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괜찮으면 말이야. 학교도 끝났겠다 같이 놀래?"


종례 후 짐을 챙기려는 중, 갑자기 그가 제 앞에 서더니 그렇게 말했을때 내심 설렜습니다.

평소의 무표정은 어디가고 이렇게 수줍은 얼굴을 하고 계시는걸까요? 귀여운면 하나 없어보이던 그가

왠일로 새끼 고양이처럼 사랑스러워 보이네요.

....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사랑까지는 너무 갔고 약간 귀여웠다 - 로 정정하겠습니다


아까 점심시간 때도 그렇고, 평소  제 말에 건성한 태도로 일관하며 일방적으로 듣던 입장인 그가 오늘은 

저에게 먼저 무언가를 권유하는건 여러모로 신선했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매일 자신의 친구분들과만 

놀러가기만 했던 당신이 저와  같이 놀고싶다 하시다니... 제가 꾸준히 노력해도 사실 당신은 절 귀찮은 사람으로만

생각하지 않을까 조금 조바심이 났었는데 다행이네요.

겉으론 그렇게 무심한척 했어도 사실 저에 대해 속으론 엄청 신경쓰이셨던 걸까요?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이 학교에서..아니, 주위를 통틀어 이렇게 당신에게 참견하고 당신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은 저 하나 일테니까요.


..오직 저뿐만이, 당신에게 헌신할 수 있다는 얘기죠.


 

제가 거절이라도 할 것이라고 생각한걸까요?  당신의 낯빛이 창백해져가는게 눈에 훤히 보이네요

시간도 비었고 원래부터 거절할 생각같은건 없었으니 그의 요구에 응하기로 했습니다.


.

.

.

.

"야, 고맙다... "


방금전까지 창백했던 안색은 원래대로 돌아오고

그는 목숨이라도 부지한것마냥 고마워했습니다. 항상 저에게 무표정해보이려는 주제에 실은 감정을 잘 드러내는 편이 아니냐며

물어보시던데, 그렇게 말하는 자기자신도 똑같다는걸 스스로 알고있으련지 모르겠네요.



그래요, 당신은 저에 대해 그만큼 소중하게 여기고  감사하게 생각해주셔야 한답니다?




-




뭐하면서 놀건지 궁금했는데, 그거에 대한 그의 대답은...

솔직히 웃기면서도 귀여운 면이 있었어요.

피시방..같은곳은 제외하고,

보통 이 나잇대 또래 아이들이라면  놀자하는건 소박하게는 노래방, 그것보다 큰 스케일로는 놀이공원같은곳을 가는걸로

알고있습니다.  아니면 영화관을 가겠지요.


하지만 그가 가자한 곳은 무인 인형뽑기 가게였습니다.  선정이유를 생각해보자면 -

곧 있으면 해가 져서 많이 놀수는 없다는걸 고려한걸수도, 이성친구라고 부를수 있는 절 배려한것도 있겠죠.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 스스로가 인형뽑기를 상당히 잘한다고 말한 것 아닐까요.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을 보니 마냥 허풍같은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운동을 즐겨하며, 나름 건장한 몸을 한 그에게 그런 면이 있다니.. 

아무래도 평소 이미지와는 다르니 깜찍하다는 느낌이였고, 여러모로 신기한 기분이 들었어요

역시 사람을 겉모습과 행동으로만 판단하는건 틀린가봅니다



..

허나, 인형뽑기에는 돈이 꽤 필요합니다

성공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알수도 없으니 그 소비량도 미지수.

저번 체육시간때도 지갑이 거의 텅텅비어 음료수 하나사는것도 고전하는 그가, 

돈이 있을리가...


- 그래서 빌려주기로 했습니다.그에게 필요한 것을 지금도, 앞으로도 해줄수있는건 저 한사람 뿐이니까요

  솔직히 빌려서 안갚는다해도 별로 상관없습니다



"근데..평소 수중에 돈이 별로없으셔 보이시던데 괜찮으실지. 만원정도는 빌려드릴 의향이 있답니다?



"얌마, 나도 있기는 하거든."



...거짓말이겠죠? 이럴 때일수록 제가 도와주는게 맞는건데..  있으면 안되는거잖아.



"아뇨, 있을리가 없잖아요...자존심 세우실 필요 하나도 없으니깐 사양하지마시고 얌전히

 받으시는게 좋아요, 네?"



 "..왜 그렇게까지 강요하는거야? 너가 대출보험사도 아니고, 너한테 득되는건 하나도 없잖아."



그가 당황스러운 얼굴을 하고있습니다. 어찌보면 약간 겁에 질린거같기도 하고...

저도 모르게 너무 흥분한것 같아요. 이렇게 노골적으로 접근하면 안되는건데.


"..."


"자, 됐지? 나도 돈있어요 돈."


그가 보란듯이 만원짜리 지폐 두장을 보여줍니다

비상금? 아니면 사실 원래부터 돈은 좀 있었던갈까요.

할말은 많지만 이 이상 파고들면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테니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그런가요, 있으시다면야 뭐 저도 이 이상 얘기할 필요는 없겠죠"





그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습니다.

시작부터 인형 하나를 뽑았으니까요


...그 광경에 놀라 저도 모르게 무심코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이러다 경박한 여자로 보이지않을까 겁나네요


그는 이번에는 더 큰 인형을 노리려나 봅니다.

작은걸로도 충분히 좋은데, 제 앞이라고 멋을 더 뽐내고 싶으신걸까요?

마음가짐은 좋지만 저 크기를 가녀린 집게발로 뽑기엔 아무래도 무리가 있지않을까 싶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돈을 네번째 투입구에 넣는 동안 성공하지못했습니다. 애초에 저건 불가능한 수준이니까요



더 이상 돈만 날리는건 좋지 않을테니 그에게 위로의 말을 전한 순간,

..마침내 그 거구의 인형을 뽑아버렸습니다


이런걸 뽑은 당신은 대체 정체가 뭘까요. 요새 사람들이 유행어로 쓰는  ..힘숨찐? 그런걸까요?


머릿속이 멍해져 있을차에, 갑자기   제 양손에 그 인형이 들어옵니다.

이건 무슨..?


"자, 너가 가져"


"네?"



"항상 날 챙겨주잖아, 선생님들도 손놔버린 나같은 놈에게 공부 가르쳐준다고 필사적이고, 부탁한적 없는데도

 필요할땐 깨워주고 힘들때는 누구보다 너가 도와주려했으니깐..평소의 그 답례야"


수줍은듯이 말하는 그.를 보니 알것같습니다

그가 오늘 이곳으로 오자한건 저에게 보답을 하고 싶었던 거였어요

...그가 사실은 제 노력을 계속 알아줘왔단 사실이, 너무나도 기특했습니다.


제가 의욕이 있어도, 상대방이 하기싫어한다면 의미가 없으니까 두려웠습니다

억지로 누군가에게 따라준다는것은, 이끄는 입장도 어렵겠지만 사실 따라주는 입장에서도 힘들고 고된 일이니까요.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무언가를 보답 받고싶어서 당신을 도운건 아니지만.. 이런식으로 보답받으니, 조금만 더 참지못했으면

눈물이 나왔을지도 몰랐겠네요



"고마,워요... 매일 당신을 가르치고 깨운것이 사실 헛된일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제가 괜한 짓을 하는걸까

 가끔은 혼란스러웠는데, 결국 따라와주시더니 지금은 이렇게, 이런 방식으로 저를 놀래켜주시네요..

 당신이란 사람은 보면 볼수록, 사실은 성실하고 좋은 사람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그저 말없이 웃고만 있었습니다



이 커다란 인형을 따오기까지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죠.

그만큼 힘들고...어려웠는데.

그 결실을 저에게 주는것이란.

이 인형이 당신의 마음과도 같다는 생각을 들게해요



당신에게 처음 접근했던 이유로, 동질감이 없었다는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지금은 그런 동질감과 책임감 뿐만이 아닌, 다른 이유로 당신에게 흥미가 생깁니다

전에 있던  학교의 남자들이란 - 상대방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자신의 마음만 앞세워 달려들고보는

어린아이와도 같아 싫어서 그 뒤론 연애같은 것도 안하리라 다짐했어요

하지만 지금 당신에게만큼은 어째선지 마주보면 속이 애가 타는 기분이고..

정말, 정말로 인정하기 싫지만...살면서 처음 겪어보는 지금 이 감정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그것일까요?


고백,이라도 하고싶지만..지금 당신에게 이 마음을 그대로 전한다면 충분히 받아줄것만 같은데도.

어째선지 입이 열리지 않습니다,  살면서 사람들중에 부모님을 제외하고 가장 스스럼없이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이

당신인데, 왜 이런 걸까요.

제가 누군가에게 고백해본 경험이 없어서? 아니면 그저 겁이나서?


"기왕 주신다하니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리고, 방 한편에 놓아둘테니 언제 한번 저희집으로 오셔서

 같이 보셨으면 좋겠네요. 아, 별 다른 깊은 의미는 없으니까, 그냥 호의에 비롯해서 한 소리니 이상한  생각

 하시면 안돼요?"



결국  직설적인 고백은 못하고 빙 돌려서 말해버렸습니다

...이 바보.



"아,알았어..."


확실히 집으로 오라는건 평범하다기 보단 대담한 발언이겠죠

그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걸 보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것 같습니다..


.

.


어색해진 분위기를 어서 지우기위해, 아무 말이나 내뱉어볼까요


"근데, 왜 옆에 큰 귀여운 곰인형같은건 냅두고 이런걸 고르신거에요?"



고맙기 만하지, 불만같은건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만 이런 유별나게 생긴 인형을 고른 특별한 이유가 그라면 뭔가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아하,하.. 큰 곰인형같은건 좀 식상해서. 조금 괴상하게 생기긴 했지만 그래서 유니크하지않아? 특별하다고"


"특별하다고요?"


"특별하지, 그래서 잘 맞지않을까 싶었어. 너도.. 특별한 사람이니깐"



...'특별하다'.  그런거였군요


"특별,이라.. 후후, 순붕씨에게 있어 전 특별한 사람이란 건가요?"


그 대답은 이미 알것 같지만, 그래도 당신에게 직접 그 입으로 듣고싶어요


"..그래"



"저기,맘에 안들면 지금이라도 다른거 뽑아줄게"


"아뇨"


그러실 필요없어요. 저는...



"지금 이게 훨씬 좋아요.'특별' 하니까.."


.

.


"특별한 사람.. 좋은 울림이에요. 한번 더 말씀해 주실래요?"


"됐거든"




하여간 솔직하지 못하시지만...그건 저도 마찬가지겠죠?




-




쓰다보니 새벽 다섯시를 넘어버렸네

글쓰는게 아직까지는 재밌나봐

보는 사람도 재밌을지는 모르지만ㅋㅋ

그나마 조금이라도 더 만족시킬수 있도록 잘 써야겠지


사실 이 글도 처음엔 장편으로 쓸 생각이 없었음

그냥 어느날 챈 사료먹다가 회로돌아서 '써줘'글 마냥 00~ 하다가 00~하는게 보고싶다 이런식으로 글 하나

대충 쓰고싶었는데. 좀더 살을 붙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장편소설이 되버렸어

그래서 이렇게 빌드업만 축 늘어져버린 글이 나왔지뭐야

나도 사실은 속 시원한 사이다가 잔뜩인 단편이 좋은데, 그럴 능력이 안된다

어찌보면 사실 단편을 쓰는게 더 어려운것같어

글을 함축적으로 줄이면서 후회 특유의 카타르시스와 쾌감을 보여주니깐 ㅇㅇ


다들 좋은하루 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