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뇌는 유독 간잽이스러운 면이 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 안 유리창에 머리를 대고 그 떨림을 느끼고 있노라면

쓸데없는 잡념이 사라지고 오로지 거장의 손길로만 빚어진 듯한 문장들이 기가 막히게 떠오르는데

왜 집에 와서 컴퓨터 앞에 앉고 나면

그 잠시 간에 대단하다고 자부했던 머릿속 한 줄짜리 따옴표 글들은 사라지는가.

컴퓨터 앞에 앉아서 꽉 찬 눈으로

주변 책장에 시선을 주고 달력에 시선을 주고

먹다 남은 음료병에 시선을 주고 인터넷에 시선을 주고

불 못 붙인 향초에 시선을 주고 꽉 들어찬 구닥다리 책장에 시선을 주고

그렇게 시선을 대가 없이 주다 보면

그러다 보면 나는 어느새 빈털털이가 되어 있다.

돈은 있는데 정신머리는 없는 나는 빈털털이.

텅 빈 눈을 한 빈털털이.

버스 안에서의 고뇌

침대 위에 웅크려서 고뇌

자투리 시간의 고뇌

그들은 도대체 어디로 갔는가.

사람의 뇌는 유독 간잽이스러운 면이 있다.

고뇌와 쾌락 사이에서 뇌는 특히 간잽이스럽다.