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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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의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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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통합 합당 대회 이후부터[B] 2.1 2.2 2.3 2.4 2.5 2.6 2.7 새로운미래로 이탈[C] 구 개혁신당 지명[D] 새로운미래 지명[E] 새로운선택 지명[F] 원칙과 상식 지명
프로필 | |||||||||||||||||||||||||||
출생 | 1985년 3월 31일 (39세) | ||||||||||||||||||||||||||
거주지 | |||||||||||||||||||||||||||
소속 정당 | |||||||||||||||||||||||||||
파벌 | 이준석계 (수장) | ||||||||||||||||||||||||||
현직 | 개혁신당 대표 22대 국회의원 당선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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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기 전에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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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요 [편집]
준스톤 (李俊錫)이란, 대한민국의 자유보수주의 성향 정치인으로, 제1야당 국민의힘의 0선 초대 당대표이자 선거의 신이다. 소속 정당은 개혁신당.
국민의힘 초대 전당대회에서 압승을 거두며 국민의힘 당대표로 여의도에 입성하였고, 대선과 지선을 승리로 이끌어 윤석열 정부 개국공신이 되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당을 테라포밍하려던 윤석열이 윤핵관들을 동원해 성상납 의혹을 만들어 쿠데타를 시도하였고, 결국 이들에 의해 우주로 추방당했다.
축출 이후에는 전당대회에 천아용인을 보내 제기하고자 했으나, 친윤 세력의 압도적인 화력으로 인해 불발되었고, 정치 평론가 1로 전락할 위기를 겪게 된다. 그 뒤 이준석은 2023년-2024년 제3지대론에 뛰어들어 개혁신당 창당을 시도하였고, 천아용인[14]을 비롯한 일부 측근들과 국민의힘을 탈당해 개혁신당을 창당했다. 그리고 양향자의 한국의희망과 합당해 다시 원내 정당 대표로 돌아왔다.
하지만 2024년 제3지대 통합이란 최악의 결정을 내리며 정치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그리고 예상대로 이낙연, 김종민이 이준석의 노선에 제동을 걸으며 반윤 반찢만을 내세운 위장 결혼은 11일만에 파토나게 되었다.
새로운미래와의 합당 파토 이후 이준석은 이원욱의 화성시 을 출마를 선언했고, 제22대 총선에서 기호 7번을 달고 출마했다. 화성시 을은 민주당 텃밭으로 불리는 지역구로, 이번에 이준석이 죽으러 간다는 평가가 많았고, 실제로도 처음 공영운 더불어민주당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는 20%였다. 하지만 선거 결과 이변을 일으키며 4번의 도전 끝에 드디어 국회에 들어오는데 성공했다.
그저 G O A T
국민의힘 초대 전당대회에서 압승을 거두며 국민의힘 당대표로 여의도에 입성하였고, 대선과 지선을 승리로 이끌어 윤석열 정부 개국공신이 되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당을 테라포밍하려던 윤석열이 윤핵관들을 동원해 성상납 의혹을 만들어 쿠데타를 시도하였고, 결국 이들에 의해 우주로 추방당했다.
축출 이후에는 전당대회에 천아용인을 보내 제기하고자 했으나, 친윤 세력의 압도적인 화력으로 인해 불발되었고, 정치 평론가 1로 전락할 위기를 겪게 된다. 그 뒤 이준석은 2023년-2024년 제3지대론에 뛰어들어 개혁신당 창당을 시도하였고, 천아용인[14]을 비롯한 일부 측근들과 국민의힘을 탈당해 개혁신당을 창당했다. 그리고 양향자의 한국의희망과 합당해 다시 원내 정당 대표로 돌아왔다.
하지만 2024년 제3지대 통합이란 최악의 결정을 내리며 정치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그리고 예상대로 이낙연, 김종민이 이준석의 노선에 제동을 걸으며 반윤 반찢만을 내세운 위장 결혼은 11일만에 파토나게 되었다.
새로운미래와의 합당 파토 이후 이준석은 이원욱의 화성시 을 출마를 선언했고, 제22대 총선에서 기호 7번을 달고 출마했다. 화성시 을은 민주당 텃밭으로 불리는 지역구로, 이번에 이준석이 죽으러 간다는 평가가 많았고, 실제로도 처음 공영운 더불어민주당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는 20%였다. 하지만 선거 결과 이변을 일으키며 4번의 도전 끝에 드디어 국회에 들어오는데 성공했다.
그저 G O A T
3. 상세 [편집]
“그냥 딱합니다.” |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의 대표 교사로서 활동하다 2011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에 의해 정계에 입문하였다.[15] 2016년 20대 총선, 2018년 2018년 재보궐선거, 2020년 21대 총선에서 모두 노원구 병에 각각 새누리당, 바른미래당, 미래통합당의 당적을 가지고 출마하였고 20대 총선에서는 안철수, 재보궐과 21대 총선에서는 김성환에게 3번 연속으로 낙선의 고배를 마셨으나 그 과정에서 지상파와 종편 방송에 출연하여 인지도를 높여 나갔다.
그러다 국민의힘 제1차 전당대회에 참가해 30대의 나이로 제1야당의 당대표가 되어[16] 이른바 "이준석 돌풍"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다.
이후 제20대 대통령 선거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을 총지휘하며 국민의힘의 압승을 가져왔다. 그러나 틀튜버들의 음해로 인해 성상납 의혹을 받게 되었고, 끝내 증거인멸을 교사한 혐의를 받아 "품위유지 의무 위반"이란 이유[17]로 당원권을 정지당해 전국을 방랑하고 있다.
그러다 '절대자'를 중심으로 한 구태들이 친위 쿠데타를 일으켰으며, 대표직을 강제로 박탈당할 위기에 처하자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가처분 신청을 내게 된다.
최종적으로는 정진석 등을 비롯한 절대자의 하수인들에 의해 당대표직에서 축출당했고, 친윤의 압박으로 인해 이준석 지도부도 공중분해 당했다. 그리고 10월 7일, 국민의힘 굥리위는 가처분 신청과 '양구두육' 드립을 명분으로 당원권 정지 기간을 1년 연장해 총 1년 6개월 동안 당원권이 정지당하게 되었다.
이후 2024년 제3지대 통합을 만들며 당상납을 만들어냈다.
그 뒤 콧노래나 눈누난나 부르다가 새로운미래가 이탈하고 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근데 이젠 우주 화성 아닌 경기도 화성 출마를 준비하느라 당 관리를 못하고 있고, 그 사이 금태섭의 새로운선택이 제대로 분탕질을 하고 있다. 합당 왜 했냐고 진짜
그러나 22대 총선에서 화성을의 민주당세를 뚫고 대역전극을 만들어내며 오랜 마삼중 오명을 벗고 초선 국회의원 타이틀을 달게 되었다.
사전에 오랫동안 표밭을 다지며 연고를 형성한 곳이 아니었고, 선거운동 기간 내내 큰 격차로 2위에 그친 모든 여론조사는 물론 3~4%p차 경합열세로 집계된 출구조사를 본선 한 번에 뒤집었으며, 당세가 미약한 제3정당 후보로서 거대 양당 후보들과 정면으로 겨뤄 인물론으로 단번에 승리한 기록을 세우며 22대 총선 최대의 이변으로 기록되었다.
그러다 국민의힘 제1차 전당대회에 참가해 30대의 나이로 제1야당의 당대표가 되어[16] 이른바 "이준석 돌풍"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다.
이후 제20대 대통령 선거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을 총지휘하며 국민의힘의 압승을 가져왔다. 그러나 틀튜버들의 음해로 인해 성상납 의혹을 받게 되었고, 끝내 증거인멸을 교사한 혐의를 받아 "품위유지 의무 위반"이란 이유[17]로 당원권을 정지당해 전국을 방랑하고 있다.
그러다 '절대자'를 중심으로 한 구태들이 친위 쿠데타를 일으켰으며, 대표직을 강제로 박탈당할 위기에 처하자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가처분 신청을 내게 된다.
최종적으로는 정진석 등을 비롯한 절대자의 하수인들에 의해 당대표직에서 축출당했고, 친윤의 압박으로 인해 이준석 지도부도 공중분해 당했다. 그리고 10월 7일, 국민의힘 굥리위는 가처분 신청과 '양구두육' 드립을 명분으로 당원권 정지 기간을 1년 연장해 총 1년 6개월 동안 당원권이 정지당하게 되었다.
이후 2024년 제3지대 통합을 만들며 당상납을 만들어냈다.
그 뒤 콧노래나 눈누난나 부르다가 새로운미래가 이탈하고 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근데 이젠 우주 화성 아닌 경기도 화성 출마를 준비하느라 당 관리를 못하고 있고, 그 사이 금태섭의 새로운선택이 제대로 분탕질을 하고 있다. 합당 왜 했냐고 진짜
그러나 22대 총선에서 화성을의 민주당세를 뚫고 대역전극을 만들어내며 오랜 마삼중 오명을 벗고 초선 국회의원 타이틀을 달게 되었다.
사전에 오랫동안 표밭을 다지며 연고를 형성한 곳이 아니었고, 선거운동 기간 내내 큰 격차로 2위에 그친 모든 여론조사는 물론 3~4%p차 경합열세로 집계된 출구조사를 본선 한 번에 뒤집었으며, 당세가 미약한 제3정당 후보로서 거대 양당 후보들과 정면으로 겨뤄 인물론으로 단번에 승리한 기록을 세우며 22대 총선 최대의 이변으로 기록되었다.
3.1. 신체 [편집]
“저탄수 고지방 다이어트를 실천 중입니다.” 돼준스기, 어차피 다 들킬 구라를 치며 |
과거에는 별 달리 두드러지는 특징은 없었으나, 20대 대선을 기점으로 살이 급격하게 쪄버려 급기야 개준스기에서 돼준스기로 진화해버렸다. 본인 말로는 목이 상한 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스테로이드를 복용한 후유증으로 살이 찐 것이라고.
과거 프로필상 신장은 174cm, 몸무게는 70kg, 혈액형은 AB형이지만, 아무리 봐도 174에 70에서 이 체형이 나올 수는 없기에 실제로는 20에서 30kg 정도 더 나갈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여담으로 점점 김정은과 닮아가고 있다.
과거 프로필상 신장은 174cm, 몸무게는 70kg, 혈액형은 AB형이지만, 아무리 봐도 174에 70에서 이 체형이 나올 수는 없기에 실제로는 20에서 30kg 정도 더 나갈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여담으로 점점 김정은과 닮아가고 있다.
3.2. 성격 [편집]
“한 대 맞으면 두 대 돌려주는 성격” |
4. 일생 [편집]
자세한 내용은 이준석/일생 문서 참고하십시오.
4.1. 국민의힘 제1차 전당대회 [편집]
4.2. 국민의힘 대표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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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말하는 변화에 대한 이 거친 생각들, 그걸 바라보는 전통적 당원들의 불안한 눈빛,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국민들에게 우리의 변화에 대한 도전은 전쟁과도 같은 치열함으로 비춰질 것이고, 이 변화를 통해 우리는 바뀌어서 승리할 것입니다.” 국민의힘 당대표 취임 연설 中 |
자세한 내용은 이준석/국민의힘 대표 문서 참고하십시오.
4.3. 성상납 누명과 징계 [편집]
4.4. 개혁신당 창당 [편집]
자세한 내용은 개혁신당 문서 참고하십시오.
4.4.1. 2024년 제3지대 통합 [편집]
자세한 내용은 2024년 제3지대 통합 문서 참고하십시오.
4.4.2. 22대 국회 [편집]
더불어민주당 굥영윤과 국민의힘 한정민을 꺾고 이원욱의 뒤를 이을 화성시 을의 22대 국회의원이 되었다.
본래 지지율이 20% 격차로 벌어지고 있었는데, 출구 조사 직전 9% 차이까지 좁혔고, 당일에는 모두의 예상을 꺾고 인물론만으로 민주당세를 이겨내는데 성공하며 드디어 오랫동안 이준석을 괴롭혀왔던 마삼중 타이틀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했다.
마삼중 타이틀을 벗은 건 물론 이번 선거를 통해 인물론 하나 만으로 상대 후보와 지지율 격차가 2배나 나던 민주당 텃밭을 가볍게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민주당의 총선 승리를 찝찝하게 만들어버렸고, 어떤 지역구든 방심할 수 없다는 공포 의식까지 만들어냈다. 총선 직후 언론이 이준석 얘기만 떠들어 대는 것도 이 때문이며, 이준석은 여기서 윤석열의 임기가 3년 남은 것이 "확실합니까?"라고 되물으며 민주당과 조혁당의 선명한 야권 이미지도 가져가 버렸다.
대 준 석
5. 정치적 성향 [편집]
“국가는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플랫폼” |
보수자유주의 성향의 정치인.
저서에서부터 알 수 있듯 “경쟁”, 그것도 “공정한 경쟁”을 강조하는 정치인이다. 국가의 역할에 대해서도 이런 경쟁에서 기회의 평등을 만드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런 점은 당에서의 공천과 경선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이준석과 가까웠던 유승민이 이준석 대표 시기 때만 경선에서 두번 떨어진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특히나 적극적인 자유민주주의자로, 홍콩 민주화 운동 참여, 우크라이나 지지 및 젤렌스키 우크라 대통령과의 회동 등의 행보를 보여주기도 했다.
대북관은 유승민 이상으로 강경한 편.
저서에서부터 알 수 있듯 “경쟁”, 그것도 “공정한 경쟁”을 강조하는 정치인이다. 국가의 역할에 대해서도 이런 경쟁에서 기회의 평등을 만드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런 점은 당에서의 공천과 경선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이준석과 가까웠던 유승민이 이준석 대표 시기 때만 경선에서 두번 떨어진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특히나 적극적인 자유민주주의자로, 홍콩 민주화 운동 참여, 우크라이나 지지 및 젤렌스키 우크라 대통령과의 회동 등의 행보를 보여주기도 했다.
대북관은 유승민 이상으로 강경한 편.
6. 목적 및 사상 [편집]
“이준석은 합리적인 보수의 가치와 미래의 지향점을 ‘공정한 경쟁’으로 요약한다. 청년정치의 핵심을 경험과 연륜에 두지 않고 ‘실력과 실력주의’에 맞출 뿐만 아니라 그것이 시대정신이라고 주장한다. 젊은 세대가 정치의 주역이 되기 위해서는 산업화 세대가 이룩해 놓은 경제 발전의 영광과 민주화 세대가 이끈 민주주의의 숭고함을 뛰어넘을 새로운 거대한 아젠다가 필요한데, 그것을 ‘공정 사회’로 보고 ‘공정한 경쟁’이 그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서 ‘공정한 경쟁’ 소개문 中 |
7. 이준석계 [편집]
자세한 내용은 이준석계 문서 참고하십시오.
8. 평가 [편집]
자세한 내용은 이준석/평가 문서 참고하십시오.
9. 비판 [편집]
자세한 내용은 이준석/비판 문서 참고하십시오.
10. 사건사고 [편집]
자세한 내용은 이준석/사건사고 문서 참고하십시오.
11. 여담 [편집]
- 정말 안 믿기지만 현재 여친이 있는 상태라고 한다.
- 철덕이다. 정치 입문 초기에 트위터에 인증했고, 선거 홍보물에서도 대놓고 어릴적 꿈이 철도 기관사였다며 철덕임을 대놓고 드러내고 있다.
- 은근히 밀덕이기도 하다. 유용원의 군사세계 초대멤버라고 하며 현재도 연말 모임에 꾸준히 초대를 받는다고 한다.
- 야구도 은근히 좋아한다.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삼성 라이온즈의 팬이라고. 야구와 정치 중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정치를 버리겠다고 페이스북에 쓸 정도다. 가장 좋아하는 야구선수는 한때 삼성 라이온즈의 프랜차이즈 에이스 투수였던 배영수라고 한다.
- 하버드 대학교 재학 시절, 페이스북 개설 이메일을 받은 사람 중 한 명이다. 페이스북 초창기 개발자들인 더스틴 모스코비츠, 앤드류 맥컬럼에게 답장으로 “한국엔 싸이월드가 있다고. 너희들이 망할 거야.”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페북이 잘 되고 싸이월드는 완벽하게 운지해버렸다. 이후 스타 강의쇼에서 밝히길 본인은 이를 후회하고 있다고.
- 2011년, 한창 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건이 쟁점화되던 시절 털보에게 문자로 ‘이준석입니다. 디도스 조사 함께 하시죠.’라고 디도스 대책 위원회에 들어와달라고 요청하자, 당시 한나라당 비대위원 이준석을 몰랐던 털보는 걍 일반인이 보낸 것으로 생각해 구구절절 설명해가며 거절 답장을 보냈는데 나중에 디도스 공동 조사 제안을 거절했다는 식의 기사가 나오고서야 털보는 그때 연락한 사람이 한나라당 비대위원인 것을 알았다고 한다. 털보의 뉴욕 타임스 당시 정치 신인이었던 이준석이 문자로 자기소개 없이 그냥 ‘이준석입니다’라고만 보내서 김어준이 기사가 터지고 난 뒤, “이름만 보내면 내가 누군지 어떻게 아냐고!”라며 분개했다고 한다.
- 자신의 명문대 이력이 너무 좋다며 100억을 줘도 바꾸지 않겠다고까지 이야기한 적이 있다. 예전에 가르치던 아이들이 말을 안 들어서, 아이들의 부모님께 전화해서 힘들다고 얘기하던 도중에, 하버드 대학교 출신이라고 밝히자 오히려 학부모님들이 아이들을 혼내는 걸 본 경험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배우 김수현과 얼굴을 바꾸겠냐는 질문에는 바꾸겠다고 대답했다. 다만, 자신의 학력에 대한 자신감과는 별개로 본인 학벌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12. 어록 [편집]
이게 만약 현실이었다고 생각해보세요. 당신이 해고되면 우리 전부가 살 수 있다는 말에 누가 동의해주겠어요?
시즌 1노원병에서 느낀 건 아름다운 패배가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거야.
“대한민국 시민 여러분, 여러분 모두를 미래의 정치로 초대하겠습니다.”
지구를 떠야지.
아, 살이 빠진다.
무운을 빕니다.
^_^ 그렇다면 여기까지 입니다
밥이 넘어가냐고요 이 새끼가
잘했어 라이코스
제가 흑화하지 않도록 만들어주십시오
'상계동 마포참숯갈비 선언'이라고 위키 한 자락에 기록될 수 있도록
천.찍.짜.지
여러분 세상은 키보드 밖에 있어요
ㄹㅇㅋㅋ만 치세요
내가 대구 나가는건요 국힘 니네 박살내려고 나가는 거예요
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나 감당할 수 없는 방향으로 달리면 되지
13. 선거 경력 [편집]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기호 1번, 새누리당, 노원구 병
득표수: 32,285
득표율: 31.32%
결과: 2위로 낙선
2018년 재보궐선거
기호 3번, 바른미래당, 노원구 병
득표수: 25,001
득표율: 27,23%
결과: 2위로 낙선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기호 2번, 미래통합당, 노원구 병
득표수: 46,373
득표율: 44.36%
결과: 2위로 낙선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기호 7번, 개혁신당, 화성시 을
득표수: 51,856
득표율: 42.41%
결과: 1위 (초선)
3회 연속 같은 지역구에서 낙선하여 -3선이라는 별명도 있다.
22대 총선에서 드디어 금뱃지를 달았는데, 22대 총선 지역구 당선자 중, 양당출신이 아닌 후보는 새로운미래의 김종민과 진보당의 윤종오, 이준석 셋 뿐이며, 그마저도 윤종오는 민주당과 단일화, 김종민은 운빨로 된 것이기에 22대 총선에서 제3지대 당적으로 양당 구도를 뚫어낸 유일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민주당 텃밭을 보수 정당 출신이 뚫어낸 건 물론, 지지율로 봐도 대역전극을 만들어낸 것이며, 단 한 번의 원내 경험도 없었다는 점에서 인물 경쟁력이 미친 수준이라는 걸 알 수 있다.
22대 총선 승리로 일부 친윤 커뮤니티를 제외한 모든 보수 커뮤니티에서 선거의 신 타이틀을 달았다.
기호 1번, 새누리당, 노원구 병
득표수: 32,285
득표율: 31.32%
결과: 2위로 낙선
2018년 재보궐선거
기호 3번, 바른미래당, 노원구 병
득표수: 25,001
득표율: 27,23%
결과: 2위로 낙선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기호 2번, 미래통합당, 노원구 병
득표수: 46,373
득표율: 44.36%
결과: 2위로 낙선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기호 7번, 개혁신당, 화성시 을
득표수: 51,856
득표율: 42.41%
결과: 1위 (초선)
3회 연속 같은 지역구에서 낙선하여 -3선이라는 별명도 있다.
22대 총선에서 드디어 금뱃지를 달았는데, 22대 총선 지역구 당선자 중, 양당출신이 아닌 후보는 새로운미래의 김종민과 진보당의 윤종오, 이준석 셋 뿐이며, 그마저도 윤종오는 민주당과 단일화, 김종민은 운빨로 된 것이기에 22대 총선에서 제3지대 당적으로 양당 구도를 뚫어낸 유일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민주당 텃밭을 보수 정당 출신이 뚫어낸 건 물론, 지지율로 봐도 대역전극을 만들어낸 것이며, 단 한 번의 원내 경험도 없었다는 점에서 인물 경쟁력이 미친 수준이라는 걸 알 수 있다.
22대 총선 승리로 일부 친윤 커뮤니티를 제외한 모든 보수 커뮤니티에서 선거의 신 타이틀을 달았다.
14. 둘러보기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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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생신고는 성수동에서 한 것으로 보이며 본인의 사실상 고향인 노원구 상계동에는 1986년에 전입했다. 약력사항[2] 윤석열 당선 전까지[3] 윤석열 당선 이후[4] 1958년 1월 22일생. 경북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76학번)를 졸업하고 쌍용투자증권 국제금융부 과장, 싱가포르사무소장, 인도네시아합작법인개설준비위원장, 굿모닝신한증권 신당지점장, 강남지점장, 국제영업부장, 감사를 지냈고 퇴직 후 하이드로젠 파워 법정관리인을 역임했다.[5] 金香子. 경주 김씨 김오연(金五椽)의 딸로, 경상북도 상주시 출신이며 세종대학교를 졸업했다.[6] 여동생은 1990년생으로 정신과 전문의며, 이재명의 형 이재선을 치료한 적이 있다.#[7] 광주 이씨 종친회 소식(2015)과 광주 이씨 회보 2016년 4월호에 언급. 좌통례공파(左通禮公派, 칠곡파)-현감공파 22대 ◯석(錫) ◯진(鎭) 항렬이며, 아버지 이수월(李壽月)은 21대 수(壽)◯ 항렬이다. 대종회(표준) 돌림자와는 조금 다른데, 대종회에서는 21대에 ◯재(載)를, 22대에 종(鐘)◯을 쓴다.[8] 복수전공[9] 어린 시절이었던 1994년에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같은 동네에 사는 안철수 전 의원(하상 바오로)와 같은 성당에 다니고 있다.[10] 공식적인 프로필 상으로는 70kg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더 찐 상황이기에 아마 100 + akg로 추측되고 있다.[20대] [21대] [22대] [14] 기존의 천아용인 김용태는 합류하지 않은 대신 김용남 전 의원이 합류했다.[15] 이 때문에 후술할 박근혜 키즈라는 별명이 붙었다.[16] 사실 원내정당 대표들 가운데는 기본소득당의 신지혜 대표가 1987년생으로 가장 어리긴 하다. 전체 정당 가운데에서는 미래당의 이성윤 전 대표가 당선 당시 23세, 여성의당의 윤서연 전 대표가 당선 당시 19세였다. 그러나 임명직, 선출직을 통틀어 공직 경험이 없는 30대가 제1야당 당대표를 맡았다는 점이 가장 크게 주목받았다고 할 수 있다.[17] 성상납 혐의가 아닌 증거 인멸 혐의로 징계 받은 것이며, 증거 인멸 혐의도 '윗선'이 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18] 준석의 석을 石으로 해석하여 스톤으로 바꾼 것.[19] 3번의 선거를 모두 낙선해서 생긴 별명이다.[20] 과거 박근혜가 대통령에 있을때 젊은 사람이기에 마음에 든다며 같이 일을 해서 생긴 별명이다.[21] 자세한 내용은 아랫 가세연의 성상납 의혹 제기 문단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