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어드미션 받은 환자인데 니가 다 하고 가야지 나보고 너 뒤처리나 하란거야 뭐야?"


그녀는 그렇게 신경질적으로 말 하며 볼펜으로 나의 어깨를 밀었다.


그것도 볼펜 뒷쪽이 아닌 볼펜심이 있는 펜촉 부분으로 어깨를 밀렸다.


옷에는 볼펜자국이 내 마음처럼 까맣게 물들었다.


"아뇨 제가 다 일을 다 하고 가려고 하는데, 혹시 중간 인계 받을 때 모르실 까봐 말씀드렸습니다"


"내가 넌 줄 알아? 그냥 그런거 나한테 보고 안해도 다 내가 알아서 하거든?"


거짓말.


또 보고를 안하고 내 할일을 바삐하고 있으면 그녀는 또 왜 중간 인계 받기전에 말을 안 했냐고 트집잡아 똑같이 나를 태웠을 것이다.


"가서 너 할일이나 해, 너 얼굴만 봤다 하면 일 할 맛은 커녕 밥맛도 떨어지니까."


그녀는 다시 한번 볼펜으로 어깨를 꾸욱 하고 밀어냈다.


어찌나 힘을 주어 밀었는지 남자인 나도 한 발자국 뒤로 밀려나야만 했다.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간호사의 태움 문화.


이것으로 인해 자살 하는 뉴스도 간간히 떠오를 만큼 악질적인 행위이지만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고 있는 병원내에서도 알면서도 쉬쉬하는 불문율 같은것.


이것은 군대의 갈굼 문화와 비슷하지만 이것은 묘하게 다르다.


군대의 갈굼과 간호사의 태움 둘다 겪어본 내가 느끼기에는 군대의 갈굼은 아무래도 남자들만 있는 공간이다 보니 서열을 정리하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한 것들이라면.


간호사의 태움은 그저 자신의 히스테릭한 감정을 쏟아내기 위한것이다.


뭐, 결과적으론 당하는 입장에서는 좆같다라는건 전혀 다를게 없지만.


"병신같은 새끼 언제 그만두나 보자, 내가 그만 둘 때 까지 태울꺼야"


어조는 들릴듯 말듯 혼잣말 말하듯 말하는 그녀였지만, 이것은 명백히 나 들으라고 하는 조롱의 말 이었다.


그녀는 이상하리만큼 나를 싫어했다.


나는 이런일을 당할때 마다 나를 싫어할 만한 이유를 몇번이나 생각해보았지만 딱히 집히는게 없었다.

크게 그녀에게 밉보인적은 없었던것같은데.


싫어하는데 이유가 없다 이건가?


씨발 그러면 싫어하는 이유 하나 만들어 줘? 하는 생각이 충동적으로 들었지만 그렇게 열내고 자극해봤자 결국 손해를 보는것은 늘 나였다.


'몇 달만 참자..'


조금만 참으면 일한지 2년이 되기때문에 퇴직금이 늘어난다.


거기다 다른 병원에 이직하기 위해선 적어도 2년의 근속년수를 확보하고 있어야 재취업에 유리했다.


근속년수가 짧으면, 얘는 우리쪽에 취업해도 금방 튀어나가겠지 라고 생각해 여로모로 면접에서도 크게 불리했다.


거기다 나는 이 병원에 취업하기 위해 지방에서 서울까지, 부모님한테 손까지 벌려가며 방을 구했다.


그런데 2년도 못채우고 돌아간다? 부모님 뵐 낯이 없었다.


그렇기에 좆같아도 이를 악물고 가슴속에 사직서를 품은채로 퇴사를 참고 있었다.


오늘도 그녀는 악독같이 나를 잡아두고 퇴근시키지 않으며 오버타임으로 근무를 시켰다. 


그래도 결국 마침내 일은 끝났고 집에 도착하니 저녁 9시가 다 되어갔다.


총합 14시간 30분의 근무.


해가 뜨기도 전 아침 6 시 30분에 출근한 나였지만 퇴근을 해도 해가 보이지 않았다.


"개씨발련.."


점심도 저녁도 먹지 못하고 일했다.


내가 퇴근하고 나서 집에 뭐를 타고 왔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 했다.


그냥 퇴근하고 옷갈아 입고 정신 차리니 집 앞이었다.


그래도 다행이네 길거리에 안쓰러지고 집 앞이라니.


잔뜩 술에 취하기라도 한듯 의식은 어지럽고 바닥이 울렁거리며 나에게 달려들것만 같았다.


힘들게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자 옆집에서도 도어락 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렸다.


"세상에 이제 퇴근한거야?"


옆집에서 얼굴만 빼꼼 내밀며 진희가 기겁을 하며 말했다.


"아..어, 일이 좀 밀려서"


"밥은? 밥은 먹었어?"


"어.."


출근 하기 전 아침 먹은게 다였지만 괜히 애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먹었다고 답했다.


진희는 나와 같은 병원에 다니는 간호사이다.


그녀와는 같은 대학교를 졸업한 친구였고, 병원까지 같은 곳을 지원해 다행히 둘 다 입사 하게되어 나란히 서울로 올라와 같은 원룸빌 같은 층 바로 옆집에서 살게 되었다.


"진희야"


"엉?"


"너 내일 CS교육 언제들어?"


"나 11시꺼 들으려고 너도 11시꺼 듣지?"


"엉.. 그러면 혹시 교육 들으러 가기전에 나 죽었나 확인좀 해줘"


내 말에 어처구니가 없다는듯 찡그리며 웃었다.


"깨워 달란 말도 아니고 죽었나 확인하란건 뭐야"


"죽었으면 우리 부모님한테 연락좀 해주고 내 돼지저금통에 있는 돈은 너해도 좋아"


"미친 소리 하지 말고 피곤하면 얼른 씻고 잠이나 자"


나는 집으로 들어와 잠시 바닥에 누웠다.


천장이 빙글빙글 돌았다.


저혈당 증상인가?


나 진짜 이대로 죽으면 어떡하지?


좆같네 혹시 내일 아침까지 살아 있으면 유서를 써놔야 겠어 내가 죽으면 그년때문이라고 적어놔야지.


아.. 씻어야하는데..


아니 씻기전에 뭐를 좀 먹어야 살것만 같은데..


근데 그전에.. 잠깐 눈좀 붙여야 겠...


"일어나"


"컥!"


누군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려서 나는 깜짝 놀라 감은 눈을 힘겹게 떴다.


'나 잠든건가?'


잠들었다는 감각도 없었는데? 창문을 바라보자 새소리와 밝은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


"뭐야 너 옷도 안갈아입었네? 어제 들어오자 마자 잠든거야?"


엄청난 피로감에 눈도 뜨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한숨 자고나니 머리는 다소 맑아진 기분이었다.


"아으.. 잠든게 아니라 기절한건가봐"


"왜 그렇게 오버타임해?"


병동에 왠 미친년이 날 못잡아먹어서 안달인데 그년이 퇴근 못하게 계속 일을 시켜.


라고 말 하고 싶지만 그녀도 나와 같은 신규 간호사일 뿐이다.


내가 말 한다고 그녀가 뭘 해줄수 있는것도 아니고 괜히 이런 말 꺼내는건 의미가 없다.


 "그냥 뒤지게 바빠서 그렇지 뭐.."


"얼른 일어나서 준비 해 CS교육 들으러 가야지"


"뭔 놈의 병원이 일 시키는것도 많고 교육도 많이 시켜"


투덜거려 봤자 바뀌는건 없다.


나는 준비를 마치고 진희와 함께 병원 강당으로 힙겹게 도착했다.


우리는 적당히 눈에 안띄지만 그렇다고 너무 교육 열의가 없어보이지 않는 적당한 자리에 앉아 교육 들을 준비를 했다.


각 병동의 간호사들은 각자 삼삼오오 무리를 이루어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반 이상의 자리가 채워질 때 즘 내가 가장 보기 싫은 얼굴이 강당 앞문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망할년 저 년도 11시 교육 듣나보네'


제발 우리와 먼 자리에 앉으라고 속으로 기도를 드리고 있었는데 재수가 없게도 그녀는 빈자리를 찾으려 두리번 거리다 보기 좋게 우리가 앉은 쪽을 쳐다보았고 우리쪽으로 걸어왔다.


설마 옆자리 앉는건 아니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그 년은 우리 앞에 오더니 밝게 웃으며 말했다.


"어머, 안녕하세요 병아리쌤"


얘가 교육 듣기전에 술을 쳐먹고 온 것일까 아니면 드디어 정신적 질환이 한껏 개화한것일까.


존댓말까지 하며 인사를 하다니, 거기다 병아리라니?


하지만 그 인사는 나를 향한게 아니었다.


"어! 안녕하세요 수희쌤!"


내 옆에 앉은 진희에게 건낸 인사였다.


둘이 아는 사이였던가?


"안녕하세요"


"어."


나도 덩달아 인사를 건냈지만 진희에게 건냈던 인사와 확연한 온도차이로 단답했다.


"너도 수희쌤 알아?"


"...같은 병동 선생님이셔"


"아 진짜?"


진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는듯 했다.


"좋겠다 나도 수희쌤처럼 착한 선생님 있는곳에서 일하고 싶어요"


진희는 애교있는 눈웃음을 지으며 수희에게 앉으라는듯 자기 옆 의자를 펴주며 말했다.


왜 거기 앉히려는거야 거기다 내가 잘못 들었나? 착해?


"저번에 세미나에서 보고 처음 보네요."


수희도 그런 진희가 싫지 않은지 한껏 업된 목소리와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녀들은 아마 세미나에서 만나서 안면을 튼것 같았다.


"근데 병아리쌤은 후쌤을 어떻게 알아요?"


"아 저희 대학 동기에요! 집도 옆집에 살아요!"


"헤? 진짜요?"


수희는 살짝 나를 노려보았다.


그 눈동자에는 무언가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섞여있었으나 나로선 그 감정이 무엇인지 읽기가 힘들었다.


진희는 요령도 좋게 수희에게 계속 말을 붙이며 재잘 재잘 떠들어 되었다.


수희도 병동에서 나를 태우던 모습과 달리 한껏 밝은 표정으로 키득거리며 얘기를 받아주었다.


CS교육이 시작되어도 그녀들은 목소리만 낮춘채 연신 뭐라고 떠들고 있었다.


난 그 대화에 낄 생각조차 없었기에 그냥 CS 교육에만 집중 했다


사실 집중하는척만 하고 다른 생각에 빠져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잡생각에 집중하고 있는데 진희가 나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너도 갈꺼지?"


"뭐? 어디가는데"


"수희 쌤이 커피 사주신대 너도 같이가자"


"나는..."


씨발 같이 가기 싫은데.. 저년이랑 일분도 같은 공간에 있고 싶지 않아.


나는 대답하기전에 수희의 표정을 먼저 살폈다.


진희를 바라보던 따뜻한 눈동자와 달리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차갑기 그지 없었다.


같이 가잔거야 말란거야.. 씨발..


"저도 껴도 되나요 수희 선생님?"


"네, 생각해보니까 제가 후쌤한테 커피한잔 사준 적 없네요 이 기회에 사드릴게요."


존댓말? 거기다 병동에선 이름도 없이 야 너 병신 등으로 불렸었는데 후쌤? 속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네.."


나는 께름칙하게 대답했다.


결국 교육은 끝났고 우리는 병원 근처 스타벅스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혼자 앉고 수희와 진희는 나 앞에 나란히 앉았다.


그 둘은 연신 즐겁게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나는 커피를 마시기만 할 뿐 둘의 대화에는 전혀 집중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수희의 행동거지에서 묘한 기류를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저년이 저렇게 행동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것만 같았다.


저년은 왜 그렇게 나를 싫어하는가.


근데 진희에겐 왜 이렇게 다정하게 대해주는가.


또 나한테서 안하던 존댓말과 존칭까지 써가며 본모습을 숨기는가.


정보들이 퍼즐조각 맞추어지듯 맞아 떨어졌다.


'저년 저거 레즈비언이네'


레즈비언 중 몇몇은 남자를 크게 혐오하는 부류도 존재한다고 한다.


마땅히 잘못한것도 없는데 나를 그렇게 싫어하는 이유는 수희 그녀도 그쪽 계열의 레즈비언이기에 나를 그렇게 대하는 것일테지.


또 본모습을 숨기는 이유는 진희에게 관심이 있고 진희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일까?


원래 능숙한 맹수일 수록 이빨을 숨기는 법이니 저렇게 착한년 코스프레를 하는것일테지.


아니 사실은 그냥 여자들에겐 착한년처럼 굴고 남자들한테만 혐오를 표출하는것 일수도 있고.


남자 간호사란것이 잘 없다보니 병동에도 남자가 나 하나 뿐이었어서 이 사실을 깨닫는데 시간이 걸린것이다.


병동에 남자 간호사가 한명만 더 있어도 일찍 깨달았을텐데.


후 시발..


그래도 나를 싫어하는 이유를 알고나니 조금은 답답한게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굳이 싫어하는 이유를 나한테서 찾고 교정할 필요가 없는 부류의 문제다.


그래도 뭐, 좆같은건 여전하지만.


"아, 진짜 수희쌤이랑 얘기 잘통해서 너무 재밌어요"


"그래요? 다행이네요 저도 재밌어요."


지랄들 났네.


"아 근데 벌써 시간이.. 저는 오늘 나이트 근무라서 출근하기전에 조금 자두려구요"


"아, 아쉽네요... 네 그러면 가봐요 병아리쌤"


"네.. 후 너는 어떻게 할거야 선생님이랑 더 얘기하다 올거야?"


나는 그녀의 발언에 나도 모르게 수희를 바라보았다.


수희는 고양이 시체라도 본것마냥 표정이 썩어있었다.


뭐, 씨발 나도 같이 있기 싫어.


"아니 나도 같이 가야지 저도 이만 가볼게요 선생님"


"네 후쌤도 조심히 가요 저는 여기 조금 더 있다가 갈게요"


나는 그녀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자리를 떴다.


진희는 커피를 얻어먹어서 기분이 좋은지 집에 도착할때 까지도 싱글벙글이었다.


난 문뜩 그런 진희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무척이나 높은 콧대하며 쌍커풀 없이 큰 눈.


예전에 대학 다닐때 내 친구가 말했었다. 


진희는 여자 아이돌 그룹에 한명씩 있는 여덕몰이를 할 얼굴이라고.


그 말이 레즈비언한테 잘 먹히는 얼굴이란거였나?


"야 진희야"


"응?"


"너는 애인 안만드냐?"


"어...? 어? 그걸 왜 갑자기 물어?"


그녀는 크게 당황하며 토끼눈을 뜬채 나를 바라보았다.


누가 보면 팬티색이라도 물어본듯한 리액션이었다.


"아니 너 대학교 다닐때 부터 애인이 없었잖아 그냥 애인 안만드나 싶어서"


"너..너도 없잖아"


"내가 없는거랑 무슨 상관이야"


"상관 없지는 않은데.."


그녀는 기어들어가는듯한 목소리로 무언가 웅얼거렸지만 난 알아 들을 수 없었다.


"난 니가 하도 남자를 안만나길래 혹시 여자를 좋아하나 싶어서"


"뭐? 뭔 개소리야 나 남자 좋아해"


"아냐 나한테는 솔직하게 말해도 돼 우리 본지가 몇년인데, 요즘 시대에 그런거 흠도 아냐"


"개소리야 입 잡아 뜯어버린다?"


그녀는 퓨어한 이성애를 가진 사람인듯 보였다.


"갑자기 그걸 왜.. 물어보는데"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어 들어가서 쉬어, 나도 쉬어야겠어"


어느새 집 문 앞에 도착한 우리였기에 나는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으로 들어갔다.


진희는 아직 뭔가 할말이 남은듯 입을 달싹이며 문앞에 서있었지만 나는 그냥 손을 흔들어주고 집으로 들어갔다.





*      *      *



"이 환자 플루이드 아직 못갈았어? 이때까지 뭐 했어?"


"그 2호 환자분 펄스랑 spo2 확인 해보라고 해서 하고 왔습니다"


"아니 개답답하네 대가리는 장식이야?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움직여야지 거기다 라벨 작업은 아직 하지도 않았지?" 


오늘은 수희와 같이 근무하는 날이었고 그녀는 어김없이 나를 태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지금 바로 가서 처리하겠습니다"


"빨리 해 속 뒤집어질것 같으니까"


뛰어나가듯 달려가는 나의 등뒤로 병신같은게 라는 비웃음이 들렸지만 평소처럼 못들은척 하기로 했다.


그렇게 또 한참 일을 쳐내고 있는데 어느샌가 수희가 내 뒤에 서있었다.


씨발 또 뭔 지랄을 할까 싶었지만 의외로 아무말도 하지 않은채 내 일을 거들어 주었다.


이년이 죽을때가 됐나 일을 도와준다고? 평생 안하던 짓을 하네.


"야"


"네 선생님"


"너 진희쌤이랑은 친해?"


"대학교 동기였습니다"


그럼 그렇지 그거 쳐물어보려고 왔구만 속이 검은년.


"동기인건 들었잖아 친하냐고 물어봤잖아, 진짜 생각좀 하고 말해"


"... 친한것 같습니다."


"너 진희 좋아하냐?"


"아뇨 그냥 친동생같은 존재입니다."


사실 진희와 나는 졸업 년도는 똑같지만 당연히 군대를 다녀온 내가 나이는 두살 더 많았다.


"꼭 남자새끼들은 나이 쳐들먹이면서 오빠가~ 이지랄 하더라"


씨발 내가 오빠라고 그랬냐 그냥 나이 어리니까 동생같다고 했지.


그리고 너도 나보다 한살 어리잖아 내가 너보고 오빠라고 그런적 있냐 이 망할년!


"진희쌤은 남자친구 없는지 오래된것 같은데"


"네."


"진희쌤은 이쁘니까 좋다는 남자 많을텐데, 왜 안만나?"


그걸 왜 나한테 묻지.


그리고 일을 도와줄 거면 도와주던가 옆에서 시늉만 하니까 동선만 겹쳐서 더 일하기 힘든데? 진짜 짜증나게 만드네.


"아 진희쌤이 주변에 남자가 없다고 하더라구요 오히려 뭐라고 하더라.. 아! 여덕몰이상이라고 여자들한테 인기 많았던것 같았는데"


"뭐? 여자한테 인기가 많았다고?"


순간 수희의 표정에서 광채가 이렸다.


"네.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아서.."


"많아서?"


얼마나 내 얘기에 집중을 하고 있는지 어느새 나의 입에 눈동자가 박아버릴것 처럼 굴었다.


"아 맞다! 저 라벨지 작업 해야해서, 늦기전에 지금 하겠습니다"


"야 야!"


개같은년 약좀 올라봐라.


일부러 그녀가 흥미로울만한 주제를 던지고 끝까지 대답 안하고 자리를 떴다.


뒤에서 그녀가 불렀지만 난 못들은척 쌩하고 달려나갔다.


그렇게 바쁘게 일하는척 하려고 하는 중에 그녀가 씩씩대며 나를 따라 오더니 나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윽.."


"내가 부르면 대답을 해야지 쌩까고 가?"


"죄송합니다 로스난게 생각나서"


"씨발 내가 우습나봐?"


"그런 생각 없었습니다"


어렴풋이 군대에서 나를 갈구던 황병장이 생각났다.


그래도 그새끼는 챙겨줄때는 챙겨줬는데 이 미친 히스테릭 싸이코년은 진짜..


"그래서 아까 하던 얘기나 계속 해봐 인기 많았는데 뭐"


"아.. 사실 제가 남 얘기를 하는걸 안 좋아해서.."


"하, 그래?"


그녀의 나에게 보이는 표정은 늘 열받아 있거나 아니면 열을 받아 가고 있거나 아무튼 분노의 표정이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웃고 있었다.


입꼬리가 섬뜩하게 삐쭉 올라간 피비린내가 나는 웃음.


그녀를 너무 자극한걸까 아니면 내가 역린이라도 건드린것일까.


나의 뇌에선 싸이렌이라도 울리듯 좆됨경보를 알렸다.


선을 넘어버린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데 오늘도 진희쌤이랑 일 끝나고 맥주 한잔 하기로 해서요, 선생님도 같이 가실래요?"


"뭐?"


"저보다 진희쌤한테 직접 듣는게 낫지 않을까요?"


"... 나도 가도 되려나?"


수희의 표정이 싸늘한 표정에서 갑자기 사춘기 여고생의 표정으로 바뀌었다.


미친년 널뛰듯 감정변화가 들끓구나.


"네. 진희도 선생님 좋아하니까 같이 마시면 오히려 좋아하지 않을까요?"


"그러려나..?"


위기의 고비는 넘긴듯 했다.


"그래 안그래도 오늘 맥주 한모금 하고 싶었는데."


"네.. 잘됐네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또 다시 내 옆에서 일을 거들어 주었다.




*      *      *




내가 수희를 데리고 오자 진희는 조금 놀란 기색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표정 어딘가에서 실망하는듯한 눈동자를 잠깐 보였지만 수희에게는 내색하지 않고 살갑게 맞아주었다.

 

카페에서 그러하였듯 그녀 둘은 뭐라 뭐라 정신없이 떠들고 나는 맥주만을 홀짝였다.


그 날은 큰 이벤트 없이 그렇게 마무리 되었지만.. 이 뒤로도 이런 모임은 종종 발생 했다.


그녀와 같은 근무를 할때 나를 과하게 괴롭힐때면 나는 진희의 만남을 미끼 삼아 그녀를 달래었다.


진희에게는... 조금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마치 나의 꼬라지가 신의 분노를 피하기위해 마을의 처녀를 가져다 바치는 그런 못된 사람이지 않은가?


그렇게 여섯번째 일곱번째 모임인가 횟수도 긴가민가 할 무렵에 일은 발생했다.


늘 같은 패턴으로 호프집에서 둘이서 떠들었고 대화에 거의 끼지 않는 나는 잠시 화장실을 간다며 자리를 비웠다.


화장실을 다녀온지 오분도 지나지 않았지만 테이블은 적막과 싸늘함이 가득 차있었다.


난 잠시 눈치를 보며 다시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분위기를 살폈다.


분위기가 얼마나 차갑고 가라앉아 있는지 이제는 식어버린 맥주를 목에 넘기는데도 살얼음이 껴있는 마냥 차가웠다.


"후야.. 나 좀 취한것 같아서 먼저 가볼게"


"어?"


진희는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던 수희는 그녀를 잡으려다가 잠시 멈칫하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둘 사이에서 잠시 갈팡질팡 하다가 테이블에 남아있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진희는 바로 옆에 살고 있으니 집으로 돌아가면 얘기를 들어볼 수 있다.


난 그렇게 잠자코 고개를 숙이고 있는 수희가 고개를 들때까지 기다려주며 맥주를 마셨다.


하지만 그녀는 어깨사이로 파묻은 고개를 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지간하면 기다려 주려고 했는데 나도 시간이 아까운 사람이었다.


결국 참지 못하고 내쪽에서 먼저 입을 열었다.


"차였어요?"


"뭐?"


그녀는 나의 질문에 고개를 들어 표독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독기 서린 눈동자 아래에는 반짝이는 자그마한 눈물이 고여있었다.


난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달만 버티면 내가 입사한지 2년째 되는 날이다.


이주 뒤면 퇴사를 할 수 있다.


지금 얘랑 멱살잡고 싸워도 아마 몇달 뒤면 헤프닝쯤으로 여기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다소 용기가 솟아났다.


"차였냐구요"


"씨발 뭔 개소리야 너"


말 할 생각이 없는걸까.


"아닙니다 저도 가볼게요, 제가 있어봤자 기분이 더 안좋아지실것 같네요."


나도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자 그녀는 그 모습을 멍하니 보다 입을 열었다.


"알고 있었어?"


"뭐를요?"


"내가 여자 좋아하는거"


"네.."


"언제부터?"


"그렇게 오래는 안됐어요"


내가 대답하자 그녀는 갈증이라도 난듯 맥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내가 왜 너를 싫어하는지도 알아?"


"뭐.. 대강은 알것도 같네요"


그녀는 생각을 곱씹어 보는듯 잠시 침묵하며 나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근데 왜 아웃팅안했어?"


"아웃팅이 뭔데요?"


"왜 병원에 내가 레즈비언이라고 말 안했냐고"


"제가 왜 말 해야하는데요?"


"그냥 너 나 싫어하잖아"


"그렇긴 하죠"


내가 즉답 할 줄은 몰랐는지 그렇게 말하자 잠시 그녀는 벙찐 표정을 지어보였다.


"근데 왜 말 안했냐고 병원에 까발리면 나 좆되게 만들 수 있잖아"


대한민국에서 현재 성소수자가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정확히는 난 알지 못한다.


하지만 간호사란 직업이 워낙 보수적인 성향이 심하다 보니 그런 소문이 나돈다고 하면 그녀는 모르긴 몰라도 좋은꼴은 못볼것이다.


"제가 선생님을 싫어하는건 맞지만 사람이 사람좋아하는걸로 괜히 그러고 싶지가 않아서요, 거기다 요즘에 그런거 흠도 아니라잖아요"


"... 그래서 계속 입 다물고 있을거야?"


"뭐.. 그러지 않을까요"


"후.."


그녀는 나지막이 한숨을 내뱉으며 맥주를 들이켰다.


"난 한잔 더 마실건데 너는?"


그녀는 나의 빈 맥주잔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는 이제 집에 가려구요"


"사장님 여기 생맥500 두잔 주세요"


"집에 간다니까요?"


"마셔."


씨발 결국 지맘대로 할거면서 왜 물어보는것이지?


알바생이 생맥주를 가져와 나와 그녀앞에 두었고 그녀는 또다시 벌컥벌컥 마셨다.


"후.. 씨발 나는 한남 새끼들이 싫어"


"..."


한남.. 아마 인터넷 상에서 남자를 혐오하는 단어였던걸로 기억한다.


"생긴것도 좆같은데 성격도 좆같고 마인드도 좆같고 그냥 다 좆같아"


그렇게 남자가 싫다면서 내뱉는 욕이 좆이라니 아이러니함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쳐웃냐? 뒤질래?"


"죄송합니다 저도 한남이라서요"


"씨발.. 한남새끼"


그녀는 주저리 주저리 한탄하듯 얘기를 꺼내놓았다.


여자를 좋아하게 된 계기.


남자를 혐오하게 된 이유.


동성애자로 살면서 겪어왔던 상처들.


"내가 누구를 좋아하는거에도 난 죄책감을 가져야해.." 


"..."


"내가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한걸로 내가 좋아하던 사람이 날 혐오하는 시선으로 떠날때 그 기분이.."

  

"..."


"나는 친구도 잘 없어 연애 목적으로 접근한것도 아닌데 내가 레즈비언이란걸 알면 슬슬 날 피하더라고.."


"..."


나는 굳이 대답을 하지 않은채 그저 이야기만 들어주었다.


그녀도 굳이 나의 대답을 듣고싶어 하지도 않을것이다.


그녀는 그저 말을 털어놓을 상대가 필요한거겠지.


"얘기 들으니까 어때? 너도 내가 더 싫어졌어? 역겹고 더러워?"


"아뇨 애초에 더 싫어질 수도 없을 만큼 싫어하고 있어서요"


내 말에 그녀는 피식 웃었다.


처음으로 나에게 보인 웃음 같았다.


"진희한테 차인건 아냐"


"그러면요?"


"애초에 고백도 안했어, 고백 할 마음도 없었고. 내가 여자 좋아한다고 상대방한테 좋아해달라고 강요할 순 없잖아 그냥.. 손이 너무 이뻐서 나도 모르게 손을 한번 잡았는데 되게 싫어 하더라고.."


"고백보다 더 나쁜걸 수도 있는거 아니에요?"


"씨발 그러게.. 좆같다."


그녀는 남은 맥주를 쭉 들이키곤 가방을 챙겼다.


"야 나 간다"


"네."


"계산은 니가해"


"...네."


씨발년.




*      *      *




집에 도착했다.


맥주밖에 마시지 않았는데 취기가 올라오는것 같았다.


화장도 지우지 못하고 그대로 침대에 누워버렸다.


그리곤 후란 남자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그래, 내가 그렇게도 싫어하는 남자.


남자들은 전부 다 하등 쓸모 없고 성가신 존재라고 생각했다.


대가리엔 여자랑 떡치는것 밖에 생각하지 않는 그런 열등한 존재.


그런 존재인줄 알았는데..


하지만 오늘 처음으로 모든 남자들이 그런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오늘 그에게 나는 내 안의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다.


가족들이나 친구들 한테도 떠들어대지 못할법한 이야기들.


그걸 그 남자에게 드려주었다.


왜 자신이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아직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평소에는 그렇게 싫어하던 존재인데.


아니.. 어쩌면 그렇게 싫어해서 털어놓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사람은 원래도 나를 싫어하고 있을테니 더 미움받지도 않겠지란 생각.


이 사람이 나의 얘기를 듣고 나를 더 싫어하거나 해도 나는 크게 상관이 없었다.


나도 그를 싫어 했기에 더 사이가 틀어져도 사실 크게 바뀌는건 없으리라..


하지만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은 체 그저 얘기만을 들어주었다.


섣불리 공감하지도 않았으며 다 알고 있다는냥 답을 제시해놓지도 않았다.


그저 입을 다물고 들어줄 뿐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얘기를 꺼내놓을 수가 있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이야기가 끝나갈때까지도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내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듣고 있을 뿐.


이야기가 끝나도 그는 함부로 입을 열지 않았다.


나의 눈치를 봐서 입을 다물고 있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저 스스로 내가 했던 얘기들을 되새겨 보는듯해 보였다.


그래도 얘기가 끝나면 힘드셨겠네요나 못해도 그렇구나 하는 감상평 정도는 내놓을 줄 알았는데..


내가 했던 얘기들 중에는 남성에 대한 혐오의 발언도 다수 포함 되어 있었다.


당연히 후도 남자이기에 들으면서 기분이 나빴겠지.


하지만 그는 항변하거나 기분 나쁨을 표시하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그의 속 마음이 궁금했다.


"얘기 들으니까 어때? 너도 내가 더 싫어졌어? 역겹고 더러워?"


내가 물었고 아마 그가 말할 몇가지 답변을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전혀 예상치 못한 답이었다.


"아뇨 애초에 더 싫어질 수도 없을 만큼 싫어하고 있어서요"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동안 감추어만 왔던 내 안에 쌓여있던 상처들을 끄집어내서 얘기를 꺼냈음에도 마지막에 이렇게 웃을수가 있구나.


아니 오히려 얘기하기 전 보다 마음이 훨씬 가벼워진것만 같았다.


이 얘기를 해서 그가 나의 편이 되어주거나 나를 이해해주지는 않을것이다.


아마 큰 차이 없이 나를 미워하겠지.


그래, 그렇게 기분 나쁜 말들을 쏟아 내었는데도 큰 차이 없이 나를 미워해주다니.


이 아이는 바보일지도 모르겠다.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는 거기서 술자리를 끝냈다.


이 이상 같이있다간 기분이 좋아져서 나도 모르게 바보같은 말들을 꺼낼것만 같았다.


하지만 집에 도착하자 나는 조금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조금 더 얘기할걸..'


나도 모르게 휴대폰을 들어 통화를 걸어보려 하다가 이내 멈추었다.


아마 걸어도 자는 척 하고 받지 않을것이다.


이전 같았으면 내 전화를 씹는게 기분이 나빠 받을때 까지 걸었겠지만.


오늘은 왜인지 그가 전화를 받아주지 않는다면 굉장히 섭섭한 기분이 들것같아 무서웠다.


사실 나같아도 안 받고 싶어 할것같았다.


자신을 노골적으로 괴롭히는 직장 상사는.


그냥 갑자기 얼굴이라도 보고싶어 메신저 어플을 열어 그의 프로필 사진을 확인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프로필 사진을 등록하지 않은것인지 그의 프로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휴.. 한숨을 내뱉고 두 눈을 감아 그냥 조용히 후를 떠올려 보기로 했다.


여자보다 더 하얀 피부에 긴 속눈썹.


쌍커풀 없이 부담스럽지 않게 큰 눈.


그리고 상처입은 소동물 같은 깊고 촉촉한 눈동자.


자신은 그 아이를 무척이나 괴롭혔다.


대놓고 무시하고 조롱하며 일을 힘들게 만들었다.


이유는 크게 없었다.


그냥 그가 남자라서.


내가 싫어 하는 남자라서.


근데 오늘 다시금 그 일들을 되새겨 기억해내다 보니 가슴 속에서 알 수 없는 저릿한 감각이 느껴졌다.


이걸 무슨 기분이라고 사람들이 부르더라..?


정확히 이 감각이 무슨 기분인지 알아내기 위해 좀 더 깊게 그를 생각해내었다.


이윽고 그녀는 알아냈다.


이 가슴속에서 들끓는 고양감은 '흥분' 이라는것을.


어느새 가슴 속에 저릿한 감각은 가슴이 아니라 배 밑쪽으로 내려가 그곳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손을 그곳으로 가져가 손가락을 집어 넣었다.


그곳은 나의 뇌보다 지금 느껴지는 감각이 흥분이란걸 깨달았는지 이미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내가 그 사람을 괴롭혔다.


그 사람을 상처입히고 힘들게 만들었다.


내가 그 사람을 조종했다.


그 사람의 감정을 내 입맛에 따라 분노로 바꾸었다.


내가 그 사람을 지배했다.


그래 나 때문에 그는 옴짝 달짝 할 수 없다.


좋은 감각이었다.


나는 그 사람을 강제로 가져버린것이었다.


이미 극도로 흥분한 상태라 침대의 시트까지 흠뻑 젖은 뒤였다.


"하으읏...."


얼른 후가 보고싶었다.


또 후를 괴롭히고 상처주고 싶었다.


그를 산산조각 낸 다음 내가 가질것이다.



*      *      *



그 뒤로도 그녀의 괴롭힘은 여전했다.


사실 조금은 그녀와 터놓고 얘기를 한지라 조금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했지만 그녀는 여전했다.


"내가 인젝부터 하라고 안했어?"


"죄송합니다."


"... 죄송하면 빨리 가서 해"


"네."


아니, 그래도 등뒤로 항상 따라오듯 들으라고 하는 조롱만큼은 없어진것도 같았다.


"오늘도 맥주 한잔 하자"


일하고 있는데 또다시 불쑥 나타난 그녀가 말했다.


"진희쌤이 근무 타임이 안맞아서 못나올것 같은데요?"


"말고 너랑 나랑 둘이서 마시자고"


"둘이서요..?"


"싫어?"


"네.."


"뒤질래? 오늘 퇴근하기 싫어? 맥주 마시는 시간만큼 오버타임 근무 할래?"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차라리 같은 시간이라면 그녀와 맥주를 마시는것보다 일을 하는게 조금더 나을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늘 그랬듯 나의 의견은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없었다.


그녀가 가고싶으면 가야했고 나는 하는 수 없이 끌려 가야만 했다.


치킨 한마리와 맥주 한잔을 시켜놓고 우리는 맥주를 마셨다.


그녀는 맥주잔이 반이 비어가도록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뭔가 불만인 시선으로 나를 한번 노려보고 맥주를 한 모금하고 나를 한번 더 노려보고 맥주를 한 모금 했다.


나야 원래 먼저 그녀에게 말을 걸지는 않았으니 나도 마찬가지로 그녀의 눈을 한번 피하고 맥주를 한모금 했고 그녀의 눈을 한번 더 피하고 맥주를 한 모금했다.


"야."


"네."


"너 여자랑 자봤냐?"


"MT같은데 가서 같이 뒤섞여 잤었죠, 남자라고 따로 방을 주진 않았으니까"


"아니 씨발 말귀를 못알아듣는척 하는거야 진짜 눈치가 없는거야 섹스 해봤냐고"


"...그게 왜 궁금하신데요?"


나는 나도 모르게 표정관리에 실패해 인상을 찡그렸다.


"나는 여자랑은 많이 자봤는데 남자랑은 안자봤어"


어쩌라는거지.. 갑자기 음담패설을 하고 자빠졌어.


"나랑 해보자"


"예?"


순간 뇌가 대화 주제를 따라가지 못했다. 


갑자기 잠자리 얘기를 하다가 자기랑 해보자니?


"그냥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서"


"한남이랑은 죽었다 깨어나도 그런짓 안한다 안그랬어요?"


"그랬지 근데 다른 여자들이 그렇게 좋아하는데 이유가 있지 않겠나 해서 호기심이 들었어, 너정도면 가지고 놀만 할것 같아서."


"죄송하지만 거절 할게요 다른것까진 그래도 참았는데 성접대까지는 못할것 같아요"


"접대? 내가 접대받는거야? 니가 받는거지. 남자새끼들은 그냥 구멍만 있으면 박고싶잖아 아냐? 미친새끼야 더군다나 나는 예쁜대 접대는 내가 해주는거지"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 그녀는 미형의 얼굴을 가졌을진 모르나 그녀와 그런일을 하고싶은 마음은 전혀 생기지 않았다.


"그냥 따라와"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의 멱살을 잡고 자리에서 일으켰다.


그녀가 병원에서 시키는 부조리한 일들도 참았다.


이렇게 퇴근하고 나서도 그녀는 나를 휘두르려고 했지만 이것도 참았다.


하지만 이것까지 참아야한다고?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내가 무슨 잘못을 해서?


그녀의 멱살질에 질질 끌려다니다가 이내 풀려났을때는 이미 모텔의 침대 위였다.


"바지 벗어"


"..."


내가 멍하게 굳어있자 그녀는 나의 어깨를 팍 밀치더니 강제로 침대에 눕게 한다음 바지를 벗겨냈다.


허리띠를 푸는데 버클이 달그락 거리며 잘 풀리지 않자 그녀는 욕지기를 내뱉으며 애가 탄다는 느낌으로 손을 바삐 움직였다.


이내 속옷까지 벗겨내고 나의 그것을 배려심 없는 거친 손길로 잡았다.


"씨발 진짜 존나 징그럽게 생겼네."


"... 이쯤에서 그만하면 안될까요?"


그녀는 여전히 나의 그것을 손으로 움켜쥔 채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평소의 표정과 다르게 흥분으로 달뜬 표정이였다.


"이상하지 않아?"


"뭐가요?"


"남자들은 여자랑 섹스하고 나면 따먹었다 하면서 자랑하잖아"


"..."


"근데 누가봐도 섹스라는 행위는 여자가 남자를 따먹는거 아냐?"


그녀도 바지를 벗고 속옷까지 벗어냈다.


"표정 좋네, 좋아 그 표정 유지해 그래야 누가 봐도 니가 따먹히는것 같잖아"


나는 그 경박한 말에 그녀를 바라보는것을 멈추고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러자 그녀는 나의 턱을 붙잡고 다시 자신을 바라보게 고개를 돌렸다.


"눈 떠."


나는 반항하듯 눈을 뜨지 않았다.


그러자 잠시 눈 앞이 번쩍이더니 볼이 아려왔다.


그녀는 나의 뺨을 후려친것이었다.


"눈 뜨라고 개새끼야"


입안이 찢겨졌는지 핏맛이 났다.


나는 눈을 조용히 떴다.


그녀는 이미 나의 허리에 올라탄 채 그 허리를 내리기만 하면 삽입될 수 있도록 성기와 생식기를 맞추어놓은 상태였다.


"눈 뜨고 니가 따먹히는거 잘봐."


그녀는 허리를 내렸다.


축축하고 미끄러운것이 뿌리까지 감아왔다.


불쾌한 쾌감에 나는 눈썹을 찌푸리며 인상을 썼다.


내 위에 올라타있는 그녀는 여느때 처럼 비릿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스스로 허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좋아? 니가 싫어하는년 보지에 따먹히니까 좋아?"


"..."


"좋냐고 개새끼야 좆물 쌀것 같냐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 씨발, 그래 느낌...은 좋아 하아.. 손가락이랑 다르게 뱃속이 징징 울리네 이 맛에 여자들이 남자랑 하는건가?"


그녀는 점차 허리를 흔드는 속도를 높혔다.


"하으.. 씨발 느낌 존나 좋네, 개새끼야 아직 싸지 마라 싸면 죽여버린다"


그녀의 날카로운 손톱이 나의 가슴팍을 할퀴었다.


가슴에 그녀의 손톱을 따라 빨간 선이 생겨났다.


"아아.. 남자 다리사이에 이딴게 달려있으니까 여자들이 만나지... 씨발... 나도 남자로 태어났으면 진희 같은애들... 하으.. 존나 따먹고 다니는건데..."


그녀의 입에서 진희의 얘기가 나오자 나도 모르게 울컥해 그녀를 쏘아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금 나의 볼을 때렸다.


"눈 예쁘게떠 개새끼야"


그녀는 미친듯이 허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나의 기분과 별개로 물리적 자극으로 인해 사정감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하아.. 왜 정액 쌀것같아? 싸"


"빼주세요.. 콘돔도 없이 삽입... 했잖아요.."


"내가 하아.. 실신할때까지 참던가아.. 아니면... 흣.. 안에 싸던가.. 알아서해"


참다 못한 나는 그녀를 밀치려 했으나 그녀는 나의 손을 처내고 몸 전체로 나를 꾸욱 안아왔다.


허리를 흔드는 폭이 적어졌지만 오히려 뿌리 근처만을 계속자극해와 미칠듯한 사정감이 밀려왔다.


나의 허리가 나도 모르게 잠시 붕 뜨더니 결국 그녀의 몸 안에 사정하고 말았다.


"하읏...하...하아.. 씹새끼 진짜 안에쌌네."


몽롱해져가는 의식 사이로 입 속에 무언가 들어오는게 느껴졌다.


그녀는 여전히 나의 성기를 빼내지 않은채 나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비벼대더니 자신의 혀를 집어넣은것 이었다.


상대방의 기분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쾌락만을 위해 혀를 그저 내 입속 깊은곳 까지 박아넣기 위해 입술을 비벼대는 이기적인 키스.


그렇게 체액이 교환되고 있을때 나의 마음속 깊은곳에 무언가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      *      *



그날을 시작으로 그녀는 점점 더 탐욕 스럽게 나의 몸을 원해왔다.


하루도 빠지는 날이 없이.


같이 야간근무를 들어가는 오늘은 평소보다도 더 흥분한 상태로 일하고있는 중 병원 안에서도 나의 몸을 요구했다.


탈의실 하나의 의자에 우리는 마주보고 겹쳐 앉았다.


"빨리 목 핥아"


그녀의 성감대는 목인듯 했다.


그녀가 시키는 대로 그녀의 목에 고개를 파묻고 혀로 핥으면 몽롱한 표정으로 허리를 떨어 대었다.


그녀가 거칠게 나를 요구할 때 마다 나는 내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죽어가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한참동안을 목을 애무받던 그녀는 이내 못참겠다는듯 바지를 벗었다.


이내 병원 안에서도 삽입까지 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나도 이제는 익숙하다는 듯 바지를 벗었다.


하지만 바지 안의 나의 성기는 힘 없이 축 늘어져 있을 뿐이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그녀와 성교를 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것도 반응하지 않는것이었다.


"씨발 왜이래?"


"피곤해서 그런가봐요.. 다음에...켁"


내 얘기가 다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나의 목을 졸랐다.


양손을 이용해 나의 기도를 조이자 산소를 공급받지 못하는 뇌는 순식간에 의식이 깜빡인다. 


마치 수명이 다 되어버린 전구마냥 깜빡인다.


기절 하기 직전이 되자 그녀는 손을 풀어주었다.


나는 거칠게 기침을 하며 숨을 몰아 내쉬었다.


"이제 섰지? 사람이 기절 하기 전에 좆이 선다고 하던데 그 말이 맞나봐"


겨우 당신의 쾌락을 찾기 위해 사람 목을 졸랐다고?


그 짧은 말을 내뱉기에도 호흡이 모자라 고개를 들어 그녀를 노려보는게 고작이었다.


그녀는 내가 어떻든 아랑곳 하지 않고 섹스에만 열중했다.


이번에도 콘돔을 착용하지 않은체.


그녀는 내가 성교를 거부할 때 마다 질내사정을 한것을 약점삼아 강간으로 신고하겠다고 협박을 해 내 몸을 요구했다.


그래서 그때마다 비참한 기분을 억누르면서 그녀의 자위 인형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저 이 시간이 지나가길 바라면서.


또 한차례의 사정이 이어졌다.


이번에도 역시 그녀는 질외사정을 허락해주지 않은 체 질 속으로 나의 정액을 받아냈다.


오히려 사정을 할때 꾸욱 꾸욱 질을 수축시키며 고여있던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어갔다.


그녀는 만족한듯 나를 놓아주었지만 나는 역한 기분이 들었다.


그 뒤로 그 근무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저 정신을 차리니 우리 집 문 앞에 멍하니 서있었다.


온 몸이 녹초였다.


그저 집에 들어가서 몸을 씻고싶었다.


도어락 캡을 열고 비밀 번호를 누르려고 했지만 우리집 비밀번호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비밀 번호가 뭐였더라?


근데 여기가 우리집이 맞나? 우리집이 원래 3층이던가? 아니 애초에 이 건물이 맞긴 한가?


그보다 이건 꿈이 아닐까? 현실 감각이 잘 없는데...


사실 이미 난 죽은게 아닐까?


모든 기억이 희미하다.


나는 문에 머리를 쳐박았다.


이마에 아릿한 감각이 전해져왔다.


오히려 그 통증이 여기가 꿈속이 아니고 내가 살아있다는게 느껴졌다.


난 몇차례 더 문에 머리를 박았다.


쾅 쾅 쾅 쾅 횟수를 반복 할 수록 강도는 더 해졌다.


갑자기 옆집에서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한 여성이 뛰쳐 나왔다.


누구더라?


어디서 많이 봤는데.


아 진희구나.


다행이네 진희가 옆집에서 나온걸 보면 여기가 우리집은 맞구나.


"야! 너 뭐해!"


그녀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에게 달려왔다.


"아.. 집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비밀번호가 기억이 안나서.."


"그렇다고 머리를 그렇게 세게 문에 박아? 이마좀 봐!"


그녀의 손이 나의 얼굴쪽으로 뻗어왔다.


여자의 손이 또다시 나를 만지려든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의 손을 거칠게 쳐내곤 그녀에게서 몇발자국 도망치듯 멀어졌다.


"야! 너 왜그래!"


"하아..하아..하아.."


어느새 내 몸은 공포로 호흡까지 가빠진 상태였다.


나는 복도에 주저앉았다.


"미안.. 미안한데 우리집 비밀번호가 기억이 안나서.. 문좀 열어주고 집으로 돌아가줄래?"


"야 너진짜 이상해 도대체 왜그러냐고"


"미안한데.. 그냥 문만 열고 가줘..."


난 고개를 무릎사이에 파묻고 고장난 라디오 처럼 문만 열어줘란 말만 반복했다.


그녀는 우리집 도어락을 여는것인지 몇차례 삑삑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도어락이 해제되는 알람음이 울렸다.


"열었어.. 후야 얼른 들어가서 일단 쉬어"


"고마워..."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혹시 누가 나의 집에 들어올까 잠금장치를 문에 걸어잠구었다.


샤워... 샤워가 하고싶었다.


내 몸에 묻은 수희를 지워내고 싶었다.


샤워기 헤드에서 피부가 익을정도로 뜨거운 물이 떨어지자 난 옷도 벗지 못하고 몸을 집어넣었다.


이대로 물을 끄지 않고 계속 틀어놔서 화장실이 물로 가득차 버려서 내가 이 뜨거운 물에 익사해서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뜨거운 물에 맞고 나서야 이내 정신이 돌아왔다.


화장실은 뜨거운물이 쏟아내는 증기로 사우나를 방불케 했다.


나는 물을 잠그었다.


정신이 나가 있어서 옷을 입은체로 물을 맞아서 오히려 다행이였다.


맨 몸에 이 온도의 물을 뒤집어 썼으면 피부가 다 벗겨졌을것이다.


볼 위를 흐르는 이 뜨거운 물이 눈물인지 샤워기에서 나온 물인지 모르겠다.


내가 왜 이렇게 된거지? 고장이라도 난 모양처럼...


난 수희를 떠올렸다.


그래.. 인정하기 싫지만 나는 수희에게 강간을 당한것이다.


강간은 여자만 당하는것이 아니니까.


나는 병원을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아직 이년을 채우지 못햇지만 조금 더 수희가 날 갖고 놀게 둔다면 나는 돌이킬 수 없이 망가질게 뻔했다.


나는 젖은 옷을 벗어 세탁망에 넣어놓고 다시 옷을 꺼내 입어 병원으로 향했다.


늘 써놓고 내지 못했던 사직서와 함께.




*      *      *




나는 잠에서 깨자 기지개를 킨 후 콧노래를 불렀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후와 함께 근무하는 날이었다.


어젠 참지 못하고 병원 안에서도 후에게 손을 대고 말았다.


하지만 이것은 후의 잘못이었다.


그렇게 먹음직스러운 향기를 풍기면서 꼴리는 표정을 지으니까 그런 일을 당하는 것이다.


나의 참을성의 문제가 아니라 다 조신하지 못한 후의 잘못이다.


퇴근할 때 후는 고장이라도 날것처럼 넋이 나간 표정이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흥분이 되었다.


나로 인해 피폐해지고 나로 인해 망가져 가는 모습이 너무나도 퇴폐적으로 느껴졌다.


그 상태로 모텔로 데려가서 한번더 그의 정액을 짜내고 싶었지만... 그러진 않았다.


정말로 그가 망가질까봐 겁이 났다.


나의 성벽 때문에 그를 거칠게 다루었지만 이제는 자제 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미 마음 속으론 후를 좋아하고 있었다.


진희에게 거절 당하고 자신의 밑바닥 까지 그에게 털어 놓았을때.


그는 여타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을 고쳐먹으려 들거나 잘못을 꼬집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기만 했다.


정말 그 뿐이었는데 지난 몇십년간 동성애자로써 살아오던 자신의 상처가 아물어 오는것만 같았다.


사실 나는 이전 부터 그냥 순수하게 나를 받아 들여 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었던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직 좀 이른 시간이지만 출근 준비를 하기로 했다.


먹을거라도 준비해서 후에게 먹여야지.


내가 요 며칠 쉴새없이  그를 괴롭히다 보니 눈에 뛸 정도로 체중이 감량 된 것이 느껴졌다.


요리 레시피 검색을 위해 휴대폰을 들자 몇통의 카톡이 와있었다.


평소처럼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으나 한 문구가 나의 시선을 붙잡았다.


병동 단체톡의 수선생님이 보낸 메세지.


[오늘부터 후 선생님이 건강악화로 인하여 긴급 퇴사하게 되었습니다. 근무표 수정이 생길 예정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후가 일을 그만둔다고?


갑자기..?


나한테 말도 없이?


혹시나 후에게 연락온것이 있나 후의 카톡방을 열어보았지만 후는 나에게 연락을 보낸것이 없었다.


혹시 정말 아픈걸까? 그런거겠지? 그러니까 나한테 말도 없이 일을 그만 둔다는거겠지?


나는 떨리는 손으로 후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하지만 신호는 두번도 채 울리거 전에 고객님의 사정으로 인해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기계의 안내 문구가 울렸다.


'차단 당한건가?'


다급하게 후에게 메세지를 보내었지만 읽음은 사라지지가 않는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하지?


후가 보고싶다.

후가 보고싶다.

후가 보고싶다

후가 보고 싶다. 

후를 봐야 한다.


하지만 나는 후의 집을 모른다.


휴대폰으로 연락이 되지 않는다면 나는 어떡해 그에게 말을 하고 그를 만날 수가 있지?


"어떡 하지, 어떡 하지? 어떡 하지? 어떻게 해야하냐고!"  


이대로 후가 나에게서 도망가버리면 어떡하지?


누군가 나의 목을 조르는것 마냥 호흡이 잘 되지 않는다.


손가락 끝부터 잘려나간듯 몹시 아려왔다.


나는 쓰러지듯 바닥에 엎어졌다.


눈물이 참아 볼 수도 없게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흘러 내리는 눈물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어 눈을 감았다.


신기 했다.


분명 이전까지만 해도 눈을 감으면 세상이 캄캄해졌었는데.


지금은 두 눈을 감았는데도 눈 앞이 새하얬다.




*      *      *




똑똑똑


집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자취방 짐을 싸고 있는데 누가 문을 두드렸다.


뭐지 누구지?


진희는 아닐것이다, 진희는 이미 우리집 도어락 비밀번호까지 알고 있어서 필요한 일이 있으면 그냥 문을 따고 들어왔다.


거기다 진희는 지금 야간근무를 끝내고 와서 자고 있을 것이다.


'나한테 찾아올 사람이 있던가?'


서울에 올라와선 일 하느라 바빠서 친구도 잘 사귀지 못했는데..


나는 현관문 앞에서서 외시경으로 눈을 들이밀었다.


외시경으로 좁게 확보되는 시야로 한 여자가 서있었다.


그리고 나는 나도 모르게 호흡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현관문 앞에는 수희가 서있었다.


씨발 왜 여기까지 찾아온거지?


아니 애초에 우리집은 어떻게 알아낸거야.


내가 집에 있는걸 알고 있나?


그냥 모르는척 할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이내 마음이 차분해졌다.


난 이미 병원을 그만 두었다.


이제 그녀의 말을 들을 필요도 없거니와 그녀를 두려워 하지 않아도 된다.


뭐 그것과 별개로 굳이 그녀의 얼굴을 보고 싶지가 않았다.


나는 없는척 하기로 했다.


다시금 짐을 싸기로 했다.


주기적으로 한번씩 똑똑똑 이란 소리가 들려왔지만 난 무시했다.


사실 내가 짐을 싼다고 부시럭되어서 밖에서는 소리가 들릴것이다.


하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내가 안에 있는걸 알아도 뭐 그녀가 어쩔것인가.


아니 애초에 그녀도 혼잣말 하는척 나에게 들으라고 욕설을 내뱉었었다.


생각하니까 왜인지 울컥해서 그녕 더 소리를 내며 짐을 쌌다.


원래 살림살이가 단촐한 편이라 짐을 싸는데 큰 시간이 들지도 않았다.


후.. 나는 텅 비어버린 거실에 누웠다.


이제 똑똑똑 하고 들리던 노크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갈증 탓에 냉장고에서 맥주를 한 캔 꺼내어 들었다.


캔을 따자 치익하고 듣기 좋은 탄산이 빠져 나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모금 입을 대었다가 나는 헛구역질을 하며 싱크대로 달려갔다.


맥주를 입에 대자 수희의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수희와 맥주를 마시고 그녀의 손에 붙들려 모텔로 끌려갔던지라 그녀의 혀의 맛은 묘하게 맥주의 맛이 남아있었다.


나는 맥주를 하루의 안식거리 삼아 살던 놈이었는데.


그 기억이 후유증처럼 남아 맥주 맛이 느껴지자 마자 역한 구역감이 몰려오다니.


"하 씨발.. 당분간 맥주도 못마시겠네" 


나는 맥주를 주르륵 싱크대로 흘려보냈다.


기분이 참 엿같았다.


짐을 다 싸고 넷플릭스로 보려 했던 드라마나 몰아보려 했지만 생각을 바꾸었다.


그냥 다 하기가 싫어져 방에 들어누웠다.


이윽고 잠시 잠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두시간쯤 잠들었을까? 


나는 잠에서 깨고 말았다.


한 겨울의 날씨가 상당히 추운탓에 바닥은 보일러를 틀어났음에도 이불을 덮지 않아 한기가 느껴져 잠에서 깨어버린것이다.


어차피 한 숨 자고 내려 갈건데 이불을 미리싸다니 바보같네 나는.


배가 고팠다.


원래 집에서 뭘 해먹는걸 좋아했으나 주방 도구도 전부 다 짐에 싸넣어 버렸다.


한번더 나의 지능에 통탄하며 그냥 대충 편의점에서 대충 사와서 때우자 싶어 집 밖으로 나왔다.


"..."


집 밖에는 아직도 수희가 쭈그려 앉은채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최초로 문 두드린 시간으로부터 네시간이나 지난 뒤다.


이 한겨울의 날씨에 빌라의 복도에서 네시간을 쭈구리고 기다리고 있었다고?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에?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수희는 웅크리고 있던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코끝과 귀끝이 이미 빨갛다 못해 파랗게 질려있었다.


거기다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던 모양인지 속눈썹은 눈물로 하얗게 얼어붙어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달려들어 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미안해.. 우리 얘기좀 하면 안될까?"


"무슨 얘기?"


"제발.. 나 너한테 할 말이 많아.."


"난 없는데.. 너한테 듣고 싶은 얘기도 없고"


더이상 직장 상사도 아니었고 그녀에게 존대할 이유도 없어 반말로 내뱉었으나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아 보였다.


"내가 미안해.. 제발 우리 잠깐만 얘기좀 해 응..?"


"그러니까 듣고 싶은 얘기 없다고."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그녀는 나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있던 손을 놓고 두손을 모아 나에게 빌었다.


무릎까지 꿇은 채로.


간호사의 직업병인지 빌고 있는 손가락 끝이 새빨갛게 터질것처럼 부어있는게 보였다.


1도 동상의 증상이었다.


"하.. 진짜 열받게 하네 들어와"  


나는 그녀를 집에 들어오게 한 뒤 한숨을 크게 내뱉고 싸놓은 짐을 풀어 그녀에게 이불을 건냈다.


"별로 얘기 듣고 싶지도 않고 같은 공간에 있는것도 엿같으니까 할 얘기 있으면 오분 안에 끝내고 나가"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은 아까 들었고"


"미안..."


나는 대답도 안하고 그냥 인상을 썼다.


그냥 얼른 나가줬으면 좋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정말 미안한데 미안하다 말 말고는 할 말이 없어서.."


"됐어 어차피 그 미안하다라는 말이 자기 편해지려고 하는 말이잖아, 넌 사과했으니까 받건 말건 내 자유고 그치? 그런 말 할거면 이제 나가"


그녀의 안색은 아직도 파리해 보였다.


다시 한숨 짓고는 뜨거운 물에 사놓은 커피를 타 그녀에게 건냈다.


"이거 다 마시면 나가"


그녀는 커피를 받아들곤 나를 멍하게 바라보았다.


"왜 아직까지 나한테 잘 해줘?"


"잘해주는거 아냐 나중에  딴소리 나올까봐 하는거지"


"차라리 나를 때리지 그랬어"


"아니 싫어 나랑 같은곳으로 떨어져버릴것 같거든"


"..."


"니가 여기서 안나가면 내가 여기서 나갈거야"


"미안해.. 그렇게 나랑 같이있기 싫어?"


"당연하지."


내 말에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커피는 잠시 바닥에 놓은체로 무릎을 꿇었다.


"미안.. 근데 나는 포기를 못하겠어"


"뭘 포기를 못해"


"너를... 내가 너한테 했던 행동들 못된 짓이었고 하면 안되는거였단거 알아.."


"..."


"근데.. 네가 너무 좋아서 그랬어.. 그래서 무서워서..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또 나를 떠나버릴까봐.. 그래서 널 망가트리고 그 상태로 나에게 구속하고 싶었어"


"그만, 듣기 싫어 네가 한 행위에 무슨 그럴듯한 이유를 가져다 붙여도 용납되기 힘든 일들이이었고 넌 나한테 그냥 미친년일 뿐이야."


그녀는 울음을 터트렸고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쓰러지듯 바닥에 붙어버렸다.


"미안..미안해 나 너한테 큰거 안 바랄게 다시 같은 곳에서 일하는것도 안바랄게 다시 너의 피부에 닿는것도 바라지 않을게.. 너와 다시 호프집에서 맥주마시면서 얘기하는것 그런것들 더 바라지도 않을게"


"..."


"그냥... 그저 한번씩 내 연락 받아주면 안될까? 한달에 한번이라도.. 일년에 한번이라도.. 네가 나와 같은 하늘 아래 살고있단것만 확인할 수 있을정도로만... 같은 세상을 살고 있다는것 정도만이라도 알 수있게.."


그녀의 목이 쉬어버려 중간부터는 갈라지는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제발.. 나 너가 없는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니까 숨이 잘 안쉬어져..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뭘 하고싶지도 않아.. 제발.. 제발.. 부탁해.. 그냥 같은 곳을 살고있단것만이라도 알 수 있게 해줘.. 나 이대로 너 떠나가 버리면 우리 평생 못보는거잖아 너와 함께했던 추억들도 다 희미해져 버릴거잖아 눈을 감아도 너의 얼굴을 그릴 수가 없잖아.. 나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잖아"


"추억? 너한텐 추억이라고 지껄일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나한텐 너는 그냥 악몽이야 나는 너라는 존재가 같은 세상안을 살아간다는것만으로 내 인생의 흉터야! 지워지지도 않는다고! 근데 내가 미쳤다고 너한테 연락을 해? 매번 내 흉터를 그런식으로 내 손으로 더 해집어 놓으라고? 싫어 도대체 내가 왜 그래야하는데?"


"미안해.. 지금 처럼 나 미워해줘도 되니까.. 나 뭐든 할테니까.. 제발.."


"하 뭐든 다 할 수 있어?"


"응..응.. 제발 뭐든 다 할테니까.. 제발.. 이대로 영영 사라지지만 말아줘"


나는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귀에 속삭였다.










"그냥 내가 뒤졌다 생각하고 살아 평생 내 눈앞에 나타날 생각하지말고."










후회물 처음 써봐서 이렇게 써도 되는지 모르겠네


오타 및 피드백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