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목이 말라.

난 침대 옆의 테이블 위에서 컵을 들어 물을 따라 마셨다.

“들어가겠습니다.”

누군가가 내 방에 들어왔다.

제게 평생을 함께하실 거라며 달콤한 말을 들려주시며 저에게 사랑을 주셨던 그대는 대체 왜 이리도 추잡하게 변해버렸습니까?!”

생전에 보지도 못한 아주 아리따운 여성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그…. 그대는 대체 누구십니까?”

여인이 눈물을 흘리며 내게 물었다.

“대체 무슨 의미로 제게 물으신 겁니까?
그대는 이제 저와의 인연마저도 부정하실 생각이신 겁니까?
이전에 가문의 재산을 쓸모없이 탕진할 때도, 식당에서 모르는 이를 때려 반불구로 만들어 놓았음에도, 영문모를 소리를 하며 당신과 어울린 이들의 장례식을 가지 않았을 때에도 저는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헌데 인제 와서는 저를 부정할 생각이십니까?
한때 친우라 불렀던 그 고깃덩이들은 잊지도 못하면서 평생을 같이해온 저를 말입……”



맞아, 그런 일이 있었지.

갑자기 손에 힘이 들어가며 들고 있던 유리잔이 산산이 조각났다.

앞의 이 여자는 내 아내였었지.

좆같은년.

“되었소, 다무시오.
지금 당장 그대를 이 자리에서 죽이지 않는걸, 지금 당장 그대를 이곳에서 내쫓지 않은 것을, 그대 자체를 부정하지 않은 것에 대해 감사하며 당장 이곳을 떠나시오.
내 어찌 그대를 용서할 수 있겠소?
그대와의 인연을 부정할 생각이라고 하셨소?
부정할 수만 있다면 언제든지 부정하고 싶을 정도요.
매일 밤마다 그 끔찍한 전쟁터를 헤매며 그대와 그대의 부친이 내게 해온 일을 생각하면 내 차마 그대들을 사람이라 생각할 수조차 없소.
아직도 들려온단 말입니다!
죽기는 싫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폭탄을 몸으로 감싸고 온 몸을 던져 적진을 향해 달려가던 이들, 그리고 결국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던 이들을 생각하면 미쳐버릴 것만 같습니다!
대체 그 영웅들이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한단 말입니까?
그대를 믿었고 그대의 아비를 믿었소.
헌데 어떻게 그들에게..그들에게..”

“하! 믿었다고요?
그저 선택지가 없었을 뿐이셨겠지요!
황제의 딸을 얻는다면 당신이 이끄는 그 특무대인지 무언지를 완전히 손에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셨겠지요!
폐하께서 그를 모르셨겠습니까?
이전에 당신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우린 당신을 용사라고 불렀었습니다.
용사의 적은 마왕이니 마왕을 죽이는 건 당연한 것이지 않습니까?
그 버러지 같은 것들이…”

“되었소.
그자가 마왕이었다면 나도 마왕일 테지.
그대들이 잘하는 그 소환이란 걸 당장 해보는 건 어떠시오?
나를 타락한 용사라고 공표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청년 한 명을 다른 세상에서 데려와 나를 죽이게 하면 되겠군.
그자가 나보다 멍청하다면 다루기도 쉬울 것 아니오?
내가 이제와서 그대들에게 칼날을 돌릴까봐 두려워 그런 일을 행했던것이오?
난 굳이 내 동료들을 모을 필요가 없었소.내 동료들을 모을 필요가 없었소.
지금당장 이 황성에 있는 모든 이들을 죽일 수 있으니 말이오.”

황녀가 애걸복걸하며 이야기했다.

“그러면 우린 어찌 해야 했습니까!”

“적어도…. 적어도…. 내 동료들만큼은 그대로 놔뒀어야지.
그들이 죽어야만 한다 하더라도 그들의 죽음을 욕되게 놔두지 말았어야지.
황녀여, 그대와 이야기를 나누고 생각이 정리되었소.
이 웅장한 성에 갇혀 끝없이 슬퍼할 바에야 이곳을 떠나는 것이 옳은 선택이겠지.
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줄 알았소.
그대 또한 나를 사랑하는 줄 알았지.
아니, 솔직히 말한다면 아직도 그대를 사랑하는것 같긴 하오.”

“떠난다니요! 
전 지금도 당신을 연모하고 있습니다!
제발 떠난다는 소리좀 그만해주세요!”

“그래, 연모하고 있을 것이오.
내가 아닌 이 위대한 제국의 용사를.
내가 이전에 말해준 적이 있었지.
나의 이름에 대한 풀이를 그대에게 말이야.
그대는 나의 이름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알고 계시오?
난 그때 아주 즐겁게 그대와 이야기를 나누며 사랑을 싹틔었다고 생각했었는데 나 혼자의 착각이었나보오?”

황녀는 대답이 없었다.

“허나 제국엔 용사가 있어야만 합니다.
당신이 이곳에 계속 머물기만 하신다면 황제의 국서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꿈은 아닙니다!
당신이 국서가 된다면 동료들의 불명예도, 당신이 이곳에서 하고자 했던 일들도, 마왕의 잔재들을 구하는 것도 꿈만은 아닐 것입니다!”

난 손에 박힌 유리조각들을 빼내며 말했다.

“그것을 황제가 된 그대가 용납하겠소?
그깟 국서 따위에게 말이오?”

“용납하고 말고요!
그러니 제발 이 제국을 떠나지 마십시오!
떠나려 한다면 어쩔 수 없이 무력을 동원하는 수 밖에는 없습니다.
제발, 저를 봐서라도 이곳에 남아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당신이 없으면 전 살아가기 너무 힘들것만 같습니다.”

“황녀, 난 그대의 아비가 나의 동료들을 무참히 죽였을 때 그대의 얼굴을 보고 이 제국을 멸망시키려던 것을 참았소.
그건 자비이며 관용이었고 그대에 대한 구애였지.
그리고 그대는 언제나 나에게 이리 찾아와 마음을 칼로 쑤셔놓았지.
그대가 한 달 전에라도 내게 찾아와 말해주었다면 난 분명 그대로 넘어갔을 거요.
분명 무언가 이유가 있어서 그리 했을거라 생각하고 있었으니 말이오.
하지만 이제 더 이상의 관용은 없소.
그리고 같잖은 수로 협박하지 마시오.
전 제국의 힘보다 나의 힘이 더 강하니 말이오.
한때 내가 연모하고 친애하며 아양을 떨며 사랑을 갈구했던 이로써 그대에게 말하겠소.
행복하게 사시길 기원하고 만수무강하길 빌겠소.
아, 신이시여 황녀를 지켜주소서!”

용사는 비웃는듯한 그 말을 끝으로 방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황녀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울었다.

가지 말아라 중얼거리며

그날 황성에 걸려있던 깃발이란 깃발은 모두 불탔고 저잣거리에 매달린 한때 용사의 동료들이라 불리던 고깃덩이들이 황성안의 선황의 무덤 위에 고히 모셔졌다.


한때 용사라 불리던 이가 있었으니, 이제 그자가 곧 역적이며 마왕이라.


그 극악 무도한 이를 토벌하기 위해 황제는 다시 한번 다른 세계에서 용사를 소환하였다.













후회물은 써본적이 없어서 제대로 썼는지를 모르겠네.

반응 좋으면 2편도 써봐야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