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우주. 외계 함선이 떠다닌다.

 

“함장님, 새로운 행성입니다. 고등 생명 활동이 감지되었습니다.

“별거 없을 것 같네.”

 

 

 

진짜 별거 없었다. 행성민들의 사고방식은 너무나 진부해 조사할 거리가 없었다. 그들은 너무나도 평범하게 불행했다. 전 우주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불행한 행성. 이 행성이 그 부류다.

 

얼마 후 행성은 정화되었다.

 

 

 

함장은 차가운 우주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는 불행한 이들을 억 단위로 살해하고 있다.

그를 통해 우주의 행복량에 기여하고 있지.

불행한 이들이 쓸려나간 빈 땅에는 더 행복한 종족들이 살아갈 것이다.

그럼, 이 우주는 행복해지겠지.

 

무엇을 위한 행복인가?

 

 

 

그 순간, 함장의 머릿속 한편에 이런 생각이 즉시 떠오른다.

행복은 언제나 궁극적인 가치이며, 모든 물질과 관념은 행복을 위해 존재한다. 자유, 평등, 사랑, 심지어 목숨까지도. 만일 저 가치들을 무시하고 더 큰 행복을 생산할 수 있다면, 무시해도 좋다.

 

횡설수설 하는군.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어.

 

 

 

함장이 한숨을 쉬었다.

“하아…”

 

부함장이 말했다.

“왜 그래요? 뭐 죄 지은 사람처럼 울상이야.”

 

함장이 말했다.

“죄를 짓고 있는지 아닌지 모르겠어서.”

 

부함장이 말했다.

“그럴 때는 일단 안 하는 게 좋겠죠?”

 

함장이 말했다.

“그래. 탐사를 좀 쉬자.”

 

머나먼 우주. 외계 함선이 떠다닌다. 함선은 잠시 길을 잃었다.










7



머나먼 우주. 외계 함선이 떠다닌다.

 

“함장님, 새로운 행성입니다. 고등 생명 활동이 감지되었습니다.”

“일하기 싫어…”

 

 

 

행성 궤도에서 다섯 시간이 흘렀다.

함장이 감탄했다.

“야, 여기 행성 많이 발전했네. 지표면 대부분이 도시야.”

 

부함장이 자판을 두들기며 대꾸했다.

“그쵸. 그런데 이상한 게… 행성민들이 안 보이네요. 로봇만 잔뜩 있어요.”

“오, 로봇 반란 그런건가?”

 

“한번 내려가서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그래라. 우리 부함장 일 참 잘해.”

 

 

 

함선이 하강했다. 곧 도시의 대공포대들이 불을 뿜었다. 미사일도 수십 발 날아와서 함선이 조금 긁혔다. 

 

함장이 투덜거렸다.

“아씨… 칠 다시 해야겠네.”

 

함선이 착륙했다. 착륙과 동시에 전투 로봇들이 함선을 에워쌌다. 

 

함장이 물었다.

“부함장, 저거 해킹 못하나?”

“저 문과예요. 함장님이 해봐요. 이과잖아요.”

“나 순수과학 쪽이야. 못해. 그냥 함포로 정리해라. 해병대도 깨우고.”

“네.”

 

 

 

콰광!




시간이 흐르고, 전투로봇들이 모두 고철덩이가 되었다. 부함장은 잔해를 분석하고는 곧 보고했다.

“함장님? 분석해 봤는데, 딱히 로봇 반란이 일어난 건 아닙니다. 로봇 구조가 인간에 의해 설계된 것 같습니다. 보통 로봇 반란이 일어나면 구조가 재설계되거든요.”

“그럼 인간이 있단 말이야? 어디?”

 

부함장이 손가락으로 함장 뒤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보세요.”

“응?”

 

그곳에는 지하로 통하는 콘크리트 입구가 있었다.

 

함장이 말했다.

“무섭게 생겼네.”

 

부함장이 말했다.

“도시에는 로봇들만 득실거리고요, 지하도시에 인간들이 사는 것 같습니다. 전투복 입으시죠. 제가 함선을 지키죠.”

“자네 너무 열심이야…”

 

 

 

함장과 해병대는 지하로 진입했다. 전등 하나 없었다. 차갑고 무거운 공기가 함장의 전투복을 휘감았다. 함장과 해병대는 긴장한 채 서서히 어둠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함장이 무전으로 부함장에게 말했다.

“부함장? 자네 나한테 무슨 원한 없지?”

“왜요?”

“뭐 나올 거 같아서 그래. 으스스해. 도시가 아니라 무덤 같아.”

 

함장은 긴 계단을 내려가 잠긴 문에 다다랐다. 문을 부수고 들어가자, 아주 긴 복도가 나타났다. 복도 양쪽에는 줄지어 문들이 달려 있었다. 그 중 한 문을 열고 들어가자 관이 가득찬 방이 나왔다.

 

“시X! 진짜 무덤이잖아!”

“깜짝이야! 함장님, 무전으로 소리 지르지 마세요! 안에 시체 있어요?”

“잠깐만, 이제보니 관이 아니라 동면 캡슐이구만. 죽은 게 아니라 동면 중이네.”

 

모든 방은 동면 중인 인간으로 가득했다. 함장은 복도를 계속 걸었다. 복도 끝에는 컴퓨터로 가득 찬 방이 있었다. 그곳에는 인간 한 명이 책상에 앉아 졸고 있었다.

 



함장은 그를 깨우며 말했다. 번역된 음성이 전투복에서 흘러나왔다.

“저기…”

“으엑. 누구십니까?”

“저흰 외계인입니다. 물론 우호적이고요. 탐사 및 교류를 위해 이곳 행성에 왔습니다.”

 

인간은 어이없다는 듯 함장을 바라보았다. 함장은 육중한 우주 전투복을 입고 있었다. 얼굴은 헬멧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인간은 곧 이렇게 생각했다.

‘전투복이 아주 멋지게 생겼다. 좋은 외계인이군.’

 

곧 그는 함장에게 말했다.

“어우, 환영합니다. 지구엔 어쩐 일이십니까?”

“탐사 목적입니다. 이 행성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인간은 대답했다.

“우리 종족은 시뮬레이션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사회 전반적인 일은 모두 로봇한테 맡기고요. 로봇이 못 하는 일들만 깨어있는 극소수 인간들이 하고 있습니다. 저같이요.”

 

함장이 물었다.

“왜 시뮬레이션 세상에 들어가 있는 겁니까?”

 

인간이 대답했다.

“우주는 넓고, 우주 개척은 어렵고. 지구는 좁아 터졌고. 먹을 건 없고. 그래서 다 행복한 시뮬레이션 세상으로 들어간 거죠.”

 

함장이 말했다.

“현명하군요. 혹시 컴퓨터 좀 봐도 되겠습니까?”

 

인간은 안된다고 말하려다, 뒤에 총을 든 무시무시하게 생긴 해병대원을 보고 겁을 먹었다.

“고장내실 거 아니죠?”

 

함장은 USB를 꽂으며 말했다.

“아이 참, 그런 거 아닙니다. 그냥 복사하는 거에요. 금방 끝나요.”

 

컴퓨터의 정보를 빼내는 중, 인간은 함장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어느 행성에서 왔는지, 어떻게 우주를 여행하는지, 이 우주에 지성체가 많은지 등.

함장은 대충 대답해 주었다.

 

USB에 정보를 모두 담고, 함장은 떠나려 했다. 인간은 쭈뼛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 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얼굴 좀 보여주실 수 있는지… 여쭤봐도 되는지를... 허락해 주실 수 있으신지…를 묻고 싶습니다.”

 

뒤에 해병대원이 신난 듯 말했다.

“아주 기합입니다, 함장님! 중첩의문문을 아는군요!”

 

 

 

함장이 헬멧을 벗었다. 그러곤 씨익 웃었다.

 

인간이 놀란 듯 말했다.

“외계인이 이렇게 잘생긴 줄 몰랐는데요.”

 

함장이 헬멧을 다시 쓰며 말했다.

“각 행성 원주민들의 미적 감각은 비슷하더군요. 우리 조사단은 원주민들의 호감을 사기 쉬운 외형을 가지도록 개조됐어요. 아무튼 잘 지내쇼, 인간 친구.”

 

“잘 가요~.”

 

 

 

함장은 지하를 벗어나 다시 지상으로 올라왔다. 태양이 눈부셨다. 그는 곧 함선으로 들어갔다.

 

부함장이 인사했다.

“오셨어요~”

 

함장이 신난 듯 말했다.

“나 잘생겼대. 자네가 보기엔 어떤가?”

 

부함장은 하찮은 듯이 말했다.

“봐 줄만 해요.”

 

 

 

전투로봇이 자꾸 공격을 해 와 함선은 행성 궤도로 올라갔다. 그곳에서 부함장과 헤-으-응은 함장이 가져온 USB를 통해 행성을 조사했다.

 

네 시간 후, 부함장은 함장에게 보고했다.

“함장님? 대부분 조사했습니다. 행복도는 아주 높습니다. 정화는 필요 없겠어요.”

 

함장은 안도한 듯 말했다.

“다행이네. 그럼 슬슬 떠나자.”

“네.”

 

 

 

궤도를 떠나는 중, 부함장은 함장에게 말을 걸었다.

“시뮬레이션 세상에서 행복한 건 진정으로 행복한 걸까요?”

 

함장이 말했다.

“그럼. 헤-으-응이 그렇다잖아.”

 

그는 곧 말을 이었다.

“우리의 세계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시뮬레이션 세계는 0과 1로 이루어져 있지. 차이점은 그뿐이야. 어느 세계가 참이고 어느 세계가 거짓이고 그런 게 아니란 말일세. 그저 기본 입자가 다른 세계일 뿐이지… 다만, 인간이 자아를 자각한 세계가 원자 세계이기 때문에 원자 세계가 참처럼 느껴지는 거고.”

 

부함장이 말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우리 종족은 시뮬레이션 세계 안 돌리나요?”

 

함장이 대답했다.

“우리 선조들이 오래 전 돌려봤대. 그런데, 비용 대비 행복 생산률이 안 좋다더라. 참 아쉬워. 호-에들 다 시뮬레이션 세계에 넣어버리면 좋을 텐데.”

“그러게요.”


”이제 가자.”

“네.”

 

 

 

머나먼 우주. 외계 함선이 떠다닌다. 행복을 찾아서. 종족의 행복량을 늘리기 위한 조사를 위해서. 또 불행한 행성을 정화하기 위해서.

“함장님, 새로운 행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