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서울 2063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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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은 돌진하는 프로레슬러처럼 욕실에서 바깥으로 몸을 날렸다. 바닥을 두어 바퀴 구른 뒤 벽과 부딪혔지만, 아픔 보다 당혹감이 올라왔다. 지원은 바람보다 빠르게 옷을 다시 입은 다음 머리를 싸맸다.


‘잠깐 잠깐 잠깐 잠깐! 대체 뭐야, 저 애?! 분명 덩치도 작고 목소리도 어려서 기껏해야 초등학생 정도인 줄 알았다고! 근데 저 ‘새카만’ 그건… 그건! 최소한 중학생이야! 이런 젠장할, 보여 버렸잖아!! 남편 말고는 외간 남자한테 보인 적 없었는데…’


지원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내 실수지. 아무리 그래도 처음 본 애랑 같이 씻으려 하다니… 완전 정신줄을 놓고 있었잖아…”


직후, 소년이 열린 문 틈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저기… 오, 옷은요…?”


지원은 화끈거리는 얼굴을 감추며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잠시만.”


지원은 옷장에서 자기 옷 중에 괜찮은 셔츠와 바지를 건넸다. 소년이 그것을 입고 나오자, 지원은 상당히 헐렁한 옷을 걸친 소년에게 물었다.


“미안하지만 이준용 군, 소개를 다시 해줄래? 나이라던가 좀 더 자세하게.”


준용 역시 지원과 눈을 잘 마주치지 못했다.


“제 이름은 이준용입니다. 2047년 8월 3일생, 16세고 키는 148cm, 몸무게는 44kg, 자택에서 홈스쿨링으로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이지호, 어머니는 장혜영입니다.”


“왜 너희 형이 너를 죽이려 한 건지 아니?”


준용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도 모릅니다. 다만 아버지와 형님은 매우 자주 의견 차이로 다퉜습니다. 그것과 관련이 있을 겁니다.”


지원은 잠시 곰곰이 생각하더니 벌떡 일어나 상자를 뒤졌다.


“잠시만 있어 봐… 생각해 봤는데 널 이대로 두기에는 위험하다고 판단이 들었거든.”


지원은 빗과 가위를 들고 준용에게 다가왔다. 준용은 당황했다.


“뭐, 뭐 하는 겁니까?!”


“가만히 있어! 네 스타일은 너무 눈에 띄니까 다듬어야 하거든?”


잠시 후, 지원은 자신의 결과물에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거울 한번 볼 레? 내가 잘랐지만 정말 멋지게 잘랐는 걸?”


준용 역시 자신의 변화에 매우 놀란 눈치였다. 거칠면서도 일관적으로 잘린 그 머리카락은 요즘 길거리에서 유행하는 헤어스타일이었다. 


“이제 길거리에서 삼성 놈들한테 목격되어도 지나가는 학생 1로 볼 걸?”


그때, 지원은 갑자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레나, 무슨 일이야?”


“언니, 지금 당장 LAD로 와주실 수 있어요? 빨리요!”


“왜 그래? 무슨 일인데 그렇게 다급한 거야? 해어진 지 반나절도 안 지났잖아.”


입은 의문을 표했지만, 그녀의 몸은 이미 빠르게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기서 이렇게 말하긴 힘들어요. 빨리 와주세요.”


통화가 끊기자, 지원은 준용에게 일렀다.


“냉동식품 데워 먹을 줄은 알지? 절대로! 집 밖에 나가지 마. 금방 돌아올 게.”


지원은 차를 몰고 급히 LAD로 향했다. 지하 사무실에 들어섬과 동시에, 지원이 물었다.


“무슨 일인데 이렇게 급히 불렀어?”


사무실에는 조 씨와 인호도 와 있었다. 조 씨가 심히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왔군. 이거 한번 봐봐.”


조 씨가 틀어준 것은 뉴스였다.


“30분 전에 나온 긴급 속보야. 지금 인터넷이 완전 난리라고!”


아나운서가 말했다.


“긴급 속보입니다. 새로운 삼성 회장 이준형 각하께서 조금 전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수많은 언론사의 마이크와 카메라 플레시가 터지는 가운데, 이준형은 차갑다 못해 뻔뻔하게 느껴지는 얼굴로 말했다.


“조금 전 우리 삼성 정보원들은 제 사랑하는 동생이 ‘고려그룹’ 소속 테러리스트들에게 목숨을 잃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습니다. 저 이준형! 동생을 저들에게 잃었다는 것에 슬픔과 분노를 감추지 않겠습니다! 우리 사(社)는 공식적으로! 제 사랑스러운 동생의 원수를 갚기 위해! 고려그룹에 공식적으로 단교를 선언하는 바입니다! 이는 그들에게 주는 경고의 시발점일 것이며, 앞으로 더욱 더 거센 비판과 처벌을 직면할 것입니다.”


준형은 눈물을 훔치는 남우주연상 급 연기력을 선보이며 기자회견을 끝마쳤다. 지원은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할 말을 잃은 채 담배를 물었다.


“자기 손으로 아버지에 동생까지 죽이려 들었으면서… 그 책임을 가만히 있던 고려그룹에게 돌리는 건가?”


조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고려그룹은 평양을 중심으로 구 북한 지역 최대 재벌그룹이야. 사병이나 무기 제작기술도 삼성에 버금가지. 하는 짓거리는 옛날 북한이랑 다를 바 없는 놈들이지만 말이야.”


인호가 말했다.


“회장이 공식적으로 고려그룹과 단절을 선포한 건 역시나…”


“그래, 레나가 도청한 것처럼 전쟁을 원하는 거지. 전쟁으로 과거 삼성의 압도적인 면모를 되살리려 하고 있어.”


지원이 물었다.


“전쟁… 이 땅에 근 30여년 만에 다시 전쟁이라니… 얼마나 걸릴까?”


“내 생각에는 길어야 1년이야. 특히 삼성 놈들은 자기 기업 사병뿐만 아니라 국군도 동원할 수 있으니까.”


지원은 얼마 전 거리에서 만난 참전용사 출신 노숙자를 떠올렸다.


“또 전쟁… 그나저나 그럼 삼성은 그 녀석을 찾는 걸 포기한 걸까?”


“그 녀석? 아, 그 회장 동생 말이지? 일단 그런 것 같긴 한데… 모르겠어.”


레나가 물었다.


“뭐가?”


“저 놈들 하는 짓거리로 봐선 납치해서 직접 시체로 만들어 버리는 것도 가능하지. 확실한 ‘증거’를 남기기 위해 말이야.”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지원이 무언가 떠오른 듯 물었다.


“아, 레나. 그런데 이것 만으로 나를 또 불렀을 리는 없겠지? 무슨 일 있었어?”


레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 그게… 실은…”


인호가 대신 말했다.


“우리가 잠깐 해산한 사이, 삼성 놈들이 LAD에 쳐들어 왔어요.”


지원은 경악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자세히 설명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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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돌아온 네오서울 20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