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성은 불안했다.
죄책감이 들었고,
그 감정은 점점 자기혐오로 변하기 시작했다.
열차에서 할머니를 구하지 못했다는,
자신을 구해준 은인도 구하지 못했다는 무력감이
그것을 더더욱 증폭시켰다.
그러한 감정에 짓눌린 그에게 유중혁의 말은
뭐랄까 갑작스럽고 고마웠다.
"5일후 김독자와 함께 충무로로 와라,
그리고 이녀석은 나와 함께 간다더군."
마치 김독자가 살아있다고 확신하는 말과 함께,
그는 여학생과 금호역을 떠났다.
"........뭐지 그건?"
그리고 나는 지금, 죽은 어룡의 위장속에 있다.
몇시간전.
[소수의 성좌들이 당신들의 생존력에 감탄합니다.]
[성좌, '절대 용서받지 못할 기만'이
1000코인을 후원하였습니다.]
[히든 시나리오 클리어에 성공하였습니다.]
[히든 시나리오-커맨더 슬레이어가 종료됩니다.]
[보상으로 9000코인을 획득하였습니다.]
유상아와 함께여서일까. 업적 보상은 없지만
다행히 이채널에 호구 성좌가 하나있으니까.
[보유 코인:20328c]
팔자에도 없던 생존물을 찍는 동안
'절대 용서받지 못할 기만'은 내게 무려 5100코인이나
후원했다.
화신도 아닌 내게 이정도나 퍼주었는데
유상아는 얼마나 받았을까.
"하하, 정말 굉장한 생존물이었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그럼 잠깐 광고하나 보시고
다음 시나리오 진행 들어가겠습니다!"
비형이 광고를 트는 사이, 나는 반대편에서
숨을 몰아쉬는 유상아 몰래 비형에게 신호를 보냈다.
"두분다 수고 하셨습니다! 이건 제가 쏘는 겁니다"
['엘라인 숲의 정기(가짜)'를 받았습니다.]
"저...이건 어떻게 쓰는 걸까요?"
"글쎄요, 일단 먹어보죠."
내가 바로 아이템을 입에 넣자 유상아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한입에 삼켜버리더니 그자리에서
골아떨어졌다.
"후.... 대단하네, 성좌들 반응이 장난이 아니더라.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이틀. 보는 내내 조마조마 했다고."
"그래, 이제 도깨비 보따리좀 열어줘."
"왜? 또 살 거 있어?"
"살것도 팔 것도 있지."
비형이 도깨비 보따리를 여는 동안.
나는 위장벽을 살펴 보았다.
나는 남은 가시중 하나를 뽑아 위장벽을 깨기 시작했고.
얼마지나지않아 파랗게 빛나는 영룡한 구슬을 발견했다.
[어룡의 핵]
"이거 팔거야. 물물교환으로 도깨비 경매에 올려둬.
교환 물품은 반드시 '부러져선 안되었던 신념'으로."
"너 진짜....."
나는 비형을 무시하고 장바구니에 넣어둔 '백청강기'를
구매했다.
도깨비 보따리에 아이템들은 비싸고 가성비도
별로지만 초반에 얻을 수 있는 강기공 중에는
이것만한게 없다.
"자, 그럼 이제 이야기 좀 하지?"
비형이 중복된 광고를 내보내며 말했다.
"긴가민가 했는데, 이번 시나리오 보고 조금 확신이
생겼어. 뭣하면 내가 조금 도와줘도 되고."
"그럼 서약에 위배되는거 아냐?"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보다 진짜 계약 하는거 맞지?"
"그래, 우선 조건부터 정하자고."
"시원시원해서 좋네. 읽어봐."
꼴에 도깨비라고 계약서까지 준비해온 모양이다.
---------------------------
"흠, 뭐가 하나 빠졌는데?"
"날인? 그건 그냥 동의한다고 말만 하면 돼.
스트림 계약은 영혼 서약이라-"
"비율."
"엉? 아,하하. 그렇지."
내가 이런거에 초짜라 생각할줄 알았겠지 이녀석은.
"5대 5 어때? 대신 채널 수수료는 빼줄게."
"날 호구로 아냐? 안 해."
"뭐? 하지만 이건 이쪽 업계 기본 정산 비율인데?"
저런 뻔뻔한놈.
"난 배후성이 없는 화신이야. 그리고
배후성이 없는 화신을 후원할 때,
성좌들은 도깨비에게 막대한 수수료를 내야하지.
이미 내덕에 꽤나 재미봤을텐데?'
비형의 턱이 점점 벌어졌다. 스트림 계약도
아는 내가 이걸 모를거라 생각하다니.
단순한 놈.
"10대0."
"뭣이라! 그건 안돼! 그래, 7대3은 어때?"
"개소리마, 넌 후원금만 받아도 충분하잖아."
"너야 말로 개소리마!
혹부리랑 계약해도 그딴 비율은 안 나올거라고!"
"조용히 좀 해 유상아씨 깨겠다."
"내가 지금 조용하게 생겼..."
"싫음 말든가. 그냥 딴데 가지뭐, 요즘 '길달'녀석이
잘나간다는데...."
"아, 제발! 그럼 8대2!"
"10대0."
비형은 지금 당장 내머리를 터트릴 듯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물론 놈은 이계약을 절대 포기하지 못하리라는걸
아는 내게는 사탕뺏긴 어린애로 밖에 안보인다.
"광고도 끝나가는데, 이제 결정하시지 그래?"
"하....그래, 내가 졌다. 10대0,
이제 계약할거지?"
.....사실 9대1 정도로 양보하려 했는데,
저놈 생각보다 뒷돈을 더 많이 처먹는지도 모르겠다.
"그래, 그리고 한 가지 더.
"또 뭘....."
"계약금은 따로 줘야지, 5000코인, 내놔."
"....너어는 진짜...."
그리고 다시 현 시점.
유상아가 바닥에 엎어진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저... 독자 씨, 제가 자고 싶어서 잔게 아니라...."
"압니다, 저도 갑자기 졸음이 밀려와서...."
"아, 그래요?......"
"아, 네......."
이사람이랑 대화하면 항상 어색한 결말로 끝나네.
그나저나 아까 그건 도대체 뭐지?
유중혁이 어떻게 내이름을....
나는 그렇게 생각하다 뭔가 깨달았다.
"야, 뭔말이라도 해봐! 성좌들이 답답해 하잖아!"
비형의 도깨비 통신과 함께 몰려오는 메시지를
무시하며 나는 재빨리 나갈 채비를 했다.
밖에 나가면 옷부터 챙겨야...
[성좌, '절대 용서받지 못할 기만'이 당신과 자신의
화신에게 특별한 아이템을 후원하였습니다.]
[늙은 신사의 단벌슈트(브라운 컬러)를
획득하였습니다.]
허공에서 내려온 천조각이 각각 갈색의 슈트로
변해 나와 유상아를 감쌌다.
"유상아씨, 일단 나가죠."
나는 최대한 유상아에게서 눈을 돌리며 탄성을
읽은 위벽을 깨부수었다.
틈새로 물이 쏟아져 나오는 동시에 나는 한강으로
뛰어들었다.
"푸하!"
다행히 주변에 어룡들이 없어서, 나와 유상아는 무사히
한강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두 번째 메인 시나리오 지역에 진입하였습니다.]
[해당 지역의 대지는 깊이 오염되어 있습니다.]
[호흡은 참고 빠르게 지하로 이동하십시오.]
메시지야 저렇게 뜨지만 사실 나와 유상아는 지상에
있으면 안된다.
[맹독 안개에 노출되었습니다.]
이안개는 7급 괴수종인 '시독 코뿔소'의 방귀다.
다행히 놈은 안개 너머의 괴수와 대항하고 있었는데.
그림자로 봐서는 충왕종인 듯 했다.
"유상아씨, 이거 입에 물어요."
['엘라인 원숭이의 허파'를 사용합니다.]
[소수의 성좌들이 당신의 준비성에 감탄합니다.]
나와 유상아는 비닐봉투 몇 개를 챙겨서 식품들을
마구잡이로 쓸어 담았다.
유상아는 이걸 비상식량이라 생각했는지 유통기한이
널널한 것들만 챙겼지만, 사실은 최대한 많이 담는게
훨씬 중요했다. 이건 식량이 아니라 거래 품목이니까.
합해서 여섯 봉지 쯤 담았을까.
구석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 살려.....살려줘요."
아직도 살아있는 사람이 있나?
유상아가 구석에서 한여자를 업어 올렸다.
상비용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인지 중독 상태가
심하지 않았다.
멸살법에 이런 엑스트라가 있었던가? 자세히 살펴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우리는 곧장 금호역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멀리서 보인 3번 출구 표지는 이미 닫혀있었다.
재난 상황이어서 그런지 출구마다 방화셔터로
막혀있었다.
가시로 부수는 방법이 있었지만
자칫하면 사람들이 다칠 수 있다.
그때 갑자기 유상아가 따라오라는 듯한
행동을 취한후 4번 출구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고.
때마침 우리는 닫히려던 셔터 틈새에
가시를 꽃아넣었다.
"뭐, 뭐야!"
"문 열어요."
"아, 안돼, 이미 포회 상태라고!"
"그딴건 우리가 알바 아니고."
나는 힘껏 셔터를 들어올렸다.
근력이 무려10이나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와악! 다들 도망가!"
겁 먹은 사내들이 지하도 안쪽으로 도망쳤다.
무사히 역 안으로 진입하자 유상아가 여자를
바닥에 눕혀 그녀에게 허파를 물려주었다.
내가 그들에게 '특성 일람'을 발동하려던 찰나,
"저기 저 놈입니다 형님!"
방해꾼들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