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클럽에서 만난 여자한테 싸구려 모텔 대신 내 방으로 가는게 어떠냐고 물어봤더니 좋다고 반색했다. 쓸데없는 가구나 장식 없이 침대만 덩그러니 있는 방에 그녀를 들이자, 갑자기 윗층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난다. 방 안에서 곰을 키우는게 아니라면 윗집 사람이 일부러 내는 의도적인 소리가 분명하다.


애써 무시하려 했지만 이내 물건이 깨지는 소리와 악지르는 소리까지 들린다. 같이 왔던 여자는 소름끼친다며 다음에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짜증이 솟구쳐서 대충 누워 한참동안 천장을 노려봤다. 소음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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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정신나간 사람의 기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저 지랄을 하는 날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내가 방에 여자를 들이는 날만 저렇게 난동을 부린다.


대체 여자를 데려오는 건 어떻게 아는거지? 주말 내내 온 집안을 샅샅히 뒤져 카메라나 녹음기를 찾아봤더니, 벽지 마감이나 창틀같이 눈치채기 힘든곳에 카메라처럼 보이는 물건이 설치되어 있었다. 온몸에 소름이 끼친다. 대체 왜?


집주인한테 말해봤더니 거의 얼굴보기 힘든 여자가 산다고 한다. 방에서 나오진 않아도 집세는 꼬박꼬박 내니 쫓아내지는 않았다고. 전에 잠깐 만났던 여자들 중 하나가 아닌가 싶어 이름을 물어봤더니 처음 들어본 이름이다. 그럼 도대체 왜?


이유가 뭐가 됬건 집주인이 해결해 줄 수 없다면 내가 직접 해결 할 생각이다. 저런 정신나간 년한테 어울려 줄 만큼 나는 인내심이 많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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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좀 해봤지만 역시 본인한테 물어보는게 가장 빠르겠지. 바로 올라가서 문을 두드리고 얘기좀 하자고 말해봤다. 방 안쪽에서 허둥지둥 움직이는 발소리가 났다. 방 안에 있는데 억지로 무시하는게 분명하다. 이대로 하루 종일 기다려볼까 생각했지만, 정신병걸린 여자 하나때문에 시간을 너무 낭비하는게 아닌가 싶어 돌아갔다.


집주인에게 내일 건물 가스점검이 있다는 문자를 받았다. 저 여자가 정상적으로 남들과 소통을 하는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같은 건물에 세들어 살면 연락 정도는 받았을거다. 집주인에게 물어봐서 구체적으로 언제 오는지 확인했다. 점심 정도에 방문이 있다고 했으니 그보다 빨리 찾아가면 되겠지. 제대로 대화는 못하더라도 어떻게 생겨먹은 사람인지 얼굴이라도 확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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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 점검입니다."



가볍게 문을 두드리고 미리 녹음해둔 목소리를 틀었다. 목소리를 내리깔고 몇 번 녹음해봤지만, 혹시 모르니 친구에게 녹음을 부탁했다. 현관문 외시경에 보이지 않도록 서서 인기척을 확인했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와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린다. 문틈이 열리자 손잡이를 확 잡아챘다.


활짝 열릴 줄 알았던 문은 적당히 열리더니 무언가에 걸린 듯 했다. 안을 들여다 보니 잠금 고리가 걸려있었다. 쓸데없이 조심성은 많아서.


별 생각없이 문을 열던 윗집 여자는 깜짝 놀랐는지 몸이 튀더니, 두 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애써 닫으려고 한다. 손잡이를 잡고 당겨 닫지 못하게 막으며 뭐하는 여자인지 관찰했다. 


생각보다 멀쩡하게 생겼다. 구부정하게 숙인채 양 손으로 손잡이를 잡고있어 판단하기 애매하지만 키는 작아보인다. 집안에 박혀있는 히키코모리라는 걸 증명하듯 목 늘어난 티셔츠에 잠옷같이 보이는 바지가 좀 귀엽다. 고개를 푹 숙이고있어 얼굴은 보기 힘들지만 정신병자 치고는 멀쩡하게 생긴 외형이다.



"만나서 반가워요. 나 알죠?"



대답은 없지만 눈에 띄게 당황한 눈치다. 가는 손목으로 애써 문을 닫으려고 낑낑대지만, 얼굴만 보고 끝낼 생각은 없다. 



"카메라 설치한 거 그쪽이죠? 왜 그랬는지 듣고싶은데 문좀 열어줄래요?"



진정이 안되는 듯 호흡이 가빠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작은 몸으로 벌벌 떠는게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진정할 때 까지 기다려 주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다. 남의 집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난동을 피우는 여자가 멀쩡한 정신상태를 가졌을 리는 없으니 기회를 잡았을때 몰아붙여야 한다.



"열기 싫으면 대답만 해줘요. 왜 제방에 카메라 달아놨어요? 나 보고싶어서?"


"문만 열어줘봐요. 들어가게만 해주면 원하는거 다 들어줄게요."


"..."


"진짜 안열어줘요? 안 열어주면 이사가려고 했는데. 솔직히 층간소음때문에 짜증나거든요?"



여자가 갑자기 벌떡 고개를 들었다. 당황한 듯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리고 어쩔줄 몰라하는 표정이지만, 그럼에도 귀엽게 생겨서 잠깐 말을 잊었다. 대체 이런 여자가 왜 방에 쳐박혀서 하루종일 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거지? 



"싫나보네. 그럼 이사갈게요. 내일 당장 계약기간 끝나는 날인데 연장할 필요 없겠네. 수고해요."


"잠..잠깐만요..."



드디어 목소리를 들었다. 떨림이 심해 알아듣기 힘들지만 선이 얇고 높은 목소리다. 목소리도 괜찮네 하고 생각하다가, 그래봤자 정신나간 정신이상자라고 스스로에게 상기시켰다.



"열테니까...안방에만 들어가지 마요..."



잠금장치가 풀리고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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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왜 그랬어요?"


"..."


"대답 안할거에요? 범죄인건 알고있죠?"


"..."


"아무 대답이나 해줘요. 예? 계속 그러고 있을거에요?"



대화가 전혀 성립하지 않는다. 윗집 여자는 고개를 숙이고 땅바닥만 쳐다보고 있고, 나는 잘못한 열살배기 딸을 훈계하는 듯한 모습이다. 방구석 히키코모리라 해도 이정도 일 줄은 몰랐는데, 아니 애초에 잘못한건 이 정병녀인데 왜 내가 끙끙 앓는거지? 최대한 매끄럽게 해결하고 싶었는데 슬슬 짜증이 몰려온다.



"아까 말한거 협박 아니에요. 윗집에서 시끄럽게 하고 스토킹까지 하는데 계속 이 집에서 살거같아요?"


"가...가지 마요..."


"그럼 왜 그랬는지 얘기할거에요? 카메라 설치한거 더 있어요?"


"..."



아무래도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