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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한 사령관의 하루 (9)

 

 

 

 

 

사령관님은 저랑 비슷한 부분이 많아요. 특히 오해를 쉽게 사는 성격인 게.

 

- 해체자 아자즈

 

 

 

 

 

30

 

정기회의. 

 

회의야 맨날 하는 것이지만 저는 오늘은 또 주인님이 무슨 소리를 하실까 걱정됐습니다. 

 

“오늘은 회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제 앞으로 온 마음의 편지를 읽겠습니다.”


그리고 불길한 감은 늘 맞는다고, 오늘도 뭔가 일어날 모양이었습니다.

 

“마음의 편지? 그거 정말로 써서 넣는 애들이 있었네.”

 

손톱을 다듬던 레오나 대장이 말했습니다.


“보통 건의한 사람의 신원을 보호하기 위해 따로 발표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번 건에 한해선 여러분께 통보드릴 것도 있으니 발표해야 합니다.”

 

“또 누가 김밥이라도 먹고 싶다 했습니까?”


“그거 소완 씨가 듣자마자 누굴 분식집 아줌마로 아냐고 엄청 화내셨죠,”

 

“그런 게 아닙니다. 일단 읽을 테니 들어주십시오.”


주인님이 편지를 펼친 후, 가볍게 헛기침을 했습니다.

 

“존경하는 사령관님께. 저는 스틸라인의 일원으로서 사령관님께 반드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서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또 스틸라인이야?”


“쉿.”


“……저희는 한 달에 대강 24일,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 훈련을 받습니다.

 

이건 괜찮습니다. 하지만 분기마다 하는 합동 훈련이나 가상 전투 훈련은

 

정말이지 지긋지긋합니다. 무박 5일 훈련부터 지옥주간은 한 번 겪고 나면

 

살기 싫어집니다. 혹시 사령관님은 저희를 미워하시는 겁니까? 그냥

 

저희가 괴로워하는 걸 보며 즐거워하시는 게 아니신지요? 물론 저희는

 

명령을 받으면 거기에 충실히 따르는 군인이지만 그래도 하나의 인격체로서

 

대해주길 바랍니다. 애초에 한 번도 실전을 겪어보지 못한 사령관님께서

 

이런 마구잡이식 훈련을 진행한다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저는 이런 문제를 고발하고 개선되길 바랍니다. 저희에게 충분한 휴식과

 

지나친 훈련을 중단해주시길, 또 더 체계적이고 인권존중적인 훈련을

 

받고 싶습니다. 부디 저희를 생각해서라도 한 번만 다시 생각해주시길 바랍니다.”

 

긴 편지 낭독이 끝난 직후, 저는 대장들의 얼굴을 훑어보았습니다.

 

……이 편지를 쓴 분이 내일 해를 볼 수 있을지 걱정될 정도로 험악한 표정이었습니다.

 

“오냐오냐하니까 아주 선을 넘네. 이게 스틸라인 평균이야?”


레오나 대장이 날선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하하하! 아주 대담하군. 하지만 그래, 사령관을 너무 무시한 것 같은데.”


아스널 대장이 웃으며 말씀하시긴 했지만, 역시 기분은 안 좋아보였습니다.

 

“병사들이 힘들어하는 건 이해한다. 그걸 이해해줄 순 있지만…….”


“무른 생각이오. 감히 사령관을 힐난하다니, 일벌백계로 다스릴 필요가 있겠군.”


칸, 용 대장도 한 마디씩 했습니다.

 

“각하. 제게 편지를 넘겨주시길 바랍니다. 그 편지를 쓴 병사와 ‘상담’을

 

나눠야겠습니다. 과연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걸 써서 냈는지 꼭 묻고 싶군요.”

 

마리 대장이 겨우겨우 웃으며 말했지만, 이마에 핏줄이 도드라져 불끈거렸습니다.

 

“마음의 편지는 절대 그 내용으로 인해 작성자가 피해를 보면 안 됩니다.

 

또한 신원의 보호를 받아야하며, 저 또한 이러한 의견에 동의하는 바입니다.”

 

“네?”


저희 모두 당황해서 동시에 말했습니다.

 

“저는 이 편지를 읽고 1시간 12분 동안 고민했습니다. 가장 효율적인 훈련

 

계획을 세웠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건 제 착각이고 저의 잘못으로 인해

 

다수가 피해를 보는 것이 아닌지……편지의 작성자도 분명 벌을 받을 각오를

 

하고 이것을 제출했을 겁니다. 그러니 전 이걸 무시해선 안 됩니다.”

 

“각하! 저희 모두 각하께서 얼마나 고된 일을 하시는지 압니다. 하루에 20시간

 

가까이 일하고 그마저도 식사와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줄여서 하시잖습니까.

 

물론 육체적으론 약간이나마 편할지 모르지만, 정신적으로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저희는 상상조차 못 합니다. 심지어 휴일조차 따로 없으시잖습니까?”

 

그 말대로입니다, 연중무휴, 주인님께선 따로 휴일조차 가지지 않고 일하십니다.

 

“게다가 훈련계획엔 문제없어. 물론 훈련은 고되지만, 휴식시간은 확실히 주고 있다고.

 

따로 휴가도 주는데 거기서 뭘 더 바래? 군인이 훈련하는 건 당연한 일이야.”

 

레오나 대장이, 이어서 다른 대장들도 말했습니다.

 

“분기마다 하는 합동 연계 훈련이 힘든 건 나도 잘 알고 있소. 하지만 훈련

 

효과도 확실하고 부대원들의 신체, 정신에 문제가 될 정도의 부담은 없다고 생각하오.”

 

“맞다! 애초에 군인이 그 정도 훈련조차 안 하면 어디에 쓰겠나?”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사령관, 그건 들을 가치조차 없다.”


모두가 그렇게 말했지만 주인님께선 대답하셨습니다.

 

“아뇨. 그건 모두 지휘관인 저희의 생각이지, 병사들의 생각을 대변한다고

 

말할 순 없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저는 한 가지 결론을 내렸습니다.”

 

“설마 훈련 강도를 낮추자고?”


“그보다 더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병사들의 생각을 알 수 없다면, 제가 병사가 되면 됩니다.”


그렇게 말씀하신 후 주인님께서 밑에 있던 방탄 헬맷을 꺼내 썼습니다.

 

“……가, 각하……혹시……제가 생각하는 그겁니까?”


“그겁니다. 저는 오늘부터 스틸라인 소속 이등병으로서 합동 훈련에 참가하겠습니다.”

 

침묵. 저희 모두 서로의 눈치만 봤습니다. 

 

“레오나, 부탁한다.”


“난 설득 못 해. 아니 우리 중에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 있던가?”


“하하하! 재미있는 발상이군! 그래, 이왕 하는 거 캐노니어로-”
 
“아스널 그대는 조용히 있으시오!”

 

“각하! 절대 안 됩니다. 각하께서 다치는 위험도 크고, 훈련 지휘도 하셔야

 

하잖습니까. 부디 결정을 재고해주시길 바랍니다!”

 

“주……주인님? 농담이시죠?”


“전 농담 같은 거 안 합니다. 아시잖습니까.”


아……역시 진심이시구나. 저는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런 관계로 불굴의 마리, 이번 3분기 훈련은 당신께 맡기겠습니다.”


“네?”


“저를 대신해 지휘하십시오. 또, 여러분도 이번 훈련 때 평가 대상이라는 걸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모든 지휘명령과 판단을 기록하고 분석한 뒤 평가 점수를

 

낼 겁니다. 특히 불굴의 마리 당신은 절 대신해 오르카 전군을 지휘할 수 있는지

 

평가하겠습니다. 이의 있으시면 지금 말씀하시길.”

 

“그……그……저기…….”

 

그 마리 대장이, 불굴의 마리가 당황해서 말을 더듬는 광경을 보게 되다니…….

 

가엾으신 분……저는 마음속으로 마리 대장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없으면 이대로 시행하겠습니다. 오늘 회의는 여기서 마치고, 저는 바로 스틸라인

 

12번 숙소로 가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최선을 다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선언하신 후, 주인님께선 그대로 회의실을 떠나셨습니다.

 

“……마리, 힘내라. 사령관이 거는 기대가 아주 큰 모양이다.”

 

한참동안 이어진 침묵 끝에 칸 대장이 입을 열었습니다.


“사령관에게 신뢰받다니 좋은 일 아닌가?”


“말이 신뢰지 사실상 시험이라고. 그 사령관이 평가하는데 기준이 얼마나 높겠어?

 

기대보다 못하면 아예 경질시킬지도 모르지.”

 

“가끔 소관이 해군이라서 다행이란 생각이 드는 거 아시오……?”

 

 

그런 대화가 한참 오가는 와중에도, 마리 대장은 말없이 천장만 보았습니다.

 

“차라리 철충이랑 맨몸으로 싸우는 게 나을 것 같군…….”

 

“힘내세요. 응원하고 있을게요.”


그 이외에 무슨 말씀을 더 드릴까요.

 

그나저나 과연 그 주인님께서 브라우니들 사이에서 잘 지내실지 걱정됐습니다.

 

제발 또 엉뚱한 짓만 하지 말아주시길…….

 

 

 

 

 

 

 

31.

 

누군가가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다고 말했던 게 기억납니다.

 

옛날 영화에 나온 명대사라는데, 전 이게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굳이 더 적절한 비유를 찾자면……인생은 수류탄 상자와 비슷합니다.

 

안을 열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수류탄이 가득한 상자 말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부로 2주 동안 함께 훈련을 받게 된 사령관이라고 합니다.

 

아, 일단 이등병 신분이니 편하게 대해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오늘, 아무래도 저희는 수류탄이 아니라 핵폭탄을 꺼내버린 것 같습니다.

 

숙소에서 쉬고 있던 인원 일동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스……승리!!”


“승리. 아, 빈자리가 있는데 여길 써도 되겠습니까?”
 
“마음대로 쓰셔도 됩니다! 그……그나저나 이게 다 무슨 일입니까?”


“저한테 그걸 물어봤자…….”


저 T-3 레프리콘 9호 인생 최대의 시련이 닥친 모양입니다.

 

아니 왜죠? 대체 왜, 무슨 일이 있었기에 각하께서 이등병 신분으로

 

저희 숙소에 오신 거죠? 어디서부터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시작된 걸까요?

 

“저는 병사 여러분의 생활과 생각을 이해하기 위하여 자진해서 이등병 신분으로

 

훈련을 받기로 했습니다. 여러분보다 아래 계급이니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그래? 그럼 너-”


저는 빛의 속도로 날아가 브라우니의 입을 틀어막았습니다.

 

“아, 아하하! 브라우니, 입에 뭐가 붙어있는데 제가 떼어드리겠습니다!”

 

“아이, 왜 이러십-”


“제발 입 닥쳐요.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가 단체로 해체기에 들어가는 수가 있으니까.”


듣자하지 사령관 각하께선 무자비하고 철저히 계산적인 분이라 하셨으니

 

저것도 다 함정일지도 모릅니다. 방심했다간 저희 모두 끝장입니다.

 

“아이 씻팔……군 생활 좀 피나 했더니 뭐 이런 핵폭탄이…….”

 

“저, 저, 저 지릴 것 같아요. 사……살려주세요…….”

 

“두 분 다 진정하세요.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호랑이 굴에서도 살아나올 수 있어요.

 

뭐가 됐든 말하는 건 제가 할 테니까 얌전히 계세요.”

 

저는 이프리트 병장과 노움 상병한테 속삭인 뒤 돌아섰습니다.

 

“각하?”
 
“각하라고 부르시면 안 됩니다. 너라고 불러도 됩니다.”


“……그럼 사령관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제발 그렇게 부르게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아, 이 사물함은 좀 작군요. 개선 가능성이 보입니다.”


혼자 뭐라고 중얼거리시는 걸까요. 그냥 모르는 게 나을 것 같았습니다.

 

“저기, 왜 갑자기 저희 숙소에 오신 건지……?”

 

“말씀드렸다시피 전 여러분과 함께 훈련을 받을 겁니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훈련에 참가하고, 여러분과 24시간 내내 같이 생활합니다. 그러는 동안

 

군 생활에서 개선해야 할 점이나 훈련에 대한 보완점을 찾는 게 목표입니다.”

 

“그럼 훈련 지휘는 누가 하시는 겁니까?”


“불굴의 마리가 합니다. 아마 이번 훈련은 평소보다 훨씬 강도가 셀 것

 

같으니 여러분 모두 준비하시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이제 싫어!! 나 집에 갈래! 집에 갈 거야! 으아아앙!”


“이프리트 병장님, 여기가 저희 집이잖아요! 가긴 어딜 가신다고요?!”


“제발 제대시켜줘! 여기가 지옥 아니면 대체 뭔데!? 흐에에에엥……!”


평소 같으면 말려야겠지만, 저도 울고 싶은 기분이어서 그냥 내버려뒀습니다.

 

아…….

 

제대하고 싶다.

 

 

 

 

 

 

 

32.

 

훈련 전날 밤.

 

훈련 전날이지만 근무는 똑같이 들어갑니다. 

 

원래 오늘 불침번은 브라우니 97호랑 들어가는 거였지만 각하께서

 

자기도 근무를 서보고 싶다고 하셔서 같이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승리.”


“승리!! 사, 사, 사령관님! 근무 수고하시길 바랍니다!”

 

그 임펫 중사님이 이렇게 긴장하시다니, 처음 보는 일이었습니다.

 

“사수 레프리콘 9호, 부사수 사령관. 이상 2명 지금부터 불침번 근무

 

투입하겠습니다. 승리!”

 

“승리!”


와, 중사님도 이렇게 칼 같이 경레하실 수 있으셨군요.

 

아무튼 저희는 어두컴컴한 오르카 호의 복도를 돌아다녔습니다.

 

“불침번 근무는 근무자 두 명이 오르카 호의 중요 시설 및 숙소를 순찰하는 겁니다.

 

취침 시간인 10시 이후엔 특별한 목적없이 오르카 호를 배회해선 안 됩니다.”

 

“아, 취침 시간이 10시였습니까?”


“……그 시간에 안 주무십니까?”


“전 새벽 3시에 자서 6시쯤 일어납니다. 여기서 취침시간을 줄이면 가끔 졸도합니다.”

 

“그럼 그 나머지 시간엔…….”


“일합니다. 오, 그나저나 저기 누군가 있군요.”


아니 왜 하필이면 이럴 때……! 평소 같으면 그냥 얼른 들어가서 자라고

 

말하고 끝이지만, 오늘은 FM대로 확실하게 해야 합니다.

 

“정지, 정지, 정지! 손 들어! 움직이면 쏜다! 고산!”


“엥……? 하, 하치코는 암구호 모르는데요!”

 

죄송해요 하치코 씨! 그치만 이렇게 안 하면 제가 죽을지도 몰라요!


“바닥에 엎드려! 손 머리 위로 올려!”


“저에요 저! 하치코! 그, 그 밧줄은 뭔가요……?”


“조용히 해! 상황실, 여기는 도깨비. 거수자 1명 발견하여 제압, 포박했습니다.

 

현재 식당 앞, 시간은 오전 1시 10분입니다.”

 

“흐에에에엥……죄송해요, 하치코 배고파서 남은 미트파이 먹었어요…….”

 

저는 하치코 씨를 꽁꽁 묶은 후, 그대로 상황실에 데려다주었습니다.

 

진짜 죄송해요. 나중에 뭐라도 사줄 테니까 한 번만 용서해주시길…….

 

“흠, 가차 없으시군요.”


“당연한 겁니다. 불침번은 거동수상자를 발견하면 즉시 대응해야합니다.

 

설령 얼굴을 아는 사이더라도 예외는 없습니다!”

 

“그렇습니까. 경계 근무가 잘 진행되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열심히 하시는군요.”


칭찬받았다! 저는 기쁜 마음에 실실 웃고 말았습니다.

 

저희는 한참 복도를 돌아다녔습니다. 2시간이나 걸어야하지만 각하께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묵묵히 제 뒤를 따라오셨습니다.

 

“군 생활에 있어 불편하거나 개선해야 할 점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없습니다!”


“정말입니까? 흠……알겠습니다. 다른 분들께도 물어봐야겠군요.”


아뇨, 물어보지 말아주세요. 특히 브라우니들한테는…….

 

그 바보들이 무슨 헛소리라도 했다가 부대 전체가 공중분해 당하는 꼴만큼은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만큼은 피해야 합니다.

 

“가……각하.”


“사령관이라고 불러주십시오.”


“사령관,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바쁘실 텐데 이런 일로 시간을 낭비하시면…….”


“시간 낭비가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너무 신경 써주지 못한 겁니다. 

 

뭐가 됐든 개선하고 싶은 게 있다면 말씀해주시길. 나중에 반영하겠습니다.

 

아, 기회가 됐으니 뭔가 물어보고 싶으신 게 있다면 물어보셔도 됩니다.”

 

물어보고 싶은 거라……그래도 기회가 왔으니 모두가 궁금해 하던 ‘그걸’

 

물어볼까요. 아니, 혹시 질문했다가 무례하다고 혼나진 않겠죠……?

 

“가- 아니, 사령관. 전부터 늘 궁금했던 게 있습니다만. 혹시 무례를

 

저지르는 게 아닌지 심히 걱정되지만 그래도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뭐든 물어보시길.”


“……사령관께선 혹시 여자한테 관심이 없으신 겁니까?”


말해버렸다. 하지만 궁금해서 물어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주제는 모두가 궁금해 하는 오르카 호 최대의 떡밥 중 하나인데, 알

 

방법이 없어서 여태껏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난제였습니다.

 

“여러분께 관심을 가지는 게 제 일입니다만.”


“아뇨, 아뇨. 그게 아니라……이성으로서, 애정의 대상으로 볼 수 있는지

 

그런 걸 여쭤본 겁니다만.”

 

“아아.”


각하께선 멍한 표정으로 한참을 눈만 껌뻑이셨습니다.

 

“애매하군요. 일단, 성욕의 대상으로서 인식은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속된 말로 꼴리긴 하시는 거군요?”


“네. 하지만 손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상관없지 않습니까? 오히려 그렇게 해주길 바라는 분이 많으실 텐데요.”


“제 권력이 남용되어 성폭력이 일어나는 경우는 바라지 않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저의 권한은 남용되거나 오용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므로 전 여러분께

 

손을 대지 않을 겁니다. 애초에 손을 댈 시간도 없고요.”

 

한 마디로 성욕의 대상으로 인식은 하지만, 일부러 손을 안 대신다는 건가.

 

남자라면 모두 이런 상황을 좋아할 텐데……참 특이하신 분입니다.

 

“성욕은 일하면 자연스레 가라앉습니다. 몸이 피곤하면 성욕도 가라앉죠.”


“설마 지금까지 그렇게 해결하신 겁니까?”


“네. 잘 정리된 보고서를 보며 일하면 어느새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욕정이니 그런 것에 휩쓸려 사는 것보다 일을 하며 보람을 느끼는 게 좋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여러분도 성욕이 있을 텐데 어떻게 해결하는지 모르겠군요.”

 

설마 각하랑 이런 주제로 대화할 줄이야. 참 세상 일은 모르는 겁니다.

 

“……솔직히 말씀드려도 됩니까?”

 

“비밀은 죽어서도 지키겠습니다.”


“보통 자위기구를 사서 씁니다. 음성을 듣는 분도 있고, 멸망 전에 시청되던

 

포르노도 많이들 봅니다. 특이 취향이지만 야설을 읽는 분도 있고……조금

 

위험한 방식으로 해소하는 분들도 계시죠.”

 

“……야설? 음성? 뭔지 잘 모르겠군요. 아무튼 알겠습니다. 성욕도

 

욕구의 일부이니 그런 것을 제재할 마음은 없습니다. 다만 풍기를

 

해치지 않도록 주의해주시면 좋겠군요.”

 

“혹시……하……하십니까? 그……자위……말입니다.”


“……안 합니다. 레프리콘 9호께선 하십니까?”


“……합니다.”


“그렇군요.”


세상에서 이보다 더 어색한 대화가 있을까요.

 

그 뒤, 저희는 한 마디도 않고 조용히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전 각하의 성욕해소법을 죽어서도 말하지 않기로 다짐했습니다.

 

 

 

 

 

 

 

 

 

 

 

레프리콘은 샤워할 때 하는 걸 좋아한다.

사령관은 마음의 편지를 한 달 평균 5장 이상 받고, 뻘글을 받아도 최소 3페이지 이상 답변을 써서 보내준다.

그리고 마음의 편지 대부분은 함 하자고 권유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