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에서 희미한 잔상이 나에게 다가온다. 그렇게 환상적인 빛은 곧 그 이유를 알려주듯 미래를 보여주었다. 전쟁으로 황페해진 이 곳이 언젠간 또 다른 세력의 침공으로 모든 삶이 무너질거라고. 하지만 희망은 아예 없다는 건 아니었다. 포기를 하지 말라는 듯이 그 빛은 천천히 그 힘의 원천처럼 나를 향해 온 몸을 휘감는다. 그러나 그 힘은 버틸 수가 없어서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꾸, 꿈이였나? 그렇지만 그 꿈은 뭔가 이상했어."


나는 린 게르문드, 평범한 집에서 태어나 평범하게 살아가고 아버지는 전쟁으로 인해서 참전을 했다. 어머니는 연금술에 능동적이셔서 환자들을 돌보기도 하신다. 하지만 요즘 어머니께서 몸이 많이 편찮으신다. 곁에 있어주려면 우선 연금술에 제대로 익혀야만 했다.


"린, 깨어났니?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구나."

"그냥 뭔가 이상한 꿈이었지만 별거 아니에요. 그나저나 몸은 어떠세요?"


어머니는 다른 병과 달리 후천적으로 불치병에 앓고 계셔서 그 증상은 너무 심해서 함부로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언제든지 내 곁에 떠나실 수도 있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난 그것이 제일 두렵기만 하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지만 소용이 없어서 그저 죄송스럽기만 했다.


"어머니, 제가 약초를 캐러 가볼게요. 그 동안 무슨 일을 하든 그건 하지마세요. 제가 알아서 해드릴게요."

"너무 무리하진 말거라. 내가 아픈 것보다 네가 제일 걱정스럽다."


일단 어머니를 뒤로 하고 밖으로 나갔다. 솔직히 밖에 나가고 싶지 않은데 그 이유는 영토분쟁으로 인한 전쟁은 왕국의 민낯을 보여주는 참혹한 결과다. 그러나 백성들은 싸우거나 아니면 죽거나 이런 식으로 싸움을 부추겼다. 우린 왕국을 위해 싸우는 건 아니다. 전쟁으로 인한 양국간의 끊임없는 약탈이 우리를 배부르게 하는 허락 조차 구하지 못했다. 그래서 약초는 내가 어렸을때 자주 놀던 산속에 가서 몰래 캐오는 것이다. 어떻게든 어머니를 고생시키고 싶지 않았다.


"여기면 괜찮을까? 아무도 오지 않았겠지?"


나는 혹시 모를 남을 위한 그리고 나를 위한 공간이기에 필요한 만큼 약초를 챙긴 뒤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근데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뒤를 돌아보지만 그 누구도 나를 감시할 이유는 없었다. 그저 요즘 어머니의 병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서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그래도 기분이 찝찝한건 여전하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집에서 왕국으로부터 명령을 받고 왔던 병사들이 눈앞에 보였다.


"당신들은 누구죠?"

"네가 린 게르문드인가?"

"네, 그런데 왜 집 앞에 어슬렁 거리세요?"

"그럼 더 이상 말할 것도 없군, 미안하지만 왕국에서 총동원령 발령이 났다. 여자도 포함해서 전쟁에 참전하라는 왕국의 어명이 있다. 그래서 같이 가줘야겠다."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아버지 끌려간 것도 모자라서 이젠 저까지 아프신 어머니를 놔두고 가란 말이에요? 미쳤어요?"

"우리도 이러고 싶지 않아. 하지만 전쟁에서 지면 너도 나도 끝이야. 어쨌든 같이 가줘야겠다."

"싫어요. 이러지 말아요 제발."


그런데 나의 목소리를 듣고 뛰쳐나온 어머니의 모습은 뒷모습조차 쓸쓸해졌다. 아프신 어머니는 어떡하라고 정말 도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눈 앞이 캄캄할 뿐더러 왕국이 드디어 맛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 전쟁에 일으키는 건 우리가 아닌데 왜 강제적으로 징집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리고 내가 몇십분만에 도착한 곳은 올리왕이 통치하는 이곳, 올리브리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 왔다. 린 게르문드, 도망칠 생각 하지마. 우리도 안 데리고 오면 곤란해져서 말이야."

"당신들 참으로 왕한테 복 받게 생겼겠네요? 전쟁에서 지기만 해봐요."


내가 원하는 전쟁은 아니지만 달리 방법은 없었다. 우린 서로를 왜 상처를 줘야 되는지, 그리고 그깟 땅 하나 때문에 아프신 어머니를 강제로 튕겨내고 여기까지 끌려야만 하는가? 왕국에 들어서고 사람들은 불행한 나날을 보냈는지 아무도 그 웃음을 지어내지 못했다. 안쪽으로 들어갔는데 그 안에서는 나처럼 참전에 응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난 할 수 없이 줄을 서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의 차례가 왔지만 딱히 싸움에 내세울 것도 없었다. 나의 집안은 전사계열이 존재하지 않는다.


"성함 알려주시고, 특기나 취미, 그리고 동기를 알려주세요."

"린 게르문드, 그리고 잘하는 건 약초 캐서 어머니한테 잘해준 것 밖에 없어. 뭐? 동기? 너네들이 끌고 와서는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나랑 장난해?"

"아아, 아가씨 너무 공격적으로 보이지말아요. 이건 어디까지나 절차이니까요."

"절차는 개나 줘라고, 원하는 게 뭐야? 전쟁으로 다 죽어야 그때 정신차릴래?"

"자꾸 소란 일으키면 저희도 어쩔 수 없어요. 악감정은 이미 충분하잖아요."

"알아서 하든가, 난 이 전쟁 끝나면 어머니한테 바로 갈거야."


난 전쟁에 참전하겠다는 서명에 이름을 적었고 그 다음엔 바로 훈련소로 향했다. 그 곳은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많은 용병들이 훈련소에 집합하기도 한다. 그러나 먼저 가는 건 순서가 없다. 용병은 무슨 얼어죽을. 훈련 받기 10분전에 나는 근처 의자로 가서 자리에 앉았다. 머릿속에는 온갖 잡다한 생각이 들었지만 제일 걱정스러운 건 우리 어머니었다.


"어머니, 죄송해요. 곧 돌아갈게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만약에 내가 죽으면 혼자 남게 될 우리 어머니는 쓸쓸히 돌아가시겠지. 그럼 난 그 모든 죄책감에 떠앉고 가겠지. 너무나 고통스럽다. 이것저것 생각 하다 보니 벌써 훈련 받을 10분이 지났다. 나는 줄을 서서 오늘의 훈련을 뭐 받을 건지 듣고 있었다. 네온이라는 훈련 교관이 이 많은 훈련 병사들을 맡게 될 사람이었다.


"여기까지 와서 고생 시키게 해서 미안하다. 하지만 스스로 들어온 사람도 있을 테고 심지어 강제적으로 끌려온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전쟁이 끝나면 바로 가족 곁으로 보내주고 후한 보상을 해주겠다. 이것 만큼은 약속 하겠다. 하지만 도중에 이탈하거나 항복을 하는 일은 없도록 한다. 그랬다간 강력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니 왕국을 위해 피를 흘릴 각오 되는 자는 하늘 위로 손을 뻗으며 말을 한다. 올리왕을 위하여!"


나는 다른 사람들이 하고 있는 행동을 똑같이 했다. 내가 왕국을 신경 쓸 이유는 눈꼽만큼도 없다. 그저 이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고 다시 내 삶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다. 잠시 얼굴을 찌뿌렸는데 그 교관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난 그 눈길을 피했지만 여전히 나를 바라보더니 무시하고 다시 진행하였다.


"자 그럼 첫 번째 훈련을 시작하겠다. 기초 훈련이다. 자신이 얼만큼 지구력이 강한지, 또는 체력이 얼만큼 버티는지 한번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그저 말 그대로 확인만 해볼 터이니 너무 기진맥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음 훈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


기초 훈련은 별거 없었다. 나는 대충 훈련을 실행했다. 소꿉놀이인줄 알았던 기초 훈련은 왜 이런 훈련을 하는지 싶을 정도로 어이가 없었다. 내가 보기엔 사람들이 빨리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아우성이 있을 뿐이다. 기초 훈련이 끝나고 난 뒤 네온 훈련 교관은 뜻밖의 일을 보고 받게 된다.


"기초 훈련은 여기서 마친다. 방금 왕국에서 적군의 병력들이 여기로 모인다는 보고를 받았다. 미안하지만 있는 힘껏 싸워줬으면 한다. 두 번째 훈련이라 셈 치고 바로 방어전에 돌입한다."


아니 갑자기 뭔 소리야? 싸우는 방법도 모르는데 이럴꺼면 기초 훈련은 왜 한 거야? 정말 너무하기 그지없다. 싸우라면 싸워야지 별거 있겠냐만은 그래도 살아서 돌아가야 어머니를 보살펴 줄 수 있다. 병사들은 순식간에 방어전에 구축하고 있었고 용벙들은 이런 전쟁에 익숙했는지 둘러싸고 있는 적군의 병력들을 소탕하기로 했다. 그러나 나는 이 전쟁에 익숙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힘도 없어서  할 수 있는 게 없다. 네온은 그런 나를 다가오더니 위로의 말을 전했다.


"아까부터 불평 불만이 많아 보이시는군요.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죠. 네온입니다. 훈련 교관을 맡고 있습니다."

"도대체 원하는 게 뭐에요? 다가오지 말아요."

"저는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 안심해주세요. 저는 당신을 도우려고 한 겁니다."

"도움이요? 무슨 도움을 얘기하시는 건가요?"

"이 일이 끝나면 바로 가족 곁으로 보내드릴게요. 약속하죠."

"뭐 그건 당연한 말 아닌가요? 저는 싸움이란건 못해본 사람이에요. 어느 누구도 쌈박질조차 못했단 말이에요."

"그건 저도 알 수 있습니다. 급하신거 알아요. 하지만 왕국을 지키지 못하면 당신 가족들도 죽는 단 말입니다."

"우리 가족은 그저 떠돌이 생활하다가 겨우 정착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으면 다른 데서 있겠죠."

"세상은 어딜가나 다 전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후방에 안전하게 지원하는 것을 도와주시면 됩니다,"

"알겠어요. 도울 수 있는건 도와드릴게요. 할 수 없긴 하지만."


나는 전쟁에 참전하지만 직접적인 건 아니다. 그저 다친 병사들을 치료 해주는 것에 임무를 도맡게 됐다. 내가 왜 이런 짓을 해야 하는 지 아직도 감이 안 잡힌다. 그래도 잠시 나마 참을 수만 있다면 바로 어머니에게 돌아갈 수 있다. 약속은 그래도 지켜주겠지? 그 약속을 못 지킨다면 각오해야 할 거야. 어쨌든 두고 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