고도 그녀다운 어투로 설명한다.

......

그녀가 마침표를 찍자, 잠시간 침묵이 찾아온다.


"..."

아르시아의 제안에 무어라 답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는다.


왕실 호위병? 


물론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내겐 과분한 신분이었다.

그런데도.... ㅡ

"넌.. 어떻게 생각해?"

그녀는 고민의 소용돌이에 시간이 지체 될 틈 없이 내게 답변을 요구했다.

"...."

나는 잠시 생각을 그만두고 그녀와 눈을 다시 마주친다.

"너..."

그녀는 평소처럼 무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도 있었지만.. 자세히 들여다 본다면 전혀 아니었다.

애석하게도 생사를 함께 넘나들었던 사이었던 지라, 다른 이들은 눈치 못챌 변화는 나는 알 수 있었다.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너 답지 않잖아..."

그녀는 지금 태연한척면서도 얼굴엔 긴장김이 베어있었다.

무심하게 던진듯 하면서도 그 안에는 간절함이 서려있는게 보였다.

그녀는 내가 이 제안을 승낙 해 주길 바라는듯 했지만...

"미안하지만... 사양할게."

나는 그녀의 부탁을 끝끝내 거절했다.

".... 그래?"

아르시아는 내 거절 의사에도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

그녀의 눈섭은 파르르 떨고 있었다.

".... 이유를 물어도 될까?"

그리곤 최대한 덤덤한척, 개의치 않은 척... 태연한 목소리를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그야...."

나는 그녀의 물음에..

"그게 내 길이 아닌 것 같으니까."

짧고 직설적으로 답변했다.

"뭐엇....?"


"너도 알다싶이.. 내가 워낙 자유분방한 사람이란걸 알잖아."

난 최대한 본심을 전하기 위해서 자세히 설명을 늘어놓았다.

"물론 왕실 호위병 같은 고귀한 자리도 괜찮지만..."


"무언가에 얽매이고 규을 따르는건 딱 질색인데 나더러 그런 일을 하라고?"

"제안은 고맙지만... 정중히 거절할게."

이러니 저러니해도 요약하자면 '난 엄중한건 싫어!' 겠지만은... 그래도 그녀가 납득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풀어서 뜻을 전했다.

"그래...?"

"그렇구나..."

그러자 무뚝뚝하면서도.. 왠지 서글퍼보이는 목소리로 잠시 고개를 떨군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살건데....?"

그리곤 양손을 꼼지락 거리면서도 다시 고개를 들어, 내게 시선을 마주친다.

"글쎄.. 아까도 말햇듯 정해진건 없지만 다시 모험을 떠날 생각이야."

그녀 질문에... 솔직히 말하자면...

 방금 말했듯, 아직 정한건 없었지만... 그녀를 설득하기 위해, 옛날부터 어렴풋이 그렸던 계획을 꺼내들었다.

"그렇다는건... 여길 떠나겠다는거네?"

내가 말을 이어나갈수록 그녀의 심정이 복잡해져가는게 느껴진다.

"응.. 뭐 그렇지?"

"영원히?"

"그건 나야 모르지."

그래도... 나는 진솔하게 답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고 판단했기에 거짓은 말하지 않았다.

"... 그래서?"

그녀는 떠나겠다는 말에 잠시 한 숨을 고르더니, 그 이후의 일까지 캐묻기 시작한다.

"그래서라..... 으음.."

"그래서.. 세계 곳곳을 여행할거야, 전쟁을 위한게 아닌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

아르시아가 원하는 답변이 될 진 몰라도, 그녀의 바람대로 말을 이어나간다.

"내가 몰랐던 여러 사실들을 알아가고 여러 문화도 배워보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겠지."

"그러다가 나이가 들어, 움직이 버거워지기 시작하면 '이곳이 내 집이구나' 라는 곳에 정착 할 거야."

"........"

허나 점점 결론에 도달 할 수록... 그녀의 표정은 굳어져만 갔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느긋하게 보내며 나긋한 인생을 즐기다..."

어쩌다보니... 인생의 전망을 모두 말하려는 그 순간 ㅡ

"마음이 잘 맞는 여자가 있다면 가정을 꾸리고 뭣 하면 후손까지도...."



콰직 ㅡ!

"...?!!"

말의 마침표가 찍히기도 전에 과격한 소리가 내 입을 틀어막아 버린다.

"어...?"

예상치 못한 소리에 나도 모르게 당혹감을 드러내버렸고,

"아...." 

어째서인지 그건 아르시아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음.. 이런....."

"... 실수로 부숴버렸네.."

자신이 들고 있던 팬을... 깔끔히 아작내버린 아르시아.

"이건 이제 못쓰겠는걸?"

허나 그녀는 태평하게 팬을 책상에 내려놓으며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

나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지금 그녀는... 내가 봐오던 그 어느 때보다도 화나 있다는걸...

이유는 모른다.


어느 부분에서 그녀의 심기를 건드렸는진 알 수가 없다.

"하.. 하핫..."

허나 확실한건...

"그래... 그렇구나.. 바르곤....."

"후손이라..."

그녀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을 불편하게 여기고 있었다.


"바르곤은... 결혼 할 생각이 있어?"

마치 심장을 강타하듯 파고드는 그녀의 질문,


분명 평범한 어투였지만.... 난 그 안에 바늘이 끼어있다는걸 알고 있었다.

"어..... 언젠가는..?"

"일단 후손을 남기고 싶어하는게 생명체의 기본적인 본능이니까...."

하지만 나는 그런 불길함을 애써 모른척 하였다.

".... 그렇군."

그야... 어쩌면 단순한 기분탓일 수도 있으니까...

"알았어, 너가 그렇다면야.."

"방금의 이야기는 잊어줘."

실제로 그런 내 예상이 어느정돈 적중했는지, 험악했던 분위기는 한 순간에 쓸려 내려가듯 잠잠해졌다.

"... 진짜?"

"응.. 너가 가고 싶은 길이 있다는데, 내가 참견 할 권리는 없지."

"왕실 호위병은 아깝지만...  내가 포기하는 수 밖에."

방금의 살기는 어디간체, 평소 무뚝뚝한 얼굴로 대답한다.

"....."

혹시나 싶어..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지만 정말로 어떠한 악감정이나 불만 따윈 찾아 볼 수 없어 보였다.

"알았어.."

왠지 모르게 그녀에게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으윽.. 차, 잠시 바람 좀 쐬로 갈까나~?"

결국 서먹한 분위기를 참지 못하고, 기재기를 하는 척... 먼저 자리를 뜰려는데.

"있지, 바르곤."

대뜸 그녀가 말을 걸어오는 바람에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응, 어...?"

"너와 나는... 무슨 관계야?"

그리곤 뜬금 없이 자신의 대해서 질문을 던져온다.

"너랑 나..? 당연히.... '친구'지..? 생사를 함께 오갔던 절친한 친구."

"...'친구'...라"


그녀는 '친구'라는 단어를 한참이나 되새긴다.

"그렇지, 우리 둘은 친구..."

그리곤 부자연스러운 미소와 함께 나와의 관계를 다시금 확인하는데 ㅡ

"... 먼저 갈게..!"

결국 사막 한 가운데에 있는듯한 기분을 이기지 못하고 먼저 방을 뛰쳐나와 버렸다.




◇◇◇




"후....."

시간이 흘러, 늦은 밤.

결국 도망치듯 빠져나온 이후, 그녀를 다시 찾아가지 않았다.


"...."


뭐랄까... 혼자만의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은 왜인지 아르시아가 거북하기 느껴져서였다.

분명 모습 평소의 그대로다.

무뚝뚝하고 무감정하지만 동시에 둘끼리의 입버릇은 험한편인 친구.

하지만... 그것에서 베어나오는 분위기는 본능적으로 그녀를 멀리하게했다.

"..."

뭐였을까, 그 이질감은....

"으윽.. 하암..... 모르겠다......"

허나 머리는 길게 생각하는 원치않았고... 어둑한 밤에 맞춰, 의식이 심연 속으로 잠기길 바랬다.

"일단 한 숨 자고나서 생각해야지.."

그렇기에 침대에 몸을 맡기며... 잠을 청했고,

"....."

점점 가라 앉아가는 몽롱한 의식을 느끼며 정신의 끈을 서서히 놓아버린다.











.....











...

.. ㅡ

... 스윽...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 으음....... 응..?"

스윽... 스윽 ㅡ

무언가 내 몸을 누르는듯한 묵직함에 잠에서 깨어나게 된다.

".....?"


몽롱했던 의식은 점점 뚜렷해져갔고,

'ㄴ..  누구..?'

누군가 내 위에 올라타 있다는 느낌에 서서히 눈을 떠보는데 ㅡ

"아, 일어났구나?"

놀랍게도 그곳엔.. 아르시아가 있었다.

"...?! 아르 ㅡ"


나는 상상도 못한 전개에 당황해 하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철컥 !


"..?!"

손이 말을 듣질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내 손이 무언가에 결박되어 있었다.

"이개 뭔...!"

허나 이 광경을 보고 곧 바로 상황을이해 할 수 있었으니..

아르시아가 나를 결박했다.

단지 그런 생각만이 머릿 속을 멤돌았다.

"야, 너..! 이게 무슨 짓이야?!"

나는 다급한 외침으로 그녀에게 이유를 물었지만..


"......"


그녀는 내 질문을 무시한체, 한번 숨을 고르더니..

"무슨 짓이냐고?"


"당연히 너를 덮치러 왔지."


이내 나와 눈을 제대로 마주치며 황당한 이유를 내놓았다.

"ㅁ.. 뭣?!"

그 순간 머리가 멍 해지고 말았다.

그야... 그녀가 몰래 잠자리에 들어온 것도 당황스러운데....

그 이유마저 적나라했으니까.

"솔직히 말 할게... 널 놓치기 싫어."

하지만 나를 더욱 당황스럽게 만드는건 분노와 슬픈이 뒤섞인 목소리였다.

"나.. 날.. 놓치기 싫다고...?"

"그래... 사실 난 너가 좋아, 영원히 곁에 두고 싶을 만큼..."

"그야.. 불평 많고 예의도 없으며 매섭기만한 내게.. 친근하게 대해주고 따듯한 미소를 지어주는건 너가 유일하니까..."

그녀는 곧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너가 내 제안을 거절했을 때... 솔직히 절망스러웠어..."


동시에 목소리가 격해지기 시작하더니 ㅡ


"하지만 처음엔 인내하려했지...."


"그런데.... 이내 곧 너의 이야기를 들으며 최악의 상상을 하고 말았어."


"너를 떠나보내고.. 영영 다른 여자의 손에 넘어간다는 생각을 해버리니 참을 수가 없었던 거야."

"그것만은 싫어... 너가 다른 여자와 이어지는건 죽어도 싫다고!!"


이내 그 절정을 달리게 된다.

"그래서 결심했어."


"몸만이라도... 나의 것이라는 증거를 남기게 해줘."

아르시아는 아무런 거부감 없이 자신의 옷을 거둬낸다.

"이 육신과 그리고 너의 육신이.. 한 때 서로의 것이라는 것만..."

그리고 이내 내 옷도 벗기기 시작한다.

"아아..♡ 바르곤..."

"..?!"

선명한 감촉이 피부 끝에서 느껴지며 소름과 함께 가까스로 현실을 파악하게 된다.

"잠깐 아르시아!"


나는 버둥거리며 그녀에게 저항한다.

철컥철컥...!

하지만 내 손을 묶고 있는 구속구 탓에 헛 된 발버둥에 불과했다.

"괜찮아, 바르곤... 오늘 안전한 날이니까."

절박한 나와는 다르게 그녀는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내 몸을 손가락 끝으로 쓸어넘긴다.


"아윽..."

이상한 기분과 함께 느끼게된 본능적인 위협..

"제발.. 이러지마..."

"싫어."

간절하게 부탁해 보았지만... 그녀는 물러날 생각이 없어보였다.

"적어도 피임만큼이라도..."


그렇기에.. 최소한의 안정 장치라도 바랬지만...

"뭐?"

그녀는 내 말에 곧 바로 표정을 일그러뜨리더니,


"내가 왜 그런걸 해야 돼?"


마치 당연한 이치를 말하는 것 마냥 그것마저 거부해 버린다.


"뭐?!"

나는 그녀의 말에 눈살을 찌푸렸지만..


"너도 알다 싶이.. 엘프들은 워낙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종족인란걸 알잖아?"


"그리고 성교의 본례 목적은 자손을 낳기 위함이고,"


"그런데 지금 엘프인 나에게 그런 자연의 이치를 벗어나는 행위를 하라고?"


"제안은 고맙지만 정중히 거절할게."

그녀는 말을 듣고.. 결국 깨닫고 말았다.

그녀는... 논리가 어떠하든 애초부터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는걸 ㅡ



"자, 그럼...♡"

"하웁..."



그래서 결국 생으로 덮쳐지게 되었다..





"하아♡ 짜릿햇.. 기분 좋아...♡ 내가 바르곤의 여자가 되가고 있어....♡"

그래도....


"......윽"

그나마 안전일이라는 사실에 의존하며 뒷 일의 불안을 떨쳐내려 했지만...

"바르곤...♡








나는 몰랐다....



"아이 이름은 뭘로 할 거야?"




엘프들에게 있어 안전일은 '안전하게 임신을 할 수 있는 날'이었다는 것을...






결국 군붕이 허리 디스크로 수술 받고 입원했다...

줄라 아프네 썅...


얀붕이들은 아프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