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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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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 혁명
Sudanese Revolution | الثورة السودانية
Tasqut bas!
그냥 물러나라, 그게 다야!
기간
2018년 12월 19일 – 2019년 10월 10일[1]
지역
수단 전역
원인
오마르 알-바시르의 권위주의 독재
경제 위기, 인플레이션, 긴축 조치
종류
민주화 운동 → 혁명
결과
오마르 알-바시르 대통령 축출 및 구속
아흐메드 아와드 이븐 아우프 과도군사위원회 의장 축출
수단의 민주주의 전환 2019-2024 합의 성공
수단 과도주권위원회 설립
영향
수단의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 제외
서방의 수단 경제 지원 약속
오마르 알-바시르 정부 붕괴 및 적폐 청산
주요 세력
주요 세력
자유와 변화의 동맹

• 수단 혁명 전선
• 수단 직업 협회
• 국민 합의 동맹[2]
• 수단 저항 위원회
• 만삼 (수단 시민 및 정치 단체의 여성)
• 여성 억압에 반대
주요 인물
오마르 알-바시르
모하메드 타히르 아얄라
모타즈 무사이브라힘 알-셰이크
-
246명 사망 / 최소 1,200명 체포

1. 개요2. 타임라인
2.1. 혁명 발발2.2. 2019 수단 쿠데타2.3. 쿠데타 세력과 야권의 협상

1. 개요 [편집]

수단 혁명이란, 2018년 12월 19일부터 시작되어 2019년 10월 10일부로 마무리된 수단의 혁명으로, 바시르 정권을 축출함으로써 30여년의 굴욕을 이겨내고 '수단의 봄'을 만들어낼 줄 알았으나, 군부의 개입으로 수단의 겨울이 찾아오게 된 혁명이다.

2. 타임라인 [편집]

2.1. 혁명 발발 [편집]

본래 식료품 가격 인상 및 인플레이션으로 시작되었으나 시위가 경과하며 오마르 알-바시르 정권에 대한 무조건적인 퇴출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시위는 평화롭게 진행되었으나, 2019년 2월 22일 오마르 알-바시르 대통령이 비상사태를 선포한 이후로 시위에 대한 강경 대응을 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시위의 흐름은 4월부터 다시 재개되어 4월 6-7일 주말에는 비상사태 이후 이뤄지지 못했던 대규모 시위가 발발했고, 4월 중순부터는 군인들마저도 시위대를 보호하기에 이른다.

2.2. 2019 수단 쿠데타 [편집]

2019 수단 쿠데타
2019 Sudanese coup d'état | انقلاب 2019 في السودان
기간
2019년 4월 11일
지역
원인
수단 혁명
종류
쿠데타
결과
쿠데타 성공
오마르 알-바시르 대통령 축출 및 체포
아흐메드 아와드 이븐 아우프, 과도군사위원회 설립
• 수단 의회 해산 및 국가비상사태 선포, 헌법 효력 정지
영향
과도군사위원회에 대한 반정부 시위 발발
중국러시아의 대 북아프리카 영향력 감소
주요 세력
주요 세력
주요 인물
오마르 알-바시르
모하메드 타히르 아얄라
모타즈 무사이브라힘 알-셰이크
11명 사망

2019년 4월 11일 오마르 알-바시르가 끝내 아흐메드 아와드 이븐 아우프압델 파타 알-부르한 장군이 이끄는 수단 군부에 의해 축출당했다. 바시르는 이 사퇴 요구를 듣자 'OK'라며 시민이 보호되길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고. 축출 이후 수단 공화국의 테러 지원국 지정이 해제되었다.

수단 군부가 바시르의 집에서 거액의 현금이 든 가방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검찰은 바시르 前 대통령을 시위대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했다.

과도 정부의 수반은 아흐메드 아와드 이븐 아우프로 정해졌으나, 아흐메드 아와드 이븐 아우프가 오마르 알-바시르의 친인척이란 점이 문제가 되어 하루만에 강제로 사퇴당했다. 이후 과도군사위원회 의장으로 선출된 인물은 압델 파타 알-부르한.

2019년 6월 16일에 바시르 前 대통령은 돈세탁과 거액의 외화소지혐의 등으로 검찰에 출두했다. 국제형사재판소는 수단 측에 바시르의 신병을 인계하라고 촉구했다. 8월 19일에 바시르는 법정에 출두했고 경찰조사관은 심문에서 바시르가 사우디로부터 9천만 달러를 받은 점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비밀금고에서 거액을 돈다발을 쌓아놓고 뇌물 등으로 활용했다는 증언도 등장했다.

과도정부가 바시르의 소속 정당을 전면 해산시킨다고 밝혔다. 수단 법원은 12월 14일에 바시르에게 2년형을 선고했다. 단, 12월 14일의 선고는 위의 혐의들 중 가장 가벼운 혐의에 대한 결정으로 수단 공화국 현지에서는 바시르에 대한 재판이 모두 끝나려면 2020년 연말까지는 기다려야 되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2020년 7월 21일, 그를 집권하게 만든 쿠데타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었다. 약 20명의 군인이 쿠데타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8월 22일 압달라 함독 총리가 22일 전쟁범죄와 관련해 국제형사재판소에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바시르가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중형을 받을 경우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이후 최대 규모의 전범 재판이다.

10월 20일에 수단을 방문한 파투 벤수다 국제형사재판소 검사장은 바시르 전 대통령을 비롯한 다르푸르 대학살 용의자들을 더 이상 지체 없이 재판장에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결국 2021년에 수단 공화국 정부가 바시르의 신변을 국제형사재판소에 넘기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오마르 알-바시르는 수단의 한 교도소에 수감되어 전쟁 범죄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에 기소된 건 물론, 수단 내에서도 뇌물 수수 및 시위대 살인 혐의 등을 받고 있어, 최대 사형까지 선고 가능할 것으로 보여진다.

한편 오마르 알-바시르는 구속 이후에도 아프단 핑계로 병원에 입원해 병동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해맑게 웃고 있는 모습이 공개되며 수단 국민들이 또다시 격분하게 만들었다.

2.3. 쿠데타 세력과 야권의 협상 [편집]

압델 파타 알-부르한은 과도군사위원회를 조직해 정부를 꾸려가지만, 자유와 변화의 동맹 (FFC)은 민주 정부 구성을 위해 과도군사위원회의 해산을 요구하고, 여러 차례 TMC와 FFC의 협성이 진행되지만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그리고 군부와 협력하던 관계였던 신속지원군 (RSF)의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가 하르툼에 모여 있던 시위대를 대상으로 무자비한 대학살을 저지르고 만다. 신속지원군의 학살로 인해 128명 이상이 사망하고 650명 이상이 부상당했으며, 70명 가까이는 강간을 당하기도 했다.

학살 직후 인터넷이 끊겨버리며 수단은 대혼란에 빠져버리며, FFC는 이에 항의하며 6월 9일부터 시민 불복종을 하게 된다. 같은 해 12일 TMC가 구금해두던 반정부 인사를 석방하는 동시에 FFC는 시민 불복종을 중단하게 된다.

TMC와 FFC의 협상은 7월이 되어서야 성과를 내기 시작하는데, 두 세력은 간신히 합의에 성공해 TMC를 해체하고 수단 주권위원회를 설립하기로 결의한다. 또 두 세력은 2022년 선거가 치뤄질 때까지 하르툼 대학살 등 사법 사건에 대한 처리 및 국가 운영 권한을 공유하기로 합의한다.

그리고 FFC의 압달라 함독이 총리로 임명되고 압델 파타 알-부르한을 의장으로 하는 과도주권위원회가 창설되게 되며 수단 혁명은 마무리 되게 된다.
[1] 오마르 알-바시르 정권에 대한 시위는 10월 10일부로 종료되었지만, 민주주의 전환 절차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위는 현재도 지속되는 중.[2] 수단 공산당, 바트당 (수단), 인민회의당, 국가엄마당, 나세르 민주연합당, 통합 민주 연합당, 신세력민주운동 (HAG), 수단의회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