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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하메드 울드 압델 아지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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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하메드 울드 압델 아지즈
محمد ولد عبد العزي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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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평가
3.1. 긍정적인 평가3.2. 부정적인 평가
4. 비판
4.1. 부패 의혹
5. 여담6. 관련 문서7. 둘러보기

1. 개요 [편집]

모하메드 울드 압델 아지즈
Mohamed Ould Abdel Aziz
모리타니의 전직 군인이자 군사 정권 지도자. 11년간 모리타니를 통치했으며, 2019년 모하메드 울드 가주아니에게 정권을 이양했다. 소속 정당은 공화국을 위한 연합.

2. 상세 [편집]

본래 직업 군인 출신이었으나, 2005년 8월 엘리 울드 모하메드 발과 함께 쿠데타를 일으켜 친미 정책과 아랍 민족주의 정책을 펼치던 마우야 울드 시드아메드 타야 대통령을 축출했다. 타야 전 대통령은 쿠데타로 집권해 이스라엘과 수교를 맺고 친미 정책을 펼치며 반이스라엘 모리타니인들에게 반감을 샀는데, 그 반감을 이용해 모하메드 발이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었다.

미국UN 등 국제 사회는 이들의 쿠데타를 비판하는 듯 보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새 군사 정부를 인정했고, 새 군사 정권도 쿠데타 명분과는 달리 친미 정책을 유지하며 이들과 공존에 나섰다. 이후 엘리 울드 모하메드 발은 대통령직에는 '선거로 선출된 이에게만 주어져야 한다'라며 대통령직에 취임하지 않았고, 2년간 임시 군사 지도자로 집권하다가 다시 민정에 정권을 이양했다.

이후로는 시디 울드 셰이크 압달라히 대통령이 집권했는데, 압델 아지즈는 압달라히 정권에 내심 불만을 품었고, 이에 2008년 다시 쿠데타를 일으키며 본인이 직접 정권을 탈취했다. 그러나 2005년 쿠데타와 달리 2008년 쿠데타에서는 프랑스를 비롯한 서방 세력이 즉각 적대적인 반응을 취했고, 미국아프리카 연합은 즉각 제재를 가했다.

압델 아지즈는 자신은 정권을 '강제적으로' 장악했지만 권력에 대한 열망은 갖고 있지 않다며 머지 않아 민정에 정권을 이양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의 주장과는 달리 이미 대통령실 직원들에 의해 "대통령"이라고 호칭된다는 사실이 폭로되기도 했다.

테러와의 전쟁 이후로는 말리알제리, 니제르의 지도자들과 만나 알-카에다 등 지하디스트들에 대한 대책을 갈구했다. 또한 압델 아지즈 장군은 '극단주의를 물리치는 것이 자신의 목표 중 하나'라며 알-카에다에 대한 강경한 대응을 약속했다. 그 결과 미국은 압델 아지즈를 공식적으로 제재했음에도 불구하고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 자금을 지원하며 또다시 모리타니에서의 쿠데타를 용인하게 된다.

2009년 압델 아지즈 군정은 6월 9일에 '자유롭고 공정한 대통령 선거'를 실시하겠다고 약속했으나, 모리타니 국영 언론이 압델 아지즈가 선거에 출마할 것이라고 보도하며 선거가 제대로 치뤄질지 의구심이 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끝내 그는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임시적으로 국가원수직에서 물러나 바 마마두 엠바레에게 임시적으로 정권을 넘겼고, 2009년 대선에서 군복을 벗고 당선되며 공식적으로 모리타니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4년 재선에 출마해 비람 다 아베이드를 제치고 승리했다. 선거 이후 야권은 선거 결과에 대해 보이콧을 선언했으나, 아프리카 연합은 선거가 비교적 평화롭게 이뤄졌다며 칭찬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2011년부터 모리타니에서 아랍의 봄이 발생했으나, 얼마 못 가서 강경 진압 당했고, 소규모의 시위가 2013년까지 이어지다가 별 다른 반향을 일어내지 못하고 종결되었다.

서방 진영은 압델 아지즈 정권을 '아군'으로 인식해 예멘 혁명 때처럼 모리타니 내의 반정부 시위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그 결과 모리타니 시위는 국제사회에 별다른 반향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그대로 묻혔다.

2012년 10월 13일, 총에 맞아 부상을 당했으나, 경미한 부상으로 알려졌고, 얼마 뒤 회복해 대통령직에 복귀했다.

2012년 12월 압델 아지즈 정권은 최초로 개인 소유의 TV 방송국을 허용했다. 또한 증오, 인종 차별, 또는 폭력적인 발언을 단속하는 법을 채택했다.

그러나 모리타니 사회 문제의 핵심과도 같은 노예제 문제에 대해서는 '1981년 이후 모리타니에 노예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무관심한 반응을 보이다, 2013년 3월 노예제 퇴치 기관을 설립했다.

하지만 2013년 10월 16일에 호주 인권단체가 발표한 '세계 노예 지수'에서 100점 만점에 97.90점이라는 점수를 받아 세계 1위의 노예제 국가로 등극했다.[1] 다른 사이트에서도 66.41점으로 66.08점의 아이티보다 높은 1위를 차지했다.

이후 모리타니 정부의 공식적인 노예폐지에 대한 영향으로 위의 globalslaveryindex 사이트 2018년 리포트 기준으로 노예는 9만여명, 노예지수 62점으로 세계 6위로 내려왔다. 참고로 1위는 264만명 추정, 노예지수 73.3점으로 북한이 차지했다.

그러다 2019년 불출마를 선언하고 모하메드 울드 가주아니 당선인에게 정권을 이양했다. 이는 모리타니 역사상 최초의 평화적 정권 이양으로 꼽힌다.

3. 평가 [편집]

3.1. 긍정적인 평가 [편집]

  • 의외로 공정하게 치룬 선거

3.2. 부정적인 평가 [편집]

  • 쿠데타를 통한 비민주적인 집권
  • 바 마마두 엠바레를 위시한 꼼수 출마
  • 부패 의혹
  • 노예제에 대한 소극적인 대처

4. 비판 [편집]

4.1. 부패 의혹 [편집]

2021년 3월, 압델 아지즈와 그의 사위 중 한 명, 그리고 전직 총리를 포함한 그의 측근 10여명이 부패 혐의로 기소당했고, 그는 가택연금당했다. 압델 아지즈 측은 재판 중 판사의 질문에 대답하기를 거부했다. 그리고 같은 해 6월 23일, 익명을 요구한 한 검사와 지브릴 오울드 빌랄 대변인은 판사가 압델 아지즈가 경찰과의 협조를 거부한 후 압델 아지즈를 가택 연금에서 감옥으로 이송시켰다고 밝혔다.

12월 29일, 압델 아지즈는 누악쇼트 군 병원에 입원해 심장 수술을 받았다. 그의 변호사에 따르면 압델 아지즈는 병에 걸려 코피를 흘리기도 했는데, 압델 아지즈 측은 이것이 부패 스캔들의 결과라고 주장하며 압델 아지즈를 상대로 한 우덜식 적폐청산이 두렵다며 투병 중인 그를 정치적으로 사면할 것을 요구했다.

5. 여담 [편집]

  • 체형이 상납이두창이를 가볍게 능가할 정도로 후덕하다. 집권 전만 해도 이 정도로 심하지는 않았었는데, 집권 이후로 급격하게 살이 찌기 시작했다.

6. 관련 문서 [편집]

7. 둘러보기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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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개 및 현황








2011 지부티 시위


2011–2012 팔레스타인 시위 | 파타 | 하마스


2011 바레인 시위


2011–2012 쿠웨이트 시위

2011–2012 모로코 시위

2011–2013 모리타니 시위


여파

문화적 영향
[1] 2위인 아이티는 52.26점으로 바로 다음 등수와 무려 45.64점이나 차이가 난다. 2013년까지 집계된 국가 총 인구 약 380만 명의 4.1%인 15만 명이 노예 상태에 신분까지 세습되는 상태에 있다고 한다. 종교 탓을 했지만 정작 해당 지수 상위 20위 안에 드는 아랍연맹 국가는 모리타니 하나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