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c 은아 2022 all right reserve

이 글의 저작권은 [은아] 에게 있으며 신청자, 본인을 제외한 다른 이들의 2차 수정을 금지합니다.

배포시 위 저작권 표기를 지우지 말아주세요.

< 이 글은 신청자 동의 하에 올립니다. >


- " 미안ㅡ 구나. 조만ㅡㅡ 한국으로ㅡㅡ 엄마랑ㅡㅡ 갈ㅡㅡㅡ 꼭 약속ㅡㅡㅡㅡ 이번에는ㅡ 꼭ㅡ "


" ... ... !!!! " 


 침대 위에서 거칠게 몸을 일으키면서 눈을 뜬 저는 최대한 숨을 들이마시면서 고개를 좌우로 빠르게 흔들어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어요. 


" 하아... 하아... 하아... "


 어두운 방 안... 그 안에는 저 말고는 다른 사람이라곤 보이지 않았죠.

 아무도 없구나. 다행이다. 다행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저는 갑작스럽게 허전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어요.


" ... ... "


 그 마음이 들자 저는 아무런 생각 없이 핸드폰을 집고 지금 시간을 보기 시작했죠.


- 달칵.


 오전 5시 30분.

 아침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둡고, 새벽이라 하기에는 너무 밝은 시간.

 그런 애매한 시간에 저는 가만히 핸드폰을 바라보다 바탕화면에 있는 남자친구와의 사진이 눈에 띄기 시작했어요.


" ... ... "


 보고 싶다. 당장이라도 그의 품에 안겨서 이 공허한 마음을 치료하고 싶다.

 ...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저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어요.

 이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서는 단 하나의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 어느 때보다 깔끔하게 씻기 시작했죠.


- 끼릭... 끽ㅡ


 따뜻한 물로 향기로운 샴푸와 바디워시를 씻겨낸 다음 수건으로, 헤어드라이어로 온몸을 뽀송뽀송하게 만든 다음, 향긋한 섬유 유연제로 세탁한 교복을 입었어요.

 요즘 날씨가 추워져 검은색 스타킹을 신어도 되겠다고 생각했기에 약간 살색이 보이면서도 검은색이 돋보이는 반투명한 스타킹을 신고 저는 곧바로 학교가 아니라...


- 달칵.


 옆집... 남자친구가 있는 방으로 향했죠.

 연애 이후 서로 어떤 문제가 있을 때 바로 도와주자ㅡ 라는 의견에 동의한 남자친구는 흔쾌히 자신의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예비 열쇠를 저에게 줬어요.

 물론... 저 또한 그에게 우리 집 열쇠를 주었지만 단 한 번도 들어오지 않았죠. 그 점이 약간 아쉽긴 한데...


- 끼익...


 여튼... 저는 남자친구의 집 안 문을 열고 들어갔어요.

 안에 보이는 것은 어두운 방 안...

 역시 아직 이런 시간(오전 6시) 라서 남자친구는 자는 걸까요... 그렇다면 그가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움직여야겠죠?


" ... ... "


- 스륵... 툭... 투욱...


 문을 닫고 고양이처럼 사뿐사뿐, 조심스럽게 남자친구가 있는 침대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어요.

 어떻게 이렇게 황급하게 나아갈 수 있냐... 라고 물어보면... 딱히 숙제나 다른 일이 없으면 항상 남자친구의 집에서 놀았어요.

 그 덕분에 전 남자친구의 집 구조를 대충 파악할 수 있었고, 그에 대해 좀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죠. 지금처럼...


- 슥... 스르륵...


 남자친구가 자는 침대 위에, 그것도 이불 안쪽으로 몰래 들어간 뒤, 그 이불을 같이 덮고 그가 베고 있는 베개에 똑같이 머리를 맞댄 다음 그를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어요.

 뚜렷한 이목구비... 그리고 기다란 속눈썹... 이렇게 보고 있으니까 남자친구 얼굴에 화장품을 한 번 얹어봐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고, 가만히 자는 남자친구의 말랑한 볼을 보자 무언가에 홀린 듯 천천히 검지 손가락을 들어 올리곤...


- 꾹...


" ... ... "


 자는 그의 볼을 살짝 눌러봤습니다.

 말랑하고 따뜻한 감촉이 그의 볼에 느껴지고, 저는 뭔가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마음속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어요. 그 순간ㅡ


" 음... "


 스륵ㅡ 거리는 소리와 함께 남자친구가 제 몸을 확ㅡ 껴안으면서 잠자는 자세를 바꾸기 시작했어요.

 한쪽 다리는 제 다리 위에, 허벅지에 올려서 ㄱ자로 만들고, 양손으로 제 몸을 꼬옥ㅡ 껴안으면서 서로의 이마를 살며시 맞대는... 연인 그 이상만이 할 수 있는 그런 야시시한 자세가 되었고 저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멍하니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어요.


- 두근. 두근. 두근...


 미친 듯이 뛰는 심장. 눈앞에서 느껴지는 남자친구의 숨결과 그의 냄새... 그리고 이 무엇보다 저를 더 두근거리게 만드는 것은...


- 꾸욱...


 몸의 일부를 꾸욱ㅡ 누르고 있는... 제 아랫배를 꾸욱ㅡ 누르고 있는 뾰족하지만, 끝은 뭉뚝한 「무언가」

 그것은 아니겠지. 그건 아닐 거야. 라고 자기 최면을 하면서 저는 이 터질 것 같은 심장 소리를 죽이기 위해 숨을 참아보기도 하고, 두 눈을 질끔 감아보기도 하고... 머릿속으로 반야심경(...) 을 외우면서 어떻게든 노력했지만...

 남자친구는 그럴 때마다 몸을 조금씩 움직여 저를 그의 품 안쪽으로 당기기 시작했고, 이제는 제 가슴이 그의 가슴과 완전히 맞닿게 되자 저는ㅡ


" 흐와...!! "


 어쩔 수 없이 목소리가 나오게 되었죠.

 순간적으로 나온 목소리는 남자친구의 귓가에 파고 들어갔으며, 남자친구는 귓가에 이상한 소리가 들리자 슬슬 잠에서 일어나는지 두 눈을 꿈틀거리며...


" 윽... 으음... "


 천천히 눈을 뜨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이제 막 잠에서 덜 깬 눈으로 절 보더니...


" ... ... "


 상냥하게 미소를 짓곤 제 이마에 살며시 키스해준 그는...


" 어서 와... "


 나지막하게 말하곤 다시 눈을 감았죠.


" ㅡ!!!!! "


 이제 막 잠에서 깬 목소리와 표정으로 키스라니... 심장에 안 좋아. 심장에 안 좋아. 심장에 안좋아 !!

 잔뜩 붉어진 얼굴과 마음속에서 끓어 오르는 뜨거운 감정은 갑자기 제 몸을 뜨겁게 만들기 시작했고, 이 방 안이 무척이나 덥다고 착각하게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순간적으로 그의 힘이 풀렸을 때 굴러떨어지듯 침대에서 탈출한 다음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했어요.

 한 손을 가슴께에 올린 다음 다른 한 손을 바닥을 짚어 마음을 진정시키려는데...


- 스륵...


" ...? "


 바닥을 짚은 손에서 이상한 천이 제 손에 잡혔고, 그것을 들어 올리니 아침 해가 뜨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 ㅡㅡㅡ!!!!!! "


- ♩♪~

 

 아침 해가 뜨면서 그 천을 본 직후, 그의 핸드폰에서 알람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고, 저는 황급히 그 천을 숨길 수밖에 없었죠.

 절대로 들켜선 안 돼. 무슨 일이 생겨도 절대 들켜서는 안 되는 물건이기에 어떻게든 숨겨야 했던 전 학교에 가기 위해 들고 온 가방 안에 그 천을 쑤셔 넣을 수밖에 없었어요.


- 오전 6시 15분...


 천을 집어넣은 순간... 탁ㅡ 하는 소리와 함께 핸드폰의 알람을 끈 그는... 비몽사몽 한 눈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기지개를 피며 하품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몽롱한 눈으로 절 보면서...


" ... 뭐해? "


 물어보았죠. 그 목소리에 저는...


" ㅇ, 일어났어...? "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와 함께하는 아침...? 을 맞이했습니다.


* * * * * * 


- 뚜벅. 뚜벅. 뚜벅... 


 그의 손을 잡고 천천히 학교로 걸어가는 길.

 아침에 그런 일이 있고도 이렇게 학교에 갈 수 있는 건... 묘하게 그가 둔감하기에 가능하다고 생각돼요.


" ... ... " 


" 그나저나... 솔아. 내 방에는 왜 들어온 거야? " 


" ㅡㅡ!!!! " 


 그 생각도 잠시, 그는 곧바로 입을 열어 왜 제가 그의 방에 있었는지, 언제 들어온 건지에 대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그가 이렇게 질문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침에 봤던 그 일이 생각나 얼굴을 붉히기 시작했고... 


" 보, 보고... 싶어서... 그, 그랬... 어... " 


 저는 얼굴을 붉히며 그의 질문에 진실이 담겨 있는 말을 하기 시작했어요.

 진심으로 외설적인 행동을 하려고 새벽에 그의 방에 들어간 게 아니라 마음이 허전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꼬옥ㅡ 안겨있고 싶다고 생각해서... 그냥 사랑받고 있다고, 애정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어서 한 행동이었으니까요.

 ... 그리고 그런 행동을 하려면 오히려 밤에 작정하고 그의 집 안에서... ... ... 


" ㅡㅡ!!!! " 


 안돼요 ! 안돼요 ! 안돼 !!!

 이게 무슨 외설적인 생각이야...!! 우린 아직 고2인데 그런 외설적인 행동을... 


" 응...? " 


 전 갑자기 얼굴을 잔뜩 붉히며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해 고개를 돌리는 행동을 하고 말았어요.

 그는 지금 이게 무슨 일이냐는 듯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저는 그를 바라보지 못했어요.

 그와 함께 방 안에서 이렇고 저런 살색의 일을... 그런 외설적인 일들을 상상하니까 그것만으로도 너무 가슴이 두근거리고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지기에 저는 이 대화를 그만 끝내려고 어떻게든 머리를 쥐어 짜냈죠.

 여기서 더 이야기한다면 점점 차오르는 수치심이, 굉장히 야시시하게 돌아가는 제 머리를 저주할 것 같았기에 저는ㅡ 두 손을 들어 올린 다음 그에게 [그보다ㅡ] 라고 말하려고 한순간... 


" ... 저기ㅡ " 


" 에...? "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요.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린 장소를 바라보니... 그곳에는 검은색 정장을 말끔히 입은 채 멋들어진 중절모를 쓴 한 중년 남성과 딱 봐도 외국인이라고 느껴지는 이국적인 피부색에 파란 눈을 하고 있으며 은색의 머릿결이 아름답다고 느껴지면서 핑크색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중년 여성이 서 있었죠.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들을 보자 뭔가 그리운 감정이 밀려 올라오기 시작했어요. 


" 실례합니다. 저희가 [경복궁] 으로 가야 하는데... 길 좀 여쭤봐도 될까 해서ㅡ " 


" ㅡ?! " 


 중년 남성은 해외 생활을 오래 했는지 한국 사람처럼 유창하게 말하다가도 중간에 영어 억양이 섞여 들어가는 말을 하기 시작했고 경복궁으로 가야 한다는 말을 하면서 길을 물어봤어요. 저는 경복궁을 듣자마자 흠칫ㅡ 하고 놀라며 그들의 복장을 다시 한번 살펴보기 시작했죠.

 남성과 여성의 정장 상의에 뭔가 반짝거리는 것이 눈에 띄기 시작했어요. 남성의 옷을 좀 더 자세히 보니 왼쪽 칼라에 있는 금색의 무궁화 모양의 배지가 있었고, 그 중앙에는 「정부」 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죠. 여성의 옷은 잘 모르겠지만... 남성의 옷을 보고 이 사람은 공무원이다. 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죠.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방...


" ... ... "


 그 가방은 어디 여행 갔을 때 사용하는 캐리어... 그것도 제집에 있는 은색 캐리어랑 완전 똑같이 생긴 캐리어... 단지 색상만 다른 검은색, 빨간색 캐리어... 마치 가족이 여행 갈 때 다 같이 쓰는 용도로 나온 것처럼 완벽히 똑같았죠. 그래서...


" ... 저 초면에 죄송하지만 혹시 직업이... "


 저는 그의 직업을 물어보았습니다.

 혹시나. 혹시나 싶은 마음에 말이죠.


" 아... 저는 외교관입니다.

 이번에 아내랑 함께 러시아에서 귀국해서 말이죠.

 하하... 딸이 고등학교 진학하고 자취한다고 해서 찾으러 왔는데 아직 사는 곳이 정확히 어디인지도 모르고... 이렇게 무작정 돌아다니려니 너무 대책 없는 것 같아서 말이죠.

 러시아로 떠나기 전에 딸과 약속한 경복궁에 가서 잠깐 기다려볼 생각입니다. 혹시 학교도 안 가고 경복궁에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 하하ㅡ 제가 너무 오래 떠들었군요. 미안합니다. 등교하는 길이였을 텐데 너무 오래 붙잡은 거 아닌가 싶네요...

 저희 딸도 대충 두 학생처럼 고등학교에 다닐 나이라 약간 흥분했나 봐요 하하... "


 그렇게 말하며 쓴웃음을 짓는 남성. 하지만 전 그의 말을 듣자마자ㅡ


- 뚝...


" 하하하... 하... ...? "


" ...? "


 두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어요.

 그의 말을 모두 듣다 보니 생각나는 한 남자가 있었기 때문이죠. 제가 그를 부르는 이름은...


" 아빠... ...? "


 이제 막 초등학교에 진학하던 해에 갑작스러운 외교 업무로 제 곁을 떠나가야 했던 아빠와 엄마가 생각났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저는 혹시 몰라 그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아빠. 라고...


" ...솔아 괜찮아? "


" 솔... 이...? "


 옆에 있는 남자친구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저를 바라보며 제 이름을 불렀고, 그는 생기 없이 탁해진 두 눈에 갑작스럽게 생기가 돌아오는 것처럼 반짝이기 시작하더니 저와 제 남자친구를 바라보았죠.

 설마 내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닐까? 이 남자가, 제 남자친구가 발음을 실수한 게 아닐까? 하면서. 하지만...


" 솔아. 왜 그래... 왜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거야. "


 남자친구는 제 어깨를 잡으며 말했고, 저는 남자친구가 아닌 눈앞에 중년의 남성을 계속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어요.

 순간 바람이 불면서 아침 햇살이 저와 아빠를 비추는 것 같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지난 어린 날이 떠오르기 시작했죠.

 저를 큰아버지의 품에 맡긴 채 떠나간 그 모습이...


" ... ... "


 저는 아찔해지는 정신줄을 붙잡으며 중년의 남성을, 여성을 바라보며 말했어요.


" ...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는 여기에 있었고, 앞으로 그리울 때마다 생각날 때마다 여기에 와서 떠올리는 거야.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


 그렇게 말하자 두 사람은 화들짝 놀라 했고, 두 사람의 눈은 곧바로 축축하게 젖기 시작했죠. 그리고 중년의 남성은 떨리는 손으로 주먹을 꽉ㅡ 쥐며...


" 약속해주겠니...? 여기가 우리 집안의 추억의 장소라는 것을.

 새끼손가락을 걸고... 무슨 일이 있어도 경복궁 앞에서... "


 「그날」 했었던 약속의 내용을 말하기 시작했고... 뒤이어 중년의 여성은...


" 약속이야... "


 나지막하게 말을 하자ㅡ 저는 남자친구의 품에서 벗어나 곧바로 중년의 남성에게 뛰어갔어요.

 정확히 신원확인은 안 됐지만 제 마음이 소리쳤어요.

 이 사람들은 제 아빠라고. 제 엄마라고.

 그야 우리 가족끼리만 아는 그 일을, 말을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혹시나 아니라고 해도 좋았어요. 아니라고 해도 알기 싫었어요. 그냥 지금, 이 순간... 가족을 다시 만났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좋았어요.


" 솔아... 솔아...  정말 미안하다... 그저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구나... 그리고 고맙다... 이런 못난 아비 밑에서 이렇게 잘 자라줘서... "


" 여보... 솔아ㅡ... "


 중년의 두 분도, 아니... 부모님도 저를 만났다는 사실에 행복했을까요.

 아버지는 저를 껴안고 펑펑 우시면서 그동안 미안하다고, 그리고 이렇게 잘 자라줘서 고맙다고 계속해서 말하기 시작했어요.

 어머니는 그저 아무 말도 못 하고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시며 저희 둘을 꼬옥ㅡ 껴안아 주고 있었고.

 저는 왜 두고 갔냐고, 왜 전화나 메일을 계속해서 보내지 않았냐고 서러움이 밀려왔지만 그래도, 그래도 이렇게 만났다는 사실에 감사하다며... 각종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지 못해 그저 눈물을 흘리며 그를 껴안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제 남자 친구는...


" ... ... "


 조금 쓸쓸한 미소를 지어주곤... 천천히 몸을 돌려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어요.

 학교에 늦든 말든 주변의 가을 풍경을 바라보며 천천히... 느긋하게ㅡ


* * * * *


- 저벅, 저벅, 저벅.


" ... ... 하아. "


 한숨을 푹ㅡ 쉬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얼굴을 붉히던 여자친구. 솔이를 떠올렸다.


" ... ... 가족... 이라. "


 처음에는 그녀가 왜 내 방에 있었는지 물어보려고 했다.

 그야 당연한 것이 눈을 감고 떴는데 눈앞에 그녀가 당당하게도 내 눈앞에, 그것도 내 눈앞에 있는 게 아닌가. 그렇기에 물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여기서 예상하지도 못한 사람과 만나게 되었다.

 정확히는 가족이라고 추정되는 사람들과 만난 것이다.

 저자들이 정말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지만 가족끼리만 통하는 대화를 하면서 서로를 확인하는 모습을 하니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 것 같다.


" 가족. 가족. 가족... ... " 


 만약 가족이 아니라고 해도 그녀의 얼굴이, 솔이의 얼굴이 너무나도 행복해 보였다.

 이 세상 그 어떤 것이랑 비교해봐도 너무 행복해 보였다.

 그렇기에 난 가족이라는 말을, 그 단어를 중얼거리면서 길을 걷기 시작했다.

 가족? 가족이란 게 뭘까. 나에게는 없는 것이라 모르겠다.

 ...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문뜩 무언가 생각났는지 두 눈을 두세 번 깜빡이고 한숨을 내쉬었다.


" ... ... 아냐아냐아냐아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나는...

 아직 그들이 진짜 가족이라고 확정 난 것도 아니잖아?

 무엇보다 가족이라면 축하해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근데 왜...

 ... 하아... 알바생활 하면서 성격을 다 버려서 그런가 이런 기초적인 매너도 모르고... 반성하자 나. 반성해ㅡ "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고,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된다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만약 그들이 진짜 가족이라면 솔이는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

 이렇게 가족이 없는 나 대신에 그녀를 더욱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


" ... ... "


 그런 생각을 하니 나는 한순간 멍해지기 시작했고, 왠지 허전해진 옆자리를 힐끔 바라보며 학교를 향해 계속 걸어갔다.


.

.

.


- 딩... 동... 뎅... 동...


" 자. 출석 체크한다ㅡ 다들 자리에 앉아. "


""" 네에ㅡㅡ """


 학교 타종 소리가 울려 퍼지고 나와 다른 수많은 아이들은 모두 제자리에 찾아가 자리에 앉았다.

 교탁에는 우리 학교 내에서 젊고 이해심이 많은 담임 선생님이, 대략 30대 정도로 보이는 여자 담임 선생님이 서 있었고,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녀가 이름을 부르는 방식은 약간 특이한데 이름 성씨까지 다 해서 부르는 게 아니라 약간 애칭으로 부르신다. 그편이 이름 외우기 빠르다나 뭐라나...


" 어디... 은별이. "


" 네ㅡ "


" 현성이? "


" 네ㅡ "


 한 명 한 명 친근하게 이름을 부르며 느긋하게 웃어주시는 담임 선생님이 싫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별로다.


" 그럼 솔이? "


""" ... ... """


" 엥? 솔이 없어? "


 가족이랑 만나 학교에 나오지 않은 솔이가 생각났기 때문에. 내 몸에서 벗어나 곧바로 그들에게 뛰어간 그녀가 생각났기 때문에...


" ... ... "


- 꽈아악...


 왜인지 모르겠지만 뭔가 가슴 속이 뜨거워진다.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런 감정이 처음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화가 나서? 짜증 나서? 아니다. 모르겠다. 정확히 이게 뭐라고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기분 나쁜 무언가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렇기에 나는 이 감정이 뭔지 파악하고 다스리기 위해 곰곰이 생각하고 있을 때...


" 솔이 남자친구는 뭐 아는 거 없어? 솔이 어디 아픈 거 아니야? "


 담임 선생님이 날 바라보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의 시선 또한 나에게 집중되기 시작했다.

 솔이와 연애를 한다는 그 사실이 학교에 퍼지자 우리는 이 학교에서, 적어도 우리 반 내에서 아무나 입에 오르고 내리고 하는 대인기 스타가 되었으니까 쳐다보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 사실은 이런 관심은 바라지도 않는데.


" 아... 솔이는... "


 솔직하게 말을 할까? 정확히 그들이 가족인지도 모르는데.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좋을까? 이런 생각을 할 무렵...


- 붕. 부우웅...


" ... ... "


 내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잠깐 고개를 숙여 바라보니 인☆그램의 아이콘이 보였으며 그곳에는 내 여자친구의 계정. 솔이의 계정으로 몇 개의 사진과 글이 올라왔다는 알림이 있었고 나는 그 알림 문자를 눌러 인☆을 켰다. 그곳에는...


[ 오랜만에 만난 가족과 사진 ]

 이라는 제목으로 경복궁에서 사진을 찍은 솔이와 아침에 본 중년 남성, 여성이 한 사진에 들어가 있는 것을 보았다.

 화목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나는 다시금 선생님을 바라보며.


" 몇 십 년 만에 만난 부모님이랑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아직ㅡ "


 그 말을 들은 선생님은 멍하니 날 바라보더니ㅡ...


" 점심시간에 잠깐 선생님 좀 보게 교무실로 따라오렴. "


 그 말을 하고 다시 학생들을 바라보며 오늘 일정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어 그저 고개만 한 번 끄덕였고 가슴 속에서 차오르는 감정을 다시 한번 제어하기 위해, 어떻게든 무시하고 억누르기 위해 새우처럼 등을 굽힌 다음 책상 위에 누워 두 눈을 감았다.


.

.

.


- 딩동... 뎅동...


 평소에 선생님들에게 보이는 모습은 불량하게 학교에 다니면서 할 거는 다 하는 학생의 모습이다.

 다른 애들에게는 맨날 학교에서 쳐 자고 다니는데 이상하게 성적은 상위권에 머무는 새끼... 겠지.

 사실은 알바하고 공부하고 잠자고 하는 일상이 피곤해서 학사경고에서 그냥 눈을 붙이는 건데 어쩌다가 이게 내 프레임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 내가 굳이 왜 이런 말을 하냐면 지금이 벌써 점심시간이라는 것 때문이다.


- 부스럭...


" 윽... 으음... "


 12시 36분.

 점심시간이 1시까지니까 식당으로 이동한다고 해도 맛있는 메인 반찬은 이미 동강 나고 없을 거다.


" ... 옛날로 돌아간 것 같네. "


 사실 솔이를 만나고 나서부터 점심밥을 못 먹는 일이 줄어들었다. 아니... 없었다.

 그녀는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짜증 나도 어떻게든 밥을 먹어 움직일 정도의 기력은 보충해야 한다. 라고 신신당부했기에 내가 이렇게 자고 있을 때면 어디선지 모르게 도시락 하나를 챙겨와서는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한적한 바람이 부는 옥상에서 도시락을 먹여주곤 했다. 하지만... 그녀가 없으니까ㅡ


- 꼬르르륵...


" ... ... "


 그 빈자리가 너무나도 크게 느껴진다.


" 씨발... "


 또. 또또 이상한 감정이 차오른다.

 이번엔 가슴 끝까지 차오른다.

 왜지. 왜 자꾸 솔이 생각만 하면 이런 감정이 차오르는 거지...?

 이해할 수 없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사랑하는데... 놓아주고 싶지 않은데 자꾸 그녀만 생각하면 이상한 감정이 차오른다.

 계속해서 이런 거지 같은 감정이 계속 드는 게 싫었던 나는 정신 차리라는 듯 주먹을 꽉ㅡ 쥐고 책상을 내리쳤다.


- 콰앙ㅡ!!!


 나무 책상에 강한 충격이 들어가자 나무 책상에 약간 금이 간 것처럼 갈라진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고,


" ... ... "


 그 책상을 보자 조금은 울분이 삭여지기 시작했는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며ㅡ


" ... 담임 선생님. "


 잠깐 이야기를 하자고 했던 담임 선생님을 찾기 위해 교무실로 천천히 걸어갔다.


* * * * *


- 툭... 투둑... ... 쏴아아아아아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새 하교 시간이 되었다.

 난 담임 선생님과 면담 후 멍한 눈으로 남은 수업을 들었다.

 오후 수업을 듣기 전에 나는 점심시간에 잠깐 교무실로 가서 담임 선생님과 만났고, 그녀와 짧은 면담 시간을 가졌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솔이와 솔이 부모님과 만나는 장면을 눈앞에서 봤냐고. 그 말을 들은 나는 선생님을 바라보며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선생님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가만히 날 보더니...


- " 솔이에게 가족이 생겼다고 해서 솔이를 미워하거나 질투하지 말렴. 그 아이에게 가족이 생겨도 너 없이는 안되는 아이란다. "


 이런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도 지금 내 가정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잘 알고 있고,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담임 선생님밖에 없었으니까 분명 뭔가 메시지가 있기에 이렇게 말을 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 ... ... "


 뭐지? 도대체 뭐 때문에 그렇게 말한 거지?

 ... 오후 수업 시간에도 계속 그 말에 대해서 생각하느라 칠판에 적힌 내용이라던가 선생님들이 말하는 수업 내용이 보이거나 들리지 않았고 그저 멍하니 담임 선생님이 말한 내용만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만 주구장창 보낸 이후 하교 시간까지 다가온 것이다. 그런데도 난 아직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 ... ... "


 조금 강한 비가 내리는 날.

 나는 집으로 가는 길을 걷고 있었다.

 집으로 가기 전 학교에서 오늘 하루 종일 답답한 이 마음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그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까. 나는 눈앞에 무언가를 손에 잡을 수 없었다.

 그 대표적으로 학교의 공부였으며, 이 기분으로 아르바이트하러 갔을 때 누군가 자신을 건든다면 이성적으로 대화를, 말로 해서 푸는 게 아닌 주먹을 먼저 날림으로서 화풀이...? 비슷한 것을 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기에 카X오톡으로 아르바이트 사장님들에게 「죄송합니다. 사장님. 오늘 하루만 쉬어도 될까요? 사유는 말해드릴 수 없으나 딱 하루만 쉬고 싶습니다.」 라고 말했다.

 다행히 내가 작은 사회인으로서 그리 나쁘지 않은 삶을 살아왔는지 그들은 흔쾌히 허락해주었으며 아프지 말라고 간단한 기프티콘을 카카오톡으로 보내주었고, 많이 힘들다면 내일까지 쉬고 출근하라는 말까지 해주었다.

 나는 사장님들이 주신 편의에 너무 감사드리고 힘내겠다며 문자를 날렸으며 핸드폰 전원을 끄고 비 내리는 길을 걷고 있었다.


" 엄마. 저 오빠 우산도 없이 그냥 걸어 다녀 ! 나도 할래 !! "


 길을 걷다 이제 막 유치원에서 하교하는 어린아이는 날 보곤 해맑게 웃으며 옆에 있는 엄마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 애는 참...! 우산을 못 챙겨서 걸어가는 거잖니 ! 그나저나 우리 딸 오늘 저녁은 샐러드다? "


" 그엑. "


" 안돼. 예쁜 언니가 되려면 먹어야 하는 거야. "


" 눼에ㅡ "


 그녀는 비를 맞고 있는 날 신경 쓰지 말라는 듯 아이를 타이르며 곧바로 대화 주제를 바꿔 그녀의 시선을 돌렸다.

 그 대화 내용을 들으니 뭔가 오늘 아침에 봤던 것들이 떠오르기 시작했고 나는 이전에 다 묻었다고 생각했던 옛날 일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 ... ... "


.

.

.


 나는 그렇게 유복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은 평범한 가정집에서 자랐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졸업할 때까지 나는 언제나 웃으면서 자랐다. 나만 웃으면서 자라는 게 아니라 부모님도 웃으면서 지냈다.

 언제나 화목하게 지낼 것만 같았던 우리 집은 내가 초등학교 진학 이후로부터 급변했다.

 초등학교 1학년.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그리고 중간중간 시험이 있을 때마다 나는 언제나 반에서, 전교에서 1등을 차지했다. 이 행복을 부모님과 함께 누리기 위해 학교가 끝나는 대로 부모님을 찾았으며 이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는 슬픔이 가득했다.

 난 부모님의 회사 일이 바빠서, 잘 안 풀려서 그런 것 같다...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게 아녔다.


- 달그락, 달그락...


" 그러고 보니 당신... 내일부터 장기출장이었나요? "


" 아아... 아픈 당신과 어린 핏덩이를 놔두고 가려니까 마음이 아프구만... "


 부모님들은 약간 슬픈 얼굴을 한 채 내가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목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말대로 엄마는 매우 아팠다.

 이전에 병원에 갔을 때는... 이미 위암 4기라며 거액의 수술비와 신체적 안정이 필요했으며 항생제를 항상 먹지 않으면 곧바로 죽을 수 있는 위기에 놓였다.

 아빠는 이 또한 이겨낼 수 있다고 언제나 나에게 말했지만... 난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아빠는 엄마가 위암 4기 판정을 받은 이후, 항상 늦게 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1주일에 한 번씩은 꼭 술에 취해서 들어오셨다. 그럴 때마다 그들의 방에선 언성이 높은 소리가 났으며 난 그때마다 두 눈을 감고 양손으로 두 귀를 막은 채, 침대 위에서 쭈그려 앉아 주 기도문을 외웠다.

 오늘은 아빠가 술을 먹었기에 조용한 밤을 기대하며 방 안에 들어가 책을 읽고 있는데...


- " ㅡㅡㅡ!!! "


 안방에서 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부모님이 거칠게 싸우는 소리 같았다.

 한순간에 겁먹은 나는 책을 덮고 두 눈을 감고 양손을 깍지 낀 채 창문에 비친 달과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리다.

 ... ... "


 제발 신이 있다면 우리 집 안의 싸움을, 불운을 없애 달라고.

 행복하게 웃을 수 있는 날이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면서 주기도문을 외웠다. 그리고ㅡ


" ...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


 주기도문의 끝을 다 말할 때쯤... 안방은 조용했다.


" ... ... "


 이걸로 된 것이겠지. 이걸로 괜찮은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하루하루 신실한 신자의 길을 걷겠다며 다짐하고 눈을 감았다. 하지만...


- 뚜벅. 뚜벅... ...


 그다음 날 이후로... 아빠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3달이 지나도 6달이 지나도 1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엄마는 항상 괜찮다고, 꼭 돌아오니까 걱정하지 말고 공부하라고 날 다독였다.

 이제 슬슬 항생제도 말을 잘 듣지 않는지 점점 쇠퇴해져 가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얼굴에는 주름이 잔뜩 있고 아름답고 찰랑했던 머리카락은 전부 빠져서 새하얀 피부를 가진 대머리가 되었으며 물이 가득 담긴 머그컵 하나조차 들지 못하는 정도로 약해졌다.

 그래도. 그래도 괜찮았다.

 그녀가 약한 만큼 내가 지킬 것이라고 맹세했으니까.

 돌아온다는 아빠를 믿으며 계속 보살필 생각이었으니까. 하지만...


- 끼이이이익ㅡㅡㅡ!!!!!!


 엄마는 자주 다니던 병원에 갔다 온다고 말하고 초록색 보행자 신호에 횡단보도를 건너다 차에 치이어 돌아가시고 말았다.

 가해자는 사람을 쳤다는 생각에 두려워 도주했기에 뺑소니범이 되어 경찰에 잡혔지만... 나는 한순간에 부모님을 잃었다.


" ... ... "


 피로 전신이 붉어진 어머니의 모습을, 몸 전체가 으스러져 두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어머니의 몸을 바라보며 나는 눈물을 흘렸고,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날 위해 주변의 어른들이 장례식장을 열어주었다.

 검은색 상복을 입고 손님들을 맞이해야 했지만 나는 폐인처럼 누워 벽에 기댄 채 수많은 꽃 사이에서 웃고 있는 엄마의 사진을 보며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 한마디만 중얼거렸다.


" 엄마는 아빠가 돌아온다고 했어.

 아빠가 돌아온다고 했어.

 아빠가 돌아온다고 했어.

 아빠가 돌아온다고 했어.

 아빠가 돌아온다고 약속했어. "


 장례식이 열리는 첫날, 그다음 날, 그다음 날...

 그는 오지 않았다.

 그와 비슷한 사람은 있어도 그는 오지 않았다.


" ... ... "


 나는 더는 흘릴 눈물이 없었다.

 멍하니 죽은 눈으로 돌아가신 엄마의 사진을 두 손으로 들은 채, 화장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그 사진을 들고 집으로 들어가 안방에 고이 모셔두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내가 가진 통장에 믿기 힘들 정도의 거금이 들어왔다.

 법원에서 나온 뺑소니 판결과 엄마의 보험금, 그리고 출저를 알 수 없는 자가 보낸 돈이 단 한순간에 입금이 되어 있었다.


" ... ... 이딴 게... "


 하지만 기쁘지 않았다.


" 이딴 게 무슨 소용인데 !!!!!!! "


 손에 들고 있는 통장을 집어 던지고 집 안에 있는 모든 가구를 집어 던지고 부시기 시작했다.

 의자로 식탁을 부수고, 부서진 의자 다리로 텔레비전과 거울, 냉장고를 부수고 그냥 눈에 보이는 것들은 전부 부쉈다. 그리고...


" 빌어먹을 가족이 뭔데 !!!! "


 눈앞에서 화목하게 웃고 있는 가족사진을... 벽에 집어 던졌다.


- 와장창...!!! ... ... 툭.


 사진이 깨지고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사진과 액자가 분리되면서 새하얀 종이가 나타났다.

 누가 봐도 손편지라고 볼 수 있는 새하얀 종이가.

 나는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그것을 잡고 천천히 읽기 시작했고, 그걸 전부 읽고 난 뒤 집어 던진 통장과 손에 들고 있는 편지 하나만 들고... 내 방으로 들어가 짐을 싸기 시작했다.


.

.

.


- 끼익... 탁.


" ... ... "


- 똑... 또옥... 똑...


 아무도 없는 조용한 방 안.

 나는 내 방에 불을 켤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신발을 벗고 발 안으로 들어갔다.


- 똑... 터벅. 똑... 터벅.


 한 걸음, 한 걸음 이동할 때마다 비에 젖은 내 몸은 물방울을 떨어트려 옷을 갈아입으라는 듯 소리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난 그러지 않았다.

 비참한 이 인생과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일까. 계속해서 방의 어두운 곳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 하... ... "


 다 정리한 줄 알았다.

 모든 감정을 다 봉인하고 살아갈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눈앞에서 가족을 만난 여자친구 덕분에 이 감정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여태까지 느낀 감정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그것은 부러움이다.

 그것은 외로움이다.

 그것은 사랑받고 싶다는 원초적 마음이다.

 여태까지 결여되어 받지 못했던 그 마음이... 지금 다시 울부짖기 시작한 것이다.


" 왜... 왜. 왜왜왜왜왜ㅡ... ... "


 나는 어느 서랍장에 우두커니 서서 멍하니 작은 보석함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비에 젖은 손으로 그것을 잡고 천천히 열어보았다.

 그곳에는... 구겨져 있지만, 모습은 알아볼 수 있는 [화목한 가족사진] 이 들어있었다.


" ... ... "


 사진을 보자 다시금 들기 시작하는 이 복잡한 마음이 날 괴롭히기 시작한다.

 예전처럼... 그 어린 날처럼 이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그들을 따라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 ... ...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나. "


 인간이 절벽 끝에서 서서 더는 길이 없다고 판단했을 때 드는 마지막 생각... 그 생각을 실현할까 말까를 고민하며 끝없는 고독을 느끼고 있을 때...


- 달칵...


" ...어? 문이 열려있네. "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 흐에... 왜 이리 어두워...? "


- 탁...


 내 방 안에 들어온 여성은 자연스럽게 내 방의 불을 켰고ㅡ


" 어? 돌아왔... ... 으엑?! 잠깐만ㅡㅡ!! "


 날 보자마자 화들짝 놀란 그녀는 신발을 빠르게 벗고는 나에게 다가왔다.


" 야아ㅡ! 너 왜 그러고 있어...?!

 와아아... 다 젖어있잖아...! 글고보니 알바시간 아니야? 아니지아니지... 일단 감기 걸리니까 씻기라도 해야... "


 마치 엄마라도 된 것처럼 날 나무라는 여자의 목소리.

 그 목소리의 정체는ㅡ


" ... 솔아. "


 여자친구. 솔이었다.

 날 바라보며 걱정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자 뭔가 이로 말할 수 없는 감정이 올라왔다.

 가족과 다시 만난 것에 대한 부러움? 가족과 시간을 보내지 않고 나에게 와준 고마움?

 ... 모르겠다. 이제는 나도 내 감정이 어떤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렇기에 나는...


- 꽈아악...


 손에 들고 있는 편지를 잡은 채로 주먹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솔이는 가만히 날 바라보더니...


- 스륵.


 주먹 쥔 손에 그녀 자신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


" 있지.

 우리 처음 만난 날 기억해?

 비가 오는 날 오피스텔 바로 앞에서 주저앉아 울고 있었던 그날... "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상냥하게 웃음을 지었다.


" 그때... 나 정말 힘들었어. 근데 네가 나타나 준거야. "


 그러면서 젖은 내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어주면서 말했다.


" ... 전에 네가 그랬지?

 힘들고 슬플 때 우산을 건네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날 도와주었다고.

 지금의 나는 당장이라도 네 손에 우산을 건네줄 순 없지만, 너와 함께 힘들고 슬픈 걸 이겨내고 싶어.

 네가 나에게 다가와서 상처를 치료해준 만큼. 나도 너에게 다가가서 상처를 치료해주고 싶어. 그러니까... 말해주었으면 해.

 말 못 할 너의 아픔을, 슬픔을... "


 그렇게 말하며 계속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따뜻하다.

 조금 전까지 온몸이 차갑고 서늘했다. 이 방의 공기가 얼어붙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차가웠다. 하지만 솔이가 와서 날 걱정해주기 시작하니까. 진심 어린 말로 나에게 다가오니까 점점 따뜻해지기 시작한다.

 왜? 난 조금 전까지 그녀가 가족이 있다는 사실에 부러워했다. 하지만 이런 따뜻한 말 한 번으로... ...


" ... ... 난... "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던 나는 그 말을 다 듣곤 곧바로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말없이 그녀가 잡지 않은 다른 손을 들어 올린 다음 그녀를 꼬옥ㅡ 껴안았다.


" 꺗...! "


 머리를 살짝 돌려 오른쪽 귀가 그녀의 가슴골 사이에 먼저 닿게 한 다음 그녀의 가슴팍에 내 머리를 파묻었다.

 마치 갓난아기가 그리운 어미를 만나 말없이 포옹하는 것처럼.


" ... ... "


 고맙기도 그녀는 도망가지 않았다.

 오히려 편하게 자신의 품에 있으라고, 그녀 자신의 몸으로 내 몸을 따뜻하게 만들어주겠고 말하듯 날 더욱더 강하게 껴안기 시작했다.

 그 따뜻함을 느끼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에게 나 자신의 과거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 ... 난 지금 내 옆에 남아있는 가족이 없어.

 초등학교 때, 어머니는 위암 4기 판정을 받으셨고 아버지가 어디론가 사라졌지 어머니는 언젠가 꼭 돌아온다는 아빠의 말을 믿으라고 말하면서 날 안심시켰어.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에게 단 한 명밖에 없는 엄마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지. 하지만... 엄마는 병원에서 약을 타오던 도중에 교통사고를 당하셨어. 그날 이후로... "


 암울했던 과거 하나하나. 그녀에게 말하려고 하자 그녀는 더는 괜찮다는 듯 내 손을 놓고 내 몸 전체를 꼬옥ㅡ 껴안아 준 뒤 조용히 속삭였다.


" 괜찮아... 더 안 들어도 돼...

 그냥... 그냥 많이 힘든 과거였구나.

 나였다면... 못 버텼을 것 같은데 정말... 정말 대단하고, 고생했어.

 ...그리고 지금까지 이렇게 씩씩하게 살아서... 네 아픔을 무릎을 안고 지금까지 와서... 힘들어서 쓰러질 것 같았던 날 도와줘서... 정말 고마워... "


 그저 이 말을 하며 내 정수리에 짧게 키스해준 뒤 가만히 내 등을 토닥토닥 두들겨주었다.

 그 말을 듣자 나는 한순간 감정이 벅차오르기 시작했고 두 눈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그녀에게만큼은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기에 난 그녀를 양손으로 강하게 꼬옥ㅡ 껴안으며 눈물을 참으려고 했다. 그 순간.


- 두근. 두근.


 나지막하게 들리는 심장 소리.

 솔이의 심장소리가 내 귓가에 맴돌기 시작하자 나는 그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리기 시작했고, 나는 잠시나마 그녀의 품에서 쉬기 위해 두 눈을 감았다.


『내 인생은 고통밖에 없습니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고통은 언제나 내게 충실했고,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내 영혼이 심연의 바닥을 헤맬 때도, 고통은 늘 곁에 앉아 나를 지켜주었으니 어떻게 고통을 원망하겠습니까.

 아 고통이여, 너는 결코 내게서 떠나지 않겠기에 나는 마침내 너를 나에게 다가왔다.

 그 덕에 이제야 너를 알겠다.

 네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내가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너는 내 마음의 화롯가에 앉아 내 손을 잡은 사람이라는 것을.

 그렇기에 너를 사랑한다. 고통은 내 마음속 화롯가고, 너는 내 마음속의 불이니.

 언제나 불타오르는 화롯가에 앉아 뜨겁게 타오르는 불을 지키겠노라.

 내가 죽음의 자리에 드는 그 날에도. 난 너의 곁에서 가지런히 누우리라.』


" 있지... "


 가만히 솔이의 품 안에서 눈을 붙이고 있을 때, 그녀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 ... 너무 앞서 나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날 가족으로 생각해주었으면 좋겠어. "


 그렇게 말하며 내 뒷머리를 천천히 쓰다듬기 시작했다.


" 텅 비워져 구멍이 나버린 네 마음에 내가 들어가서 네 구멍을 메꾸고 나라는 행복으로 가득 채워줄 테니까... ... 나랑ㅡ "


 그녀가 마지막 말을 하려고 할 때, 창문 너머에서 아름다운 석양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녀가 한 말에는 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으며 무슨 말을 했는지는 단둘만의 비밀로 간직하기로 했다.

 아직은, 아직은 지금 이 감정을 그대로 느끼고 싶었기에... 그녀와 함께하고 싶었기에.


『내가 가족과 하지 못했던 것만큼 함께 있고 싶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