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시대 전쟁은 명분으로 시작해서 명분으로 끝남.

 

존나 쌘 백작이 하꼬 남작 영지가 먹고 싶어서 병사들을 데리고 남작령을 점령해버린다?

 

말도 안되는 소리임.

 

아무리 군사력 차이가 나도 백작도 명분이 없으면 남작을 공격할 수 없음.

 

왜냐하면 첫째로 중세 작위는 왕이 세운 지위라 이건 왕을 무시하는 처사고 둘째로 명예롭지 못함.

 

 

근데 사실 명분 만들기는 좀 쉬움.

 

 

과거 문서들 뒤져서 

 

응? 우리 300년 전 조상님이 이 영지를 잠시 소유했던 적이 있네?

 

바로 그 문서 들이밀고 명분으로 쓰는거임.

 

 

물론 좀 야비하다 위험한 놈이다 이런 식으로 평판 대창 까이겠지만 정 그 땅이 쳐먹고 싶으면 그런 식으로도 명분을 만들 수는 있었음.

 

 

그래서 명분은 구했고 이제 전쟁을 일으켜야 함.

 

 

 

전쟁하면 보통 공성전을 생각하는데 공성전은 왠만해선 없었음.

 

중세 귀족들은 전쟁을 선포하고나서 상대방한테 편지나 전령을 보내서 

 

"며칠 몇시 몇분에 어디 평원에서 모여서 술 한잔 같이 나누고 다음 날에 싸웁시다."

 

하고 싸움.

 

그렇게 편지를 받은 상대편 귀족은 ㅇㅋ하고 그 평원으로 감.

 

 

 

평원에 도착해서 진을 치든 막사를 세우든 그게 마무리 될 때까지 서로 기다림.

 

그리고 중간에 막사 하나 더 쳐서 거기서 영주끼리 무장 해제하고 얘기 좀 나누고 막사 철거하고 돌아가서 다음 날 아침부터 전투 시작.

 

또는 전투 말고 서로 대전사 한 명 내세워서 1대1 결투로 결정하기로 하는데 이 경우는 보통 영지 소유권 분쟁이 아닌 가벼운 다툼이나 대전사에 엄청난 자신이 있는 강한 영주가 약한 영주랑 싸울 때 병력 소비 없이 땅을 뺏기 위해서 썼음.

 

 

그렇게 전투가 시작됨.

 

그러다 전투 중에 해가 지기 시작하면 서로 휘두르던 칼 집어넣고 돌아감.

 

추격 이런 거 없고 해 지고 북소리 들리면 뒤도 안돌아보고 돌아감.

 

해가 지면 앞이 안보여서 적아 구분이 안되기 때문.

 

그렇게 돌아가면 서로 전령 보내서 술 노나마시고 뒤집어져서 잠.

 

그리고 다음 날 해 뜨면 또 싸움.

 

 

보통 좌우 양익이랑 해서 우익에 쌘 부대를 배치하고 좌익에 수비용 부대를 배치해서 서로 먼저 상대의 좌익을 무너뜨리는 쪽이 왠만해선 승리를 잡았음.

 

왜냐면 승리한 우익의 군대로 적 본진을 쌈싸먹어 버릴 수 있기 때문.

 

그래서 좌익이 무너지고 사상자가 30%에 달하면 패전. 도주하기 시작.

 

 

 

그리고 사상자는 많아도 사망자는 생각보다 적었는데 왜냐하면 몸값 받아서 팔거나 몸값 지불 못하는 애들 노예로 팔아야 하기 때문.

 

전쟁도 다 이득보자고 하는거라 이득 극대화하려고 왠만해선 생포함.

 

 

 

공성전의 경우.

 

 

 

상대 영주가 언제 어디로 나와서 붙자고 했는데 성 안에서 안나오는 애들이 가끔 있음.

 

군사력 차이가 너무 나서 성에 틀어박혀서 안나오는 것.

 

사실 이 때는 방법이 없음.

 

공성 병기도 제대로 없던 시절에 일개 영주 개인이 공성 병기를 소유하고 있을리가 없기 때문.

 

그래서 성밖에 진치고 나와라!나와라! 시위하다가 돌아가기 일쑤였음.

 

웃긴게 공성은 잘 안하면서 대비는 또 잘되있어서 영주들이 소중한 일꾼인 병사들을 공성으로 소모시키기 싫어했음.

 

그냥 포위하고 몇 달이든 진치면서 상대방이 제풀에 지쳐 나오게 할 수 밖에 없는데 이러면 또 문제가, 또 다른 명분 얻은 영주가 자기 영지로 쳐들어 올 수도 있고 또 영지의 인력으로 쓰던 병사들이 차출되어 온거기 때문에 남자들이 무더기로 빠진 영지가 제대로 돌아갈리도 없었고 또 도적들의 위협에 노출되면서 치안도 나빠짐.

 

 

 

물론 성에 틀어박힌 영주도 엄청난 불명예를 얻지만 땅 뺏기는 것보다야 나으니 그냥 배째고 누워있는 것.

 

 

병력의 경우

 

 

 

일단 영지 하나에 수천명 1만명 이런 식으로 절대 못나옴.

 

아니 애초에 영지민이 1만명이 안되는 곳도 수두룩 빽빽.

 

 

고로 내가 백작의 봉신 남작이다? 상비군 20명도 많다. 

 

병사가 개좆밥처럼 보여도 고급 인력이었음.

 

그리고 병사는 자기 무장을 자기가 알아서 챙겨야 했기에 돈이 많이 들었고 그로 인해 영주도 병사에게 봉급을 많이 줘야 했음.

 

나머지는 전쟁 없을 때 밭갈다가 전쟁 나면 그 때 병사로 둔갑해서 싸우는 병사들이었음.

 

그게 아니면 전쟁이 났을 때 모집하는 징집병이 있는데 사실 농민들은 영주가 바뀌든 말든 자기네 입장에서 달라지는게 1도 없었기에 징집해도 숲으로 도망가던지 하면서 알아서 내뺌.

 

또는 전쟁터에서 성공하려고 스스로 징병되는 마을 청년도 있었다.

 

 

그리고 백작 아래 남작은 봉역의 의무로 병력 일부를 백작에게 지원하고 백작이 전쟁이 났을시 자기 병력을 이끌고 자기가 서약했던 기간 동안 싸워야 했음.

 

그 때 드는 유지비는 전부 남작의 몫.

 

보통 1년에 40일이라고 하고 그 기간 지나야 백작이 유지비를 지원해주고 보상금도 줌.

 

다만 이게 그렇게 나쁜것만은 아닌게, 전쟁에서 승리했을시 전리품이 어마어마했기 때문.

 

 

일단 백작 봉신 남작은 좆밥이 맞다.

 

 

사실 평시에는 병사 20명도 많고, 병사 7명이랑 기사 1~2명으로 성 지키고 순찰하고 다하는 블랙 기업이던 놈들도 많았다.

 

실제로 자기 아들들 전부 기사로 세워서 기사 많은 척 하고 다니던 허세 하꼬 망생이도 있었음.

 

 

그럼 백작은?

 

 

일단 기본적으로 적게는 자기 밑 남작이 보유하고 있는 병력 중 10~20퍼를 지원 받고 나쁜 놈은 50퍼나 데려가는 새끼도 있었음.

 

고로 백작의 병력은 천차만별이지만 대충 500명 정도라 보면 된다.

 

존나 적어보이는데 500명도 많은거임.

영혼까지 끌어모으면 마의 1천명을 뚫는 애들도 있었는데 보통 변경백이거나 블랙 기업.


출처: 중세 전투 양상 Tip - 웹소설 연재 갤러리 (dcinsi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