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달리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과 함께 일어났다. 뒤통수를 만지니 혹이 잡혔다. 어디에 부딪친 걸까? 어제의 기억을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알프레드와 이야기한 후 자기 전 침대에서 책을 읽은 부분 까지만 기억났다. 아마 책을 읽다 잠을 잔 것 같은데, 어째서 머리가 아픈 것일까? 결국 원인 모를 혹과 두통을 안고서 화장실로 가 씻었다.

 

몇 분 후

 다 씻고 나갈 준비를 마치니 문 밖에 알프레드가 있었다. 알프레드는 아무래도 시간이 조금 빠듯할 것 같다며 바로 출발하자고 했다. 그를 따라 저택을 나서서 저택 왼편에 있는 차고로 갔다. 알프레드가 운전석에, 나는 뒷좌석에 앉았다. 

 “참, 혹시 출출하실 까봐 샌드위치를 준비했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나는 그에게 샌드위치를 받고 얌전히 먹기 시작했다. 차는 빠른 속도로 마을을 통과하고 있었다. 창 밖으로 마을을 지나고 숲의 풍경을 보던 중, 근처 호수로 가는 샛길을 보았다. 순간 뜬금없는 호기심이 생겼다.

 “이 근처 호수에는 뭐가 있습니까?”

 “근처 호수라면 ‘금붕어 눈 호수’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가끔 낚시를 즐기기 좋다는 것 외에는 별 것 없습니다.”

 “금붕어? 사슴이 아니라 금붕어 말입니까?”

 보석이든 뭐든 사슴을 갖다 붙였는데, 갑작스레 금붕어가 나와 당황했다.

 “이게, 순서가 좀 그렇습니다.”

 “순서?”

 “네, 만일 마을이 먼저 생겼으면 ‘사슴 눈 호수’라 불렸겠지만 이미 이름이 있는 호수 앞에 마을이 생긴 것이라 사슴과 관련 없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뭔가 납득이 바로 가지 않았지만, 저택 서제에 있는 책을 찾아보면 알 것이라 생각해 더는 묻지 않았다.

 “아무튼 저 호수는 낚시를 할 수 있다는 것 빼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호수라. 나중에 시간만 된다면 저 곳에서 낚시나 해봐야겠다.

 

몇 분 후

 

 “여기 관공서에서 볼 일이 있어 잠시 이 근처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알프레드는 관공서 쪽으로 갔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던 중 건너편에 쉬기 좋은 식당을 발견했다. 식당으로 들어가 창가 쪽으로 자리를 잡자 웨이터가 주문을 물었다. 오는 길에 샌드위치를 먹었지만 조금 부족해 크로와상과 같이 마실 커피를 주문했다. 주문을 하고 시내의 거리를 보았다.

 평화롭다. 어제만 하더라도 이상한 일과 쓸데없는 의심 때문에 힘들었지만 이렇게 거리를 보고 있으니 마치 옛날 대학을 다녔을 때로 돌아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 삶에서 가장 행복한 그 때. 만약 이번 유산 문제가 잘 해결되어 내 빚을 모두 해결할 수 있다면 그 때로 돌아 갈 수 있을 거다. 아니, 그때로 돌아갈 것이다. 저택 내부에 있는 장식품이며 진열된 보석들만 팔아도 내가 가진 빚을 청산하고도 많은 돈이 생길 것이다. 그렇다면 그 때로 돌아가는 것은 물론이고 대학으로도 돌아 갈 수 있을 것이다.

 “아, 여기 있었네.”

 내가 주문한 크로와상과 커피가 왔을 때 누군가가 나를 마주보고 앉아있었다.

 “아, 여기는 커피랑 샌드위치 좀 주세요.”

 멋대로 내가 앉은 자리에서 주문을 했다. 이 이상한 상황에 웨이터는 주문만 받고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나는 받은 어떤 것도 입에 대지도 않은 채 내 앞에 있는 이상한 남자에게 누구냐고 물었다.

 “하하, 그냥 이 근처에서 형사를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남자는 자신의 자켓 주머니에서 경찰증을 보여주었다.

 “형사라는 분이 저에게 무슨 볼일이죠?”

 “그게,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어서 말이죠. 혹시 저 ‘아리에트 마을’의 ‘디어혼 저택’에서 오셨습니까?”

 나는 이 사람이 왜 그런 걸 묻는 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걸 왜 묻냐고 역으로 물어보았다.

 “아아, 그게 저기 들어간 그, 토끼 양반 차에서 내리는 걸 봤습니다.”

 형사가 가리킨 곳은 알프레드가 들어간 관공서였다. 아마도 토끼 양반이라는 것은 알프레드의 성인 ‘레빗풋’에서 따온 것 같다.

 “그래서 혹시 그쪽과 관련 있나 해서 물었습니다. 그래서 ‘디어혼 저택’에서 오신 것 맞습니까?”

 “네, 저택에서 온 것 맞습니다.”

 “그거 다행이군요. 그럼 혹시 ‘디어혼 가문’하고는 어떤 관계십니까?”

 형사는 웃으면서 다음 질문을 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나는 묘한 압박감에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그저 사업차 온 것이라 말했다.

 “그럼, 저택의 손님이시라는 거군요? 그리고 ‘아리에트 마을’ 출신이 아니라 외지 사람이고요.”

 “네, 그렇습니다.”

 “그럼 안심할 수 있겠군요.”

 갑자기 형사는 호탕하게 웃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 지 몰라 크로와상이나 한 입 메어물었다. 형사는 이내 다 웃고서 나에게 서류를 건내주었다.

 “이게 뭐죠?”

 “’아리에트 마을’에서만 신고된 실종자 명단입니다.”

 순간 흠칫 했다. 민간인인 나에게 왜 이런 걸 주는 걸까? 그리고 실종자 명단은 왜 이리 두꺼운 걸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에게 형사는 말을 걸었다.

 “대부분 ‘디어혼 가문’ 산하의 관산에서 일하던 인부들입니다. 동료들이 신고를 했지만 마을에서는 영 협조를 하지 않더군요.”

 “아니, 잠깐 기달려…”

 “거기에 여기, ‘아리에트 마을’ 인구조사 표입니다.”

 형사는 내 말을 듣지도 않은 채 서류를 자꾸 주었다. 작년 ‘아리에트 마을’의 인구 수를 보니 제작년에 비해 절반 넘게 줄어 있었다.

 “젊은이들이 도시에 많이 이주한다 쳐도, 또 죽은 마을 사람들을 생각해 봐도 수치가 이상하단 말이죠. 이상하지 않습니까?”

 “아니, 대체 왜 저에게 이런 걸 주시는 거죠? 저는 경찰 관계자도 아니고 그냥 일반인입니다.”

 나는 멋대로 술술 부는 형사에게 말했다. 물론 비정상 적으로 인구가 줄어든 것도 이상하지만 무엇보다 일반인인 나에게 이런 걸 말하는 것이 너무 수상했다.

 “하아, 그게 아까 말했다시피 마을에서 전혀 협조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형사는 등받이에 몸을 받치며 고개를 뒤로 넘겼다. 그런 모습에 기가 차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많이 제멋대로인 형사다.

 “분명 실종자들은 마을 출신인데 이상하게 숨기려고 한단 말이죠. 심한데는 이미 실종된 사람을 찾아서 어디다가 쓰냐고 하더라고요. 그렇다고 강제로 조사를 하자니 영장이 없고 거기에 경찰차가 마을 입구에 들어와도 돌을 던지니 수사를 할 수가 없더라고요.”

 “저도 마을에 온 지 얼마되지 않아 마을 사람들에게 그런 것을 물어볼 수도 없습니다.”

 “아, 이거 참. 바로 협조해 주실 생각을 하시다니.”

 “아뇨, 그게 아니라…”

 뭔가 말을 하려던 순간 웨이터가 샌드위치와 커피를 가져왔다. 형사는 그걸 받자마자 바로 먹기 시작했다.

 “아, 죄송합니다. 아침을 못 먹어서요.”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실은 마을을 조사하는 것 보다 ‘디어혼 저택’을 수사해야 합니다.”

 나는 크로와상과 커피를 마시며 이유를 물었다.

 “실종자 동료들의 말에 따르면 실종자들은 실종되기 전, ‘디어혼 저택’에 오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하더군요.”

 “그럼 그 저택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되는 것 아닙니까?”

 “물어봤죠. 하지만 항상 끝은 모른다고 말하더군요. 실종자들이 오기는 했지만 그들과 저택 주인과의 면담이 끝난 후 돌려보냈다는 말만 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왜 아직까지 ‘디어혼 저택’을 의심하시는 겁니까?”

 내 말에 형사는 먹는 것을 그만하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아리에트 마을’에 대한 소문을 아십니까?”

 진지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낮게 깔고 말하니 순간 압박되어 바로 말하지 못했다. 나는 식어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모른다고 답했다.

 “하긴, 외지인이시니까요.”

 그리고 형사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아리에트 마을’에는 오래된 종교가 하나 있습니다.”

 종교라는 말에 흠칫 놀랐다. ‘셀베디아 교’를 말하는 것일까? 나는 놀란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그 종교가 아직도 ‘아리에트 마을’에 깊게 뿌리 박혀 있죠. 문제는 그 종교가 인신공양을 한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아직도 있다고요?”

 “종교가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군요. 거기에 인신공양에 대한 것도 알고 계셨구요.”

 순간 당황해 커피잔을 들었다. 커피를 마시려고 했지만 커피는 없었다.

 “어디까지 알고 계신 겁니까?”

 형사는 부드러운 톤으로 물었다. 매우 진지한 표정과 함께.

 나는 웨이터를 불러 커피 리필을 요구했고 형사에게 내가 아는 모든 것을 불었다.

 “꽤 많이 알고 계시군요. 그럼 뭐 설명이 더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형사는 남은 샌드위치를 먹고 말을 이어갔다.

 “아무튼 그 인신공양이 ‘디어혼 저택’을 중심으로 아직까지 이어 나간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물론, 소문만 듣고 성급히 조사를 해서는 안 되지만, 마을 실종 건수는 비정상적으로 높고 거기에 실종자들 모두 저택을 거쳐갔다는데 의심을 안 하기 힘들죠.”

 형사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서 숨을 돌렸다. 그러던 중 웨이터가 커피를 가져왔다. 나는 웨이터가 가져온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래서 윗분들께 영장을 발부해달라 했지만, 기각당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증거가 부족해 발부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다들 ‘디어혼 가문’하고 친분이 있어 사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뭘 부탁하고 싶으신 거죠?”

 “별 거 없습니다. 만일 증거를 찾으신다면, 아, 잠깐…”

 형사는 자신의 자켓 주머니에서 메모장을 꺼내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이곳으로 전화를 주세요. 증거가 있다면 윗분들도 영장을 발부해 주겠죠. 거기에 주인 양반도 돌아가셨으니 눈치 볼 필요도 없어지니 증거만 나온다면 바로 수사를 할 수 있을 겁니다.”

 나는 형사가 준 메모를 받았다. 메모에는 형사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 제가 먹은 건 제가 계산할 테니 걱정 마세요.”

 그 말을 하고 형사는 자리를 떠났다. 창문을 통해 그가 떠나는 것을 보고 있었다. 나는 메모를 보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결국 잠잠해졌던 어제의 의심이 다시 스멀스멀 기어 나오고 있었다. 종교, 그러니까 민속신앙과 인신공양, 의식용 돌칼, 사슴, 사슴, 너무 많은 사슴.

 머리가 아프기 시작해 나는 남은 커피를 한 번에 마셨다. 깊게 생각하지 말자. 나는 타인이다. 유산만 받고 저택을 뜰 것이니 너무 깊게 연관되지 말 것이다. 일단 계산을 마치고 거리로 나서야겠다. 그래야 정신이 맑아질 것 같았다.

 밖으로 나오자 알프레드가 볼일을 마치고 나오는 것을 보았다. 알프레드도 건너편에 있는 나를 보았다. 나는 관공서 쪽으로 가 알프레드를 만났다.

 “볼 일은 끝난 것입니까?”

 “네, 이제 필요한 물건만 사고 돌아가면 됩니다.”

 알프레드는 세상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알프레드의 표정을 보니 어제 차가웠던 알프레드가 생각났다. 누구를 무엇을 믿어야 할 지 모르겠다.

 “우선 밀가루 세포대에 감자 다섯 포대…”

 누굴 믿기 전에 내 허리를 믿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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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 지적 및 고쳐야 할 부분을 알려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