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서울 2063 3화 - 창작문학 채널 (arc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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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을 필두로 무장한 경찰들이 들이닥치자 테러리스트들은 일순간 동요했다. 그러나 동요한 탓에 멍하니 서 있던 몇몇 동료들이 경찰들에게 벌집이 되어 쓰러지는 것을 보더니 이들도 덩달아 총을 갈기기 시작했다.


“엄폐해!”


서로서로가 엄폐한 상태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는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지원은 관자놀이를 살짝 눌렀다.


“해킹은 아직이야?!”


“사이버 정보팀 소속 러너들이 방화벽을 뚫는 중입니다!”


“빨리 하라고 그래! 이놈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건물 안에선 통신 외에 사이버웨어는 작동 안한다고!”


지원은 다시 총알을 장전하더니 어깨 너머로 멋진 모잠비크 드릴을 갈겨 멋 모르고 엄폐물에서 벗어나 있던 테러리스트 하나를 사살했다.


“방화벽 무력화 완료! 사이버웨어가 작동할 겁니다!”


그와 동시에 인공안구에 적의 위치가 샅샅이 드러났다. 적의 위치를 알아낸 지원이 다음 일으킬 일은 오직 1대 다수의 학살극 뿐이었다. 마치 상대의 수비벽에 달려드는 미식축구 선수처럼, 그녀는 테러리스트들에게 달려들며 쌍권총을 난사했다. 남들이 보기엔 그저 난사처럼 보여도 그녀의 타고난 사격실력과 양쪽 인공안구가 잡아주는 적의 위치 및 약점이 뒷받침되어 말 그대로 백발백중 쌍권총의 달인 이지원이 만들어진 것이다. 대부분의 테러리스트들이 무어라 대응하기도 전에 그녀의 베레타 권총에서 발사된 9mm 권총탄에 쓰러지고, 겨우 반격을 해도 그녀의 카키색 방탄 코트에 가로막혀 피해는 일절 입히지 못한 채 뒤 이은 총탄 세례에 쓰러졌다. 순식간에 1층이 정리되자 그녀는 다시 총알을 장전했다.


“구세대 권총은 안구에서 총알 궤적이 안 나오니 귀찮아 죽겠네. 손이랑 연동도 안 되고 말이야. 올라가자!”


천천히 신중하게 계단을 타고 올라가는 동안, 적은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벌써 저격수들이 다 처리했거니.’라고 생각하며 12층에 도달함과 동시에 그녀가 권총을 겨누고 인질들이 모인 방 안으로 들어왔다. 역시나, 테러리스트들은 양 손이 날아간 한 명을 제외하곤 전원 죽어 있었다. 지원은 그 살아있는 테러리스트에게 총을 겨눴다.


“인민사회당 소속이냐?”


그 중년의 남자는 뼈가 드러난 양 손목으로 바닥을 질질 기었다.


“대답해!”


“그… 그래! 맞아! 그, 그렇지만 우리가 원해서 한 건 아니야!”


“뭐?”


“판자촌에… 판자촌에 그 자식이 시켰어!”


“그 자식이라니, 인민사회당의 주요 간부는 전부 투옥됐거나 죽었어!”


“이… 일단 살려줘! 그러면 내가 다 말할게! 제발 살려…”


그 순간, 총성과 함께 그 자의 머리통이 턱 위로 모조리 날아가버렸다. 명훈이 쏜 총탄이었다.


“뭐 하는 거야?!”


“자기가 말했잖아? 테러리스트랑 협상은 없다고. 그런 꿀 발린 독에 넘어가지 말라고 한 건 자기잖아.”


“…그래, 내가 그랬지.”


두어 시간 후, 사건이 완전히 정리되자 정동희 과장이 박수까지 치며 그녀를 맞이했다.


“정말 멋졌소, 이지원 과장. 듣던대로 엄청난 실력이로군!”


“과찬입니다, 정 과장님.”


“보답으로 뭐라도 사주고 싶은데, 혹시 그 저격수도 부를 수 있소?”


“…한번 물어보죠.”


그날 밤, 서울시립대학교 인근. 지원은 남편과 함께 정 과장이 말한 술집으로 움직였다. 대학가는 찬란했던 90년대를 재현하듯 흔한 LED 불빛 대신 네온사인 간판들이 즐비했고, 길가의 술집과 음식점마다 90년대의 흘러간 포크송이나 발라드가 흘러나왔다. 정말 사진으로만 보면 90년대와 헷갈릴 수준이었지만, 골목 너머 하늘을 찌를 듯 빽빽하게 들어찬 고층건물의 대형 LED 광고판에 거의 매일 번쩍이는 삼성그룹의 광고와 길가 젊은이들의 패션은 90년대의 그것이 전혀 아니었다. 명훈이 물었다.


“우리 대학 때 생각 나?”


“어떤 거?”


“그때 패션. 하나같이 관자놀이에 사이버웨어 자랑하고 다니던 때 말이야.”


지원은 그때를 떠올리다 자기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그래, 기억나지. 죄다 사이드컷하고 자기 관자놀이에 박은 사이버웨어에다가 피어싱하는 게 인기였으니까. 왜 그런 게 인기였는지 아직도 모르겠다니까.”


“분명 자기도 그땐 그렇게 하고 다녔던 것 같은데?”


“아니, 난 그런 적 없어.”


“분명 사진도 있는데?”


“그런 적 없다니까!”


“아, 오셨군요!”


갑자기 저 앞에서 정 과장이 두 사람을 부르자 둘은 엄청난 속도로 말다툼을 그만두고 남 인 것처럼 행동했다. 밖에선 두 사람이 부부라는 것은 비밀이었다.


“이지원 과장, 그리고 이쪽이…”


“최명훈입니다.”


두 사람이 악수를 나눈 뒤, 정 과장이 두 사람을 어느 술집으로 안내했다. 지원은 술을 별로 마셔본 적이 없다. 3차 세계대전 후, 대대적인 식량난으로 전쟁 전까지 있던 술들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덕분에 일반적인 서민들이 쉽게 마실 수 있는 술이라곤 초록색 병에 든, 에탄올에 물 탄 저질 소주뿐이었다. 특히나 아버지 세대에만 해도 쉽게 마실 수 있었던(아버지 세대 기준 4캔에 만원밖에 하지 않은) 맥주는 보리의 세계적인 생산량 저하에 힘입어 상류층도 겨우 구경할 수 있는 물건이 되었다.


“오시죠, 술은 제가 사겠습니다.”


술집 안은 상당히 고급스러웠다. 21세기 초기에 사람들이 상상한 사이버펑크 풍의 술집은 요란하면서도 묘하게 차분한 인상을 주고 있었다. 두 사람은 가만히 바텐더 뒤에 있는 메뉴판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술과 칵테일 가짓수는 아는 것 반 모르는 것 반이었다. 모히칸 스타일에 피부 위로 금속 장식이 드러난 젊은 바텐더가 말했다.


“주문하시겠습니까?”


잠깐의 침묵이 돌고, 지원이 먼저 말했다.


“보드카 마티니, 흔들지 말고 저어서.”


“나는 그냥 맥주.”


“나는 갓파더로 주게.”


세 사람이 자리에 앉았다. 정 과장은 명훈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그래서, 자네는 몇 살인가? 이름은?”


“관심은 고맙습니다만, 프리랜서 용병으로써 자세한 것은 말해드릴 수 없습니다.”


“아쉽구만, 그래. 그래서, 이 과장은 이 사람을 어떻게 알게 된 건가?”


지원은 순간 당황했지만 금세 물 흐르듯 거짓말을 할 준비를 마쳤다.


“대학교 동기였습니다. 뭐, 이런 말 하긴 좀 쑥스럽지만 CC였지요. 그러다 경찰이 되고 얼마 안 됐을 때 제가 이 녀석을 구해줬습니다. 그때의 빚으로 이 녀석이 저를 돕는 거지요.”


정 과장은 흥미롭다는 표정이었다. 지원은 정 과장을 속이기 위해 거짓말을 반만 했다. 일단 명훈과 지원은 대학교 동기였고, CC였다. 물론 CC가 결혼까지 이어졌지만. 딱히 지원이 명훈을 구해준 적은 없었다. 명훈이 그녀를 순순히 돕는 이유는 오로지 그녀가 아내이기 때문이었으니까. 곧이어 주문한 술이 나오자 셋은 가볍게 건배를 한 다음 술을 마셨다. 잠시 후, 정 과장이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자리를 뜨자 둘은 안도했다. 명훈이 말했다.


“맥주가 있어서 시켰는데, 맥주가 아니라 맛만 비슷하게 만든 술이었네.”


“맥주를 먹어 봤어?”


“반년 전에, 정회장 의뢰받았을 때 먹어봤지. 확실히 특이 하긴 하더라.”


그때, 정 과장이 다시 돌아왔다.


“잡다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이 과장, 물어볼 것이 있네. 낮에 인민사회당 사건 말인데… 테러리스트들이 뭐라 이야기는 안 하던가?”


순간 지원과 명훈의 눈길이 교차했다.


“예, 놈이 ‘판자촌’을 언급했습니다.”


“판자촌…? 이 근처에 판자촌이라고 할 만한 곳이라면…”


명훈이 말했다.


“종로 인근 ‘트레일러 타운’ 뿐이죠.”


‘트레일러 타운’. 그 말만 언급했을 뿐임에도 셋은 동시에 몸서리쳤다. 3차 세계대전 말기 종로가 핵미사일로 소멸하고 연 이은 기후 변화와 식량난, 연료 부족으로 혼란스러울 때 빈민들이 방사능에 오염되어 아무도 접근하지 않던 종로 인근으로 몰려들었다. 그 즈음해서 삼성이 대한민국을 장악하고 수도를 수원으로 옮기면서 종로 인근은 버려졌고 빈민들이 모여 종로의 건물 잔해와 연료 부족으로 버려진 자동차 등을 모아 거대한 판자촌을 형성했다. 그곳이 바로 ‘트레일러 타운’. 빈민들 수만~수십만이 모였으니 자연스럽게 갱단과 각종 범죄 조직이 모여들며 치안 당국에서도 완전히 손을 놔 버린 우범지역이 되었다. 거기에다 빈민들이 방사능에 쩔은 잔해들로 집을 지으며 마을 전체의 방사능이 정상치의 수십 배에 달해 항간에서는 ‘뉴 클리어 타운’, ‘래디오 액티브 시티’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 곳이 바로 트레일러 타운이었다.


“확실히 그런 동네라면 이번 테러의 주동자가 있을 법도 하지. 그런데, 거길 갈 건가? 나 같으면 갈 생각도 안 할 걸세. 외부인은 30분 안에 대부분 죽네. 설령 살아남는다 해도 오래 못 살 테지. 이 과장도 알겠지만 치안 당국은 물론이고 삼성도 손을 놓은 동네야. 여자인 이 과장은 더더욱 위험하고.”


“압니다. 그래도 한번 조사해볼 가치는 있어요. 삼성이 하지 않는다면 저희라도 살펴 봐야죠.”


정 과장은 잠시 침묵을 유지했다.


“알겠네. 위에다가 보고도 하고, 나도 할 수 있는 선에서 도와주겠네.”


“감사합니다, 정 과장님.”


잠시 뒤, 지원과 명훈은 술집에서 나와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둘 다 스스로 운전하는 것을 선호했지만 이럴 때만큼은 자율주행이 좋을 수가 없었다. 마침내 집에 도착하자 명훈은 옷을 갈아입고 서랍에서 각종 소독약과 연고를 가져왔다.


“옷 좀 벗어봐.”


그녀는 순순히 그 말에 따랐다. 갈색 방탄 코트와 마찬가지로 방탄 기능이 있는 바지를 벗고 속옷바람이 된 그녀의 온 몸에는 수많은 멍과 상처자국이 즐비했다. 뛰어난 방탄 성능을 가진 옷도 최소 800J에 달하는 총탄을 상처 하나 없이 막아줄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항상 멍과 마치 긁힌 듯한 상처를 온 몸에 달고 살았다. 약품이 상처에 닿을 때 마다 그녀는 고통에 옅게 신음했다.


“아파~!”


“조금만 참아 봐, 금방 끝나.”


총에 맞아가며 범죄자들을 사살하는 그녀 답지 않게 온갖 엄살과 투정은 다 부린 끝에, 명훈은 상처에 응급처치를 완료했다. 지원은 투덜거리며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래서, 몇 시간 전에 집에 가서 보자고 한 건 무슨 뜻이야?”


“그러게~ 무슨 뜻일까?”


“왜? 오늘 재우지 마?”


그녀의 날카로운 물음에 명훈은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런 그를 보며 지원도 따라 웃었다. 오랜만에 평화롭고 따뜻한 밤이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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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술집에서 세 사람이 먹은 술 모두 우리가 지금 마시는 술과 다른 방식으로 제조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