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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의 민주주의 전환 2019-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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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배경3. 타임라인
3.1. 2011-2013년: 아랍의 봄3.2. 2011년: 남수단 독립3.3. 2018-2019년: 수단 혁명3.4. 2019년: 1차 쿠데타3.5. 2021년: 쿠데타 미수3.6. 2021년: 2차 쿠데타3.7. 2023년: 수단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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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수단의 민주주의 전환 과정으로, 해당 문서는 오마르 알-바시르 정권 전복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수단 정치사를 통틀어 다룬다.

2. 배경 [편집]

2.1. 오마르 알-바시르의 공포정치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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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다르푸르 학살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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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수단-남수단 전쟁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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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제1차 수단 내전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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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제2차 수단 내전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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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타임라인 [편집]

3.1. 2011-2013년: 아랍의 봄 [편집]

2011년 1월 30일, 하르툼에서 첫 아랍의 봄 시위가 발발했다. 하지만 알-바시르 정권은 시위대를 강경 진압했고, 수십 명의 시위대가 체포됐다. 그리고 같은 날 알-오베이드에서도 약 500명의 시민이 '정부에 반대하고 시장 변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경찰은 최루탄을 사용해 시위를 강제 해산시켰다.

2월 1일, 약 200명의 학생들이 하르툼 알-닐라인 대학교 앞에서 시위를 벌였고, 3월 21일에도 추가 시위를 벌였다. 11월 1일, 수백명의 시위대가 동부 카살라 마을에서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12월 21일, 포트수단의 홍해 대학교 앞에서 학생들이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이날 밤에 체포당한 다르푸르 학생 운동가들에 대한 석방을 요구했고, 혁명을 촉구했으며, 수단 혁명 전선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12월 22일, 하르툼 대학에서 메로웨 댐 건설로 인한 마나시르 주민들 이주에 반대하는 700명 규모의 시위가 벌어졌으나, 보안군이 대학을 습격해 학생들을 강제로 해산시키면서 20명이 부상을 입었고, 최소 4명이 체포됐다. 12월 24일에는 약 16,000명의 학생들이 경찰, 대학 행정부, 연방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 대학에서 농성을 시도했지만 최루탄을 발사하고 구타를 가한 진압 경찰에 의해 해산 당했다.

수단 정부가 다르푸리 반군 JEM과 수단 인민당 사이의 전투에서 반군 지도자 칼릴 이브라힘의 사망을 발표한 지 며칠 후인 12월 28일, 하르툼에 있는 수단 과학기술대학교에서 이브라힘의 학생 지지자들과 군대 간의 분쟁이 벌어졌다. 이 결과 12명이 부상을 입었다.

2012년 6월 16일 저녁에는 하르툼 대학교의 여학생 수백 명이 중앙 캠퍼스 호스텔 주변에서 평화롭게 시위를 벌였는데, 시위대는 수단의 물가 상승과 경제 문제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다음 날 학생들은 긴축 조치를 비판하며 거리로 나섰다.

하지만 경찰은 최루탄과 봉을 사용해 시위를 진압했고, 6월 20일 긴축 문제로 인해 다시 시위대와 군대 간의 충돌이 벌어졌다. 그리고 시위대의 구호는 긴축 반대에서 정권 전복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6월 22일에는 지역 곳곳에서 시위가 벌어졌는데, 사복 경찰이 시위대를 공격하기도 했다. 6월 27일에는 다시 긴축 조치에 반대하고 정권 교체를 외치는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6월 29일에는 약 2,000명의 시위대가 수도에 모여 반정부 시위를 벌였는데, 수백 명의 경찰과 보안군이 최루탄을 이용해 시위대를 공격했으며, 이로 인한 사망자까지 발생했다.

7월 6일 옴두르만의 와드 누바위(Wad Nubawi)에 있는 알 안사르(Al Ansar) 사원에서 3,000~4,000명이 시위를 벌였는데, 보안군과 경찰은 금요일 기도가 끝나기 전에 알 안사르 모스크로 이어지는 도로를 막고 안뜰을 포위했다. 오후 중반 시위가 시작된 후 하르툼 대학교 학생들이 소리를 지르고 돌을 던지는 동안 보안군은 또다시 최루탄을 발사했다. 이틀 후, 수단 경찰은 옴두르만의 이맘 압델 라만 모스크를 포위했고, 정오 기도 후 약 300명의 숭배자들이 시위를 시작하자 최루탄을 발사했다. 경찰은 곤봉을 사용해 예배자들을 모스크 안으로 몰아넣었고, 그곳에서 그들은 한 시간 이상 항의를 이어갔다. 7월 16일, 300명 이상의 수단 변호사들이 월요일 하르툼 주 법정 밖에서 지난 금요일 평화 시위 동안 정부의 폭력 사용과 자의적 구금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7월 31일, 학생으로 구성된 1,000명 이상의 시위대가 화요일 니알라 시장 지역에서 경찰에게 돌을 던지고 타이어를 불태우고 도로를 막았다. 하지만 경찰이 강력한 최루탄과 실탄을 발사해 시위대 12명이 사망하고 50명 이상이 부상 당했으며 피해자 시신 중 9구가 니알라 병원에 인계됐다. 그러나 당국은 앞선 주장과 달리 8명이 사망했다고 밝혔고, 남다르푸르 주지사는 단지 6명의 시위대가 사망했다고 밝혔다. 몇 주간의 시위는 이후 대규모 보안 단속으로 마무리 되었고, 이 과정에서 ​​2,000명 이상이 체포되었다.

2013년 9월 23일부터 10월 4일까지 수단 전역에서 또다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그리고 예상대로 알-바시르 정권은 시위대를 최루탄, 몽둥이는 물론이고 실탄까지 동원해 강경진압해서 200명 이상의 시민이 목숨을 잃었고, 2,000여명이 체포됐다.

그리고 일부 시민들은 피해자들의 공동 장례식을 치뤘는데, 이들은 시신을 실은 구급차를 호위하고 “자유, 자유” “살인자 바시르 타도” 등의 구호를 외치며 거리행진을 벌였다. 하지만 수단 군과 경찰은 장례식을 치르고 행진하던 시위대를 향해 다시 총을 난사해 최소 33명, 최대 2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3.2. 2011년: 남수단 독립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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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2018-2019년: 수단 혁명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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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2019년: 1차 쿠데타 [편집]

그리고 4월 11일, 아흐메드 아와드 이븐 아우프압델 파타 알-부르한을 대표로 하는 수단 국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바시르를 축출하기에 이른다.

아흐메드 아와드 이븐 아우프와 부르한은 과도군사위원회 (TMC)를 조직해 수단의 정부를 대체했고, 수단 의회 해산과 국가비상사태 선포, 헌법 효력 정지 등을 통해 바시르 정권을 완전히 붕괴시키며 집권했다.

그러나 점차 대중들 사이에서 이들에 대한 불신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특히 아와드 아우프에 대해서는 바시르 정권에서 제1부통령과 국방부장권을 역임한 점, 바시르를 국제형사재판소로 인도하는 걸 거부한 점 때문에 '바시르 정권 시절 꿀 빨 건 다 빨아놓고 이제 와서?'라는 비판이 쏟아지며 계속해서 반정부 시위가 이어졌다. 그 결과 아와드 아우프는 과도군사위원회 의장직을 사임하고, 부르한 장군이 그 뒤를 잇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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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2021년: 쿠데타 미수 [편집]

2021년 9월, 오마르 알-바시르가 일부 충성파들과 군부대를 이용해 재집권을 시도했다. 이들은 옴두르만 주에서 수단 주권위원회를 상대로 교전을 치뤘고, 이후 국영 언론사를 장악하고자 했으나 끝내 저지하며 실패했다. 이 때문에 최소 40여명의 경찰관이 체포되었고, 쿠데타 시도에 가담한 다수의 군부대가 조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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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2021년: 2차 쿠데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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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2023년: 수단 전쟁 [편집]

사실 이번 수단 전쟁오마르 알-바시르신속지원군을 창설해 수단군과 신속지원군을 갈라치다가 발생한 일이다. 수단의 문제를 꼽아보면 10에 9은 이 인간 책임.

그런데 갑자기 오마르 알-바시르가 자취를 감췄다. 현재까지 행방불명 상태인데, 수단 정부군 측은 신속지원군이 알-바시르를 풀어줄 것을 우려해 알-바시르를 쿠데타 직전 확보해서 군 병원에 구금하고 있다고 밝혔고, 신속지원군 측은 수단 정부의 배후가 알-바시르인 탓에 내전을 이용해 알-바시르를 풀어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어째 정부군 반군 양측 모두 알-바시르와 상대편이 내통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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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관련 문서 [편집]

5. 둘러보기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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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개 및 현황








2011 지부티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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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바레인 시위


2011–2012 쿠웨이트 시위

2011–2012 모로코 시위

2011–2013 모리타니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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