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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한 사령관의 하루 (11)

 

 

 

 

 

나조차도 사령관의 속을 헤아릴 수 없어. 순수하면서도 냉철하고, 똑똑하지만

 

어떤 때에는 바보 같아. 그리고 솔직하지만……능숙한 거짓말쟁이인 것도 있지.

 

자비로운 리앤

 

 

 

 

 

36.

 

훈련 7일째.

 

어쩐 일인지 저희는 이틀 동안 휴식을 취했다가 다시 훈련받기로 했습니다.

 

텐트에서 자야 했지만 훈련받지 않고 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사령관의 자비심에 감사해야겠지요.

 

“레프리콘 상병님, 각하랑 밤에 무슨 얘기 하셨슴까?”

 

전자레인지로 데운 만두를 먹던 브라우니가 말했습니다.

 

저희는 보급반에서 세워준 임시 PX에서 모처럼 냉동을 나눠먹었습니다.


“별 거 없었어요. 그냥 군 생활이 어떤지, 뭐 그런 거요.”

 

“와……대단하심다. 전 아직도 눈만 마주쳐도 몸이 얼어붙슴다.”


“그렇게 무서운 분……은 맞지만, 성격이 나쁘진 않아요.”


“진짜임까? 하긴, 그래도 저희랑 같이 굴러보겠다고 자진해서 올 정도니

 

의외로 다정한 걸지도 모르겠슴다. 그나저나 맨날 같은 표정이라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감도 안 잡히니 화난 건지 슬픈 건지 모르겠슴다.”

 

그거야 뭐. 생각해보니 사령관이 웃거나 화내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습니다.

 

드물게 화를 낼 때는 있다던데……상상만 해도 오금이 저립니다.

 

“아, 레프리콘 상병님. 제가 좋은 생각을 했는데 말임다.”
 
“당신이 좋은 생각이라고 내놓은 것 중에 진짜 좋은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일단 들어볼게요.”


“마침 딱 옆에 붙어있겠다 그 음란한 몸으로 유혹해서 정실 자리를-”


“방금 그 말 취소할게요. 제발 말도 안 되는 말 하지 마세요. 어휴.”


저희는 냉동을 다 먹고선 자리를 치우고 막사로 돌아왔습니다.

 

“저희 왔슴다! 어, 다들 뭐하시고 계심까?”


“오셨군요. 모처럼의 휴식 시간을 활용해 전술 강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들 저렇게 경건한 자세로 앉아서 이야기를 듣고 계셨던 건가요.

 

이뱀이 저를 향해 ‘어서 도망쳐, 너라도 살아!’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지금 십자군 전쟁 당시 사자심왕과 살라딘에 대해 설명하는 중이었습니다.”


“하……하하하……아하하…….”


노움 상병은 이미 포기한 듯 영혼 없는 표정으로 웃고 계셨습니다.

 

“뭡니까 그게! 재미 없슴다, 집어치우고 첫사랑 얘기나 하십쇼!”


“브, 브라우니! 쉿!”


“……재미없었습니까, 여러분?”


“솔직히 말해도 돼? 진짜 태어나서 이렇게 재미없는 이야기 처음 들어봐.”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정훈 시간도 이거보단 재미있었어요.”


사령관이 눈을 껌뻑이며 저희를 번갈아 보았습니다.

 

“아……혹시 제 권위를 인정해주고자 재미없는 이야기를 재미있다고

 

해주신 겁니까?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전 이등병이니까요.”

 

“맞슴다! 원래 신병은 오면 첫사랑 얘기부터 하는 검다. 빨리 해주십쇼!”


“그런 겁니까. 알겠습니다, 제 첫사랑 이야기를 들려드리죠.”


……! 서, 설마 사령관께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던 걸까요?

 

이건 안 듣고 넘어갈 수 없습니다. 저는 얼른 의자를 가져와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건 정말이지……사랑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볼 때마다 가슴이 벅차면서

 

한편으론 더없는 평화를 느끼게 해줍니다.”

 

“오오! 대체 누구임까? 누가 사령관의 첫사랑인 검니까!?”


“고딕……그 깔끔하고 선명한 디자인은 분명 가장 미(美)라는 개념에

 

근접해있습니다. 오래 보아도 눈이 아프지 않고, 딱 보았을 때 식별되는

 

선명함. 몇 번을 생각해도 이보다 더 좋은 글씨체는 없습니다.”

 

“…….”


“……그냥 그 사자심왕 이야기나 다시 들려줘.”


“어, 첫사랑 이야기도 별로입니까?”


별로가 아니라, 아니 누가 첫사랑 묻는데 글씨체가 좋다고 대답합니까!?

 

애초에 뭡니까 그게? 글씨체랑 사랑에 빠지다니 보통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게 가능한 겁니까? 상식이 부족한 것도 정도가 있죠!

 

저는 이렇게 외치고 싶었지만, 마지막 인내심을 짜내 참았습니다.

 

“질문이 잘못된 것 같슴다. 그럼 이거 어떠심까? 바이오로이드 중에 제일

 

취향에 맞는 사람 말임다! 그, 꼭 사랑이 아니어도 제일 잘 맞는 사람 말임다.”

 

“아, 꽤 어려운 질문이군요.”


사령관이 눈을 지그시 감고 머리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습니다.

 

“흠……기준이 애매하군요. 일단 저한테 제일 잘 맞춰주는 건 콘스탄챠 S2입니다.”


“확실히 부관이시니 잘 챙겨주시겠죠.”


“그녀에겐 참 많이 신세집니다. 특히 전 아직도 옷 입는 법을 헷갈려서

 

매번 부탁하고 있습니다. 제복은 생각보다 입는 법이 복잡하더군요.”

 

그래도 2년이나 입었으면 혼자서 입을 수 있는 게 보통 아닐까요……?

 

“그런 거 말고, 같이 주말을 보내면 좋을 것 같은 사람 같은 거…….”


“저는 주말에도 일합니다만.”


“그게 아니라! 에잇, 사령관은 바보 아님까? 누가 이런 간단한 질문에

 

그렇게 깊이 고민함까! 그냥 마음 가는대로 팍팍 대답하면 됨다!”

 

이번만큼은 제 대신 말해줘서 고마워요, 브라우니.

 

“……음, 그런 거라면 철혈의 레오나, 아니면 신속의 칸이 좋겠군요.”


“오오! 그검다! 저희가 원한 대답이 바로 그검다! 근데 왜임까?”


“제가 전술의 역사 이야기를 꺼내도 두 사람은 들어주기 때문입니다.”


“혹시 그냥 묻는 건데, 보통 여자랑 대화할 때 그런 주제로 이야기하시나요?”


“안 됩니까?”

 

“당연히 안 되죠! 대체 뭡니까 그게! 세상 어떤 여자가 전술의 역사 따윌

 

듣고 좋아하겠습니까! 뭔가 더, 그 로맨틱하거나 일상적인 대화 주제도

 

많잖습니까! 좋아하는 책이나 영화, 하다못해 좋아하는 반찬 같은 거라도!”

 

“레, 레프리콘. 좀 참으세요.”
 
“답답해서 못 해먹겠습니다! 크아아아악!”


안되겠습니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평생 여자들한테 1차 세계 대전

 

이야기나 하다가 늙어 죽으실 겁니다. 저희가 뭐라도 해야 합니다!

 

“여기 앉으세요! 저희가 여자랑 대화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철저히

 

가르쳐드리겠습니다! 이대로 가면 사령관은 죽을 때까지 총각일 겁니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


“조용히 하세요! 잘 들으세요, 이것도 다 훈련입니다. 사령관으로서

 

부하들과 대화하는 법을 배우셔야 합니다. 일단 첫 번째! 뒈져도 여자한테

 

전쟁 역사 이런 이야기 꺼내지 마십쇼! 일이랑 전술 같은 것도!”

 

“저는 그 이외의 주제에 대해선 잘 모릅니다만.”


“그럼 배우세요! 이뱀, 문 잠그세요. 저희가 사령관을 구해드려야 합니다.”


그 직후, 저는 몇 시간에 걸쳐 여자와 대화하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그러고도 거의 나아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앞으로 전술의 역사 이야기를 꺼내진 않으실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37.

 

그날 밤, 저는 자다가 깨어났습니다.

 

딱히 화장실에 가고 싶은 것도 아니고 깨어날 이유가 없었지만 어째서인지

 

깨어났습니다. 가끔은 그런 날도 있고, 딱히 개의치 않았습니다.

 

“어, 옆자리에 계셨는데……어디 가셨지?”

 

제 옆자리에서 주무시던 사령관이 사라졌습니다.

 

혹시 모르니 일단 찾아야겠죠……저는 텐트를 나와 주위를 둘러봤습니다.

 

“사령관?”


“아, 레프리콘 9호. 좋은 밤입니다.”


각하께선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책을 읽고 계셨습니다.

 

“달이 밝아서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러시군요. 조금이라도 더 주무시는 게 좋으실 텐데…….”


“아뇨. 워낙 잠이 적어서 오래 자면 오히려 더 피곤합니다.”


사령관이 책장을 넘기며 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아까 말입니다. 덕분에 귀중한 걸 배웠습니다.”


아, 그거. 솔직히 너무 답답해서 그냥 막 던진 거지만 말이죠.

 

“그리고 하나 더. 솔직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인사를 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뇨. 저한텐 솔직하게 대해주시는 분이 적습니다.”


사령관이 책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페르소나. 라틴어로 가면을 뜻합니다. 저희는 모두 가면무도회에 온 손님이지요.”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인간은 저마다의 가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이 인간과 함께 살기 위해선

 

서로의 본심과 본성을 감추고 연기할 필요가 있죠. 그게 안 되면 사회라는 건

 

애초에 성립조차 되지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때때로 그것이 너무나도

 

싫습니다.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른다는 건 참 무서운 일입니다.”

 

무표정한 얼굴. 그러나 왠지 사령관의 감정을 알 것만 같았습니다.

 

“쓸쓸하십니까?”


“이 감정을 그렇게 부른다면 그런 것이겠죠. 저는 모두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한편으론 그 누구보다도 고독합니다. 제 진짜 얼굴을 보여줄 수 없고 여러분도

 

진짜 얼굴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러니 네, 저희는 가면무도회에 온 겁니다.

 

하하 호호 웃지만 정말로 그럴까요? 그게 그들의, 제 본심입니까?”

 

책은 예측할 수 있다. 이야기는, 논리는, 숫자는. 그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만큼은 이해하지 못한다.

 

사령관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습니다.

 

“레프리콘 9호, 전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인간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각하께선 저희를 위해-”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애초에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아니, 됐습니다.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해봤자 이해하지 못하시겠죠. 모두가 그랬던 것처럼.”

 

사령관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보았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면 이렇게 되진 않았을지도. 서로가 가면 너머의

 

얼굴을 마주볼 수 있었다면, 그리하여 모두가 결국 똑같다는 걸 알게 됐다면.

 

그게 가능했더라도 다른 결말을 맞이했을까요? 아니면 결국 실망했을까요.

 

……역시 밤이 되면 감정을 억누르기 힘듭니다. 아, 이제 슬슬 시작하겠군요.”


“뭘 시작한다고요?”


콰아앙-!


폭음과 함께 저 멀리서 뭉게뭉게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습니다.

 

“이번 훈련은 예측하지 못한 기습을 당했을 때 대비하는 법을 배우는 겁니다.

 

자, 어서 움직이죠. 적은 밤낮 가리지 않고 덤벼옵니다. 완전한 안전 따윈 어디에도

 

없다는 걸 불굴의 마리가 이번 기회에 확실히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서……설마, 이틀 동안 휴식이라고 한 건 거짓말이었군요!”


“네, 거짓말이었습니다. 적은 언제든지 저희를 기만합니다. 적이 한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멍청이에겐 지휘관의 자격이 없죠. 이번 훈련의 진짜 적은

 

바로 저입니다. 여러분은 제가 꾸며놓은 무대에서 끝까지 춤춰야합니다.

 

뭐 하십니까? 그렇게 멍 때릴 시간 따윈 없을 텐데요.”


“그……그렇죠! 모두 기상! 적 기습! 적 기습!!”


정말이지 어디까지가 연기고, 어디까지가 진심이신 걸까요.

 

하여간 마지막까지 속을 알 수가 없는 분이었습니다.

 

 

 

 

 

 

 

38.

 

……그리고 마침내 훈련이 끝났습니다. 

 

12일 동안 이어진 훈련 끝에, 저희들은 훈련의 끝을 장식하는 폐회식을 보고

 

오르카 호로 돌아갑니다. 돌아가면 일단 샤워부터 해야죠.

 

단상에 각 부대의 대장님들과, 제복으로 갈아입은 사령관님이 올라왔습니다.

 

“여러분, 모두 수고 많았습니다. 아, 그래도 다음 분기가 진짜입니다.

 

이번 분기는 다음 분기를 위한 준비운동이라고 생각해주시길.”

 

여기서 더 험하게 굴릴 수 있다고요……? 갑자기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았습니다.

 

“이번 훈련에서 사망한 인원들에겐 본래 휴가 제외, 특별 훈련을 시키려고

 

했습니다만 여러분 모두 열심히 했으니 그건 취소하겠습니다. 단, 생존하신

 

분들에 한해 휴가를 3일 더 드리겠습니다.”

 

만세! 모두가 만세삼창을 하며 각자 무기를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각 부대의 지휘관 여러분. 수고 많으셨습니다. 하지만 그거랑

 

별개로 이번 평가는 기대해주시길. 평소보다 2배 정도 엄격하게 평가할 겁니다.”

 

“야, 솔직하게 말해봐. 너 그냥 우리 괴롭히고 싶어서 이러는 거지!?”


“멸망의 메이. 저는 언제나 여러분에게 가장 좋은 일만 하려고 노력합니다.”

 

“뻥치시네.”

 

“각하, 각하께서 정말 선의로 이러셨다면……차라리 미워해주시길 바랍니다.”


아무튼 폐막식도 끝나고, 저희는 오르카 호로 복귀했습니다.

 

“이야- 이번 훈련은 진짜 힘들었슴다. 설마 제 편지 한 장에 이런 일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슴까? 하하하하!”

 

브라우니 97호가 깔깔 웃으며 말했습니다.

 

……음? 잠깐, 편지라고요? 설마 그 편지라고 하면…….

 

“너였군. 네가 범인이었나.”


“스……승리! 마리 대장님, 갑자기 무슨 일이신지……?”

 

숙소로 들어가서 쉬려던 찰나에, 복도를 지나가던 마리 대장님이 들어오셨습니다.


“그 마음의 편지를 쓴 놈을 찾아다녔는데, 설마 자백할 줄은 몰랐군.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이 바로 너였구나.”


“히이이익! 사, 살려주십쇼! 레프리콘 상병님, 대장님께 뭐라고 말씀드리세요!”


“레프리콘, 그 브라우니가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이다. 괜한 마음의 편지를

 

써서 이 모든 사단을 낸 원흉 말이다……그러니 뭘 해야 하는지 알고 있겠지?”

 

아.

 

과연, 전부 이해됐습니다. 그 며칠간의 고생이 다 이 임포스터 때문이었군요.

 

“이건 교육이지, 병영 부조리가 아닙니다. 아시겠어요 브라우니?”


“뒷일은 맡기마.”


“네 대장님. 자 브라우니……잠깐 저희랑 이야기 좀 할까요?”
 
“으아아아아악!”


그 후, 오르카 호에 브라우니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그걸 신고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합니다.

 

 

 

 

 

 

 

 

사령관이 이번 훈련 점수 매긴 거

100점 만점 기준

 

마리: 69점 

메이: 65점 

아스널: 67점 

레오나: 70점

용: 71점

칸: 72점

 

이후 마리는 컨디션 불량을 이유로 2주 동안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