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히로군! 아... 진짜, 얼마나 걱정 했는데요!"


딸기 다이후쿠를 손에 쥔 소년에게 크릭이 달려간다. 손은 연하게 입힌 딸기 다이후쿠보다 빨갛다.

어린아이니까, 손이 언다는 것보다 받았다는 것 자체가 기뻐서 신이 나서 추운 것도 잊어버린게 아닐까.

실제로 지금은 미아도 아닐뿐더러, 저렇게 크릭의 품 안에 안겨 있다. 


"..."


조금 전의 언쟁이 어처구니 없이 끝났다. 아니, 알고 있었다. 내심 히로군을 데리고 들어오는 마다라메 회장을 기다렸다.



...비겁한 새끼.



마음 속에 띄운 말은 금새 사라진다. 마다라메 회장은 언제나처럼 덥수룩한 머리를 긁적이며, 내게 다가온다.

한 겨울용 두터운 핫피 하나와 아래의 다이쇼 시대에나 어울릴 법한 복식. 흰색 폴라티 위의 트렌디한 푸른계통의 하카마.

겨우 찾은 아이에게 '안 추웠어요?'하고 걱정하며 무릎을 꿂은 크릭을 보고 있는 내게 다가온다.



"저기... 뭐야? 무슨 일이야?"


"..."



속닥거리며, 한 손을 내 뺨에 가져다 대고서 말하는 말.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저 여자. 걔지? 그 왜, 나오미 바에서 만난..."


"..."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젊은 사장 혹시...!"



"..."



대답하지 않고 대신에 박수를 친다.

짝 하고 점내를 울린다.






열려진 현관 틈새에서 차가운 공기가 점내로 가득 차있다.

바깥은 아직도 북적이는 소리. 하지만, 점 내는 조용하다. 그래서일까. 더더욱 차게, 매몰차게 울린다.

내 박수 소리에 돌아보는 크릭. 그리고 갑작스러웠는지 뒤로 물러서는 마다라메 회장.




"자, 얘도 찾았고. 일단은 여기서 마무리 해야죠. 저도 할 일이 있구요."


"어, 어이... 젊은 사장..."


마다라메 회장이 집요하게 달라 붙는다.

본성이 나쁜 건 아니다. 이 사람도. 하지만, 지금은 도저히 받아 줄 여력이 없다.

크릭이 히로군을 안아 올리며 일어선다.

6살쯤 되는 남자아이. 그 나이대의 체구. 메메보다는 작다. 그래도 여성이 안아 올리기에는 꽤나 힘들 것 같은데... 하고 생각이 가다가 멈춘다.

그녀는 우마무스메다. 전성기가 지났다라고 하더라도 인간과는 차원이 다른 힘을 가지고 있을거니까.



"네... 그러네요."




두 번 다시 놓치지 않겠다는 듯, 품에서 이리저리 날뛰는 히로군을 단단히 껴안은 베이직 코트 차림의 그녀.

어깨까지 오는 단정한 갈색 머리칼. 흰색과 섞여서 어딘가 묘한 색감을 자아내는 벼 머리. 쫑긋 솟은 두 귀.

크릭은 안은 채로 허리를 굽힌다.



"덕분에 히로군을 찾을 수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딱딱하다.

말에는 내가 아는 그녀의 다정함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다.

그렇겠지.


그 다정함이 남아 있을리가.


실제로 마다라메 회장이 오지 않았다면, 여기서 서로의 감정을 토해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이런 공적인 인사조차 주고받을 수 없었겠지.



"아닙니다. 찾아서 다행이네요."


"응? 어...어어어...?"


"네, 그러면 죄송하지만, 인사는 다음에 드리고. 시간이 늦어서 히로군을 먼저 바래다주러 가볼게요."


"으으으응?"




뭘 생각했는지, 대충 알 것 같지만 생각한대로 흘러가지 않아서 곤란한 마다라메 회장을 두고 크릭의 허리는 왕복운동을 끝마친다.




"아, 아저씨 다이후쿠 고마워~!"



라는 히로군의 바이바이만이 남고, 현관문을 닫지도 않고 사라진다.

나와 마다라메 회장만이 급속도로 차가워지고 있는 소바 가게에 남는다.


육수를 끓이고 있던 냄비가 부글부글 끓는다. 슬슬 불을 줄이고서, 일어난 거품을 걷어내야된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아니아니아니아니... 잠깐만? 젊은사장? 뭔가 이거 짧지 않아?! 이렇고 저렇고 이야기하고 해야지...?! 도와 줬잖아?"


"요즘 세대는 깔끔하다고 하더라구요. 아, 육수 맛보기라도 하실래요?"



그렇지. 보통은 아이를 찾으면 곧장 돌아가는게 아니라, 부담스러울 정도로 회장의 손을 잡고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겠지. 하지만, 그럴만한 시대도 아니다. 그렇게까지 표현하지 않는다.

세대간의 간극은 크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없다.

이유는 아마 나 때문이겠지.


그렇기에 나는 끓고 있는 냄비의 뚜껑을 들어 올린다. 뿜어져 나오는 증기. 뺨을 녹여서, 치즈처럼 눅진눅진하게 만드는 열기.

가볍게 맛보기 국자로 떠서 마다라메 회장에게 건넨다.




"아, 아니... 음..."


"그렇구만... 젊은 사장이랑 그 우마무스메...흠..."




마다라메 회장은 오른손을 턱에 가져다 댄다. 검지를 둥글게 말아, 살짝 각 진 자신의 턱을 받치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청춘이구만?"



뭔 소리야. 이 양반은.

나는 건넨 국자를 되돌리고서, 맛보기용 접시에 담는다. 아직 열기를 머금은 육수. 색은 녹색도 아니고 갈색도 아닌 애매모호.

하지만 내뿜는 온기와 향에서 안정감이 느껴지고 있다. 너무 끓였다. 불을 줄일 타이밍을 놓쳤네.

이건... 다시 만들어야 할지도 모르겠네. 


미묘하게 씁쓸하다.

다시마는 제 때 건져냈다. 특유의 쓴 맛은 없지만, 가츠오부시를 너무 끓였다. 양파가 녹아내리면서 나는 매운맛이 너무 스며들어서 오히려 쓰다.

씁쓸해서, 이래가지고는 간장으로도 중화되지 않을 것 같다. 굳이 따지자면 여기에 마늘을 넣어서, 한국 요리를 해야 할 것 같은 그런 육수다.

소바의 육수라고 하기엔 너무 진하고 씁다.




"아무튼, 잘 알았어. 찾았으니 다행이지 뭐."


"그리고..."



마다라메 회장은 나를 보고서 씨익하고 웃는다.

본 적 있다. 유즈키씨와 이야기할 때의 나를 바라보던 타케와 나스의 표정이다.

어딘가 때려주고 싶은 그런 표정. 미묘하게 웃고 있어서 왠지 기분 나쁜 표정.



"우리 젊은 사장의 사업을 내가 어? 잘 해줄게.  하하하하하!"



마다라메 회장은 영문 모를 웃음과 함께 현관은 나선다.

뭐? 사업? 무슨...?




"사장님! 저 왔어요!"


"으악!"



그리고 지금 막 돌아 온 케르나양에게 부딪혀 휘청.

다행이구만, 이 날씨에 차가운 바닥으로 머리를 부딪히지 않아서.

그저 휘청했다가 아야야, 하고 금새 기운을 차린다. 그 뒤에 하하하하, 하고 웃으며 케르나양의 어깨를 톡톡.

그렇게 멀어진다.

케르나양은 커다래진 녹색 눈동자를 나를 향해 보내며, 손가락으로 지나간 마다라메 회장을 가르킨다.





"그래, 고생했어. 케르나양. 문패 돌리고 들어 와. 옷 갈아입고, 몸 좀 녹이고 보자."



"네?"



시간은 8시 23분.

아직 폐점을 하기엔 이르다.

하지만 폐점이다.


미리 자주 주문하던 곳에는 연락을 해뒀다.

급작스럽지 않다. 급작스러운 일이 방금 전에 여럿 있기는 했지만.

그녀의 에엥? 하는 얼굴을 보니 아무래도 좋게 느껴진다.

아랫입술이 윗입술 위로 올라와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보면 그렇게 느껴진다.

그녀가 돌아와서, 아 나도 집에 돌아온 것 같은 기분.






.

.

.






"뭐야야. 사장님, 저 어제 너무 마셔서 오늘은 집에 일찍 가려고..."


"그래서 일찍 마쳐줬잖아? 자, 해장이요."



나는 바 테이블 앞에서 늘어지는 케르나양 위로 소바 하나를 건넨다.

케르냥은 으에, 하면서 젓가락을 들고서 나를 노려본다.

여럿이 왔다가면서, 도중에 문을 열어 놓은 시간이 꽤 되어서일까. 점 내는 아직 춥다.

아니, 그것때문은 아니다. 케르나양이 점퍼를 벗지 않은 것은.


흰색과 푸른색이 뒤섞인 점퍼. 그 아래의 베이지색 후드 티. 그녀는 곧장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었다.

그런 그녀를 붙잡고, 잠깐만 하고 막아세운 건 나니까.



"...해장은 아침에 했는데요"


"그랬어?"



나는 능청스럽게, 그녀의 말들의 받는다. 케르나양의 출근시간은 아침 10 30분이다. 밑준비 할 게 많은 날을 제외하고서는

그녀는 런치가 시작하기 직전에 와서 배달을 준비한다. 그리고 런치가 끝나고, 배달이 끝나면 디너의 밑준비를 돕는다.


그러니 해장은 당연히 끝 마쳤겠지.



"...? 왜요? 뭔데 그래요?"



나는 한 그릇을 그녀 옆에 내려놓는다.

그릇 안에는 그녀 앞에 있는 소바처럼 일렁이는 김과, 향이 없다.


그저, 차가운 금색의 포장. 어떻게 보면 싸구려 같기도 한 체리색 리본의 선물상자가 하나.



"1년 동안 고생했어. 케르나양."




오늘은 그녀가 일한 지 딱 1년 째 되는 달. 1년이 넘었을 수도 있다.

아닐 수도 있고, 그건 일한 시간과 횟수의 문제고.

그녀는 딱 이 맘 때 만나서, 일했으니까.

그런 거다.




"어...?"



"어, 어....어?"



"어..."




녹색 눈동자가 시시각각 변해 간다.

그리고선, 설탕공예처럼 젖어간다.




"뭐, 그렇게 대단 한 건 아니고... 일 년... 열심히 해줘서 고마워."




목 뒤를 긁으며, 괜히 시선을 돌린다.

처음이다. 같이 일을 한, 그러니까... 1년 넘게 같이 일을 한 다른 사람은.

아버지야, 복권이 당첨되기 전까지 주욱 계속 붙어있었지만.




"...."




"뭐, 뭐뭐뭐...?! 복지 차원에서 당연... 하, 하하죠?!"




케르나양은 자신 앞에서 김을 뿜어내며, 그녀의 앞머리칼을 젖게 만드는 접시를 잠시 내쳐두고서 내가 건넨 그릇을 양 손으로 쥔다.

그러고선 접시 안의 직사각형 선물 상자를 들어올린다. 하아아, 하고 들뜬 표정. 자신도 모르게 커다랗게 벌어진 입. 반짝이는 눈동자.

자연스레 웃음이 나온다. 아, 이래서 어린 애들한테 선물을 주는 거구나, 하고.




"..."




찌릿, 하고 내 표정을 보고서 금새 입은 닫힌다.

그러고서는 우물우물. 지그재그로 변하는게 웃기다.




"여기서 뜯어봐도 돼요?"



"음? 소바가 식기 전이라면?"



나는 허리춤에 손을 대고서, 허리를 세운다.



"또또또, 느긋한 척 한다. 사장님."




찌릿하고, 케르나양이 노려보다가 후훗하고 금방 웃음으로 바뀐다.

내심 두근두근.


케르나양은 식어가는 소바에 쫓기듯이 서둘러 선물상자 뜯는다.

리본의 한쪽만을 당겨 풀고, 풀어진 포장지 안의 것들을 바 저편으로 몰아 넣는다.



"와..."



"어때?"



"와... 스마트 워치... 와..."




그녀의 눈동자는 내 포장지를 벗어난 제품의 상자와 나를 번갈아보며 반짝인다.

근데 어째서인지 나보다 저 선물에 더 간 듯한 느낌이다. 뭐... 그러겠지 보통은.



"이, 이거는... 스트랩인가요?"



선물 포장지 안에서 길다란 세 개의 박스를 꺼내들며 케르나양이 물어본다.



"뭐가 좋을지 몰라서, 일단 종류 있는대로 사긴 했는데... 영수증도 같이 있지?

 그거 들고 가면 원하는 색상으로 바꿔 줄거야."


"이...이렇게나..."


배달은 힘들다. 배달을 하는 와중에도 배달은 들어온다. 한 손에 배달가방을 든 채로는 연락을 확인하기 어렵겠지. 그래서 준비했다.

케르나양은 거기다가 디너의 밑준비까지 돕는다. 런치의 홀 서비스를 할 정도로 테이블이 많지 않기에 가능한 거지만,

그래도, 케르나양과 보낸 일 년은 충분히 즐거웠고. 무엇보다 큰 도움이 되었다.


나 같은 사람과도 같이 있어 준 고마운 여자아이다. 어떤 의미로 메메보다 더 조카처럼 느낀다. 조금 커다란 조카가

우마무스메면 어떤가. 케르나양의 귀가 무슨 마리오의 발처럼 팔랑이고 있다. 조금만 더 가면 소닉처럼 원이 될 것 같은 움직임.



"앞으로도 잘 부탁해. 케르나양."


"...네! 네! 네!"



"그럼, 소바 먹고 같이 가볼까?"



나는 내 몫의 소바를 케르나양 옆에 놓는다.

그런 뒤에 앞치마와 마스크를 벗으려고 하는 찰 나.



"아, 사장님은 후루룹 거리는 소리가 신경 쓰이니까, 이쪽으로 가세요."



소바 그릇을 드르륵 하고 미는 케르나양.








케르나양!!!
















/








"와, 이건 마다라메 회장이 목이 빳빳해질 만 하네."


"우와아하하아...!"



소바를 먹고서 마감을 한 뒤 9시. 나는 모처럼이니 상점가의 행사를 케르나양과 보러 왔다.

직원복지를 하려고 마음 먹었으면, 끝까지 해야지. 그녀가 말한 대로, 지긋이 지켜 볼 기회는 나도 없으니까.

케르나양은 케르나양대로 배달한다고 바쁘니 이 인파를 벗어나서 빙 둘러 갈 것이고, 나도 가게 안에서 연일 바쁘니까.


아마, 오늘이 아니면 우리는 이 행사를 느긋하게 볼 시간이 없을테니까.

그건 그렇고, 꽤 공들였네. 마다라메 회장.


상점가 중앙에 세워진 무대. 그 주변을 장식하는 불빛들. 일루미네이션이라고 하기엔 많이 급이 떨어지지만, 그래도 천장까지 수놓은 불 빛들.

장갑 없이는 버티기 어려운 날씨에도, 이렇게 무대 위에 오른 사람들. 그걸 에워싼 인파.



아, 그렇구나. 이건 우마돌 때문에 온 사람들이구나.

하고 인파 속 사람들을 보고 깨닫는다.



우마무스메. 별다른 세계의 이름을 받고서 그 운명을 살아가고, 때로는 저항하는 존재.

그 레이스의 끝에, 레이스를 지켜 봐 준 사람들을 위해 춤추고 노래하는 위닝라이브.

그 라이브를 떼와서 활동하는 아이돌들.


현역 우마무스메인데도 활동하는 사람도 있겠지. 하지만 대부분이 현역에서 내려오거나

혹은 그 우마무스메의 위닝라이브를 돕던 사람들이다. 



부차적인 요소라고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레이스의 부차적인 요소라고.

하지만, 분명히 중요하고. 그렇기에 이렇게...



떨어진 사람들이 존재한다. 연습했고, 연습했지만, 위닝 라이브에 서지 못한 사람들.

이기지 못한 사람들. 이겼을 때의 피날레를 위해 연습했지만 정작 그 곳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라이브.


알고 있으니까, 서글프다던가 그런게 아니라. 실제로 너무 잘 해서.

지금 여기서는 춤추고 노래하며 살아가는 그 모든 것들이. 무대 위의 모든 것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지른다.


힘 내라.

즐거워.

힘 내라.

즐거워.




나도 안다.

익숙한 넘버가 흐른다.

make a debut! 캐롤 분위기로 편곡한 음악이 흐른다.



울려라 팡파레, 닿아라 골까지...!


추억이 새록새록 터져나온다. 우마무스메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신마전. 그 끝을 장식하는 곡.

댄스와 노래, 음정을 가르칠 수 있도록 연수원에서...!




"..."


"케르나양? 왜?"


"..."




케르나양의 시선이 멈춘다.

그건 센터에 선 한 우마무스메.


꿈의 끝까지 하고, 손짓하며 뒤로 물러서는 한 우마무스메.

금빛 머리칼과, 살짝 짙어진 갈색 귀를 가진, 우마무스메.

그녀를 보고서 케르나양은 굳어버린다.





"아오..."



















===================================

케르나 대추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