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로 작업하였습니다. 검수는 하고있지만 놓친 오타가 있을 수도 있으니 찾으신다면 알려주세요.〕


◀ 이전화


광장에 빛이 하나 떨어져내리더니 한 소녀가 걸어나왔다. 찰랑거리는 금발에 갈색눈동자를 지닌 소녀는 연신 주변을 둘러보며 신기하다는 듯한 기함을 토해냈다. 그런 그녀의 앞으로 밝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가는 사내가 있었다. 투박하고 낡은 천 옷을 입은 사내는 소녀에게 깍듯이 대했다.

"새로운 이방인이시군요. 반갑습니다. 저는 이 '항구마을 바르바'의 안내자를 하고 있는 '발도'라고 합니다."

"앗, 네. 반갑습니다. '유리나'에요."

"유리나 님이시군요. 괜찮으시다면 이 마을의 안내를 좀 해드려도 되겠습니까?"

발도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유리나는 자신의 앞에 떠오른 퀘스트 창을 바라보며 생각에 빠졌다. 처음에 시작하면 안내해주겠다는 퀘스트는 받는 것이 좋다는 친구의 조언을 떠올리며 수락을 눌렀다.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그 뒤 발도는 유리나를 데리고 마을 이곳저곳을 다니며 소개해주었다. 바르바의 명소라던가 특산물시장, 모험에 도움이 되는 도구잡화점, 대장간 등의 상점들을 알려주었다. 항구에 다다라서는 매일 몇 척의 배가 거래를 하러 들어오는지까지도 말해주면서 뿌듯한 미소를 짓고있었다. 그런 중에 유리나의 눈에 들어온 한 어린아이가 있었다. 대략 11살 정도나 되어보이는 아이가 항구에 멀뚱히 서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멜로디'군요. 뭐어, 매일 저기 서서 바다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기억을 잃은 모양이던데... 매일 저기 서서 누군가를 기다린다던가 하던가요. 사실 이상한 말만 해서, 이 마을에 있는 사람들도 잘 모릅니다."

「항구마을 바르바에 있는 의문의 소녀, 멜로디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유리나는 자신의 눈 앞에 떠오른 창을 바라보았다. 이런 식으로 정보를 주는 것들은 대부분 퀘스트와 이어진다는 친구의 말이 있었던 것 같았다. 유리나는 창을 닫고는 발도를 바라보았다.

"...좀 더 큰 도시에 가면 분명 해군이 주둔하게 되면서 좀 더 안전해지겠지만요. 언젠가는 이 마을도 도시로 성장하게 될 겁니다. 하하."

앞에 무언가를 말하던 모양이었지만 메세지를 확인하는 동안 무언가를 놓쳤지만 딱히 중요한 정보는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유리나는 기대된다며 대충 대꾸했다. 발도는 몸을 돌려 유리나를 바라보며 마을의 안내는 다 끝났다고 말했다.

"여기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린다는 의미로 이걸 드리겠습니다."

발도가 내민것은 약간의 돈이 들어간 돈주머니와 돌돌 말려있는 양피지종이였다. 아이템을 확인한 유리나는 인사를 하고는 멀어져가는 발도를 배웅한 뒤에 인벤토리를 열어 양피지를 확인했다.

「발도의 소개장(일반)
새로운 이방인을 위해 발도가 적어준 소개장. 항구마을 바르바의 시설에서 사용하면 주민들로부터 조금 특별한 의뢰를 받을 수도 있다.」

유리나는 양피지를 인벤토리에 다시 넣어놓은 뒤에 메뉴를 만지작거렸다. 전화기능을 발견한 그녀는 곧 등록되어 있는 연락처 중 하나를 선택했다. 플레이어의 계정과 휴대폰을 연동시켜 게임 중에 전화를 걸거나 걸려온 전화를 받을 수 있도록 이러한 기능을 넣어놨다는 모양이었다. 곧 전화 연결음이 두어번 정도 이어지고 상대방이 전화를 받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 세연아. 접속했어? 어디야?]

"응. 지금 막 마을 안내 끝났어. 그러니까 항구마을.. 바르바랬어."

[오케이. 금방 갈게. 광장에서 기다려. 아니면 소개장 받았지? 잡화도구점에 가서 소개장 보여줘. 그러면 거의 왠만해선 지도를 주는 퀘스트가 뜰 거야. 그거라도 하고 있어.]

"응. 그럼 퀘스트 하고 있을게."

곧 보자는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은 유리나는 기억을 더듬으며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그리 큰 마을은 아니었기에 잡화도구점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녹색지붕에 2층짜리의 목조건물에는 '클라로이 잡화상점'이라는 간판이 걸려있었다. 창문 안쪽으로 보이는 따뜻한 느낌의 내부와 선반과 책상 위에 온갖 도구들이 늘어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유리나는 잠깐 창문 너머로 구경을 하고는 문을 열고 잡화도구점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와~ 창문 밖에서 보고 있길래 언제 들어오나 기다리던 참이야~"

부드러운 여성의 목소리였다.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었다. 약간 태운 피부와 붉은 머리카락이 어우러져 한껏 매력이 넘치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밝게 웃으며 유리나를 반겼다.

"못 보던 얼굴이네. 바르바에는 처음이야?"

"앗. 네. 유리나라고 합니다. 그, 이거요."

유리나는 인벤토리에서 소개장을 꺼내 여성에게 건넸다. 여성은 소개장을 읽은 뒤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양피지를 다시 유리나에게 돌려주었다.

"그렇구나. 알겠어. 내 이름은 '클라리스'야. 새로운 이방인이라면 아직 마법지도는 없지? 하나 만들어주고는 싶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마법부여가 되어맀는 양피지가 다 떨어져서 말이야. 혹시 좀 구해오지 않을래?"

「잡화도구점 클라리스의 부탁(초보자퀘스트)
잡화도구점의 클라리스는 당신을 좋게 보고 도와주고 싶어하지만 필요한 재료가 다 떨어진 듯 하다. 그녀를 도와주면 당신을 위해 마법지도를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성공 시 클라리스로부터 마법지도 획득. 클라리스와의 호감도 소폭 상승.
실패 시 패널티 없음.
거절 시 클라리스와의 관계가 '어색함'으로 변경.」

유리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퀘스트를 받아들였다. 클라리스느 가볍게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고마워! 내 남편인 '로이드'가 가죽을 만지거든. 그이에게 가서 마법부여된 양피지를 받아올래? 지금쯤이면 작업장에 있을거야. 여기 약도를 줄게."

"네. 다녀올게요."

유리나는 약도를 받아들고는 위치를 확인했다. 발도에게서 안내받았던 중앙광장의 정육점 근처에 있는 모양이었다.

"조심히 갔다와~"

클라리스의 밝은 분위기의 배웅을 받으며 유리나는 가게에서 나갔다.




로이드의 작업장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정육점을 찾기만 하면 그 근처에서 금방 찾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자그마한 목조 건물의 주위에 널려있는 가죽들만 봐도 그곳에서 가죽을 취급하는 것을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유리나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아, 어서오세요."

한창 어느 동물의 자그마한 가죽을 손질하던 사내가 유리나를 보고는 인사했다. 잠시만 기다려달라 말한 그는 하던 작업을 솜씨좋게 재빠르게 마무리하고는 손을 씻은 뒤에 유리나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이시죠?"

"아, 그, 클라리스 씨의 부탁으로 왔는데요."

"아내가 보냈군요. 마법처리가 된 양피지였죠?"

부부라서 그런지 이미 알고있는 모양이었다. 로이드는 솜씨좋게 모아둔 양피지들을 곱게 접어서 유리나에게 건넸다.

"네, 여깄습니다. 이미 아내에게 들으셨겠지만 전 로이드라고 합니다."

"유리나에요."

"앞으로도 저희 가게를 잘 부탁드려요."

분명 애용해달라는 말이리라. 애초에 이 마을에 잡화도구점은 하나뿐이니까 애용할 수 밖에 없겠지만 말이다.

유리나는 자기야말로 잘 부탁한다며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인벤토리에 양피지를 넣었다. 로이드의 작업장에서 나오자마자 유리나는 자신에게 걸려온 전화를 확인했다. 좀 전에 연락했던 친구, 현우였다.

[지금 바르바 광장에 도착했어. 어디야?]

"광장 근처 정육점 쪽이야."

[오케이. 합류할게.]

유리나는 조금 이동해서 정육점 근처에 서서 친구를 기다렸다. 곧 간단한 가죽갑옷에 장검을 허리에 찬 남자아이가 그녀에게 다가오며 손을 흔들었다.

"여. 드디어 만났네. 여기서는 '카이'라고 부르면 돼."

"응. 유리나야."

"퀘스트는?"

"이제 양피지만 전달해주면 끝나."

"그럼 얼른 보고하러 가자."

유리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에 앞장섰다. 카이는 그 뒤를 따라오며 마을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게임을 시작할 때 같은 국가에서 시작하더라도 시작하는 마을은 랜덤으로 걸리기에 카이도 바르바에 오는 것은 처음이라는 모양이었다.

"괜찮은 마을이네. 항구라는 점에서도 내가 시작한 마을보다 활기차."

"그렇구나.. 네가 시작한 마을은 어디였어?"

"산 속에 틀어박힌 사냥꾼들의 마을."

"...힘들었겠네."

"뭐, 그랬지. 퀘스트라곤 전부 마을 바깥의 야생동물을 잡아오라는 것들 뿐이었으니까. 전투스킬과 경험치는 빨리 올랐어. 아, 그러고보니 너 직업은 어떻게 할 거야?"

"음.. 활 같은 거 쏴보고 싶긴한데.."

"궁수? 뭐 게임 처음 열렸을 땐 사람들이 스텟을 잘못 찍어서 망하긴 했지만 지금은 정보도 많이 풀려서 꽤 괜찮아. 그러면 일단 레벨업하고 스텟 배분할 때 나한테 말해줘. 처음에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려줄게."

"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클라리스가 있는 잡화도구점에 도착했다. 유리나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클라리스가 반겼다.

"어머, 유리나. 어서와. 길은 안 헤맸나보네."

"네. 덕분에요. 여기 양피지 받아왔어요."

유리나가 건넨 양피지를 하나하나 확인하던 클라리스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완벽해. 수고했어. 그럼 바로 마법지도를 만들어 줄 테니까."

클라리스는 그렇게 말하곤 작은 칼을 들고는 양피지를 적당한 크기로 잘랐다. 유리나는 A4용지보다 조금 더 큰 정사각형에 가까운 형태로 자른뒤에 그 위에 손을 올려놓은 뒤 눈을 감고는 주문을 읊기 시작한 클라리스를 신기하다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길을 밝히는 신의 인도. 이 세계를 기록하며 기억하라. 지도기록-맵핑-"

양피지가 살짝 빛을 발하더니 곧 사그러들었다. 클라리스는 그것을 확인한 뒤에 이제는 지도가 되어버린 양피지를 유리나에게 건넸다.

"자, 여기있어. 그건 그렇고, 젊다는 건 참 좋구나~"

"네?"

"부탁하고 1시간도 안 됐는데 벌써 남자친구까지 데리고오고~"

우후후, 하는 웃음과 함께 클라리스가 이죽거렸다. 유리나는 손을 내저으며 부정했다.

"아, 아니에요. 그, 그냥 친구에요.."

유리나의 변명을 듣고는 클라리스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 고생이 많겠네. 이런 세계에서 다시 만나는 것도. 듣기로는, 너희들의 고향은 여기보다 훨씬 살기 좋은 곳이라며?"

"그..렇죠?"

몬스터나 야생동물이 득시글거리는 이 곳보다 치안이나 생활적인 면에서의 편의성은 더 좋다. 하지만 분명 게임을 시작한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이 세계에도 이 세계만의 멋이 있다는 것을 유리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치만 경치라던가, 자연은 여기가 더 예쁜 것 같아요."

유리나는 거리낌없이 느낀 바를 말했다. 클라리스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동조했다.

"누군가한테서 옛날에 그런 소리를 들은 것 같아. 이방인들은 대부분 느끼는 바가 똑같구나?"

"사실인걸요."

클라리스는 조용히 가게를 둘러보던 카이를 불렀다.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탓에 영문도 모른 채 클라리스와 유리나에게 다가온 카이에게 클라리스가 선언했다.

"어쨌든 당신이 이방인으로서의 경험은 좀 더 많은 것 같으니 유리나를 잘 부탁해, 남자친구 씨. 만약에 나중에라도 유리나가 울면서 하소연이라도 하러 오면 가만 안 둘테니 각오하라고."

남자친구가 아니라며 펄쩍 뛰는 유리나와 괜히 얼굴을 붉히고 쑥스러워하는 카이를 바라보며 클라리스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듣고있어요? 그러니까 남자친구 아니라니까요오-"

잡화도구점에서는 한 소녀의 처절한 절규만 울려퍼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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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고 나가니 숲이 펼쳐져 있었다. 노인은 숲 속에서 생활했던 것일까? 나는 천천히 숲 안쪽으로 이끌리듯이 들어갔다. 아직 날은 밝았기에 시야도 괜찮았고, 무엇보다 이대로 가도 괜찮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얼마간을 걷자, 커다란 공터에 모여있는 무리가 있었다. 순백색의 아름다운 갑주를 입고 있는 사내, 그 옆에 꼭 달라붙어서 기도를 올리는 여사제, 몸에 딱 달라붙는 검은색 옷을 입어 몸매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회색머리카락의 여성, 자신의 무기를 손질하는 사내들이 셋. 모닥불 근처에 앉아 검집에 들어가 있는 2자루의 도를 꼭 끌어안은 채 앉아있는 사내. 그 외에도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몇몇. 그 중에 회색머리카락의 여성이 날 발견하고는 입을 열었다.

"마지막 녀석이 나왔어."

"...오래걸렸군."

순백색의 갑주가 일어서며 말했다. 회색머리카락의 여성이 나에게 다가오며 대뜸 물었다.

"이름은?"

"저는... 바이올렛..."

"그거 말고. 진짜 이름."

진짜 이름? 그게 뭔데? 난 바이올렛이라는 이름을 받았다고.

"저쪽에서 쓰던 원래 이름이 있을 거 아니야."

"...죄송해요... 잘 모르겠어요..."

회색머리의 여성이 너무 강압적으로 나와 순식간에 위축되고 말았다. 내 모습을 바라보던 순백색 갑주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혹시, 기억상실인가? 그렇다면 곤란한데. 아무 것도 기억나는 게 없나?"

"...죄송해요, 그 노인과 만나기 전까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요."

"...그래도 여기있다는 것을보면 그 버스사고에 연관된 건 확실해 보이는데. 추측밖에 할 수가 없군. 혹시라도 나중에 무언가 기억이 난다면 꼭 말해주면 좋겠군."

"...버스...사고..?"

"음. 그쪽이 일어나기 전까지 시간이 꽤 많았기에 여기있는 12명끼리 얘기를 했었지. 서로 알아갈 겸 말이야. 그리고 모두의 공통점은 여기로 오기 전에 타고 있던 버스가 전복되는 사고를 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네. 게다가 모두가 같은 버스를 탔던 모양이야."

순백색 갑주의 사내가 숨을 한 번 고른 뒤에 말을 이었다.

"즉, 우리는 현재 버스사고를 당함과 동시에 이세계로 전이했다는, 그런 소설같은 상황에 처해있다는 상황이야. 하지만 이렇게 말해도 그쪽에겐 와닿지가 않겠군.. 일단, 나는 편하게 '원'이라고 불러주게. 부끄럽게도 내가 [용사]라는 모양이야."

그렇게 우리는 서로 인사를 하며 통성명을 했다. 아무래도 나는 용사파티라는 것의 한 사람으로서 뽑힌 모양이었다. 그 외에도 그들이 알아낸 사실들을 들으며 나는 혼란스러운 머리를 정리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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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지도를 사용하니 양피지는 빛을 흩뿌리며 사라졌지만 시야의 오른쪽 위에 작게 미니맵이 표시되었다. 새로운 명령어로 월드맵이 추가되었다는 메세지도 떠올랐다. 시험삼아 월드맵을 불러보니 커다란 화면에 안개가 낀 것처럼 뿌연 화면이 떠올랐다. 단지 항구마을 바르바와 그 주변의 모습이 조금 밝혀져있을 뿐이었다.

"월드맵은 게임하면서 탐험하는 지역이 늘어날 수록 정보가 많이 쌓이게 될거야. 바르바를 한 번 눌러보면 이 마을의 전체모습이 나올걸?"

카이의 말대로 해보니 바르바의 모습이 나타났다. 발도에게 안내받았던 시설들의 위치정보도 함께 기록되어 있었다. 꽤나 유용한 기능이라 생각하며 유리나는 월드맵을 닫았다.

"그러고보니 항구마을에 유명한 NPC가 하나 있다던데."

"그래? 무슨 퀘스트를 주길래?"

"그냥 명성퀘스트야. 꼬맹이에 대해서 물어보고 알아보는 정도. 수소문만 하고 다니면 알아서 깨지고 주민들과 통성명을 하는 정도야."

카이의 꼬맹이라는 말에 유리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거 혹시, 멜로디라는 아이 아니야?"

"어, 그러네. 어떻게 알아?"

마침 검색을 하던 참이었는지 카이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유리나는 카이에게 마을 안내를 받을 때 선착장 근처에서 봤다는 설명을 했다. 위치까지 알고 있으니 한 번 해보는게 어떻겠냐는 말을 카이가 꺼냄과 동시에 여관주인이 음식을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곰처럼 생긴 여관주인의 눈이 유리나와 카이를 향해 있었다.

"당신들, 이방인이지? 멜로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던데."

여관주인이 먼저 말을 걸어올 줄은 몰랐는지, 카이가 당황하며 대답했다.

"앗, 네. 여기엔 처음이라서요. 멜로디라는 아이가 있다는 소문만 들어서 자세한 건 모릅니다."

"...뭐 괜찮겠지. 그 아이는 내가 맡아서 키우고 있었는데, 몸이 건강해진 이후로는 통 돌아오질 않고 선착장에만 서 있단 말이야. 배를 곯고 있을테니, 나중에 이 도시락이라도 전해주면 고맙겠군."

기왕이면 집에 데려와주면 더 좋고, 라는 말을 덧붙이며 여관주인은 도시락이 든 보따리만 남겨놓은 채 일하러 돌아가버렸다. 거의 강제적으로 수행하게 되는 퀘스트는 카이도 있다는 말만 들었지, 실제로 겪는 경우는 처음이었기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가져다주자. 신경 쓰이기는 했어."

유리나가 작게 웃으며 말하자 카이는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저녁밥을 먹고 도시락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일정을 정하고는 둘은 식사를 시작했다. 외형상으론 뼈째로 들고 고기를 뜯는 갈비찜 요리였는데 과연 어느 고기인지는 알 수 없었다. 분명 무언가 동물형 몬스터의 고기이리라는 것만을 추측하며 카이는 고기를 뜯었다. 생각보다 담백한 맛에 놀랐지만 이내 식사를 즐기게 되었다.

"...맛있었어."

식사를 다 마친 뒤에 유리나가 의자에서 녹아내린 듯한 자세로 말했다. 게임 세계에서 이렇게 맛있는 식사를 하게 될 줄은 몰랐던 탓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먹더라도 현실세계에서 포만감을 느낄 수는 없다니 뭔가 억울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치. 여기서도 꽤 현실적인 맛이 나니까 말이야. 캐릭터의 공복도가 없었다면 절대 알아차리지 못할 사실이었을 거야."

"응. 자, 그럼."

유리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도시락보따리를 챙기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이도 그녀를 따라 일어서 여관을 나섰다. 퀘스트를 하러 갈 시간이었다.




밤바다는 조용하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하늘에 수 놓인 별하늘에, 그 빛을 반사하는 바다의 모습은 어딘가 몽환적으로도 보였다. 마치 끝없이 밤하늘이 펼쳐져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하고 소녀는 생각한다.

나는 절대 겉모습에 속지 않아.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녀석은 힘을 키우고 있을거야.

작은 두 손은 주먹을 꼭 쥔 채로 눈은 해수면을 응시한다. 무언가 이변이라도 일어난다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도록. 처음엔 그렇게 몇 분이고, 몇 시간이고 서 있을 뿐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걱정해 말을 걸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몇 주고, 몇 달이고 계속되자 이제는 마을 사람들도 포기하고 오는 것을 그만두었다. 이제 자신에게 오는 것은 자신들을 이방인이라 부르는 도움안되는 사람들 뿐. 그들에게 이 마을에 위험이 닥칠 것이란 경고를 해봤지만 그들 역시 어린이의 상상이라며 진지하게 듣지 않았다.

그러니 자신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한다. 이 평화에 찌들어버린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선.

그렇게 다짐하며 다시 눈을 부릅 뜨며 밤바다를 감시하는 찰나에, 자신에게 다가오는 기척을 느꼈다.

"안녕. 네가 멜로디지?"

"밥 가져왔다."

부드러운 목소리와 조금 무뚝뚝한 목소리. 여자와 남자의 것이었다. 보나마나 이방인이리라. 이런 젊은 커플이 이 마을에 있는 것은 본 적이 없었다. ...잘 생각해보니 맨날 여기에만 있으니 본 적이 없는 것은 당연한 거였다.

"...밥? 아저씨가 보낸거야?"

"응. 걱정 많이 하시던데. 집에 돌아오라고 말이야."

마침 배가 고프긴 했던 멜로디였에 여자가 들고있는 보따리를 받아서 풀고는 그 안에 있는 내용물을 그 자리에 앉아서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눈은 밤바다를 향해 있었다. 철저한 감시였다.

"거기엔 못 가. 난 해야만 하는 일이 있어."

"그게 뭔데?"

"...이 마을을 지키는 거."

멜로디는 한 순간 진실을 말하더라도 이 이방인들이 믿어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진실을 말하기로 했다. 어찌되었든 중요한 것은 진실을 전하는 것이었으니까.

"마을을 지키는 일을 하는 거야? 멜로디는 장하네."

"...무엇으로부터 지킨다는 거지? 아무 것도 없는 바다에서 무언가가 온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

무뜍뚝한 전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역시 믿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멜로디는 음식을 꾸역꾸역 입에 밀어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보니 이렇게까지 대꾸해주는 이방인은 이 사람들이 처음일지도 모른다.

"......맞아. 분명 미끌미끌하고 다리가 많은 기분나쁜 녀석이었어. 크..크리..크라..크로..뭐, 하여튼 그런 느낌의 이름."

"...크라켄?"

잠시 생각하던 전사가 입을 열었다. 맞다. 그런 이름이었다.

"맞아. 알고있어?"

그제서야 멜로디의 시선이 바다가 아닌 곳으로 향했다. 어쩌면 자신을 믿어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감과 함께.

"...알고는 있는데, 실존하는 지는 모르겠다. 그게 여기로 올 거라고? 내가 알기로 크라켄은 바다 한 가운데에 있는 경우가 많은데."

"먹을 게 부족해지면 육지를 공격하기도 해. 그런 사례는 없는 것도 아니잖아."

하기야 영화같은데서 보면 도시를 습격하는 모습도 나오긴 했지만... 하고 중얼거리는 전사를 뒤로 하고 멜로디는 다시 시선을 바다에 고정시켰다.

"그런 이유로 나는 여길 지켜봐야해. 그 녀석은 아직 안 죽었을 거야."

"마치 죽어가는 모습을 직접 본 적이 있는 것처럼 말하네."

"당연하지. 내가 무찔렀었으니까. 그 탓에 한 번 죽었었고. 그대로 끝인 줄 알았는데 어째서인지 어려진 채로 눈을 떴어."

멜로디의 말에 이방인들은 말이 없었다. 역시, 못 믿는구나. 멜로디는 거의 포기한 채 도시락을 마저 먹었다.

"그러니까, 네가 크라켄을 무찔렀고 한 번 죽었었다. 이 말이지?"

"맞아. 못 믿겠지?"

"당연히 못 믿지. 유리나, 가자. 더 이상은 꼬맹이의 꿈 이야기에 어울려줄 필요는 없어."

"어어? 그치만.. 그리고 그렇게 심한 말 하면 안 돼. 아직 아이니까."

"단순한 명성퀘스트는 명성퀘스트인 이유가 있는 거야. 퀘스트는 이걸로 끝. 돌아가자."

전사가 여성의 팔을 잡은 채 가버렸다. 여성은 끌려가면서도 멜로디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저기. 또 올게. 음식 더 가지고 올 수 있으면 가지고 올테니까. 경비 힘내."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적막을 깨는 것은 오로지 밤바다의 파도소리 뿐이었다. 그래도, 한 명 정도는 자신의 말을 믿어주는 척이라도 하는구나. 멜로디는 그런 느긋한 생각을 하며 감시를 계속 했다.




"그렇게까지 말 안해도 됐을텐데."

"어차피 이제 다신 안 볼 NPC인데 뭐. 퀘스트가 끝났으면 볼 일 없는 거지."

"그래도 그건 좀.."

"어차피 게임이야. 너도 여기가 어쩌면 진짜 다른 세계일거라고, 그렇게 믿는 건 아니지? 잘 구분해야해. 현실과 혼동하기 시작하면 트라우마가 되 버릴 사건들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카이의 당부에 유리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그의 말대로 자신은 여기를 또 하나의 세계로서 인식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분명히 게임이란 것은 알고 있지만, 사람들의 활기나 분위기, 그리고 이 세계의 자연이 가져다주는 느낌들이 도저히 가상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응... 노력...해볼게."

카이는 한숨을 쉬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뭐, 네 그런 상냥한 점이 정말 좋기는 한데."

"...응? 뭐라고 했어"

"아니. 아무것도."

카이는 그렇게 말하며 여관 문을 열었다. 여관주인의 시선이 카이와 유리나에게 향했다가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카이는 계단을 올라가며 유리나에게 말했다.

"그럼 난 먼저 가서 좀 쉬고 올테니까. 너도 좀 쉬던가 해. 저녁 먹고 와도 좋고. 어차피 앞으로 2시간은 심야시간이라 마을 밖으로도 못 나가니까."

"응. 알았어. 좀 있다 봐."

카이는 그렇게 말하며 올라갔다. YOD의 시간은 현실의 3배 빠른 속도로 흘러간다. 게임시간으로 자정부터 6시까지는 심야시간으로 지정되며, 몬스터들의 능력치가 상승하는 시간대였다. 그 탓에 마을 위병들은 이 시간에 밖에 나가는 것은 위험하다며 마을에서 나가는 것을 막고 있었다.

친구창에서 카이의 이름이 회색으로 바뀌며 로그아웃이 된 것을 확인하고는 유리나는 여관주인에게 다가갔다.

"무슨 볼일인가?"

"멜로디에 대해서 더 알려주세요."

"...알아서 뭐하게?"

"그냥, 내버려둘 수 없는 거 같아서요."

"...뭐, 나야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지. 뭐 좋아. 들려주도록 하지."

그렇게 말한 여관주인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유리나의 시야가 뿌옇게 바뀌며 여관주인의 말에 따라 영상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내가 그 아이를 만난 것은 반년 전이었지. 요리에 쓸 생선을 사기 위해 선착장 근처 어시장에 갔는데, 그 때 파도에 밀려서 해안가에 쓰러져 있었지.

눈에 띄는 외상은 없었어. 강간을 당했다는 흔적도 없었고. 정말로 바다에서 표류해서 이 곳에 도착했다는 느낌이었지. 다른 사람들은 가족도 있고, 일도 있었기 때문에 여인숙을 하고있는 내가 어쩌다보니 떠맡게 된 거야. 뭐, 아이가 딱하기도 했으니 나도 반대하진 않았지.

이곳 방에 재운 뒤, 일과 간호를 번갈아가면서 했지. 낮 시간대에는 그나마 손님이 적으니 간호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했어.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서야 아이가 눈을 떴지. 지금도 그 눈빛은 잊을 수가 없어. 그건 저 나이의 꼬마아이가 보일 수 있는 눈이 아니었어. 마치 한 마리의 맹수를 앞에 두고 있는 느낌이었지.

"...여기는?"

"내 여관이다. 안심해도 돼."

"당신이 날 구했어? 어째서?"

"바닷가에 쓰러져있는 꼬맹이를 본다면 누구라도 구하지 않을까?"

"...꼬맹이? 내가?"

"...거울이라도 가져다주마."

기억이 혼란스러운 모양이었어. 자기가 어려졌다고 말하기도 했고. 이름을 말하는 데도 조금 뜸을 들이더군. 아마 나를 다 믿지 못하는 거였겠지. 그게 진짜 이름인지, 가짜 이름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꼬맹이는 자기가 멜로디라고 밝혔다. 어째서인지 자기 이름을 말하는데도 자신도 이해 못 하겠다는 표정이었어.

그렇게 며칠을 요양을 한 뒤에 멜로디는 마을을 돌아다니기 시작했지. 주민들의 얘기로는 이 마을에 대해 알아보고 있다고 그랬어.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옛 전설 속 이야기에서나 나올 법한 무기 같은 것을 찾고 다니더군. 그런 것이 왜 필요하냐고 물어보면 마을을 지키기 위해 필요하다고 했어.

그런 작은 꼬맹이가 대체 뭘 할 수 있다는 건지. 마을사람 모두가 믿지 않았지. 어차피 꼬마아이의 상상이라면서 말이야. 하지만 말이야. 난 가끔 그 아이의 표정이 떠올라. 무엇이 그 아이를 그렇게 내 몬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 조급한 표정에서만큼은 나도 그 아이가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라는 걸 느끼겠더군.

그 아이는 지금 모종의 이유로 홀로 책임감을 느끼고 있어.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러니 아가씨가 그 이유를 좀 알아봐주겠어?"

유리나는 여관주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멜로디가 초조해하고 있는 것이라면, 아까 이야기 나누었던 크라켄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아까 이야기했는데, 크라켄이 올 거라고 했었어요."

"...크라켄 말인가? 그거라면 토벌된 걸로 알고 있는데."

"...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멜로디는 없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여관주인이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빠졌다.

"음.. 분명 이 마을이 마을이기도 전, 아주 먼 옛날의 이야기에서는, 이 촌락에 찾아왔던 한 여행객이 촌락을 위협하던 크라켄과 사투를 벌였고, 크라켄를 무찌르는 데 성공했지만 여행객도 힘이 다해 바다에서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었지."

"...그 이야기는 어디서 볼 수 있을까요?"

"마을회관에 가보면 알 수 있지. 이 마을의 역사를 촌락이 세워지던 때부터 거의 완벽하게 보존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유리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말해두지만 지금 가도 마을회관은 잠겨있을 거야. 다 사람들인데 이제 자야지. 아가씨도 얼른 올라가서 좀 자 둬. 피곤하잖아?"

"..."

유리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계단 위로 올라갔다. 그런 그녀를 향해 여관주인이 말했다.

"고마워. 우리 꼬맹이를 신경 써 줘서."

유리나는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못한 채 그녀에게 배당된 방에 올라와서 침대에 누웠다. 시야 왼쪽 구석에서 체력이 회복되는 것을 확인한 뒤 눈을 감고는 로그아웃을 했다. 


스테이터스 시스템


총 7 가지의 항목이 있으며 그것은 다음과 같다.


체력Strenghth
정신Psyche
인내Endurance
의지Courage
지혜Intelligence
기민Agility
행운Luck 


플레이어는 레벨업을 할 때마다 3개의 스테이터스 포인트를 획득한다.


캐릭터의 능력치는 다음과 같으며, 각 스테이터스의 증가량에 따른 상승폭은 다음과 같다.


생명력 5S 10E
마력/신성력 10P
체력 10S 5E

공격력 2.5S
방어력 5E
주문력 5P
항마력 5P 2.5E
명중율 5A
회피율 2.5A 5L
회심율 2.5A 5L 



그 외에도 특정 행동이나 직업을 통해 새로운 능력치가 생기는 경우가 있으며, 이러한 능력치의 경우, 해당 능력치와 관련된 행동을 함으로써 상승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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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나 잘못된 문장의 지적 같은 제 소설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은 언제나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