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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여친을 NTR당해서 여성불신이 된 나에게 절대로 NTR 당하지 않는 과학부 부장이 들이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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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조수 군, 자네 호모인가?」


 오늘의 동아리는 부장의 뜬금없는 한마디로 시작되었다.


 조수라고 불린 나, 카가리 마키노는 의자를 박차 일어나 부정했다.


「뜬금없이 무슨 소리에요! 저 호모 아닙니다!」


「아니, 자네 인기 있지? 오늘도 점심시간에 안뜰에서 미소녀에게 고백받았잖나……인기 있는데도 연인이 없는 걸 보니 호모가 아닌가 싶어서 말일세」


「아니 사고방식 진짜……」


「흐음……」


 이마를 꾸욱, 누르고 한숨을 쉬면서 맞은편의 스툴에 앉아 슬픈 표정으로 염려하는 미소녀를 바라보았다.


 햇살 아래 설원처럼 밝게 빛나는 새하얀 웨이브의 긴 머리칼에 보라색을 띠는 흑발이 약간 섞여 있다. 언제 봐도 어떤 구조에 어떻게 물들인 건지 모를 머리카락이다.

 굵직하고 커다란 디자인의 패션 안경의 렌즈 너머로 보이는 붉은 눈동자는 루비처럼 눈부시고 아름답다. 촌스러운 뿔테 안경 같은 거로는 아름답고 기품 넘치는 미모를 숨길 수 없었다.

 정리는 진짜 못하면서 교복은 완벽하게 맵시 있게 입고 항상 걸친 백의에는 주름 한 점 보이지 않는다.

 키는 약 150㎝라서 나보다 20㎝ 이상 작은데 항상 자신감 넘치는 분위기 때문인지 키가 좀 더 커 보인다.


 내가 소속한 과학부 부장은 오늘도 독특하고 이질적이며 아름다웠다.


「자네는 왜 연인을 만들지 않지? 한창 청춘 할 나이 아닌가?」


「딱히 연애가 청춘의 전부는 아니잖아요……」


「에―, 연애는 즐겁잖나?」


「그러는 부장도 연애랑 거리 멀잖아요. 허구한 날 연구 삼매경이면서」


「―허어? 나도 연애는 한다네. 매일 러브러브지」


「……말도 안 돼」


 그건 그것대로 충격적인 이야기이다.


 매일 방과 후에 과학부 부실에 와서 초절미소녀인 부장을 수다를 떨면서 독차지 있었으니까 말이다. 연애감정 여부는 둘째치고 좀 질투심이 생겼다.


 하지만 부장에게 남친이 있다는 이야기는 티끌만큼도 들어본 적 없다. 분명 뻥일게 뻔하다고 결론짓고 부장의 등 뒤로 보인 남자의 환영을 떨쳐냈다.


「그래서―, 왜 연인을 만들지 않는 건가? 여자에게 약한 건가?」


「아뇨 그런 건 아닌데, 트라우마가 좀……」


「트라우마? 여자에게 심하게 실연 당한 건가?」


 부장은 눈을 빛내는가 싶더니, 내게 쑥 몸을 들이밀며 다가왔다. 아름다운 얼굴이 엎드리면 코 닿을 데까지 다가와서 무심결에 상반신을 젖혔다.


 솔직히 다른 사람에게 말할 내용이 아니었지만 부장의 곧은 시선에 눈을 때지 못한 채, 띄엄띄엄 입을 열었다.

 솔직히 누구에게 토해내고 싶은 기분도 있었다.


「 사실 일 년 전에 여친이 바람나서요……」


 상간남이 보낸 옛 여친과 저지른 성행위를 담은 비디오레터는 지금도 트라우마라서 어쩌다 떠오르면 토할 뻔하기도 한다.


「흠흠」


「걔는 평소랑 다를 게 없었는데 뒤에서 몰래 그런 짓을 저지르고 다닌 게 너무 무서워서요…… 한동안 연애는 생각하기도 싫어요……」


 첫 여친에다 동정까지 줬고 가장 마음이 맞았던 소녀, 틈만 있으면 행복한 미래를 꿈꿀 정도로 사랑하고 있었다.

 그랬던 가장 사랑하는 그녀가 웃는 얼굴로 다른 남자와 성행위에 힘쓰고 있었으니까, 그 충격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였고, 그 덕분 나는 여성 불신이 되었다.


「음……과연, 사정은 알았네」


 부장은 턱에 손을 대며 골똘히 생각했다.


「그럼 연인이 바람 피지 않는다면 연애할 수 있겠나?」


「예? 아……뭐 그렇겠죠?」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하지 못한 채 대충 대답한다.

 여친을 지하에 감금하지 않고서야 그런 걸 막을 수 없을 거다. 절대로 바람 피지 않는다는 건 상상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천재 과학자인 부장이라도 이건 무리다.


「좋아, 그럼 내일까지 발명해 오지」


「예?」


 내가 어안이 벙벙한 동안, 부장은 허둥지둥 돌아갈 준비를 마쳤나 싶더니 새하얀 장발을 나부끼며 부실을 달려 나갔다.


「……엉?」


 시계를 보니 아직 오후 4시도 되기 전이다.


 둘밖에 없는 동아리에서 다른 한쪽이 없어지고 나니 그저 외로운 공간만이 남았다.


 부장이랑 좀 더 얘기하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이 바닥만 가볍게 쓸고 부실을 뒤로했다.





 ――다음날.





 자신감 넘치는 오만한 미소로 과학부 부실에 온 부장은 대뜸 이렇게 말했다.


「자네의 바람기 공포증을 고치기 위한 도구를 가져왔다네!」


「아, 예……」


 바람기 공포증이 아니라 여성불신이라고 정정하고 싶었지만, 말을 꺼냈다간 귀찮아질 것 같아서 관뒀다.


「조수 군을 위해 밤새워 노력했는데, 반응이 그게 뭔가!」


 부장이 허리에 손을 올리며 화내는 척한다. 당연히 장난치고 있는 거니까 정말 화난 것은 아니다.


「자자, 어서 앉게」


 테이블의 옆에 나란히 놓여있는 스툴 중 하나에 앉으면서 나에게도 착석을 재촉한다.


「그럼 첫 번째 발명품」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테이블 위에 노란 캡슐을 두었다.

 언뜻 보면 평범한 알약처럼 보이지만, 아무리 봐도 수상하다.


「뭡니까 이거?」


「【NTR 예방약 하이퍼 인센시티브】라네」


 자비 없는 저세상 센스로 가득찬 이름이었다. 나이 센스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감성이 심각했다.

 애초에 제대로 된 장비 없이 천재라는 이유로 신약을 만들 수 있는 걸까. 개그만화도 아니고 진짜. 갖가지 의문이 끊이질 않는다.


「먹으면 어떻게 되는데요?」


「이 약을 먹으면 사랑하는 이의 바람기에 대해 매우 둔해진다네.


아내가 5일 연속으로 새벽에 돌아와도 『친구랑 술 마셨어』라는 이유로 이해해버리고


네가 잠든 바로 옆에서 아내가 상간남과 섹스하고 있어도 눈치채지 못하고,


아내가 전화 너머로 갑자기 허덕여도 『벌레 때문에 놀라서』라는 이상한 변명으로 이해해주고,


아내와 상간남의 NTR비디오 레터를 본다고 해도 아내와 굉장히 닮아있는 사람이 나왔다는 거로 끝나지.


가장 최악의 상황인 바람기 현장에 들이닥쳐서 『당신 걸로는 이제 만족 못 해』라고 직접 듣는다 해도 뇌의 신호를 억제해서 데미지를 완전히 막아주지.


다시 말해 바람맞은 게 아니게 된다네!」


「아니 문제 해결 안 됐잖아요! 뺏긴 거잖아!」


「인식할 수 없으니까 뺏긴 거 아니라네」


 그건 둔하고 자시고를 떠나서 그냥 정신병자에 호구병신이다.


「애초에 이건 예방약이라네. 바람기를 막는 도구는 따로 준비했고말고」


「그냥 다 불안한데요……」


 그렇게 말하며 부장은 새로이 녹색 캡슐을 꺼냈다.


「또 또 이상한 약.」


「이름하여, 【나는 그녀를 믿고 있어 스타터 팩】이다. 일단 삼키게. 나는 벌써 먹었다네」


「어, 싫은데…… 진짜 안 먹고 싶은데요……」


「먹게!」


 부장은 재빨리 다가서서 내 목덜미를 잡곤 캡슐을 얼굴에 꽉 눌렀다. 아니 이 사람 진짜!


「포, 폭력 멈춰! 임상시험도 통과 안 한 자작 약을 먹이는 건 범죄라고요! 오고고곡……」


「나 천재니까! 진짜 괜찮으니까!」


 입씨름은 길게 가지 않았다. 결국, 천재인 부장을 믿고 내가 먹기로 했기 때문이다.


 목에 캡슐을 넘기고 부장이 준비한 비커의 물을 단번에 들이킨다.


「하아, 하아……이러면 돼요?」


「수고했네. 여기 이 단말을 대충 조작하게」


 부장이 얇은 정보 단말을 하나를 나에게 전했다.


 손으로 더듬어가며 기동하니 항목이 몇 개 나타난다.


 【로그】【위치】【상태】【공유】【감청】과 5개의 패널이 나타났다.


「……그래서, 뭐에요 이거」


「로그가, 나의 회화 로그.

입장이, 나의 현재 위치 및 과거의 이동 정보 검색.

상태가, 나의 정신, 심박 수의 해석, 표시.

공유가, 나의 시야의 표시.

감청이, 나와 대화하는 상대의 소리를 훔쳐 들을 수 있지.

즉, 다이렉트로 나를 감시할 수 있다는 걸세. 이러면 바람도 피울 수 없지」


「……예?」


 시험삼아 【공유】를 눌러 보니 화면이 바뀌고 부장이 보고 있는 내가 보였다. 정말 상대방의 시야를 볼 수 있다.

 무슨 원리로 이렇게 되는 거지……눈동자에 나노 머신이라도 돌고 있는 걸까.


「상태는 누르지 말게. 나의 멘탈 리포트가 들켜버리거든.」


「호이」


 바로 【상태】를 누른다.

 아마 부장의 정신 상태를 수치화란 걸로 보이는 정보가 표시되었다.

 화면에 나오는 수치나 그래프의 게이지가 빨갛고 그래프도 이상치를 나타내고 있다. 버그 난 거 아냐, 이거?


「바보야, 누르지 말라고―!」


 얼굴이 새빨간 부장이 단말을 냅다 뺏고는 전원을 꺼버렸다.

 잠깐 숨을 가다듬고는 등을 펴 소리 높이 말한다.


「어떤가! 이걸로 여성불신도 해소되지 않았나? 나 한정으로 말이지! 하하하하하」


 부장은 자랑스러운 얼굴로 가슴펴 웃는다.

 부장의 사생활이 완전히 노출되는데 그거 괜찮은 걸까.


「뭐 아직 더 남았다네」


「이제 충분한데요」


 책상에 푹 엎드리며, 즐거워 보이는 부장을 곁눈질로 바라봤다.


「조수 군, 여자는 왜 바람을 피우지?」


「……몰라요, 그런 거. 바람 피는 상대가 돈이 많거나, 취미나 마음이 맞거나………… 상대가 더 잘 한다거나……여러 가지 아닐까요?」


 그때의 여친이 떠올라서 우울한 기분으로 이야기한다.

 자기만 만족하기 위한 성행위는 한 적 없었지만, 그래도 옛 여친은 나를 버리고 상간남을 선택했다. 내게는 보여준 적 없는 쾌락에 물든 얼굴을 보여 상대를 세우고 나를 깎아내리는 말을 몇 번이고 영상 속에서 반복했다.

 입안에 시큼한 맛이 퍼진다. 생각해 낸 것만으로 토할 것 같았다.


「그렇지. 대부분은 기분이 좋기 때문, 이겠지. 그런고로 거기에 대항하는 도구를 만들어 왔다네」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주머니에서 새하얀 상자를 꺼냈다.

 네 자릿수 패스워드를 입력하자, 공기가 빠지는 소리와 함께 뚜껑이 열렸다.


「주사기?」


 안에는 두 개의 주사기가 있었다. 한쪽은 투명한 핑크색, 한쪽은 투명한 녹색의 액체가 들어있었는데, 암만 봐도 몸에 좋지 않아 보였다.


「이것은 이름하여……이름하여……그렇군, 【에일리언 정조대】다!」


「아니, 네이밍 센스 진짜….」


「이것을 사용하기 전에 먼저. 조수 군, 나의 혀를 만져보게」


「예?」


 말을 마치자마자, 부장은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이며 혀를 내밀었다.

 절세의 미소녀가 입을 반쯤 연 채로 혀를 내민 채로 이쪽을 올려다보는, 매우 아찔하고 선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요동치는 심장 때문에 심박 수가 오른다.


「허떠 먄디게」


「에에……」


 당황해서 몸을 뒤로 젖힌다.

 부장의 성격상, 바라는 대로 해주지 않으면 언제고 이상태일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잠깐 손 좀 씻고 와도 되죠?」


 난 화장실에 가면 반드시 손을 씻는 타입이지만, 그렇다고 냅다 만지기는 찜찜했다.

 허락이 떨어지기 전에 움직여서 테이블에 설치된 수도와 옆에 있는 비누를 써서 손을 깨끗이 씻었다.


「뭐야 오늘의 아침에라도 자기위로라도 했나?」


「그런 말 좀 하지 말라고요, 진짜. 안 했어요.」


 한 건 어젯밤이니까.


 젖은 손을 손수건으로 닦아내자, 부장이 옆으로 다가왔다.


「자, 이제 만져보게」


 그렇게 말하며 다시 혀를 내민다.

 손을 씻어도 거리끼는 행위지만, 부장의 성격상 손대지 않으면 쭉 이 상태다.

 조심스레 손을 뻗어, 집게손가락의 끝으로 그녀의 혀끝에 닿았다.

 그녀와 눈을 맞추면서, 그 혀끝을 손대고 있다. 해선 안 되는 일을 저지르는 기분이었다.

 1초 정도 만지고 곧바로 손가락을 땐다.


「별일 없지?」


「예, 뭐」


 대신 몸 한 부분에 별일이 생겼다. 덕분에 나는 테이블을 손으로 짚고 몸을 약간 앞으로 기울여야 했다.


「그리고 이 주사를 자신에게 놓는다」


 부장은 녹색의 액체가 들어간 주사기를 손에 들곤, 주저 없이 몸에 안에 든 액체를 모두 넣었다.


「좋아, 에일리언 정조대 주입 완료다!」


 다시 들어도 자비 없는 이름이다.


「그럼 어디 조수 군. 다시 한 번 내 혀를 만져보게」


 아까보다 반발자욱 더 가까이 다가온 부장은 혀를 쏙 내밀었다.

 도전적인 눈초리로 곧게 올려다보며 다가오는 부장을 보고, 나는 얼굴에 열이 도는 것을 느꼈다.

 옛 여친도 미인이었지만 부장은 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원이 다른 미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바라보면 볼수록 가슴이 두근거려서, 참지 못하고 부장의 붉은 눈동자에서 눈을 피해 버린다.


「그럼 저기, 손댈게요」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인지 상상도 못 하겠다만 시키는 대로 다시 한 번 부장의 혀끝에 손가락을 댄다.

 아까처럼 1초만 대고 있으려고 했지만--


「앗 뜨?!」


 손끝에 느껴지는 날카로운 아픔에 반사적으로 손을 끌어당긴다.


「우하하핫. 봤나, 이게 바로 과학의 힘으로 만든 정조대다!」


「손가락에 화상 입었는데요?!」


 얼얼대는 아픔을 호소하는 손가락은 조금 빨갛게 부어 있었다.

 그것을 본 부장은 얼굴이 새파랗게 되었다.


「미, 미안하네. 조금 위력이 너무 강했군, 이 연고를 쓰게」


「이 정도면, 금방 나아요. 괜찮으니까 걱정마세요.」


 부장은 교탁 옆에 있는 구급 상자에 달려가서 바르는 약을 꺼내 나에게 전했다.

 그것을 사용하면서 부장을 바라본다.


「그래서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데요?」


「이 에일리언 정조대를 사용하면 사용자의 점액이 이성에 대해 강한 산성을 띠게 된다네」


「예?」


「다시 말해 상간남이든 폭한이든 내 구강이나 질에 남성기를 억지로 넣었다간 홀랑 타버려서 못쓰게 된다는 걸세」


「부장 평생 아다라는 소리네요?」


「그래서 이 중화제가 있잖나!」


 부장은 화를 내며 상자 속의 핑크색의 주사기를 꺼내고는, 내 팔을 구속했다.

 당황해서 저항해도 부장은 나를 억누르며 달라붙는다.


「부, 부장?! 대체, 무슨 짓을--」


「움직이지 말게! 움직이면 위험하다네!」


「아니, 위험하잖아! 댁이 가장 위험하다고! 주사기 휘두르지 말라니까!」


 어쩔 수 없이 저항을 멈추고 얌전히 주사를 맞았다. 주사바늘의 날카로운 아픔에 얼굴을 찡그린다.

 수상한 핑크색 액체가 몸 안에 들어가는 걸 보고, 등골이 오싹거렸다. 이거 분명 제대로 되먹은 약은 아니라는 확신에 가슴이 좀 답답해진다.


 비어버린 주사기를 테이블에 두고, 부장은 방글방글 기쁘게 웃음 짓는다. 그것은 너무도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미소였다.


「자, 다시 한 번 만져보게」


 부장은 의자에 앉아 이쪽을 올려보면서 웃음을 띠고 혀를 내밀었다.


「히제 홴퇂흐히갸, 뫈혀호게」


 부장이 그렇다니까, 분명 괜찮을 거다.

 그래도 역시 아픈 게 무서운 나는 조심스레, 그녀의 혀에 손가락을 내밀었다.

 욱신거리는 집게손가락은 접어두고, 이번에는 가운뎃손가락으로 살짝 혀끝을 만진다. 아까 같은 아픔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다시 한 번 길게 만졌다.

 내 모습을 보며, 부장은 만족스럽게 미소 짓는다.


「어때? 괜찮았지?」


「예, 뭐 그렇네요……」


「에헤헤. 이걸로 나한테 삽입할 수 있는 건 평생 너뿐이야」


 진심 어린 미소와 기쁨 어린 말에, 다시 한 번 얼굴이 달아올랐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냥 중화제 한 번 더 만들면 되는 거 아닙니까?」


 부끄러움 감추고 싶어서 괜히 빈정거려 본다.


「아니, 이건 이제 두 번 다시 못 만든다네」


「예?」


「벌써 레시피는 다 잊어버렸지, 기적적으로 하나 만들었을 뿐이니까. 더는 무리, 절대 무리지. 어쩔 수 없게도 조수 군 말고는 나와 섹스할 수 있는 녀석은 없어졌다네」


「말도 안 돼, 진짜 말도 안 돼」


「진짜야 이 바부야」


 화낸 척, 삐진 척하면서, 그녀는 토라졌다.


「자, 다음 도구!」


 약간 어색한 분위기를 잘라버리면서, 부장은 가방에서 두 개의 리스트밴드를 테이블 위에 난폭하게 뒀다.

 금속제지만, 얇고 가볍다. 손목에 부담은 없을 것 같다.


「뭡니까 이거?」


「차고 나면 설명하지. 그러니 어서 차게. 나도 한 개 차겠네」


 부장이 하나를 손에 들고 자기 손목에 찼다.


「진짜 안 끼고 싶은데……」


 물론 그랬다간 부장의 아우성에 얘기가 진행되지 않을 게 뻔할 뻔 자다.

 어쩔 수 없이 남은 한쪽의 리스트밴드를 손목에 찼다.


「그럼 【애정 기준치 밴드】를 기동하지」


「벌써 이름부터 괴상한데요」


 부장이 자기가 찬 리스트밴드를 만지작거리고 다음에 내 손을 잡고 리스트밴드에 무슨 조작을 가했다.

 삐, 하고 전자음이 작게 울렸다.


《오늘의 애정 목표는, 【사랑한다.】 1회, 【허그】 30초입니다》


 기계 음성이 그런 말을 했다.


「그렇다는군. 나와 눈을 맞춘 다음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말하면 기준치 달성이다. 그리고 허그 30초도」


「왠 날벼락 맞는 소린데요?」


「부부 관계를 유지하려면 평범한 일상에서 적극적으로 말이나 스킨십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게 중요하지. 이 리스트밴드는 매일 애정 행동의 기준치를 설정하고 배우자의 마음을 채워서 바람을 막아 준다. 앞에 보여준 것들보다는 상당히 양식(良識) 있는 발명품이지 않나?!」


 앞서 내놓은 게 양식이 없다는 자각은 있는 모양이다.


「기준치 달성을 때문에 하는 걸 애정 행동이라고 하기는 좀…… 아, 그러고 보니 못 채우면 어떻게 되나요?」


「리스트밴드가 폭발한다」


「양식 어디 갔어요! 양식!」


「자자, 죽고 싶지 않다면 사랑한다. 1회에 허그 30초라네」


 스툴로 빙글빙글 놀면서 즐겁게 이쪽을 본다.

 고개를 숙이며, 나도 근처의 의자에 걸터앉는다.


「부장이 해주세요……」


「싫어.」


「왜요」


「싫으니까.」


「……」


「빨리」


 무심코 깊은 한숨이 흘렀다.


「…………」


「…………」


 의자를 삐걱삐걱 흔들면서, 부장은 나를 바라본다.

 이렇게 된 이상 정신줄 놓고 반격하는 수밖에 없다. 독한 맘 먹고 부장을 마주 바라본다.


 의자를 끌고 다가가서 그녀의 양어깨를 손으로 잡고 얼굴을 가까이 댄다.


 순식간에 그녀의 뺨이 새빨갛게 물든다. 화끈거리는 내 뺨도 비슷한 꼴이겠지만 신경 쓰면 지는 거다.


 미친 척하고 말을 꺼내려 했는데 막상 미칠 듯이 밀려드는 부끄러움에 입이 안 떨어졌다.


「부, 부끄러우니까 빨리 끝내게!」


「알아요. 진짜!」


「…………」


「…………」


「으랏차!」


 화가 난 부장이, 손바닥으로 내 머리를 두들긴다.


「말할게요! 말한다니까!」


「빨리!」


「…………」


「…………」


「…………」


「…………」


「사랑합니다」


 말을 한순간, 삐익, 하는 소리와 함께 리스트밴드에 녹색의 빛이 켜진다.

 자세히 보니 또 하나의 램프가 아직 그대로 붉은색이었다. 이거 분명 허그 30초가 될 때까지 녹색이 안 되겠지.


 그리고 부장은 얼굴을 양손으로 감싼 채 굳어있었다. 귀까지 새빨갛게 된 걸 보니 굉장히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그럼 이런 거 만들지 말라고 바보야, 라고 말해 주고 싶다.


 이미 부끄러움이 한계를 돌파한 나는, 그대로 부장의 겨드랑이 밑 너머로 등에 손을 돌려 꼭 끌어안았다.


「무무무무무무무, 무슨 짓이냑?!」


 부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몸을 비틀며 저항했지만,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꼭 끌어안았다.

 에누리 없는 성희롱이지만, 애초에 허그 안 했다간 리스트 밴드가 폭발한다는 대의명분을 준 건 상대방이다.

 당하기만 하는 건 직성에 안 맞는다. 어차피 이 사람 나 좋아한다. 이 정도는 괜찮을 거다.


 15초가 지난 시점에서 부장은 잠잠해졌고, 내 등에 손을 돌려 마주 끌어안았다.


 그 애처로운 행동에 머리와 몸에 열이 올랐다.


 30초는 길게도, 짧게도 느껴졌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전자음이 울리면서 리스트밴드의 빛이 2개 모두 녹색이 되었다.


 얼굴에서 김이 날 만큼 새빨개진 부장은, 잠시 입을 다물고 있었다.


 반격했던 나 역시 머리에 열이 올라서 부장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이렇게, 과학부 부실에는 어색하고 묘한 정적이 감돌았다.


 그런 와중에 작은 목소리로 부장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 발명품은 어땠어?」


「괴상한데요」


「자네 바본가. 최강의 발명품이지 않나」


「보통 사람은 못 만든다는 뜻에서는 최강 맞기는 하네요」


 그런 도구를 하루아침에 만들 수 있는 부장의 머리는 대체 어떤 구조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메모리 증설 같은 거 한 거 아닐까, 이 사람.




「……저기, 조수 군」


「네」


「…………절대로 바람 필 수 없는 여자가 여기에 있는데」


「그러게요」


 곁눈질로 이쪽을 바라보는 부장을, 흐뭇한 기분으로 바라본다.


「…………」


「…………」


「…………이봐, 마무리 지으라고」


 계속 얼굴은 외면한 채, 눈만 게슴츠레 뜨고 나를 노려본다.

 이 사람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상상하면서 나는 살짝 한숨을 토한다.

 이 사람, 분명 부담스럽고 귀찮지만, 초절미소녀에 장래가 유망하고 2년 동안 함께 하면서 한 번도 지루한 적이 없었다.

 무엇보다, 이렇게나 나를 생각해 준다.


 사람의 마음은 영원하지 않다. 나도 부장도 마찬가지다.

 내가 그녀를 좋아하지 않게 되는 것도, 그녀가 나를 좋아하지 않게 되는 것도, 분명 있을 수 있는 미래다.

 하지만 적어도 부장은 바람은 피우지 않을 것이다. 만약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고 해도, 육체관계를 가지기 전에 조리 있게 대처한 뒤 헤어져 줄 것이다.


 그런 사람이 여기까지 준비해 줬다. 이제는 정말 앞으로 나가야겠지.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부장, 좋아합니다. 저랑 사귀어 주세요」


「후후후. 그런가……좋아, 사귀도록 하지」


 기쁨을 억누를 수 없는지 입에 자꾸 미소를 띠면서, 부장은 서서 내게 손을 뻗었다.


「저 말고 좋아하는 사람 생기면 관계 맺기 전에 말해주세요. 안 그러면 저 자살합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그녀의 수를 잡았다.


「이렇게까지 얽혔는데 자네 말고 좋아하는 사람이 생길 것 같나. 내 행동은 전부 자네가 볼 수 있다네」


 윙윙, 이어진 손을 힘차게 상하에 흔들고 나서 떼어 놓는다.


「그럼 자네의 연애가 달성했으니, 오늘의 동아리는 마지막이다」


 이봐요, 남의 고백을 동아리 활동 마무리로 삼지 말라고요.


 어지럽혀진 부실을 가볍게 정리하고 바닥을 청소한 뒤 문단속을 한다.


 부실을 나왔을 때, 아직도 손에 장착하고 있던 리스트밴드에서 기계 음성이 흘렀다.


《오늘의 기준치는, 손을 잡고 하교입니다》


「그거 지금 설정했죠?!」


「몰라」


 얼굴을 들여다보자, 부장은 부끄러운지 얼굴을 피했다.


「자, 손! 안 하면 폭발한다네!」


「네네」


 이제 이미 귀찮다. 되게 귀엽긴 하지만.


 그녀의 손을, 약간 느슨하게 잡는다.

 키 차이 때문에 나는 걷는 속도 차이를 생각해서 손을 잡고 느긋한 걸음으로 신발장을 향한다.


 실내화를 신발로 바꿔신고 입구를 나오자, 또다시 기계 음성이 흘렀다.


『오늘의 기준치는, 연인의 이름 부르기입니다 』


「이 밴드 범용성 엄청 높은데요!?」


「폭발한다네!」


 이미 자기 짓인 걸 자백하는 것 마냥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부장이 외친다


「아, 예예예예, 오히 선배!」


 나도 자폭하는 심정으로, 앞을 바라본 채 부장의 이름을 부른다.

 그러나 리스트밴드의 붉은 램프는 초록이 되지 않았다.


「이름!」


「히나코 선배!」


 어라, 이름 불렀는데 반응 없는데요!?


「선배가 이름에 들어가면 저세상 센스잖아!」


「히나코, 히나코, 히나코!」


 삐, 하고 전자음이 울리면서 리스트밴드에서 OK 사인이 떨어진다.


 너무 부끄러워서 화끈대는 얼굴에 땀이 다 흘렀다. 그 때문인지 숨도 몰아쉬는 중이다.

 운동장 한가운데서 나 진짜 뭐하는 거야…….

 주변에 다른 학생이 없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수고했네, 조수 군」


 댁은 이름으로 안 부르는 검까.

 불평이라도 한마디 해줄 셈으로 옆을 보니, 뺨을 붉힌 채 물기 어린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부장과 눈이 마주쳤다.

 홱, 하고 고개를 돌려버린 탓에 목까지 올라온 말은 뱃속까지 쏙 들어가버렸다.


 운동장을 지나 갈림길까지 손을 잡고 걷는다.


 이윽고, 갈림길에 다다른다.

 부장과 여기서 헤어져야 한다.


「저기……그럼, 내일 또 봐요, 부장」


「이름」


「히나코 선배」


「……내일 보세」


 그렇게 말한 부장은 등을 돌려 귀갓길에 올랐다.

 나는 왠지 모르게, 멍하니 그녀의 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그녀가 이쪽을 향해 뒤돌아보았다.


「마키노 군! 정말 사랑해―!」


 갑자기 사랑과 이름을 외치는가 싶더니 그대로 맹렬하게 도망치는 것 마냥 달려가 버렸다.


 오늘부터 사귀게 된 여친은 엄청나게 귀여웠다.


 여친의 모습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고서야, 나는 겨우 귀갓길을 걷기 시작했다.


『내일의 기준치는, 키스 3회입니다 』


 리스트밴드가 무자비한 기준치를 선고했다.


「좀 봐주라, 진짜……」




 이런 우여곡절 끝에, 여성 불신이었던 나, 카가리 마키노에게 절대로 NTR 당하지 않지만 귀찮고 부담되는 초절 예쁜 여친이 생기게 됐다.


 잘 됐군. 잘 됐어.











「카가리 군…… 어째서……」






 멀찍이서 숨어있는 그림자를, 나는 오늘도 눈치채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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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물 변화구 번역 2탄.


제목 길이에 걸려서 중간 짜르기는 또 처음이지만 어쨌든 번역 2탄!

철통을 넘어선 화학계 방벽 여친. 금태양이고 최면남이고 까딱 잘못 건드렸다간 고자라니 직격 코스입니다!


얀데레 냄새도 풀풀 나지만 어쨌든 인생올인 형 전여친 카운터! 일편단심! 전여친(추정) 꼴 좋다!

다들 맛점하세요!




참고로 이거(https://arca.live/b/regrets/21550474?category=%EB%B2%88%EC%97%AD&target=all&keyword=&p=3)의 전작임돠.

작가 양반 3개월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