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소개할 고사성어는 토사구팽(兎死狗烹)입니다. 혹시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봐 말하자면, 토사구팽이란, '토끼가 죽자 개를 삶는다'란 말로, 필요할 땐 소중히 여기다가 쓸모가 없어지자 버리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한 고사성어가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단 사실, 알고 계셨나요? 이 토사구팽도 그 사례들 중 하나로 밝혀졌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제가 토사구팽과 관련되었다는 다른 이야기를 제 나름대로 재구성하여 보았습니다. 그럼 한번 보시지요.







아주 먼 옛날, 소년에겐 다시 오지 않을 찬란한 겨울이었다.


싱글벙글하던 소년은 시장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가는 장소가 범상치 않은 것 같았다. 과일 가게도 지나치고,  채소 가게도 지나쳤다. 푸줏간과 국밥집도 통과했다. 그러던 중 울타리가 허름하게 처진 한 초가집 앞에 멈춰섰다.


올라오는 짐승 냄새. 하지만 그것은 소년을 더욱 기쁘게 했다. 소년은 구석에서 개밥을 주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저 왔어요."


"오냐."


"아저씨, 저 드디어 엄마한테 개 키우는 걸 허락 맡았어요. 근데 길바닥에 있는 아무 똥개나 데려가는 건 좀 그러니까 여기 왔어요. 저번에 제가 개 키울 수 있게 되면 한 마리 주신다고 하셨잖아요~."


"어, 어? 어, 뭐, 그렇지. 그럼, 여기 큰 개 빼고 나머지 중에 한 마리 줄 테니까 잘 골라봐."


소년은 주윌 둘러보았다. 자기 꼬리를 쫓는 개, 친구하고 고기 조각으로 싸우는 개 등등. 하지만 별로 끌리는 구석이 없었다. 그러다가 마음에 드는 한 강아지를 찾았다.


잿빛 털에 크고 반짝이는 눈을 가진 개였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올망졸망하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 한 마디만으로 표현하기에는 미안할 정도였다.


하지만 강아지는 이를 드러내보이며 소년을 경계했다. 그 큰 눈에는 알 수 없는 슬픔이 어렸다. 소년은 그 강아지를 웃게 하고 싶었다.


"쟤는 이름이 뭔가요? 그리고 절 왜 이렇게 경계하죠?"


"어, 그걸 설명하려면 좀 길게 말해야 해."


아저씨는 헛기침 한 번 했다.

"그 날은 내가 돼지고기를 사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지. 부둣가 쪽을 지나가는데 사람들이 평소보다 더 모여서 웅성웅성하는거야. 그래서 나도 그 쪽으로 가 봤어."


"그래서요?"


"가 봤는데, 작은 배가 하나 있었어. 그리고 그 안에 저 녀석 가족하고, 한 사람이 있었지. 하지만 주인하고 나머지 개들은 전부 죽은 상태였어."


소년은 흥미진진한지 빨리 얘기해달라고 아저씨를 보챘다.


"아이, 재촉하지 말고... 아, 아무튼, 주인의 몸을 보니 먼 바다로 휩쓸렸다가 굶주려 죽은 것 같았어. 녀석도 피골이 상접한 게 분명 힘들 터인데, 제 딴엔 자기 가족들 지키겠다고 이미 차가워진 그 시체들 앞에서 지금처럼 으르릉거리고 있었어.

그걸 보고 사람들이 충견이라면서 이야길 나누고 있었지. 내가 보기에도 대단하긴 했지만, 녀석의 상태를 보면 곧 제 부모형제들을 따라갈 것이 뻔했어. 그래가지고 내가 돼지고기로 녀셕을 유인했지. 처음엔 경계를 했지만, 배가 너무 고픈지 곧 내 쪽으로 오더라."


"진짜 충견이네요. 그래서 얘 이름은 뭐죠?"


"아, 이름? 배 위에서 자꾸 크르릉, 캬르릉 거리길래 캬루라고 지었어."


"별로 믿음직해 보이는 이름은 아니네요."


아저씨는 '허허'하고 웃었다. 소년은 아저씨하고 좀 더 이야기를 나누었고, 곧 이 개를 사기로 결정했다.


마지막으로 이 개에 대해 좀 더 설명을 들었다. 성별은 암컷이니, 사냥개의 한 종류이니, 주인에 대한 충성심 강하다느니 등의 얘기가 오갔다. 소년은 알겠다고 하며 캬루의 목에 줄을 메고 가기 싫어하는 녀석을 억지로 끌고 갔다.


*


역시 캬루는 바로 마음을 열지 못했다. 소년이 아무리 살갑게 굴어도 눈길 하나 제대로 주지 않았다. 단지, 밤이 되면 그 나룻터 쪽을 보고 '월월월'하고 짖을 뿐이었다.


소년은 고길 입에 들이대기도 해 보고, 앞에서 춤도 추고, 윽박도 질러봤다. 그래도 영 꿈쩍하지 않자. 캬루를 끌고 아저씨한테 다시 찾아갔다.


"캬루는 아직 준비가 안 된거야. 그리고 아까 윽박질렀다고 했지? 바로 그게 문제야. 남을 생각하지 않고 네 감정만 앞세워서 강요하는거."


"네..."


소년은 주눅들었다. 아저씨는 그런 소년을 보고 머릴 쓰다듬으면서 캬루와 친해질 방법을 알려줬다. 


*


소년은 매일매일 캬루에게 다가갔다. 캬루가 허락할 때까지 옆으로 움직이다 경계심을 드러내면 멈추곤 했다. 둘의 사이는 매일 조금씩 좁아졌다. 그렇게 시나브로 다가가다 결국 만났다. 캬루의 주인은 배의 시체에서 소년으로 바뀌었다.


친해지고 나서, 소년은 캬루를 열심히 훈련시켰다. 사냥개라서 그런지 간단한 명령은 금방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은 빨랐다. 소년은 곧 장성하였고, 활을 익혀서 사냥꾼이 되었다. 캬루도 열심히 훈련을 거듭한 결과, 진짜 사냥견으로 거듭났다.


사냥꾼이 된 소년은, 산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거기에 자그마한 오두막집을 짓고 둘이서 살기 시작했다.


*


"캬루야 물어!"


"월!"


작은 동물들은 이런 식으로 캬루가 잡아오고, 큰 동물들은 위치를 찾아 활로 쏘는 식으로 사냥이 이뤄졌다.


산에선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둘의 사이는 더욱 돈독해졌다. 


일가가 없는 날이면, 봄에는 둘이서 꽃구경을 했다. 여름에는 계곡에서 물장구를 치고 시장에서 사온 수박을 계곡물에 담가 놨다 먹곤 했다. 가을에는 부스락거리는 낙엽 위를 같이 뛰어 다녔고, 겨울에는 뜨뜻한 구들장 위에서 이불을 같이 뒤집어썼었다. 하지만 그런 일상에도 곧 변화가 왔다.


*


그러던 12월 어느 날, 둘은 같이 돌아다니며 땔감을 모으고 있었다. 그러던 중, 캬루가 무언가를 느꼈는지 몸을 틀고 냅다 뛰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그러지 않던 캬루였기에, 사냥꾼도 쫓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캬루가 멈췄다. 사냥꾼이 캬루 쪽으로 다가갔다. 거기에 한 젊은 여인이 쓰러져있었다. 


의식이 미미했다. 홀로 놔 두면 죽을 것이 뻔했기에, 등에 업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냥꾼은 그녀가 깨어날 때 주려고 미음을 지었다.


캬루는 방에 앉아 잠들어 있는 여자를 응시했다.


"아이 캬루야, 난 괜찮아. 너도 힘들었을테니 좀 쉬어."


그제서야 캬루는 긴장을 풀고 몸을 웅크렸다.


*


사냥꾼도 힘에 겨웠다. 옆에 죽그릇을 놔두고 벽에 기대 잠깐 졸았다. 잠에서 깨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인이 눈을 떴다. 여인은 낯선 풍경에 어리둥절해했다.


"여긴 제 집입니다. 안심하시죠."


여인은 자신의 이야기를 자초지종으로 설명했다. 나물을 캐다가 그만 호랑이를 만났고, 호랑이를 피해 도망치는데는 성공했지만, 길을 잃고 헤매다 그만 쓰러졌더랬다.


"잘 들었습니다. 몸이 성치 않을 터이니 일단 저 죽을 먹으시죠. 그리고 여긴 길이 험해서 여자 혼자 돌아다니기엔 위험합니다. 나중에 저와 같이 돌아가시죠."


그녀가 죽을 다 먹고 짐을 싸려던 무렵, 밖에선 진눈깨비가 날리기 시작했다. 


"이런, 눈이 오네요. 근데 안타깝게도, 여긴 산이라서 한번 눈이 오기 시작하면 금방 쌓여버려요. 그럼 사람은커녕 동물들도 잘 돌아다니질 못하죠."


사냥꾼 말마따나 진눈깨비는 곧 함박눈으로 변했고, 멈추지 않고 계속 쌓여 어느새 발목 높이까지 올라왔다. 눈은 여인의 마음 따위 헤아리지 않고 계속 내렸다. 


하는 수 없이 여인은 짐을 풀었다. 사냥꾼의 오두막은 방이 하나였기에 둘은 오랫동안 얼굴을 마주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서로 자기소개부터 하기로 했다.


사냥꾼이 먼저 말했다.

"소저의 이름은 무엇이오?"


"제 이름은 묘원(卯原)이에요."


"토끼가 사는 언덕이란 뜻이군요."


이번엔 소저가 다시 물어봤다.

"아, 제 이름은..."


그렇게 소개를 하고 이야기는 시작됐다. 밖은 점점 추워졌지만 안은 이야기로 달아올랐다. 오랜만에 사람과 하는 이야기라 그런지 사냥꾼은 더욱 열정적이었다. 그러다가 이야기의 주제가 개에 관한 쪽으로 갔다.


"...하하, 그렇다면. 캬루야, 저쪽으로!"


캬루가 여인에게 달려갔다.


"자, 잠깐만요."


"왜, 그러시죠?"


사냥꾼은 캬루를 손으로 막았다. 캬루는 시무룩해하며 멈췄다.


"저 사실은... 개를... 무서워해요..."


알고보니 여자는 어릴 때 큰 개한테 물려봤다고 했다. 사냥꾼은 무안해하며, 캬루를 구석으로 보냈다. 


*


날이 갈수록 눈과 바람은 더욱 심해졌다. 하루하루 둘이 나누는 이야기도 점점 깊어졌다. 이성 간이어서 그런지 이야기가 야릇하고 농염한 쪽으로 흘러갔다. 눈 잔뜩 쌓인 오두막에서 선남선녀가 짝으로 있으면 사랑이 싹트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하지만 둘 사이의 사랑이 깊어질수록, 사냥꾼은 캬루에게 점점 소홀해졌다. 캬루가 다리에 앵겨들어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져도 다리를 훌훌 털 뿐이었고, 나뭇가지를 내밀어봤자 보지도 않고 던져버렸다.


캬루는 침울했다. 하지만 주인을 원망하지 않았다. 여자를 원망하지도 않았다. 그저 한 번만 자길 다시 보길 바랐다. 하지만 사냥꾼은 여자에게 바빴다. 그저 밥을 주면서 대충 흘겨보는 것, 그게 사냥꾼이 캬루를 챙기는 전부였다.


한 열흘 쯤 지나니 눈이 그치고, 또, 많이 녹았다. 여자는 짐 채비를 하였다.


"저, 이제 내려가려고요."


그세 사냥꾼은 고뿔을 얻었다.

"아, 원래는 저도 같이 내려가려 했건만. 콜록콜록, 몸이 이러니 같이 갈 수가 없네요. 그러면... 음, 캬루를 데려가세요. 길을 잘 아니까 따라가기만 하면, 콜록, 돼요."


여자는 캬루를 데리고 내려갔다.


*


한 중간쯤 왔을까. 주변 공기가 싸늘해졌다. 캬루도 그것을 알고 캬르릉거렸다. 여자도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캬루의 뒤로 갔다.


풀숲에서 안광이 보이더니, 그 주인이 밖으로 나와 곧 모습을 드러냈다. 굶주린 늑대 무리였다. 


"아우우~"


대장으로 보이는 놈이 달려들었다. 캬루도 방어 자세를 취했다. 녀석은 캬루와 맞부딪혔고, 곧 개싸움이 벌어졌다. 


여자가 캬루를 놔 두고 도망갈까 말까 고민하던 무렵, 다른 한 녀석이 여자 쪽으로 튀어 올랐고, 여자는 속수무책으로 늑대에게 당했다. 그러자 나머지 녀석들도 여자에게 달려들었다. 캬루랑 싸우던 놈도 녀석을 내팽겨치고 여자에게로 달려갔다.


그들은 곧 식사에 정신이 팔렸다. 캬루도 나무 뒤쪽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비록 자신을 별로 좋아하진 않았지만, 주인이 소중히하던 사람이란 걸 알았기에 용기를 내어 달려들었다. 


녀석들도 캬루가 돌아올 걸 예상 못했는지 순간 뒤로 움찔했고, 캬루가 '왈왈' 짖으니 기세에 눌렸는지 곧 도망쳤다. 그리고 캬루는 늑대들이 얼씬 못하게 거기에 버티고 앉았다.


*


시간이 흘러도 캬루가 돌아오지 않자, 사냥꾼은 쑤시는 몸을 이끌고 마을 방향으로 향하였다. 그리고 곧 캬루를 발견했다.


캬루의 입가와 앞다리엔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이전투구의 흔적이었다. 여자는 옷이 갈기갈기 찢겨 살이 다 들어나고, 살이 군데군데 파멱힌 상태였다.


주인은 캬루가 그런 짓을 안할 걸 알았고, 분명히 늑대 떼의 흔적이었으며, 캬루가 없으면 이 시체도 더욱 험악한 꼴로 발견되었을 것이란 사실을 알았건만, 자신의 슬픔을 토로하고 분풀이를 할 대상을 만들기 위해 그 범인을 캬루라고 매도해버렸다.


아무 것도 모르는 캬루는 그저 좋다고 주인 품으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주인은 그런 캬루를 매몰차게 밀어냈다. 그리고 아얘 시선도 주지 않고 아픈 몸으로 여자의 시체를 들어 집에 갔다.


*


캬루도 주인을 따라 집으로 갔다. 왠진 모르지만 자길 보면 엄청 화를 내기에 보지 않을 때마다 몰래몰래 따라갔다. 집에 도착했지만 주인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낑낑거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주인이 자기가 들어오는 것을 허락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문 앞에 자세를 갖추어 앉았다. 기다리다 보면 이따금씩 '묘원아...'하고 곡하는 소리도 들렸다.


캬루는 너무 힘들었다.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게, 밥을 먹지 못해 눈으로 배를 채우는 게, 추위에 벌벌 떠는 건, 아예 힘들다고 하지 않으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렇게까지 힘든 것은 아니었다. 더 이상 주인이 자길 봐 주질 않는 게 제일 힘들었다.


*


한 이틀 정도 기다리니까, 주인이 나와서 캬루한테 다가왔다. 자기를 그렇게 힘들게 했음에도 또 좋다고 튀어나갔다.


"헥헥헥헥."


사냥꾼은 울먹였다.

"... 미안해."


그러고는 허리를 숙여 땅에 있던 나뭇가지를 하나 주웠다.


"물어 와."


사냥꾼은 나뭇가지를 앞으로 던지는 시늉만 취했다. 캬루는 나뭇가지를 찾아 달려나갔다. 사냥꾼은 나지막히 읊조렸다.


"미안해... 묘원아..."


캬루는 사실 사냥꾼이 나무 막대기를 던지지 않았단 걸 알았다. 하지만 사냥꾼이 자길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라 믿었다. 그렇게 캬루는 민가 쪽까지 달음박질 쳤다. 그리고 만만해보이는 나뭇가지 하나를 물은 후에 다시 몸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집으로 가면 갈수록 잠이 몰려왔다. 아주 깊은 잠이...


*


두 아이가 캬루를 발견했다.

"와, 사냥개다!"


"이거 죽은거야?"


한 아이가 주변에 가지를 하나 주워 툭툭 쳐봤다.

"그런 것 같아. 어, 근데, 왜 나뭇가지를 물고 있을까?"


"몰라, 입 벌리면서 죽었나보지."


"그런가..."


"오랜만에 보는 고긴데 끓어먹는 건 어떻까?"


"그래그래. 따뜻한 고기 국물, 마을 사람들하고 나눠먹는 거야."


아이들이 개를 들고 돌아가려는 순간, 한 사내가 산에서 뛰어 내려왔다. 아이들은 사내를 보고 물어봤다.

"아저씨, 산에서 오는 걸 보니 사냥꾼 같은데. 이거 아저씨 개인가요?"


"아저씨네 개 맞죠?"


사내는 묵묵하게 서 있었다.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아이들은 다시 말했다.


"지금 빨랑 안 오면 아저씨 먹을 국은 없을걸요?"


"맞아요, 아저씨. 우리끼리만 먹으면 치사하니까 알려주는 거예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입을 열어도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좀스러움이 역겨웠다.


"먹기 싫다는 거죠? 그럼 저희끼리 알아서 먹을게요."


"오늘~ 식사는~ 개로~ 끓인~ 탕이라네~"


소년이 가장 소중한 친구를 잃은 겨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